- 물밀듯이 쏟아지는 돈, 돈, 돈…‘위기의 서막’
- 미국에 ‘패키지’(한국 시장+동아시아 거점) 내준 한국
- 서울대가 2류 대학으로 전락한다고?
- 세계 패권은 미국에서 EU로 넘어가는데…
- 헌법도 수정하고, 정치체제도 바꿔야
- 호랑이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비결
‘새벽 6시에 던지는 주사위’
또 하나. 그에겐 한국의 미술시장이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있다. 이 때문에 그는 미국 뉴욕으로 진출하고픈 욕심이 있다. 좀더 공정하게 작품을 평가한다는 미국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그래서 좀더 많은 미술 애호가가 그의 작품을 거실에 걸어놓는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지난 3년 동안 미국 미술시장을 노크한 결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 미술품 중개인을 알게 됐다. 그의 눈에 띄면 미국 진출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노련하고 계산이 철저한 상인답게 중개인은 지난해 K씨의 작업실을 보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중개인은 20일 동안 한국에서 머무르며 그의 작업실뿐 아니라 인사동 등 한국의 미술시장을 둘러보았다. K씨가 한국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어떤 작품을 높이 평가하는지, 그리고 K씨의 안목도 확인하려는 듯했다. 중개인의 태도는 정중했지만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는 때로 한국 시장에서 거래되는 그림을 두고 K씨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K씨가 주로 사용하는 색깔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았다. 예컨대 “미국인은 짙은 브라운을 좋아하니 이런 계열의 색깔로 배경을 칠하면 좋겠다”는 식이었다.
‘미국에 진출하려면 중개인의 인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K씨는 자신의 스타일을 바꾸려고 노력했다. 미국에서 통하면 세계에서 통한다지 않는가. K씨는 몇 개월 뒤 뉴욕 미술시장에 내놓을 그림을 몇 점 보내야 했다.
그러나 스타일이 어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가. 변화의 욕구를 내면에서 깔끔하게 소화하지 못한 탓인지, 붓이 힘차게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뉴욕에 작품을 보냈고,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또 다른 미술품 중개인의 눈에 띄었다. 그 중개인은 K씨에게 “아예 작업실을 미국으로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한국에선 미국의 트렌드를 쫓아가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기회는 온 것 같은데, 지금으로선 어떤 결정도 할 수 없어요. 미국에 가면 내 스타일을 잃을 것 같아요. 판매 가격에도 만족할 수 없고요. 물론 미국 미술시장에서 내 그림은 생소할 것이고, ‘진입비용’이 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제게도 한국 화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잖아요.”
“멕시코 영화계는 몰락했다”
3년쯤 뒤, 그는 어디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서울일까, 뉴욕일까. 그의 작품은 진화했을까, 퇴보했을까. 미국 진출은 그에게 기회였을까, 위기였을까.
멕시코 출신의 영화감독으로 최근 영화 ‘바벨’을 내놓은 알렉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인생은 새벽 6시에 던지는 주사위와 같다”고 한 적이 있다. 오늘이 어떻게 굴러갈지 모른다는 얘기다.
점치는 능력은 주술이지만,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세상을 좀더 잘사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이 세상은 얼마만큼 상상하느냐에 따라 대응의 깊이와 폭이 달라진다. 답을 찾는 능력보다 세상이 놓친 질문을 던지는 능력, 과거를 분석하는 날카로움보다는 미래를 상상하는 ‘장난기’가 요구되는 세상이니까.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EU 중앙은행. 유로화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판에 한국이 미국과 좀더 가까워진다고 한들 그렇게 낯설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의 엘리트 관료들이 대부분 미국에서 ‘나머지 공부’를 했고, 교수 사회는 대부분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미국 드라마에 열광하는 주부와 대학생도 부지기수이고, 한국에서 상영하는 주요 영화는 대부분 미국산이다. 도대체 뭐가 더 바뀐다는 말인가.
화가 K씨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미국 진출이라는 기회의 순간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거대한 시장, 엄청난 수요 앞에서 그는 흥분하기보다 자신이 몹시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조만간 한국에 남을 것인지, 짐을 싸서 미국으로 떠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13년 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멕시코의 영화감독들은 미국이라는 기회의 시장에 뛰어들었다. 미국으로 가는 담을 헐자면 멕시코로 들어오는 담(스크린쿼터)도 헐어야 했다. 할리우드 자본을 끌어들이면 세계적인 멕시코 영화가 탄생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지난해 6월 ‘KBS 스페셜’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의 멕시코를 방영한 적이 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이강택 PD는 “미국의 자본이 멕시코 영화관을 사들이고, 대부분 미국 영화를 상영하는 바람에 멕시코 영화계는 몰락했다”고 전했다.
영화전문지 ‘씨네21’에 따르면 지난해 멕시코 영화의 박스오피스 점유율은 4.7%. 그나마도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선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화 ‘판의 미로’를 감독한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는 “NAFTA 체결 이후 모든 보호막이 무너지면서 영화도 상품처럼 취급됐고, 결국 황폐화됐다”고 말했다.
멕시코를 다녀온 이강택 PD는 ‘아마로 신부의 죄’를 감독한 카를로스 카레라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차례 감독상을 수상한 유능한 감독이었지만, 지금은 CF감독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그도 다른 감독처럼 미국으로 건너가 또 다른 진화를 꿈꿨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는 “할리우드 자본이 원하는 해피엔딩 영화는 내가 그리고 싶은 세계가 아니다”며 “인간의 삶을 진솔하게 그리고 싶지만,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가 급하다”고 털어놓더란다.
한국은 동아시아를 배반했다?
돈은 꼭 대가를 바란다. 할리우드의 돈을 갖다 썼으면 할리우드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무역장벽이 사라지면서 돈은 높은 곳(미국)에서 낮은 곳(한국)으로 물밀듯이 쏟아지겠지만, 사실은 그때부터가 위기의 서막인 셈이다.
나중에 돌아보면 돈은 물과 달리 낮은 곳(한국)에서 높은 곳(미국)으로 흘러들어간다. 양극화가 그런 것 아닌가. 게다가 돈 앞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느냐, 자본의 입맛에 맞출 것이냐 고민할 것이다.
10년 동안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했고, 2003년부터 한국의 FTA 전략에 대해 많은 논문을 발표한 한림대 최태욱 교수. 그는 지구상에 세 가지의 FTA가 있다고 말한다. 미국식, EU식, 개발도상국식이 있는데, 미국만이 상품뿐 아니라 농산품, 서비스(투자, 법률, 교육, 지적재산권 등)의 교역까지 협상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농산물과 서비스도 엄연한 상품이지만 공장에서 찍어내는 제품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한 나라의 문화와 정신을 담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보호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 부분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으므로 협상 상대국의 저항을 밀고 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도쿄국제전시장에서 선보인 미국 듀폰의 보호장구. 듀폰은 제품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최 교수의 시각에 따르면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 표준 경쟁’ 중이다. 자유시장체제를 옹호하는 영미식 자본주의, 시장도 조정이 필요하다는 북유럽식 자본주의, 개인보다는 조직이 발전해야 한다고 믿는 일본식 자본주의가 있다. 어떤 기술이 세계표준이 되면 다른 기술은 사장(死藏)되듯, 각각의 자본주의도 표준 경쟁에서 밀리면 지구를 떠나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한미 FTA 타결은 한국이 미국식 표준에 편승했다는 뜻이 된다. 이 때문에 일본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의 후카가와 유키코 교수는 ‘조선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이 정경(政經)분리를 원칙으로 하는 동아시아 지역주의의 전통을 이탈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한국은 동아시아를 배반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경북대 석좌교수(경제학)와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한국이 아시아에서 고립돼 있기 때문에 미국을 끌어들인 전략은 좋다고 본다”며 “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한국 시장뿐 아니라 아시아의 거점을 내준 것이란 점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이를 내준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개성공단을 인정받았다면 남북한 경제공동체가 시작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노무현 정부는 정치인의 일(거시적 전략)과 관료의 일(구체적 협상)을 혼동한 나머지 정작 할 일을 못했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효율성 ‘중시’ 형평성 ‘무시’
자, 그렇다면 ‘한국이 미국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경제체제의 통합이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예상하려면 우선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에 미국식이 있고, EU식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미국은 효율성을 중시하지만, EU는 형평성을 중시한다. EU는 FTA를 추진할 때 상대국의 경제력이 취약하면 공동기금을 조성해 상대국의 취약한 부분을 지원한다. 체력을 보강하도록 보약을 먹이고 난 뒤 경계를 허무는 협정을 맺어야 서로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최태욱 교수는 “EU는 ‘맞춤형 FTA’를 지향하는데, 이는 형평성을 높여야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의 자본은 효율성을 중시한다. 이런 나라에선 안정성이나 형평성이 비집고 들어설 자리가 없다. 미국식 구조조정은 효율성의 명분 아래 가차 없이 진행된다. 단기적으로 성과를 내는 경영방식이 지상목표다(미국이 왜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주장하게 됐는지 상세하게 설명한 책이 있다. 도미니크 플리옹 파리-노르 대학 경제학 교수가 쓰고 경남대 서익진 교수가 번역한 ‘신자본주의’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이식될 한국에선 기업에 무한한 자유를 주는 쪽으로 사회가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한미 FTA 협상 내내 독소조항으로 지목된 ‘투자자 소송제’는 일개 기업이 정부를 상대로 국제분쟁기구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물론 정부는 공중보건, 환경, 부동산 안정화정책 등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안전장치를 했다고 해명했지만, 개방은 확대되면 확대됐지 축소할 수는 없다(역진(逆進) 방지시스템 : 거꾸로 가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미국 환경폐기물 업체가 국내에 회사를 설립해 미국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 만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막는다는 이유로 제소할지 모른다. 국내 기업은 수도권에 공장을 설립할 수 없지만, 외국 기업은 소송을 통해 가능할지 모른다. 민주적 통제가 약화되고, 기업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상상의 지평을 넓혀보자. 교육과 의료 부문은 개방 대상에서 유보됐지만, 앞서 언급한 역진방지시스템 때문에 조만간 개방의 절차를 밟을 것이다. 거의 모든 부문이 개방됐는데, 이 부문만 자물쇠가 채워져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논리다.
먼저 교육 분야. 미국의 교육기업이 한국에 진출할 것이다. 타깃은 대학시장. 영어를 배우기 위해 조기 유학을 보내는 한국은 미국에 있어 황금의 시장이다. 가령 미국 기업은 한국에 대학 분교를 세우고 2학년까지는 한국에서, 3학년부터는 미국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학비는 연간 5000만원. 미국 유명 사립대학 수준으로 정한다.
‘누가 약자를 챙기랴?’
누가 이렇게 비싼 수업료를 내고 자녀를 이 대학에 보낼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의외로 수요가 있다. 적어도 2년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닐 수 있으니 부모 처지에선 안심이 된다. 비행기 삯, 체류비용을 생각하면 연간 5000만원이 비싸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아이비리그 분교이고, 교수진은 노벨상 수상자로 채워져 있다면 부모들은 슬슬 욕심을 낼 것이다.
외국 대학의 분교가 학비를 올렸으니, 그때부터 한국의 대학들은 ‘돈 싸움’에 휘말리게 된다. 고려대와 연세대 등 국내 대표 사학(私學)들이 삼성과 현대를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거대 자본을 유치하고 해외 석학들을 영입하면서 외국 대학과 경쟁한다. 등록금은 당연히 올라가고, 기부금 입학도 허용된다. 거대 외국 대학과 싸우자면 예전의 규제는 먹히지 않는다. 당장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판에 규제가 다 무슨 소용인가.
교육부로부터 비교적 자율경영권이 확보된 사립대학은 거침없이 개혁을 추진하지만, 국립대학은 뒤처진다. 서울대의 명성은 점차 빛이 바랜다. 미국을 보라. 아이비리그는 모두 사립대학이지 않은가. 국공립대학엔 자본과 인재가 몰리지 않는다. 한국의 오랜 대학 순위가 순식간에 역전되기 시작한다. 부잣집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정부 지원마저 축소된 국립대학은 쇠락의 길을 걷는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유명 병원이 한국에 진출하고, 의료보험 적용을 거부하면서 부자들을 겨냥해 값비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부자들은 외국 병원으로 몰리고, 이들이 내던 보험료가 빠져나가면서 보험재정은 악화된다. 이 때문에 일반 병원의 서비스 수준이 떨어지고 서민 환자는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기가 힘들어진다. 보험료는 계속 상승하고, 서민은 보험 가입을 포기한다. 실제 미국 사회는 국민의 30%가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법률 분야는 어떨까. 이미 법률서비스는 5년에 걸쳐 3단계로 나눠 개방하기로 했다. 협정 발효와 함께 1단계 개방에선 미국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다. 2단계 개방에선 미국 로펌(법률사무소)의 국내 사무소와 국내 로펌의 업무 제휴가 허용된다. 3단계에선 미국 로펌과 국내 로펌의 동업이 가능해진다.
미국 로펌의 경쟁력은 막강하다. 미국의 상위 20위권에 드는 로펌의 경우 10년 이상 전문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파트너급 변호사만 3000여 명을 두고 있다. 국내 최대의 법률회사 김앤장의 변호사는 300명이 채 안 된다. 미국 변호사는 이혼, 상해, 이민, 의료사고 등 각기 특화된 분야를 맡고 있어 한국 변호사처럼 폭넓게 공부한 ‘범생이들’이 따라잡기 힘들다.
앞에서 밀리고, 뒤에서 치이고
법률분규에선 누가 더 다양한 케이스(사례)를 알고 있냐에 승패가 달려 있다. 게임의 룰이 이렇다면 이런 공부를 해서 변호사가 된 미국 전문가를 당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1998년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이 미국 로펌에 완전히 장악된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상위 10위권에 드는 독일 로펌은 고작 1~2개에 불과하다. 대륙법의 아버지로 대접받던 독일이 이 지경이라면 한국은 더 힘들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한국의 법률시장에서 미국 로펌이 승리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본격적으로 ‘분규를 부추기는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업계는 어떻게 바뀔까. 관세 장벽을 낮춰 혜택을 가장 많이 보는 쪽이 제조업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자동차와 반도체는 좋고, 의약품과 농업은 취약하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의 국제정책대학원 유종일 교수는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유 교수는 “언론에서 놓치고 있는 분야가 정밀기계와 정밀화학의 미래”라며 “이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미국에 한국 기업들이 인수·합병되면 한국 경제는 미국의 하청업체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정밀기계와 정밀화학 분야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예컨대 설립된 지 200년이 넘는 미국의 화학섬유업체 듀폰은 나일론을 개발해 일약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나일론 기술로 세계를 제패했지만, 그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엄청난 기술개발비를 투자했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막대한 개발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의 재벌은 정밀화학 분야를 키울 엄두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한국 기업이 나오지 않는다면 한국은 영원히 ‘천수답’ 신세를 피할 수 없다. 반도체를 만들 때도 정밀기계가 있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제조업의 핵심을 외국 기술에 의존한다면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수 없다. 재벌 기업의 계열사조차 미국 기업에 인수되면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이고, 실업자가 양산될 것이다.
더구나 중국과 FTA를 체결한다면 경공업 분야에서 중국에 먹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앞에서 밀리고 뒤에서 치이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농촌은 어떻게 변할까. 노무현 정부는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멕시코 농업은 망하지 않았다. 미국에 수출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강택 PD는 그 주장이 허구임을 밝히고 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농가를 가보니 미국 청과물시장에 과일과 채소를 공급하는 새로운 비즈니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니 농가는 거의 미국인 소유이고, 멕시코 농가는 위탁 재배하는 노동자였다. 수출을 해서 번 돈이 미국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에서 농업의 위기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았다. NAFTA를 통해 농업 부문의 관세를 줄이다보니 농촌육성자금이 바닥났다. 멕시코 정부는 농촌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공기업 민영화를 단행했다. 세수(稅收)가 없으니 공기업을 미국에 매각하게 된 것이다.
전력, 수도, 가스 등 사회의 공적 인프라를 담당하는 공기업을 매각하자 당장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멕시코 수도의 외곽지역만 해도 서민이 전기와 물을 마음대로 쓰지 못해 피폐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 PD는 “NAFTA 체결 뒤 5년쯤 지나니까 일부 시민이 실상을 이해했으며, 10년쯤 지나 모두 알게 됐지만 너무 늦었다는 것이 멕시코인들의 푸념”이라고 전했다.
“한국은 분명 흔들린다”
미국식 자본주의시스템이 양극화를 심화한다면 미국 사회는 여러 차례 내홍을 겪을 법하다. 그럼에도 미국 사회는 견고한 성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시위를 벌이는 장면을 볼 수 있지만 미국의 시스템을 바꾸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미국이 사회통합에 실패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은 사회적 격차를 인정하는 나라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고, 인종에 따라 경제적 수준이 다르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수용한다.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흑인들도 비록 미국 사회에선 약자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살던 때보다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다. 넓은 땅에서 뭘 해도 되고, 직업도 무한하게 많다. 창업의 자유가 보장돼 하루에도 수많은 기업이 생긴다. 이들 기업이 실업자를 수용하니까 고용이 유연해져 별문제가 없다. 또 미국의 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다. 서민은 가난해도 나라는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이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처럼 막대한 자금을 기부하는 문화도 사회통합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다. 기독교 문화에서 파생한 기부 문화는 때론 정부의 복지정책 수준을 능가한다. 이것이 빈부격차 해소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 사회적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어떤가. 한국은 미국처럼 탄탄한 사회통합시스템이 없다. 일례로 한국은 격차를 수용하는 힘이 약하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는 게 한국인이다. 또 한국은 개발할 곳이 없을 만큼 과잉 개발된 상태다. 미국처럼 광대한 땅덩어리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직업은 한정돼 있고, 회사에서 퇴출되면 갈 만한 곳도 없다.
이화여대에서 정치외교학을 가르치는 이성형 교수는 중남미 전문가로 통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중남미 사회에 대해 여러 편의 논문과 책을 썼다. 그는 “한국이 미국 된다는 의미는 매일 벌어지는 구조조정의 삶을 목격하는 것”이라며 “나날이 불안한 세상에서 견디려면 어려서부터 인문학적 교양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들뜨거나 불안한 마음을 조절하는 능력은 책을 읽는 습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나 이 교수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보면 책의 요약문을 보는 습관에만 길들어 있다고 한다. 신입생들에게 “책 몇 권 읽었냐”고 물으면 묵묵부답이다. 논술시험을 위해 요약문만 읽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에 닥친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협상 관료들은 ‘룰루랄라’
학생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교수가 대부분인 한국 사회에선 학문의 미국 종속 현상도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이런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제자들과 하나의 이슈를 놓고 토론할 때는 미국인이 쓴 글, 프랑스인이 쓴 글, 일본인이 쓴 글을 읽도록 유도한다. 이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정체성을 찾는 훈련이 안 돼 미국인이 지닌 편견을 그대로 갖고 있다”며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미국과 더 가까워졌으니 이젠 미국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역설도 의미 있는 시각이다. 미국의 주류 의견과 다른 시각을 찾고 다른 언어를 배워야 한쪽으로 기운 한국 사회의 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다. 미국도 이런 인재를 원하는지 모른다. 미국 처지에선 한국이 종착역이 아니다. 한국을 통해 아시아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중국어나 일본어를 잘하는 인재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더 가까워지고 있는 시점에 놓쳐서는 안될 세계적인 흐름이 있다. 미국만이 세계의 패권을 행사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점이다. 20세기는 분명 미국의 시대였다. 하지만 21세기에도 그럴까.
최근 EU의 증권시장 시가총액이 미국의 시가총액을 최초로 넘어선 사례를 보자. EU의 시장에 자본이 몰리고 있다는 증거다. 이뿐인가. 달러가 누려온 지위가 점차 유로로 넘어가는 상황이다. 미국과 가까워졌다고 자칫 이런 흐름마저 놓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이다.
이쯤에서 갑자기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한미 FTA 협상단에 참가한 관료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숨 가쁘게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전력투구한 관료들. 멕시코의 전례를 보면 이들의 앞날은 창창하기만 하다. 멕시코는 미국뿐 아니라 20여 나라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경제부 장관 등 고위직은 협상단 멤버들의 차지가 됐고, 정부 부처 내에 통상과 관련한 직책이 신설돼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이뿐인가. NAFTA 이행감시단, 이행협의단 같은 새로운 부서도 생겨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관료를 그만둔 사람들은 각 경제연구소, 컨설팅 업체로 영입돼 멕시코 경제계의 주류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NAFTA 체결 당시, 멕시코 정부는 시간만 나면 “멕시코가 곧 선진국이 된다”고 떠들어댔다. 대통령의 입에서, TV 광고에서 온통 장밋빛 청사진이 제시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말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협정을 체결하기 전 미래에 벌어질 상황에 대비하는 준비가 부족했으며, 협정 조인 뒤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진국 되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인가.
싸워서 이기려 하지 말고…
한미 FTA가 양국의 국회 비준을 통과하면 새로운 경제체제 앞에서 한국이 개혁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다. 예컨대 과거 강대국의 국내 진출을 봉쇄하려던 보호주의적 헌법도 수정해야 한다. 본격적으로 개방형 통상국가가 되려면 과거 국수주의적인 조항들을 수정해야 한다. 대통령 단임제도 바꿔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고 이를 실천하려면 5년으론 부족하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내각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사회가 양극화하면서 약자를 대변할 힘 있는 정당이 나와야 한다. 한국 사회가 균형을 유지하려면 미국식 개인주의적 가치관을 앞세우는 정당과 유럽처럼 공동체를 중시하는 정당이 정책을 놓고 대결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처럼 정치체제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래서 사회의 불만을 해결하고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한국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나 더. 미국과 친구가 된 이상 함께 발전할 길을 찾아야 한다. 누군가 이기고, 누군가 져야 하는 게임을 한다면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다. 상대도 우리가 주저앉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힌트를 줄 것 같지도 않다. 우리가 답을 찾아 그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호랑이와 싸워 죽느냐, 살아서 호피(虎皮)를 얻느냐의 시각으로 보면 싸움은 뻔해진다. 경직된 관점으로 바라보면 답을 찾을 수 없다. 미국이라는 호랑이를 타고 세계를 누빌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미국도 덕을 보고, 한국도 이익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미국의 자동차 업체가 한국의 앞선 IT기술을 적용한 전자제품을 장착하는 상상을 해보자. IT는 원재료가 들어가지 않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한국으로선 꼭 미국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싸워서 이기겠다는 생각보단, 함께 잘 살아보자는 생각. 이것은 우리 문화와 잘 어울리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