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호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 글: 조성아 일요신문 기자 ilyozzanga@hanmail.net

    입력2005-04-25 15: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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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범하지만 개성 있는 얼굴, 친근하지만 대중과 거리감이 있는 이미지, 차갑게 톡톡 내뱉지만 뜨거운 진정성을 품은 연기….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이나영과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임수정은 그 알 듯 모를 듯한, 독특하고도 신비로운 모습이 무척 닮아 있다. 그래서일까.
    • 두 배우에게는 늘 ‘폐인(廢人)’이라 불리는 ‘마니아 팬’이 뒤따른다.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에브리데이 뉴 페이스∼” 이나영(26)은 그가 출연하는 한 화장품 광고에서 카피처럼 새로운 느낌을 선사한다. 매일 같은 표정, 같은 웃음으로 얼굴을 내밀지만 그는 언제나 새롭다. 그런 이나영의 신선한 마스크 덕분인지 이 화장품은 브랜드 교체가 가장 잦다는 화장품 업계에서도 10년 장수를 누리면서 연 1000억원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이나영 역시 무려 6년째 장수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이 광고에서 이나영의 이미지는 철저히 기획된 결과물이다. 긴 머리를 과감히 잘라내고 짧은 커트 머리로 변신한 것은 젊은 여성층에게는 물론 남성에게도 충분하게 어필했다. 그가 CF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다. 한 설문조사에서 ‘화장품 모델로 전지현보다 이나영이 낫다’는 의견이 상당수 나온 것을 봐도 광고시장에서 이나영의 파워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모델만 기용한다는 화장품 광고업계에서 이나영이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 답은 마스크의 ‘독특함’에서 찾을 수 있다. 이나영의 얼굴은 퍽 이채롭다. 빼어난 외모를 뽐내지 않으면서도 눈길을 끌고, 별다른 카리스마는 없으나 뭔가 있을 듯한 신비감을 준다.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배우는 많지만 이나영처럼 모호한 이미지의 배우는 흔치 않다.

    화장품 광고에서 중요한 것은 클로즈업된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다. 배우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느끼도록 하는 게 화장품 광고에서 주로 취하는 방식이다. 얼굴을 TV 화면에 꽉 찰 만큼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것. 이는 내로라하는 미모의 여배우들에게도 적잖이 부담스럽다. 하지만 그만큼 욕심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화장품 모델은 당대 최고 미인만이 차지해온 자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못생겨서 거울을 싫어해요”



    그런데 이나영의 얼굴이 그런 광고에서 더욱 빛난다는 게 퍽 흥미롭다. 그는 단 한번도 ‘컴퓨터 미인’과 같은 별칭으로 불린 적이 없고, 그에 버금가는 찬사를 들어본 일도 없다. 오히려 개성 있는 외모라는 평을 듣는 게 보통이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자. 이마는 넓은 편에 속하고, 쌍꺼풀도 한쪽이 진해 눈 크기가 짝짝이다. 콧날도 그리 높지 않고, 얇고 갸름한 입술은 도톰한 입술을 선호하는 요즘 추세와 맞지 않는다. 심지어 이나영 본인도 “못생겨서 거울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털어놓을 정도다.

    그렇지만 조막만한 얼굴에 자리잡은 이목구비의 조화는 클로즈업 화면에서 무척 돋보인다. 눈이나 코, 입술 각각의 단점보다는 전체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장점이 훨씬 깊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래서 ‘깨끗함’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이나영의 이미지가 대변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숱한 톱스타를 제치고 여러 광고에 이나영이 등장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독특함이 주는 신뢰 때문이다. ‘이나영은 어딘가 다르다’는 느낌은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을 준다. 최근 이나영은 장동건과 함께 한 카드회사의 모델로 출연했는데, 이는 그가 ‘장동건급’의 모델가치를 발휘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나영의 연기세계도 외모 못지 않게 독특하다. 한국의 방송·영화계에서 이나영이 차지하는 위치 또한 남다르다. 이나영의 대표작을 꼽으라면 단연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다. 그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영화 ‘후아유’를 마치고 잠시 쉬던 때였다. 당시 이나영은 지금까지 몸담고 있는 소속사 ‘스타제이’로 옮긴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같은 소속사 식구인 양동근과 함께 캐스팅됐다.

    이나영이 연기한 ‘전경’은 참으로 독특한 캐릭터다. 그의 꾸부정한 자세가 ‘전경’이라는 인물 안에서는 그럴 듯하게 어울렸고, 광고에서와는 달리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겉모습 또한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때 선보인 보헤미안 스타일의 옷차림도 유행을 탔다. 무엇보다 ‘광고에서처럼 예쁘지 않은 이나영’을 본다는 즐거움도 있었다.

    어눌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는 전경은 ‘네 멋대로 해라’를 쓴 인정옥 작가 특유의 문체가 고스란히 녹아든 캐릭터였다. 감정의 기복 없이도 이나영의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충분히 녹아들 수 있었다. 이나영은 “평소의 내 말투가 자연스럽게 나왔을 수도 있다”며 작가의 세심한 눈썰미에 감탄했다.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이나영의 CF 속 천사 같은 이미지에 자연스러움을 불어넣은 것은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의 ‘전경’이라는 캐릭터였다. 이후 이나영은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비록 일부에서는 지나친 ‘자기복제’라는 비판을 하기도 하지만.

    상대역 ‘고복수’로 등장한 양동근과의 호흡도 여느 드라마와는 달랐다. 이나영뿐 아니라 소매치기에 전과자 역을 맡은 양동근도 주인공으로는 흔히 등장하기 힘든 캐릭터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사람의 캐릭터는 독특한 형식의 드라마에서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다. 양동근은 드라마가 끝난 뒤 “당분간 고복수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나영과 인정옥 작가의 남다른 궁합은 드라마 ‘아일랜드’에도 이어졌다. 여기에서도 이나영은 또다시 비전형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 입양아인 ‘중아’는 악역이다. 남편인 강국(현빈 분)을 두고 재복(김민준 분)을 사랑하는, 흔한 말로 ‘불륜’ 관계에 놓여 있다. 인정옥 작가가 드라마 촬영에 앞서 이나영에게 “중아는 악역”이라고 설명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악역은 처음이라 욕심이 났다”지만 그가 ‘아일랜드’를 택한 것은 중아라는 캐릭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네 멋대로 해라’에서 호흡을 맞췄던 인정옥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이 그에겐 큰 의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나영이 ‘네 멋대로 해라’에서 얻기만 했다면 ‘아일랜드’에서는 얻은 것과 동시에 잃은 것도 있었다. 그는 전경과 중아라는 엇비슷한 캐릭터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이나영은 ‘아일랜드’에서 처음으로 안티팬들의 혹평을 경험했다.

    ‘아일랜드’는 확실한 문제작이었다. 인정옥 작가의 스타일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는 ‘네 멋대로 해라’에서 보여줬던 어느 정도의 대중성을 뒤로하고 ‘아일랜드’를 통해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드러냈다. 심지어 이나영 본인조차 이해하기 힘든 대사와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이나영은 한 인터뷰에서 ‘아일랜드’에 대해 “대중 드라마가 대중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나영과 인정옥 작가는 분명 남다른 관계다. 드라마 속 캐릭터가 자신의 분신이라고 말하는 인정옥 작가의 또 다른 작품에서 이나영이 만든 틀이 어떻게 깨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나영만 만들 수 있는 아우라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앞의 두 드라마 못지않게 이나영의 가치가 돋보인 작품은 영화 ‘아는 여자’다. 이 작품으로 이나영은 지난해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가 ‘얼굴 없는 미녀’의 김혜수, ‘주홍글씨’의 이은주, ‘인어공주’의 전도연,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김하늘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주연상을 거머쥐자 한때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이나영은 분명 그들에게 처지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였다. 영화 ‘아는 여자’의 ‘한이연’은 그야말로 이나영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다. 뭔가 어설퍼 보이지만 그 역시 이나영이 가진 ‘색깔’이다. 이 영화가 수작이 된 데는 물론 장진 감독의 연출력과 상대역 정재영의 연기력 덕분이 크지만 이나영 역시 상당한 아우라를 내보였다.

    돌이켜보면 이나영만큼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한 배우도 흔치 않다. ‘얼굴 없는 미녀’에서 과감한 베드신에 도전한 김혜수보다 ‘영어완전정복’에서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나영의 모습이 더 놀라웠다. 이나영의 이 같은 연기세계는 분명 대중적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면이 있으나 열광적인 마니아층을 만들어낸다.

    배우 이나영이 가진 독특함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크게 히트한 작품은 한 편도 없지만, 그는 계속 성장해왔고 다양한 변신을 시도했다.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일본 영화 ‘에이지’에 이어 2000년 ‘천사몽’, 2002년 ‘후아유’, 2003년 ‘영어완전정복’까지 그는 단 한번도 비슷한 배역에 얽매이거나 머물러 있지 않았다.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1998년 MBC 드라마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에서 배용준의 동생으로 브라운관에 처음 얼굴을 비춘 적도 있다.

    그러나 ‘에이지’나 ‘천사몽’ 같은 데뷔 초기의 작품에서는 이나영 본연의 색깔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 무렵엔 그저 표면적 연기에만 만족해야 했다. 훗날 그 자신도 “그땐 엉겁결에 광고도 찍고 연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영화 ‘후아유’부터 그는 달라졌다. 조승우와 함께 출연한 이 작품에서 그는 젊은이들의 방황과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후아유’는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 속에서도 꿋꿋하게 만들어진 영화다. 지금에야 흥행배우가 됐지만 당시 조승우는 영화 ‘춘향전’의 ‘이도령’ 이미지가 강했고, 이나영도 ‘천사몽’의 ‘쇼쇼’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바이준’의 연출을 맡았던 최호 감독 또한 이들과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그림 같았다. 하지만 ‘후아유’는 영화 마니아들에게서 호평을 받은 작품이자 이나영의 독특한 연기 세계를 대중에게 알린 첫 작품이 됐다.

    이제 이나영은 새로운 작품 선택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다. 영화 ‘아는 여자’ 이후 1년여의 공백기, 드라마 ‘아일랜드’를 통해 겪은 캐릭터의 굴레. 그는 이 두 개의 벽을 넘어서야 한다. 현재 30여 편의 시나리오를 들고 차기작을 고심하고 있다는 그는 변신과 현재 모습의 고수, 양단에 서서 차분히 생각을 고르고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이나영만의 독특한 연기세계는 흔들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올해로 스물다섯 살이지만 앳된 외모 때문에 임수정은 내내 ‘소녀’를 연기해야 했다. 가냘픈 체격 역시 그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만든다. 소녀성과 은밀히 드러나는 모성의 조화가 바로 배우 임수정의 매력이다.

    임수정(25)은 ‘배우답지 않은’ 배우다. 화려하지도 유난하지도 않은 그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다. 임수정은 대중과 거리를 두면서도 대중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흔치 않은 캐릭터다. 주로 여성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가 영화 몇 편에 출연한 뒤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이하 ‘미사’)에 출연한다고 하자 많은 이가 반신반의했다. 이미 영화를 통해 가능성을 검증받긴 했으나 ‘스타급’에 올라선 후 처음 맡은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상대역 소지섭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을 통해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었으나, 임수정은 데뷔작 ‘학교4’ 이후 겨우 두 번째 드라마 출연이니 말이다.

    임수정이 ‘미사’의 대본을 건네받은 것은 영화 ‘…ing’를 끝낸 후였다. 은채의 캐릭터에 반한 그는 4년 만의 드라마 컴백이라는 부담을 안고 이 작품을 선택한다. 이미 임수정이 영화나 광고에서 보여준 이미지 역시 ‘미사’ 속 ‘은채’와는 많이 달랐다. ‘은채’는 밝고 당당하며 씩씩한 소녀였으나, 대중에게 각인된 임수정의 이미지는 늘 우울하고 상처를 안고 있는 듯했다. 임수정에게 ‘미사’의 선택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순수하고 차분한 배우

    그렇지만 ‘은채’의 캐릭터를 임수정만큼 소화해낼 배우가 또 있었을까. 대본을 집필한 이경희 작가는 임수정에 대해 “극중 은채같이 순수하고 차분한 배우”라고 평했다. 은채처럼 밝고 명랑하지는 않지만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고 차분한 점이 실제 임수정과 꼭 닮았다는 것이다. 드라마 ‘꼭지’에서 반항적이고 털털한 원빈을 재발견해냈고(‘꼭지’는 원빈 자신도 첫손꼽는 작품이다), ‘상두야 학교 가자’를 통해 연기자로서 가수 비의 가능성을 끄집어낸 바 있는 이 작가는 배우들의 장단점을 캐릭터에 반영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미사’를 통해 임수정 역시 ‘내 안에 있는 나’를 새로이 발견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높이 평가받은 것은 임수정과 소지섭의 커플 연기다. 시청자들이 ‘미사’에 열광했던 것은 가슴 절절한 이들의 사랑 때문이다. 밑바닥으로부터 우러나온 은채와 무혁의 상대를 향한 애절한 마음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리고 뼛속을 파고들었다.

    이경희 작가는 임수정에게 ‘모성’의 감정을 주문했다. 만년 고교생으로 보이는 임수정의 이미지에서 과연 ‘모성애’가 느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임수정은 이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무혁을 ‘아저씨’라고 부를 만큼 어린 상대지만 그를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은 은채뿐이었다.

    호주에서 은채가 무혁을 처음 만난 날, 은채는 길거리에서 무혁의 품에 안겨 잠이 든다. 그러나 무혁의 마음을 안은 것은 은채였다. 두 살 때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입양된 뒤 밑바닥 삶을 살아온 무혁은 함께 길에서 밤을 지새운 첫 번째 여자인 은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임수정은 ‘미사’를 통해 다시 태어났다. 배우로서 그다지 화려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자리에만 머물렀던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가장 가능성 있는 여배우로 거듭났다. 지난해 그는 소지섭과 함께 연말 연기대상에서 무려 4관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임수정은 ‘미사’를 끝내고 한동안 “자고 일어나도 멍하고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뭘 해도 도통 실감나질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배우에게 연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철저히 작품 속 인물이 되어 살다가 다시 이 세상으로 나오려면 적응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 보면 배우들은 자신의 실제 삶보다 드라마나 영화 속의 인물로 살아가는 게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소녀성’ 간직한 앳된 외모

    임수정은 1980년생, 올해로 스물다섯 살이다. 수애, 손태영, 김소연, 공효진, 이세은, 이요원, 김태희 등과 동갑이다. 하지만 이중 누구와 견줘봐도 임수정은 한참 동생뻘로 보인다. ‘장화, 홍련’에서 자매로 출연한 문근영과는 실제로 일곱 살이나 차이 나며 ‘…ing’에서 임수정에게 ‘대학생 오빠’로 불린 김래원은 그보다 한 살 어리다. 평소 남동생과 같이 있으면 사람들은 임수정이 당연히 동생인 줄로 안다고 한다.

    임수정이 지닌 장점은 바로 이 ‘앳된 외모’에 있다. 도무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외모 때문에 임수정은 그동안 주로 고등학생 역을 맡아왔다. 스무 살에 출연한 데뷔작 ‘학교4’에서도 그랬고,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 ‘장화, 홍련’ ‘…ing’까지 그는 내내 ‘소녀’를 연기해야 했다. 그가 연기하는 소녀는 문근영의 연기와는 또 달랐다.

    보헤미안의 향기 이나영 vs ‘25세 소녀’의 연륜 임수정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역시 실제 나이인 열아홉보다 어려 보이는 문근영은 ‘천진난만한’ 고등학생을 연기하는 데 제격이다. 그러나 임수정은 반항적이면서도 상처 깊은 내면 연기를 할 수 있는 마스크다. 어쩌면 스물다섯이라는 실제 나이에서 묻어나는 ‘연륜’이 어리게 보이는 외모와 어우러져 이 같은 결과를 낳는지도 모른다. 임수정은 당당하면서도 자기 정체성이 강해 누구도 쉽게 범접하기 힘든, 자신만의 세계를 간직한 고등학생을 연기할 수 있는 인물이다.

    세계적 트렌드를 주도하는 전형적인 ‘베이비 페이스’를 가지고 있는 임수정에 대해 한 성형외과 전문의는 이렇게 분석했다.

    “임수정의 큰 눈에는 부드러움과 차갑고 강렬한 느낌이 함께 담겨 있다. 갸름한 턱선, 높지만 날카롭지 않은 콧날과 도톰한 윗입술이 만드는 얼굴선은 보호본능을 일으킨다. 전형적인 미인형은 아니지만 이 같은 이미지가 임수정만이 가진 개성으로 표출되는 듯하다.”

    게다가 임수정의 패션 또한 여느 스타들과는 퍽 다르다. ‘미사’에서 임수정이 입고 나온 무지개빛 니트는 웬만한 보세숍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크게 히트했다. 임수정의 스타일리스트를 맡았던 고병기씨는 “임수정은 이목구비가 뚜렷하기보다 연하고 가냘프게 예쁜 얼굴이라 패션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배우”라고 평했다. 외모뿐 아니라 몸매에서도 ‘소녀성’이 드러난다. 배우로서 크지 않은 키와 마른 체격을 가진 임수정은 섹시하기보단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의 패션은 이런 장단점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임수정은 어릴 적부터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다고 한다. 또 학창시절 내성적이어서 배우가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 자신도 “내 평소 성격은 ‘장화, 홍련’의 수미와 가장 가깝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평범하기 그지없던 여린 소녀는 우연한 기회에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는 서울 명덕여고에 재학 중이던 1998년 한 패션잡지의 표지모델로 발탁됐다. 비슷한 시기에 배두나, 김효진, 공효진, 김민선 등이 모델 활동을 같이 했다. 이후 3년여가 흐른 2001년 임수정은 당시 연예계 지망생들의 ‘발판’이나 다름없던 드라마 ‘학교4’를 통해 정식 데뷔한다.

    이후 그는 한동안 드라마를 떠나 영화를 통해서만 간간이 얼굴을 보였다. 2002년 안성기, 최지우 주연의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그는 대통령의 반항적인 딸로 출연해 대선배들과 함께 연기했다. 다음해에는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임수정이 ‘엉겁결에’ 찍었다는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그의 이미지는 강하지 않다. ‘장화, 홍련’에서도 그는 그저 흐름을 따라가는 연기자였을 뿐이다.

    임수정이 처음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낸 작품은 ‘…ing’이다. 임수정의 첫 주연작이고 당시 28세이던 이언희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임수정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웃는 모습이 예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을 대할 때마다 닫아뒀던 마음을 조금씩 열었다. 기쁠 때 웃지 못하고 슬플 때 울지 못했던 임수정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데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화가 나면 속으로 삭이지만 않고 남에게 화를 낼 줄도 알게 됐다. 배우 임수정이 아닌 한 사람의 임수정 역시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세상 앞으로 다가서게 된 것이다.

    “일이 없을 때는 숨어버린다”

    하지만 임수정은 여전히 대중으로부터는 조금 먼 거리에 있다. 신인시절 그는 수많은 인터뷰를 했지만 이제 임수정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여전히 낯을 가리는 성격의 임수정에게는 인터뷰 또한 단지 일의 연장선일 수도 있다. 언젠가 그는 얘기했다. “일이 없을 때도 화려하게 배우처럼 사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숨는 사람들도 있다”고.

    그렇게 ‘미사’ 이후 다시 숨어 있던 임수정은 조만간 네 커플의 ‘이별 스토리’를 담는 영화 ‘새드 무비’에 정우성의 상대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캐릭터와 함께 성장해가는 배우 임수정을 보는 뿌듯함은 이번 작품에서도 계속되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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