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한국-태국 경쟁시킨 뒤 고촉통을 유엔 총장으로’ 구상 ● 美, “반기문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 거부감 ● 2006년 9월19일 태국 쿠데타 발발, 美 구상 흔들려 ● 한국, “절호의 기회…” 반기문 밀기 적극 추진 ● 美, 10월1일 “반기문 지지” 한국 통보 ● 반기문, 10월2일 ‘부시家 측근’ 백성학에 면담 요청 ● 반기문, “美측에 이대로 얘기해달라” 친필 메모 전달 ● 반기문, 10월3일 4차 투표서 1위, 총장 사실상 확정 ● “우리는 ‘미국 스파이’ 아닌 ‘미국통’” |
‘신동아’와 인터뷰하는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아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외무장관 시절인 지난해 10월2일 서울 한남동 외무장관 공관에서 유엔 사무총장 최종 투표를 앞두고 자필로 기록해 백 회장에게 건넸다는 메모지. 메모지에는 반 사무총장이 수십년간 인연을 쌓고 있는 미국 할머니(Mrs. Libba Patterson)의 신상, 1962년 미국 적십자사 초청으로 백악관을 찾아 J.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일화 등 반 사무총장과 미국과의 인연이 기록돼 있다.
2004년 12월21일 방송위원회는 iTV에 대해 재허가 추천을 거부했다. 같은 해 12월31일 iTV는 정파(停波)됐다. 2006년 4월28일 방송위원회는 경인지역 새 지상파방송 사업자로 ‘경인TV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이 컨소시엄은 영안모자측이 대주주이며 CBS는 5% 안팎의 지분을 갖고 있었다.
경인TV는 2005년 9월 경기북부지역(267만명)이 방송권역으로 추가되면서 인천, 경기지역 가시청 인구가 1300만명이 됐으며 케이블방송 등을 통해 서울 일부 지역에도 송신할 수 있게 돼 KBS, MBC, SBS에 이어 수도권의 4대 지상파 방송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경인TV의 경영권 및 방송 제작권 등을 둘러싸고 컨소시엄 내 영안모자와 CBS 간에 분쟁이 발생했다. 지난해 10월31일 CBS측과 가까운 신현덕 당시 경인TV컨소시엄 대표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해 “영안모자 백성학(白聖鶴·65) 회장이 국가정보를 미국에 유출한 의혹이 있다”고 증언했다. 신씨는 국내정세를 담은 ‘D-47’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제시하면서 이것이 백 회장이 미국에 보낸 국가정보 보고서라고 주장했다.
또한 신씨는 “나는 백 회장 측근으로부터 정보원 교육을 받기도 했다”는 취지의 폭로를 하기도 했다. 신씨가 밝힌 백 회장의 측근은 배영준(裵榮準·56) US아시아 한국지사 대표다. US아시아는 리처드 롤리스 미국 국방부 부차관이 대표로 있는 컨설팅 회사다.
CBS ‘반기문 보도’로 촉발
이 같은 증언으로 ‘국가정보 미국 유출’ 논란이 촉발됐다. 검찰은 이 논란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2007년 3월6일 CBS는 “백성학 회장의 국가기밀 유출을 입증하는 자료”라면서 백 회장의 육성 테이프를 공개했다. 공방이 일자 방송위는 2007년 3월20일 경인TV에 대해 ‘허가추천 보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신씨와 CBS측이 제기한 국가정보 미국 유출 의혹은 현재까지 사실로 입증되지 않고 있다. 방송위는 4월5일 경인TV에 대해 ‘조건부 허가추천’을 결정했다. 조건부 허가추천의 핵심 내용은 “경인TV가 지상파 방송사업자로서 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을 이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방송위가 판단하는 사실이 발생할 경우 영안모자는 경인TV 지분을 처분하고 주주로서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단서조항이다.
백성학 회장이 국가정보를 미국에 유출하는 등 도덕적, 법적 하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방송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의미다. 경인TV는 오는 10~11월 첫 방송을 내보내게 된다.
그런데 이 공방 과정에서 CBS가 보도한 기사 중 하나가 문제가 됐다. 다음은 2006년 11월13일자 CBS 보도 내용이다.
백성학 회장, 배영준 대표가 활동한 사무실.(위) 국가정보 미국 유출 논란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 보고서,강동순 방송위원의 술자리 발언 녹취록 전문, 백성학 회장의 육성이 담긴, 공개된 녹음파일에 대한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의 성문분석 보고서(앞에서부터).
지난 10월2일 밤 백성학 회장은 서울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을 찾아가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났습니다. 백 회장은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앞두고 미국에서 반 장관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대화내용을 수첩에 꼼꼼히 기록했습니다. 30여 분간의 면담이 끝나자 백 회장은 미국에 급히 보고해야 한다면서 서둘러 공관을 떠났습니다. 백 회장은 면담 중에 롤리스 미 국방부 부차관보와의 특별한 관계를 수차례 과시하며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가 롤리스를 통해 미국측에 전달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반 전 장관은 평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급한 일이 있다면서 면담을 요청한 뒤 주요사항 등을 물어봐서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반 전 장관(녹취) : ‘특별히 제가 잘 안다 이런 사이는 아니고요.’
백 회장의 국가정보 유출 의혹의 실체가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CBS는 이 보도를 통해 백 회장의 국가정보 유출 의혹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개입시켰다. 백 회장이 반 총장을 만난 것은 국가정보 수집의 일환이라고 확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가기 2주일 전인 지난해 10월30일 백 회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노무현 정부 초기 반 총장과 인사를 하게 됐지, 그 후로 만난 일이 없다”고 증언했다. CBS는 이어진 후속보도에서 “백 회장이 국감장에서 명백히 거짓말을 했다”며 백 회장을 몰아세웠다.
“신씨가 먼저 ‘강의’ 청했다”
CBS측이 반 총장과 백 회장이 만난 시점, 장소까지 구체적으로 밝히자 백 회장은 계속 침묵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 최근 백 회장측은 ‘신동아’에 “백 회장이 반기문 총장을 만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국익을 고려해 국감장에서 밝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CBS는 그 만남을 정보수집활동으로 몰아갔다. 백 회장으로선 침묵하면 보도 내용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백 회장은 반 총장을 만난 경위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알려왔다.
이렇게 해서 백 회장과 배영준 대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과정과 관련해 ‘신동아’와 잇따라 인터뷰를 하게 됐다. 배 대표는 백 회장이 운영하는 영안모자 그룹의 해외투자자문을 맡고 있는 백 회장의 측근. 배 대표가 서울 US아시아 사무실에서 먼저 인터뷰에 응했다.
▼ 백성학 회장의 혐의와 관련한 검찰 수사는 어떻게 됐나.
“백 회장과 나는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백 회장과 나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사건의 핵심은 백 회장과 내가 국가정보를 미국에 넘겼는지 여부다. 그런데 검찰에서 수사를 벌인 결과 미국에 정보를 넘겼다는 혐의는 입증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얼마 전 검찰은 압수한 물건을 돌려줬다.”
▼ 배 대표는 어떤 혐의를 받았나.
“신현덕씨가 국감장에서 나로부터 정보원 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해 나도 누명을 쓰게 됐다. 이후 모 언론에서 내 회사(US아시아) 로고까지 사진으로 싣는 바람에 사업상 큰 피해를 봤다.”
‘신동아’는 검찰이 4월 국회 문광위에 제출한 ‘백성학 회장 국가정보 유출 의혹 사건’ 수사결과 보고서를 확인했다. 검찰은 보고서에서 “백성학이 정세분석 문건을 해외에 보낸 점을 인정할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였음. 백성학이 정보팀을 운영한 점을 인정할 증거는 발견하지 못하였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보고서는 “백성학이 신현덕에게 ‘정세분석 자료를 영어로 번역해 미국으로 보낸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로 인정됨. 백성학이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신현덕의 증언도 제반 정황에 비추어 허위 증언이라고 보기 어려움”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 할 때의 백성학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 맨 오른쪽 소년이 김병기씨다. 아래는 백 회장이 6·25때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미군병사 빌리를 찾는다는 사연을 보도한 1986년 ‘리더스다이제스트’ 기사. 이 보도로 백 회장은 부시 대통령가문과 인연을 맺게 된다.
검찰에선 ‘D-47’ 문건 내용에 대해 “이미 알려진 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일반적 해설 수준이며 비밀정보라고 볼 만한 부분은 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검찰은 국회에서의 위증부분에 대해선 수사를 계속한다는 계획이다. 방송위는 이 같은 검찰 수사결과 등을 참조해 4월5일 경인TV에 대해 조건부 허가추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 백 회장의 국가정보 유출혐의를 입증할 단서인 정세분석 문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국민중심당 당직자 경력이 있는 사업가 H사장이 습작 형식으로 작성해 백 회장에게 준 것을 백 회장이 당시 경인TV컨소시엄 대표이던 신현덕씨에게 읽어 보라고 줬다. 그런데 신씨가 그 문건을 미국에 보낸 국가정보라며 이슈화한 것이다.”
▼ 배 대표가 신씨에게 ‘정보원 교육’을 한 사실이 있나.
“지난해 9월9일 신현덕씨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자신이 향후 공중파TV 뉴스도 보도하게 될 경인TV컨소시엄 대표이므로 국제 정세, 한반도 정세에 대해 공부해둘 필요가 있으니 좀 가르쳐달라고 했다. 신씨는 내 고교 후배였고 나와 마찬가지로 당시엔 백 회장을 돕는 사람이었으므로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기자가 지금 앉아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신씨가 앉고 나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매직펜으로 글을 써가며 강의식으로 한반도 정세를 설명해줬다. 신씨가 열심히 받아 적길래 나는 ‘그렇게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이 칠판은 적힌 내용을 그대로 A4지에 프린트해주는 기능이 있는데, 신씨에게 그렇게 프린트해줬다. 그런데 나중에 언론은 이 프린트물이 바로 신씨가 정보원 교육을 받은 증거물이라고 보도한 것이다.”
▼ 배 대표는 국가기관에 근무한 경력도 없는데 한반도 정세에 어느 정도의 식견이 있는가.
“백 회장과 나는 사업을 하면서 미국 정가에 지인을 많이 두게 됐다. 그들로부터 여러 얘기를 듣다보니 안목이 생겼다. 언론과의 실명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국내 외교·안보 분야의 베테랑 언론인들은 나를 자주 찾는다. 백 회장과 나는 ‘미국 스파이’가 아니라 ‘미국통’일 뿐이다.”
1972년 롤리스와 첫 만남
앞서 밝힌 대로 배영준씨가 미국 국방부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이 경영하는 컨설팅 회사인 US아시아의 한국지사 대표라는 점은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배 대표의 말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배정일 (주)남광토건 창업주다. 남광토건은 1980년대 중반 국내 상장사 중 30위에 오른 대형 건설기업.
배 대표는 1960년대 미국 UC버클리대 경제학과에 유학하던 중 1970년 박정희 정부에 의해 강제로 귀국했다. 당시 한 고위관리의 아들이 미국에서 사고를 일으켜 사회 문제가 되자 박 정권은 미국에 유학 중인 129명의 권력층, 재벌가 자제들을 모두 소환한 것. 이후 배 대표는 보안사에서 군복무를 마친 뒤 남광토건에서 근무하게 됐다. 1972년 주한 미국대사관은 중장비 전시회를 열었는데, 배 대표는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 상무관이던 리처드 롤리스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한다.
배 대표는 “롤리스는 서울에서 영어가 잘 통하는 친구를 갖게 되어 기뻐했다. 그는 한국을 매우 좋아하는 미국 관료다. 그의 부인은 한국사람이다. 롤리스는 맥주를 즐겨 마셨는데, 우리는 1975년 롤리스가 일본으로 발령이 날 때까지 자주 어울렸다”고 말했다.
알짜기업이던 남광토건은 1984년 쌍용건설로 넘어갔다. 배 대표는 “새우가 고래를 삼킨 셈이다. 국제그룹 해체와 비슷한 케이스다. 나는 전두환 정권에 밉보여서 기업을 빼앗겼다. 어느 술자리에서 내가 우리 회사 납품업자를 야단친 일이 있는데, 그는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처남(이순자 여사의 동생)이었다. 그것 때문에 정권에 찍혔다는 얘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1999년 롤리스가 배 대표에게 제안을 해왔다고 한다. “공화당 부시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행정부에 들어가야 되니 US아시아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이렇게 해서 배 대표는 롤리스가 운영하는 US아시아의 한국지사 대표가 됐고 롤리스는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를 거쳐 부차관으로 승진했다.
배 대표는 ‘30년 지기’인 롤리스와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사이가 됐고 미국 정가에 다수의 지인을 사귀게 됐다고 한다. 배 대표는 신세계이동통신 외자유치 등의 실적을 쌓았으며 2002년부터는 영안모자의 해외마케팅 자문을 맡으면서 백성학 회장과 친분을 쌓게 됐다. 배 대표는 영안모자가 미국의 지게차 전문회사인 클라크와 GM 소유의 대우버스를 인수하는 데 자문했다.
“반기문측, A목사에 도움 요청”
지난해 9월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유엔 사무총장이 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 있었다. 반 장관은 그해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1차 예비투표, 9월14일 2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당선을 낙관할 수 없었다.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는 반 장관 외에 수라끼앗 사티아라타이 태국 부총리, 자얀타 다나팔라 스리랑카 대통령 고문, 인도의 샤시 타루르 유엔 공보담당 사무차장, 제이드 알 후세인 유엔 주재 요르단대사, 바이라 비케프레이베르가 라트비아 대통령 등이 출마를 선언한 상황이었다.
유엔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선출되는데,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의 5개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선출되지 못한다.
▼ 유엔 사무총장 선출을 위한 4차 투표 직전 반 총장과 백성학 회장이 만난 것에 대해 백 회장이 경위를 얘기하겠다고 하는데, 배 대표가 먼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달라.
“미국 정가에선 반기문 장관이 유엔 사무총장이 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있었다. 프랑스도 호의적이진 않았다. 상임이사국 중 한 곳이라도 비토를 하면 사무총장은 물 건너가는 것이므로 한국으로선 우선 미국의 지지를 얻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당시 한미관계는 한국 내 반미감정,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으로 좋지 않았다. 반 장관측은 처음엔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A목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신앙심이 깊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종교인 중 한 사람이 빌리 그레이엄 목사인데, A목사는 한국어 통역을 맡는 등으로 빌리 그레이엄 목사와 친분이 있었다. 이런 인연으로 A목사는 부시 대통령 집안에서 기도의식을 진행하기도 해 부시 가문과 인연이 있었다. A목사는 반 장관측에 ‘나도 노력하겠지만 백성학 회장과 배영준 대표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A목사는 이후 내게 여러 차례 ‘반기문 장관이 총장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고 같이 기도하자’고 얘기했다.”
“美, ‘유엔 사무총장 공석’도 고려”
▼ 지난해 9월 상황은 어땠나.
“반 장관은 1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당선을 낙관할 수 없었다. 사무총장이 아시아에서 나와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미국의 태도가 변수였다. 미국의 일부 정책결정자들은 ‘한국 장관과 태국 부총리가 경합하다 양쪽이 모두 사무총장 당선에 실패한 뒤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가 사무총장이 되는 안’을 선호하고 있었다. 고촉통은 국제적 정치인인데다 중국계이면서 동남아 출신이므로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지지를 얻어낼 잠재력이 있었다.
그 무렵 표 대결에서 한국 장관과 차이가 벌어진 태국 부총리를 띄워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도 있었다. 심지어 미국은 코피 아난 당시 사무총장의 임기가 종료된 뒤 한동안 사무총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가 지속돼도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라는 자세였다. 당선을 확정짓는 최종 투표일이 늦춰지면 기존 후보들은 힘을 잃게 되고 고촉통 등 새로운 인물이 떠오를 여건이 조성된다. 확정 투표일을 언제로 잡는가에는 미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
이와 관련, 박수길 고려대 석좌교수(유엔한국협회 명예회장)는 배 대표의 주장을 정황적으로 뒷받침하는 다음과 같은 시론을 지난해 9월21일 ‘동아일보’에 기고한 바 있다.
“반 장관은 2차 예비투표에서 얻은 한 표의 반대표가 거부권을 갖는 상임이사국일 경우에 이를 극복해야 한다. 5개 상임이사국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 새로운 후보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이 새 후보로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같은 거물급 인사를 등장시킬 것인가다.”
▼ 그런데 갑자기 반 장관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이 바뀐 배경은.
“9월19일 태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군부가 정부를 전복한 나라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낼 수는 없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으며, 태국엔 안된 일이지만 한국으로선 사무총장을 배출할 ‘천금 같은 기회’였다. 태국 부총리가 자연스럽게 ‘탈락’하면서 ‘한국-태국 경합 후 새 인물 부상’이라는 구도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태국과 싱가포르의 전통적 관계 때문에 태국 부총리의 낙마를 계기로 고촉통이 나서기도 쉽지 않았다. 이후 한국 정부의 반기문 사무총장 만들기 행보엔 속도가 붙었다.”
▼ 부시 행정부 관계자와 유엔 사무총장 선출 문제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나.
“내 힘은 미약하고 또한 나는 반기문 사무총장 선출에 기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태국 쿠데타 발발 이후인 9월21일 미국 정부 관계자와 대화를 나눴다. 미국측은 ‘반기문은 너무 처신을 잘 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이어서 믿을 수 없다. 또한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나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미국은 반기문을 지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 그 말은 무슨 뜻인가.
“미국측도 그 말의 뜻을 묻길래 ‘처신을 잘하는 것은 장점’이라고 했다. 반기문은 지금은 노무현 정부의 코드에 맞춰 외교장관직을 수행하기 때문에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일단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날개를 달면 유엔의 논리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할 것이라고 했다. 또한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인물은 유엔 사무총장에 맞지 않다고 했다. 코피 아난 같은 강성 인물이 사무총장이 되고 난 뒤 사사건건 미국과 부딪치지 않았는가. 그래서 존 볼튼까지 유엔에 투입해야 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반기문, 투표 전날 찾아와”
▼ 미국측에서 응답이 왔나.
“9월28일 반 장관은 3차 투표에서 1위를 했다. 3일 뒤인 10월1일 미 정부 관계자가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는 ‘당신 논리가 흥미롭다. 미국은 99% 반기문을 지원하게 될 것이다’라고 일러줬다. 이에 앞서 존 볼튼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10월3일(한국시각) 4차 투표가 최종투표가 될 것’임을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미국측 응답은 10월3일 투표에서 미국은 반 장관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표는 행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반 장관의 선출이 확정적이라는 의미였다.
기쁜 마음에 A목사와 백성학 회장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A목사는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내게서 들은 대로 전달했다. 그러자 이 관계자는 바로 나와 통화한 워싱턴의 미 정부 관계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 10월3일 최종 투표까지 이틀이 남은 시점이었는데, 마지막 변수는 무엇이었나.
“미국측이 하루 이틀 사이에 태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상임이사국 중 한 곳만 반대표를 던져도 사무총장 피선은 무산된다. 반 장관으로선 투표 당일까지 초조했을 것이다. 그는 미국의 지지를 투표일까지 끌고 가기 위해 마지막 남은 하루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최종 투표 전날인 10월2일 반 장관과 백성학 회장이 만난 것은 그 때문인가. 두 사람의 만남은 누구의 요청으로 성사됐나. CBS는 ‘백 회장이 먼저 면담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는데.
“10월2일 누구의 요청으로 두 사람이 만났는지는 당사자인 백 회장에게 물어보라. 10월2일 반 장관과 백 회장은 유엔 사무총장 최종 투표 문제 때문에 만났다.”
배 대표를 만난 며칠 뒤 백성학 회장을 인터뷰했다. 백 회장 집무실은 배 대표 사무실과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다. 다음은 백성학 회장과의 일문일답.
▼ 지난해 10월2일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난 사실이 있나.
“그날 저녁 8시쯤부터 30분 정도 서울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서 반 장관을 만났다.”
▼ 그날 만남은 누구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나.
“나는 2003년 봄 모임에서 한 목사의 소개로 반기문 장관을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다. 2005년엔 노무현 대통령의 코스타리카 방문 때 노 대통령과 함께 온 반 장관과 행사장에서 우연히 잠시 만났다. 그 후로는 만나지 못하다가 지난해 10월2일 반기문 장관으로부터 면담 요청이 와서 만나게 됐다. 반 장관은 그날 오전 11시쯤부터 오후까지 내게 네 차례 전화를 했는데, 두 번은 반 장관이 직접 전화를 걸었고 두 번은 반 장관의 비서가 전화했다. 나는 반 장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반 장관은 처음에는 ‘상의할 얘기가 있으니 시내 호텔에서 만찬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그날 나는 여기저기 볼일이 많았다. 그래서 ‘그렇게는 시간이 안 된다’고 했다. 약속시간과 장소를 빨리 잡지 못해 반 장관이 전화를 여러 번 한 것이다. 내가 저녁 8시쯤 퇴근길에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에 들르겠다고 하자 반 장관은 그러라고 했다.”
“메모 내용을 미국에 전해주세요”
▼ 한남동 공관에서 반 장관은 어떤 말을 하던가.
“반 장관은 자신이 미국을 잘 알고 있고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자신의 얘기를 미국측에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충주고 재학시절 미 정부가 주최한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입상해 백악관을 방문,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만난 얘기, 당시 미국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알게 된 미국인 할머니와 40년이 넘도록 인연이 이어지는 얘기를 내게 들려줬다. 또 그는 자신의 종교관, 세계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했나.
“나는 ‘말씀하신 그대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으니 메모를 해주면 그것을 보면서 정확하게 미국측에 전해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반 장관은 ‘외교통상부 장관’이라는 글이 상단에 인쇄된 메모지에 미국인 할머니의 이름, 주소 등 미국측과의 인연 등에 대해 자필로 글을 써 내게 줬다.”
백 회장은 반 장관이 줬다는 메모지를 기자에게 보여줬다. 메모 전문은 다음과 같았다.
“Mrs. Libba Patterson(90세) 817 Reichert Ave. Novato, California. 1962. 8. 미국(高 3 당시) American National Red Cross 초청. 1개월 방미. White House 방문. J.F. Kennedy 예방 ”
백 회장은 “검찰이 압수수색 때 이 메모지도 갖고 가 복사한 뒤 내게 돌려줬다. 검찰도 나와 반 장관과의 만남 및 이 메모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고 했다.
▼ 백 회장은 반 장관에게 어떤 말을 했나.
“나는 거의 듣기만 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나와서 한반도에 전쟁 위험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덕담만 했다.”
▼ 반 장관에게 정보수집 목적의 질문을 한 적이 있나.
“그날 만남은 반 장관이 먼저 요청해서 성사됐고, 또한 반 장관이 중차대한 유엔 사무총장 투표 직전 자신을 미국측에 잘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 자리였다. 전화통화와 메모가 이를 증명한다.”
▼ 반 장관이 한 말을 실제로 미국측에 전했나.
“반 장관이 내게 말해주고 메모로 써준 자신의 종교관, 세계관, 미국과의 인간적 인연, 미국에 대한 인식 등을 곧바로 미국측에 전했다.”
▼ 백 회장은 미국 정계의 누구와 인연이 있나.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일가와 친분이 있다. 또한 미국 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 중에도 지인들이 있다.”
백 회장에 따르면 그와 부시 대통령 일가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미국에서 발행되는 인기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백 회장의 이야기가 실렸다. 1942년 중국 헤이룽장성 태생인 백 회장은 사고로 부모와 헤어진 뒤 남한으로 혼자 내려와 6·25전쟁 당시 미군부대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이른바 ‘하우스 보이’로 일했다.
어느 날 소년 백성학은 포탄을 맞아 얼굴과 온몸에 불이 붙었다. 이에 백 회장과 마찬가지로 고아 출신이던 빌리라는 미군 병사가 황급히 백 회장을 외투에 싼 뒤 고개 너머 헬기장으로 지프를 몰았다. 그는 헬기를 타고 미군 야전병원으로 날아가 백 회장의 목숨을 살려냈다.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 백 회장은 모자사업에서 크게 성공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부시 대통령家와의 인연
“‘한국의 모자왕’ 백성학 회장이 빌리를 찾고 있다”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기사가 나간 뒤 빌리는 이 기사를 보고 백 회장을 만나게 됐다. 이 스토리는 미국 전역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부시(아버지) 전 대통령의 부인 바버라 여사도 이 기사를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아버지 부시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은 6·25전쟁 당시 백 회장이 일하던 미군부대에서 백 회장과 함께 하우스 보이 노릇을 했던 김병기라는 한국인이었다. 김씨는 미군 장교의 양자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온 뒤 부시 가문과 인연을 맺었다. 김씨는 백 회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두 사람은 수십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전쟁고아 시절의 옛 우정을 나눴다. 김씨는 백 회장을 부시 일가에 소개했다. 당시 아버지 부시는 미국 부통령이었다.
이후 백 회장과 부시 일가는 가깝게 지냈다. 부시(아들) 대통령의 동생인 제프 부시 전 플로리다주 주지사는 1988년, 1992년 미국 상공회의소 회원들과 한국을 찾았을 때 백 회장의 회사를 방문해 우의를 드러냈다. 영안모자는 미국 진출에 성공해 세계 최대 모자 생산업체가 됐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미국 현지회사가 설립된 후 백 회장은 미국 조야 인사들과 더욱 활발히 교류했다고 한다.
백 회장은 부시 대통령의 두 차례 대통령 취임식 때마다 초청돼 한국 정·재계 인사 중 가장 상석에 앉을 만큼 부시 가문과 가깝게 됐다. 한 국내 신문은 지난해 11월1일 백 회장에 대해 “워싱턴에서 그의 영향력은 한국 정부 관계자 모두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봐도 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 CBS는 반기문 장관과 만난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나.
“영안모자는 경인TV컨소시엄의 대주주이고 CBS는 이 컨소시엄에 5% 안팎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는 CBS측의 추천으로 신현덕씨를 경인TV컨소시엄 대표로 임명했다. 이후 나는 신씨를 신임해 반 장관과의 만남 등 여러 이야기를 해줬다. 신씨는 그중 상당수를 비밀녹음한 모양이다. 그런데 나와 CBS 사이에서 경인TV의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생긴 이후 신씨와 CBS는 내가 준 자료, 내게서 들은 얘기를 근거로 나를 국가정보 유출자라고 공격했다. 반기문 장관과의 만남 부분도 아마 그 과정에서 신씨에 의해 CBS측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 반기문 장관과 만난 사정을 이렇듯 자세하게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비록 별 도움은 안 됐겠지만 반 장관의 유엔 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돌아온 건 ‘스파이’라는 딱지였다. 그러나 나와 배 대표는 미국 스파이가 아니다. 4월5일 방송위가 경인TV에 조건부 허가추천 결정을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세계에서 연간 15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영안모자그룹 경영자인 내가 무엇이 아쉬워 스파이 노릇을 하겠나.
CBS는 나에 대해 국가정보 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를 지난 6개월간 150여 차례 내보냈다. CBS가 나와의 경영권 갈등에서 비롯돼 편파보도를 했다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언론이 특정 개인을 상대로 같은 주제에 대해 이처럼 집요하게 공격하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웬만한 사람들은 그렇게 믿게 된다. 백성학이 미국 스파이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내 조부는 만주에서 김좌진 장군을 도와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그런데 내가 조국을 팔아먹는 스파이라니…. 내게 이보다 더 가혹한 공격은 없다. 반기문 당시 장관과 만난 것까지 정보수집 활동이라고 보도하는 것을 보고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도 내 나름의 진실을 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생각했다.”
“스파이 기사와 반기문 기사”
▼ 국가정보 유출 논란은 아직 ‘진행형’이다. 미국측의 반응은 어떠한가.
“이 논란을 제기한 측은 지난해 10월부터 4월 현재까지 무려 6개월에 걸쳐 미국 정부에 대해 ‘우방국에 스파이나 보내는 부도덕한 정부’라고 공격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오는 7월 사임하는 롤리스 부차관은 한국의 국가정보를 보고받은 사람으로 일부 언론에 지목돼 사진과 실명까지 보도됐다. 근거도 없이 시간을 끌며 외국 정부를 공격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 미국측은 공식적으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지난 3월 미국 유력 시사지인 ‘뉴스위크’는 ‘반기문 신임 유엔 사무총장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장문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가 선택된 것은 장점을 바탕으로 한 경쟁이라기보다는 뒷방 거래의 결과(His selection was the result of backroom deals rather than a merit-based contest)’라는 표현도 있다. 아슬아슬한 수위다. 뜬금없는 시기에 민감한 기사가 나왔다. 진정 반 사무총장을 도와주려거든 이 어리석은 ‘미국 스파이’ 공방을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다.”
▼ 국회와 검찰은, 국회가 백 회장과 신현덕씨를 위증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를 하는 쪽으로 협의했다고 하는데.
“이 사건의 본질은 ‘백성학이 국가정보를 미국에 유출했느냐 아니냐’다. 검찰은 수사결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이제는 국회에서 증언한 몇 마디 말을 가지고 처벌을 해서라도 흠집을 내겠다는 것으로 들린다.”
▼ ‘백 회장이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을 관리해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유 의원이 KDI(한국개발연구원) 재직시절 우리 회사의 해외사업 진출과 관련해 자료를 많이 요청한 것이 계기가 돼 그와 알게 됐다. 그러나 이후 5년 정도 별다른 연락 없이 지냈다. ‘관리’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 다른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민주당 김종인 의원과 한 달에 한두 번 만난다. 그 외에는 친한 의원이 없다. 우리 회사 비즈니스는 정치와 관계가 없다. 나는 세금 철저히 내고 사회복지사업에 어느 기업인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다. 정치인의 경우 신체에 장애가 있는 몇몇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후원금을 내고 있다. 나는 경인TV에 899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경인TV가 올 하반기 예정대로 개국한다면 사회봉사와 나눔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송이 되도록 하겠다.”
백 회장은 방송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에서 “방송국 수익의 3분의 1은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1983년 독립기념관 건립 때 5억원을 익명으로 기부했다 나중에 신분이 밝혀져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는 방송의 소유-경영 분리를 천명하는 한편 옛 iTV 직원의 전원 고용을 보장했다. 진보성향인 언론노조는 지난 3월12일 방송위에 경인TV 허가추천을 촉구했다.
‘신현덕 녹음기’에 누가 더 있나?
‘국가정보 미국 유출’ 논란은 주로 신현덕 전 경기TV컨소시엄 대표가 입수한 자료와 녹취록으로 촉발됐고 증폭돼왔다. 백 회장 육성 녹취록 공개에 이어 강동순 방송위원 발언(‘방송에서 좌파세력 몰아내야’) 녹취록 공개 등 후속 파문이 이어졌다.
현재까지 공개된 육성의 주인공만 해도 백성학, 유승민, 강동순 등 여러 명이다. 백성학 회장이 반기문 총장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까지 녹음돼 있다.
그런데 신씨는 ‘자기편’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신씨가 백 회장 육성을 녹음한 시기 역시 백 회장이 신씨를 자기 사람으로 믿고 있던 때였다. 강동순 방송위원도 신현덕씨의 경복고 동문이다. 강씨는 술자리에서 고교 후배인 신씨 앞에서 속에 담아둔 말을 풀어놓다가 녹음을 당했다.
‘미국 스파이’ 논란이 향후 어떠한 결론에 이르게 될지, 그 과정에서 또 어떤 예상치 못한 파장을 낳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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