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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갈릴레오의 진실’

기회주의자인가, 영웅인가

  • 구자현 영산대 교수·과학사 jhku@ysu.ac.kr

‘갈릴레오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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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 많은 천재의 성공과 몰락

그러나 책은 곧 구설에 올랐고 조사위원회가 조직됐다. 조사위원회는 출판물을 검열하는 검사성성(檢邪聖省·Holy Office)으로 사건을 이관했고, 검사성성은 종교재판을 위해 갈릴레오를 로마로 소환했다. 고령과 건강을 핑계 삼아 출두를 미루던 갈릴레오는 교황청의 불호령에 어쩔 수 없이 1633년에 여섯 번째로 로마를 방문했다.

몇 개월간 계속된 재판은 유죄 판결로 결론이 났다. 갈릴레오는 ‘대화’를 통해 1616년에 금지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옹호했다고 인정하고, 자신의 견해를 철회한다는 문서에 서명했다. 정상이 참작되어 투옥은 면할 수 있었지만 가택연금조치는 1642년 갈릴레오가 사망하기까지 풀리지 않았다.

이 책은 탄탄한 사실적 토대 위에서 갈릴레오와 교회의 관계 변천을 조명했다. 두 저자가 과학계와 종교계를 각각 대변한다는 점에서 관점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왜 갈릴레오가 재판을 받았으며, 왜 유죄 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것은 이 책이 정치적 문제에 주된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갈릴레오 재판과 관련된 철학적, 종교적, 과학적 논의의 핵심은 심도 있게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논의들은 이미 다른 연구자들의 저서를 통해서 깊이 있게 다뤄졌으므로 이 책이 그러한 논의들을 포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자들의 의도도, 원제 ‘Galileo in Rome: The Rise and Fall of a Troublesome Genius’, 직역하면 ‘로마의 갈릴레오: 말썽 많은 천재의 출세와 몰락’에서 드러나듯이 6차례의 로마 방문을 통해 갈릴레오의 출세와 몰락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를 살펴보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논점은 6차례의 로마 방문이 갈릴레오에게 성공적이었는가 아니었는가에 있다.

저자들은 1차 성공, 2차 성공, 3차 실패, 4차 성공, 5차 성공, 6차 실패로 규정한다. 이러한 규정은 그것에 동의 여부를 떠나서 과학자 갈릴레오의 경력 전체를 읽어내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진리의 옹호자로서의 갈릴레오의 이미지보다는 명성과 지위를 확보하려는 야심, 대인 관계를 활용하는 정치적 수완, 위기를 모호한 말로 대처해 나가는 간교함까지 인간 갈릴레오의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그가 정죄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갈릴레오 자신의 적절치 못한 대응에서 찾는다. 이런 점은 “갈릴레오가 교회의 지시사항을 기꺼이 그대로 따르려고만 했어도 모든 일은 무난히 진행됐을 것”이라는 출판 검열관 리카르디의 말이나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는 일을 함으로써 스스로 곤경에 빠져들었다”라는 교황 우르바노 8세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갈릴레오는 확실히 ‘말썽 많은’ 천재였다.

과학과 종교의 상생

이러한 갈릴레오의 인간성은 재판에 임하자마자 자신이 쓴 책이 의도한 바가 코페르니쿠스 이론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비판이었음을 주장하고, 스스로 코페르니쿠스 이론의 부당성을 논증하는 내용을 첨가하겠다고 말하는 데에서 잘 드러난다. 이런 장면에서 진리의 옹호자로서 의연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위기를 모면하려는 간교함을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러한 개인적, 인격적 결함이 갈릴레오의 학문적 성취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특히 갈릴레오가 추구한, 과학과 종교가 상생하는 길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두 가지 주된 힘이라 할 만한 과학과 종교가 충돌하면서 갈릴레오가 직면한 것과 유사한 장면들이 오늘도 재연되고 있다. 지난날에는 천문학적 문제가 첨예한 대립점이었다면 지금은 생물학적 문제가 첨예한 대립점이다.

갈릴레오는 성경이 인간을 하늘로 이끌기 위한 것이지 하늘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기독교인이 성경에서 과학과 위배되는 사실을 발견할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를 설파하였다. 지금도 기독교인들에게 ‘진화론’을 믿을 것인가 ‘창조론’을 믿을 것인가는 민감한 문제이고 많은 젊은이로 하여금 생물학을 공부할 것인가 구원을 택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게 하고 있다.

우리는 갈릴레오가 성경에서 천동설을 지지하는 구절들을 발견하면서도 지동설을 과학적 진실로 주장할 때 취한 태도를 본받음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대는 비난과 논란을 감수하면서 십자가를 짊어질 또 다른 갈릴레오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신동아 2006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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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현 영산대 교수·과학사 jhku@y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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