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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⑤ 희생양

기득권 지키려 ‘公共의 적’ 만들었다

남미 人身공양 中 분서갱유 유럽·美 마녀사냥…

  •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기득권 지키려 ‘公共의 적’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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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이 승상 이사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답변했다.

“이제 폐하의 예지로 천하가 통일되고 군현으로 나라가 편성됐습니다. 정복지에 다시 제후를 세우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진시황은 이사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천하가 전쟁에 끊임없이 시달린 것은 제후 왕들이 할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제후국을 세운다는 것은 전쟁의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고 종지부를 찍었다.

승상 이사는 내친김에 더욱 강력한 건의를 했다.

“학자들은 지금 필요한 것을 배우지 않고 옛날 것만 배워 현재를 비난하며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금하지 않으면 위로는 군주의 권위가 실추되고 아래로는 당파가 형성되니 금하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진(秦)의 책이 아닌 것은 모두 태워버리고, 두 사람 이상이 만나 감히 ‘시’와 ‘서’를 거론하면 공개 처형하고 옛것을 들먹여서 현재를 비방하는 자는 멸족에 처하십시오. 의약, 복서(卜筮), 농업과 관련한 책을 제외한 모든 책을 30일 내에 불태우고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묵형에 처하고 성 쌓는 노역을 시키십시오.”



진시황은 곧 ‘분서(焚書)’를 명했다. 중국 전역의 책들이 잿더미로 변했다. 모든 서적을 불태운 것은 아니었다. 분서의 대상은 유가(儒家) 관련 책들이었다. 병서(兵書), 형법, 천문, 의학, 농경과 관련한 책은 제외됐다. 또 황실 도서관에 유가를 포함한 백가의 모든 경전을 보존했고, 다른 나라의 역사서도 놔두었다. 진시황이 제자백가(諸子百家) 서적과 역사서를 불태운 것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일부 세력이 반기를 들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왕조가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려면 사상적 통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분서 때 특히 강조한 게 전국시대 육국(六國)의 역사기록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각국이 역사기록을 통해 진(秦)을 비방했기 때문이었다. 통일이 됐는데도 진나라에 대한 나쁜 내용을 담은 서적을 그대로 방치하면 과거 다른 나라에 속한 지역의 백성이 증오심과 복수심을 불태울 수 있고, 결국 진나라의 정치 안정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승상 이사는 “학자들은 서로 다른 논리를 내세우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결국 당파를 조직해 다투기만 한다”며 사학(私學)의 금지를 주장했다. 전쟁에 져서 나라를 빼앗긴 구세력이 호심탐탐 기회를 엿보는 마당에 여론을 호도할 수 있는 이론가의 입을 막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했던 것이다.

진시황의 분서는 사상을 통일하기 위한 것으로 비단 진나라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이슬람교도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뒤 고대 문명의 집결지였으며 보고(寶庫)였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불살랐다. 이슬람 교리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찬란한 인류 고대문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유럽에서도 이단으로 판정된 교파의 서적은 모두 태워버렸다.

“질서를 흔들지 마라”

책을 태운 분서보다 더 끔찍한 건 학자를 산 채로 묻은 갱유(坑儒)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영생(永生)을 꿈꾸면서 먹으면 죽지 않는 불사약을 구했다. 물론 진시황 이전에도 불사약을 구하는 사람은 많았다. 제나라 위왕과 선왕, 연나라 소왕 등은 사람을 곳곳에 보내 불사약을 구하고자 했다. ‘신선술’ ‘불사술’ 등은 일찍이 있었고 이런 것으로 부귀를 누리는 술사(術士)도 많았다. 진시황도 술사들의 현란한 말재주에 넘어갔다. 서복, 후생, 노생 등 술사는 진시황을 속여 막대한 재물을 갈취하고 백성을 괴롭혔다. 이들은 개인의 부귀를 위해 신선설과 도참 예언을 날조하고 정치를 혼란에 빠뜨렸다. 10여 년간 대규모로 불사약을 찾는 바람에 진나라의 국력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 신성한 곳이라고 생각되는 곳마다 비문을 세우고 제단을 쌓았다. 신선을 찾고자 3만 호에 달하는 백성을 낭야대라는 곳으로 이주시키고 대신 12년간 요역을 면제해줬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불사약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사약을 찾으러 떠난 노생 등이 그대로 돌아가면 죽음밖에 기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자 이들은 “주상이 형벌과 살육으로 위엄을 세우기를 좋아하고, 자신의 잘못에 관해서는 들으려 하지 않고 갈수록 교만해진다. 권세를 탐하기 때문에 선약(仙藥)을 구해주어서는 안 된다”라는 핑계라고도 할 수 없는 변명만 늘어놓고 도망쳤다.

뒤늦게 노생 등이 불사약을 구하지 못하고 도망친 사실을 알고 진시황은 격노했다. 사마천이 저술한 ‘사기’ 중 ‘진시황본기’는 당시를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전에 천하의 서적을 거두어 쓸 데 없는 것은 모두 없앴지만 많은 학자와 방사(方士)를 불러 모은 것은 태평을 구현하고 방사들이 선약을 구해올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약을 구하기는커녕 부정하게 이득만 취하고 있다는 보고만 매일 들린다. 또 노생 등을 대단히 후하게 대접했는데 그들은 나를 비방하고 내가 부덕하다고 떠벌렸다. 사람을 시켜 함양에 있는 유생들을 사찰해보니 유언비어를 퍼뜨려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자가 있다고 한다.”

기득권 지키려 ‘公共의 적’ 만들었다

중국 진시황릉 병마용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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