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내면 깨어나야 지속 가능한 변화 가능”
천문대 등 지역사회 교육·문화 플랫폼으로 개방
SDGs 실천 패널 전시, 보드게임 제작, 플로깅…
‘생명 존엄’ 기치로 사회 공헌…“한 사람을 소중히”
오수길 학회장 “한국 SGI 평화·인권 중시, SDGs 동력”

한국SGI는 충북 진천의 우주시민천문대를 지역사회에 개방해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이라는 SDGs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한국SGI

한국SGI의 SDGs 공식 로고. 한국SGI
직장인 차모 씨에게 출근길 커피 한 잔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다. 주문을 마친 그는 익숙한 듯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냈다. “찰칵.” 커피를 받아 들기 무섭게 스마트폰 카메라가 작동했고, 텀블러 사용을 인증하는 사진이 앱에 업로드됐다.
차 씨가 사용한 앱은 ‘한국SGI×SDGs’이다. 유엔(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천을 돕기 위해 한국SGI에서 개발했다. 텀블러 사용, 지역 농산물 이용, 쓰레기 줍기 등 생활 밀착형 챌린지가 과제로 제시된다. 사용자가 사진을 통해 인증하면 앱에 기록이 쌓이며 등급이 올라가는 구조다. 환경과 인권이라는 무거운 숙제를 ‘일상의 기록’으로 치환해 낸 것이 2030세대의 참여를 끌어낸 비결로 꼽힌다. 차 씨는 “기후 위기 등 지구촌의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작은 실천이 변화의 시작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개인 내면 깨어나야 지속 가능한 변화 가능”
전쟁과 불평등, 기후 위기로 인류의 미래가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실천’을 앞세운 한국SGI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한국SGI는 환경보호와 평화·인권 교육 등의 활동을 이어온 불교 단체다. 지난해부터는 SDGs를 본격적으로 이행하며 활동의 폭을 넓히고 있다. SDGs는 빈곤 종식과 기후 대응, 핵위협 등 인류 공동의 난제 해결을 위해 유엔이 채택한 17개 핵심 과제다.한국SGI의 SDGs 실천은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14~27일 인천 연수구에서 열린 ‘변혁의 첫걸음-인권교육의 힘’ 전시가 대표 사례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후원하고 국제창가학회(SGI)가 공동 주최한 이 전시는 2017년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첫선을 보인 뒤 2019년부터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다. 특히 전시장 한 편에 마련된 폐가죽 업사이클링·SDGs 교육 프로그램 등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인권에 대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자리였다.
관람객들은 인권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대학생 한모 씨는 “각종 부정적 뉴스에 무력감에 휩쓸리기 일쑤였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 주변 사람과의 대화 등 작은 실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당연하게 누려온 권리가 실은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지켜져 왔음을 깨달았다” “갈등이 일상이 된 시대에 꼭 필요한 전시였다” 등 호평이 이어졌다.
한국SGI는 지난해 전국 150여 문화회관에서 SDGs의 의미와 실천법을 알리는 패널 전시를 상시 개최했다. 한국SGI 관계자는 “SDGs라는 용어가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많고, 막연하게 ‘거대 담론’으로만 여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지난해부터 ‘인식의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활동해 온 이유”라고 말했다. 이러한 행보는 국제사회가 지향해 온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하며 인권 문제에 이정표를 세웠으나, 단순 선언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 SGI가 인권 전시를 지속적으로 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개개인의 내면이 깨어나야만 지속 가능한 변화가 가능한 만큼 교육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교육의 손길은 아동에게까지 닿고 있다. 한국SGI는 아이들이 SDGs를 한결 친숙하게 이해하도록 보드게임을 제작해 보급하고 있다. 게임판 위에서 말을 움직이며 미션을 수행하다 보면 SDGs의 17개 목표가 자연스럽게 체득되도록 설계했다. 아이들은 놀이 과정에서 △빈곤 퇴치 △성평등 △에너지 △기후 행동 등 국제사회의 보편적 과제를 자연스럽게 익히게 된다. 한국SGI 관계자는 “아이들이 환경과 평화의 가치를 놀이와 토론을 통해 체득하고, SDGs를 스스로의 과제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학 캠퍼스에서도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미래세대의 실천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SGI 전국 대학생 평화연합 동아리 ‘유니피스’는 줍깅(플로깅) 등의 활동으로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한편 핵 폐기·한일 우호·동고(同苦) 등 시대적 의제를 주제로 꾸준히 전시를 열어왔다. 최근에는 활동 범위를 SDGs로 확장해 전국 캠퍼스와 공공장소에서 ‘유니피스 평화전’을 개최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기획부터 실행까지 주도하는 해당 전시는 관람객이 스스로 ‘나만의 실천’을 결의하게 만드는 참여형 구조가 특징이다.

한국SGI 전국 대학생 평화연합동아리 ‘유니피스’는 핵 폐기와 한일 우호 등 시대적 의제를 주제로 꾸준히 전시를 열어왔다. 한국SGI
천문대 등 지역사회 교육·문화 플랫폼으로 개방
SDGs는 17개 목표와 169개 세부 목표를 아우르는 방대한 과제다. 폭넓은 문제를 다루는 만큼 시민의 참여를 뒷받침할 공간적 토대가 없으면 자칫 선언에 그칠 수 있다. 한국SGI가 자체 시설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종교 단체의 인프라를 지역사회의 교육·문화 플랫폼으로 개방해 참여의 장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대표적 현장이 충북 진천의 ‘우주시민천문대’다.매월 셋째 주 금요일 저녁이면 충북 진천의 한국SGI 진천연수원은 별을 보러 온 시민들로 생기가 돈다. 2014년 개관한 우주시민천문대가 지역사회를 위해 빗장을 푸는 날이기 때문이다. 망원경 렌즈 너머로 달의 분화구가 모습을 드러낼 때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국SGI는 지역사회에 천문 시설을 무료로 개방하면서 ‘모두를 위한 양질의 교육’이라는 SDGs의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실제로 천문대 한편에서는 우주·과학 강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돼 교육 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있다.
천문대를 방문한 이들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설렘이 교차했다. 초등학생 아들과 천문대를 찾은 박모 씨는 “아이가 며칠 전부터 별자리를 공부하며 들떠 있었다”며 “가족이 모처럼 우주를 화제로 대화하는 소중한 추억을 쌓았다”고 밝혔다. 망원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한 어린이는 “달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가슴이 뛸 정도로 신기하다”며 “나중에 직접 달을 탐사하는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생명 존엄’ 기치로 사회 공헌…“한 사람을 소중히”
한국SGI는 1970년대부터 ‘생명 존엄’을 기치로 국토대청결운동, 헌혈, 도서 기증, 소외계층 후원 등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이어왔다. 특히 2015년 유엔의 SDGs 채택을 계기로 활동의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120여 개 봉사단은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춰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 좋은 부모 되기 세미나 등 인식 개선 사업까지 병행하고 있다.이러한 활동의 밑바탕에는 한국SGI의 인간주의 철학이 흐르고 있다. 복지제도와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나부터 바뀌는 ‘내적 혁신’이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라는 믿음에서다. “한 사람을 소중히”라는 표현으로 집약되는 이러한 철학은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는 SDGs의 핵심 슬로건과도 궤를 같이한다.
전문가들은 한국SGI의 행보를 SDGs가 한국 사회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성공모델로 평가했다. 오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회장은 “중요한 것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실천의 축적인데, 한국SGI는 분리수거와 텀블러 사용 같은 소소한 행동이 지구를 살리는 실천임을 체감케 함으로써 SDGs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박스기사 참조).
한국SGI 관계자는 “실천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의지를 끌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이 ‘지구를 지키는 일이 곧 나를 지키는 일’임을 자각하고, 일상을 바꾸는 소중한 전환점을 맞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한 사람의 내면 변화가 이웃과 사회의 존엄을 증진하는 공익적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오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회장
“한국SGI의 평화·인권 중시, SDGs의 동력”

오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회장이 2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신동아’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오수길 한국지속가능발전학회 회장이 2월 27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한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달성 시한이 4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지구촌의 시계는 거꾸로 돌고 있다. 나날이 커지는 전쟁의 위험과 가속화하는 기후 위기로 전 세계 SDGs 이행 수준은 예상치를 하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SDGs 전문가인 오 회장은 종교계의 움직임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불교 단체 한국SGI에 대해 “SDGs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선구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오 회장과의 일문일답.
지속 가능한 발전 담론에서 SDGs가 갖는 의의란 무엇인가.
“유엔은 초국가적 정부가 아니기 때문에 회원국의 약속 이행을 강제할 법적 구속력이 없다. 또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다루다 보니, 자칫 공허한 수사에 그칠 위험도 있다. 그런 점에서 SDGs는 의미 있는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거대 담론을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실천 과제로 구현한 셈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SDGs 달성 정도를 평가한다면.
“안타깝게도 최근 국제 정세는 후퇴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쟁의 위협과 지정학적 갈등이 인류의 공존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각국의 SDGs 달성 정도를 평가하는 ‘SDG 지수’에서 한국은 2016년 세계 18위에서 2025년 34위로 하락했다. 기후 대응과 일자리, 환경 부문의 부진이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이제는 각 주체가 힘을 모아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야 할 시점이다.”
최근 한국SGI의 SDGs 실천이 주목받고 있는데.
“한국SGI는 지난해부터 SDGs에 기여할 수 있는 실천 과제를 모색해 왔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1월 ‘한 사람의 변화가 만드는 도전–I am SGI, I do SDGs!’ 캠페인을 시작했다. SDGs의 핵심 구호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정신에 발맞춰 ‘한 사람을 소중히 한다’는 한국SGI의 이상을 접목한 활동이다. 최근에는 관련 애플리케이션(앱)도 개발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등 누구나 일상 속 작은 실천을 통해 SDGs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SDGs에 대한 심리적 장벽 낮추는 데 기여”
한국SGI의 이상과 SDGs의 방향성 사이에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이케다 다이사쿠 국제창가학회(SGI) 회장의 평화사상이 바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SGI에 SDGs를 자문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케다 회장의 사상과 SDGs의 정신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 적지 않더라. 실제로 그의 평화사상이 SDGs의 여러 목표와 다층적으로 연결된다는 연구도 있다. 무엇보다 핵심은 평화에 대한 강조다. 평화와 인권을 중시하는 한국SGI의 입장에서는 빈곤 문제(SDG 1)나 여성의 권리(SDG 5), 지구촌 연대(SDG 17)와 같은 SDGs 의제를 외면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SGI가 SDGs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실천을 돕기 위해 한국SGI가 개발한 애플리케이션 ‘한국SGI×SDGs’. 한국SGI×SDGs 캡처
“둘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유엔은 인류 공존의 핵심 가치를 사람(People)·지구(Planet)·번영(Prosperity)·평화(Peace)·파트너십(Partnership)이라는 ‘5P’로 구조화했다. 평화 없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도, 인류의 공존도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도 평화를 강조하는 SGI의 철학은 SDGs 담론과 궤를 같이한다. 특히 한국SGI는 조직적으로 SDGs 실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상당하다.”
한국SGI의 활동 가운데 인상 깊게 봤던 것을 꼽자면.
“SDGs 실천을 돕기 위해 한국SGI가 개발한 앱 ‘한국SGI×SDGs’이다. 누구나 일상 속에서 SDGs를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SDGs는 자칫 거대한 국제 의제처럼 느껴져 ‘내가 도움이 될까’라는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해당 앱을 통해 분리수거, 텀블러 사용 같은 일상의 작은 행동이 곧 지구를 살리는 실천임을 체감할 수 있다. SDGs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춘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거대한 구호가 아니라 작은 실천의 축적이다. 해당 앱은 그런 실천을 기록하고 공유하면서 SDGs를 실천하는 사람을 서로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도구다.”
사회 구성원이 더욱 능동적으로 SDGs를 실천하도록 돕는다는 것인가.
“그렇다. 한국SGI는 복지법인 ‘무궁화복지월드’를 설립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자신의 활동이 SDGs의 어떤 목표와 연결되는지를 사전에 알려준다. 봉사자들이 자신의 실천이 국제사회가 함께 추구하는 목표와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게 되면 좀 더 사명감을 갖고 봉사에 나서게 된다. 이는 SDGs 실천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동력이 될 수 있다.”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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