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호

디지털 비즈니스 전문가의 ‘박원순표 제로페이’ 비판

깡패가 초딩 축구공 빼앗아 노는 격

  • 이경전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klee@khu.ac.kr

    입력2019-01-27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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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공무원이 급조해놓고 민간 윽박질러

    • 현대 경영학 이론과 거꾸로 가는 정책

    • 포퓰리즘 공약은 포기하는 게 용기

    • 정부, 개방형 표준 만들고 시장서 빠져야

    2018년 7월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왼쪽 두 번째부터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최승재 소상공인협회장, 위성호 신한은행장. [동아DB]

    2018년 7월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식이 열렸다. 왼쪽 두 번째부터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 최승재 소상공인협회장, 위성호 신한은행장. [동아DB]

     결제 서비스는 성공하기 쉽지 않다. 대기업도 실패한 사례가 많다. SK텔레콤은 이미 2001년에 ‘모네타’라는 결제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휴대전화에 신용카드를 탑재하고, 매장 단말기에 모네타 동글(dongle, 전용 수신기)을 설치해서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가맹점은 동글을 설치해야 했고, 사용자는 휴대전화에 신용카드 기능을 넣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결국 이 서비스는 성공의 벽을 넘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구글의 구글페이, 애플의 애플페이, 그리고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연합해 설립한 소프트카드 등 새로운 결제 서비스도 성공하지 못했다. 소프트카드는 파산했다.

    그들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까. 2014년 필자는 ‘새로운 결제서비스의 성공요인: 다중사례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박아름 박사와 공저해 학술지 ‘지능정보연구’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새로운 결제 서비스는 새로운 거래를 일으켜야 성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네타와 소프트카드, 구글페이와 애플페이가 실패하거나 지지부진한 까닭은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새로운 결제 서비스를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이 결제 서비스 역시 새로운 거래를 일으킬 수 있어야 성공할 것이다. 새로운 결제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가야 할 방향이다. 그러나 이미 민간 기업에서 하고 있는 방식으로 카카오페이와 유비페이 등이 존재한다.


    “정부는 직접 노 젓지 말라”

    2019년 1월 4일 현재,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제로페이는 이미 서비스를 개발해 운영 중인 카카오페이나 유비페이를 배제하고 있다. 카카오페이와 유비페이가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채택한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서다. 이 방식을 받아들여야 제로페이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상황은,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면서 겪었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다. 축구도 못하면서 덩치만 큰 깡패 같은 아이들이 나타나 우리 공을 빼앗고 자기들끼리 차고 노는 장면 말이다. 우리 친구들은 이들을 뒤쫓아 결국은 공을 뺏는다. 그 깡패들은 원래 축구에 관심도 없고 잘하지도 못한다. 그냥 우리가 노는 것을 방해하는 것뿐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했다.



    지금 제로페이와 꼭 닮았다. 결제 서비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정치인과 일부 공무원들이 하루아침에 시스템을 설계하고 급조했다. 그러면서 기존 사업자들에게 들어오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어차피 준비가 부족했던 일부 업체들이나, 그냥 이럴 땐 굴복하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업체들만 줄을 섰다. 더 좋은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업체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더 좋은 구조를 가진 업체들로서는 기존에 투자한 것이 있는데 이를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떤 업체는 정부 방침에 따르는 척하면서 비용을 줄여볼까 저울질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이 놀고 있는 축구장에 나타나서 갑자기 공을 뺏어 차고 있는 깡패들에게 어떤 친구들은 이미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 합류했고, 어떤 친구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해 분노하고, 어떤 친구들은 깡패들에게 붙을까, 원래 친구들과 같이 놀까 저울질하는 상황이 제로페이를 앞에 두고 벌어진 셈이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정부는 방향키만 잡아야지 직접 노를 저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잠시 메기처럼 활동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메기가 계속 활동하면 어항에는 메기만 남는다. 그 메기도 결국 굶어 죽는다.


    “총체적 난국”

    제로페이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지방선거 공약으로 급조됐다. 그럼에도 결국 실행해야 한다면, 그 과정은 사려 깊게 거쳐야 한다. 정치인들이 다소 급조된 공약을 뿌려서 사회가 뒷감당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때는 안 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가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을 급조했지만, 결국 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집무실은 광화문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사실상 결정됐다. 헛된 공약을 한 문재인 대통령은 사과해야 한다. 다만 현실성 없는 공약으로 판명됐다면 지키지 않는 것도 용기다. 대통령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 포기는 잘한 것이다.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낫다.

    지난 2017년 대선 때 주요 후보가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급격 인상은 약속을 지킨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공약은 되도록 지키는 것이 좋다. 그러나 소상공인 및 한계기업 몰락, 인플레이션, 중소기업 해외 이전 등 부작용이 극심하고 오히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명약관화한 이상, 문 대통령은 2019년 초에 최저임금 급격인상 정책을 포기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소위 제로페이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무리한 공약을 내놓을 수는 있다. 아이디어의 자유경쟁 시장에서 그 아이디어가 공약이 되고, 그 공약이 영향을 주어서 어떤 정치인이 당선됐다면 그 공약을 실천하는 것도 정치인의 의무다. 문제는 그 공약이 포퓰리즘 성격이 너무 강할 때다. 공약 실천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이 아닌 퇴보를 가져온다면 정치인은 그 공약을 철회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급격 연속 인상 정책이 그러했고, 지금 박원순 시장의 제로페이 정책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왕 이렇게 된 것, 최선의 방책을 찾아보자. 제로페이 정책에 관해 지적할 것은 많지만 건설적인 방향을 같이 고민해보자. 우선 이왕 정부가 개입해 난장판이 됐다면 정부는 이제 이를 잘 수습하고 떠나야 한다. 정부가 시장에 개입할 때의 장점 중 하나는 기획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 새로운 스마트폰 중심의 결제가 어떻게 돼야 할지 잘 기획, 설계해보자.

    2019년 1월 4일 현재 제로페이의 구조는 최악이다. 금융결제원의 오래된 구조를 답습하고 있고, 이 구조에 정부기관이 또 들어와 결제 서비스 과정에 단계가 하나 더 늘었다. 그러니 비용은 더 커진다. 그런데 정부는 은행에 수수료를 덜 받으라고 윽박지르고 있다. 고비용 구조를 채택하면서 수수료는 덜 받으라고 하는 상황이다. 지금 은행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들어와 있지만, 정부의 추진력이 약해지는 순간 수수료를 높이거나 채산성이 안 맞다는 이유로 사업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취약한 구조다.


    “상점도 소비자도 골탕먹는다”

    서울시 제로페이가 시행된 첫날인 2018년 12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로페이 결제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시 제로페이가 시행된 첫날인 2018년 12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제로페이 결제 시연을 하고 있다. [뉴스1]

    사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저비용 구조를 만들고 참여자가 지속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비즈니스 모델 이론의 기초다. 현재 제로페이는 경영학의 비즈니스 모델 이론과 거꾸로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론이 경제학 이론과 거꾸로 가는 사이비 이론이라면, 박원순 서울시장과 홍종학 중기부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제로페이는 경영학 이론과 거꾸로 가고 있는 상황이다.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금융결제원이 참여하는 제로페이의 구조는 기존 카카오페이나 토스 등이 가지고 있는 구조와 다르다. 카카오페이와 토스는 송금자와 수신자의 은행이 다를 경우 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사업자인 카카오와 토스가 부담한다. 사업주도자가 자신의 사업 계획하에 초기 자본을 투하해 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부담하면서 사용자를 끌어들이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기관이 나타나 다른 방식의 결제 시스템에 참여하라고 하고 있다. 카카오와 토스에 솔루션을 공급하던 회사는 정부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꼴이 됐다. 카카오와 토스는 이미 구축한 솔루션에 기반해 사업을 지속할 것인지, 아니면 난데없이 정부가 쓰라는 솔루션(아직 제대로 구축도 안 되어 있는)을 쓸 것인지 고민하는 상황으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정부가 은행들의 팔을 비틀어 타행 계좌이체 수수료를 깎아준다면, 혹시 이에 편승할지도 모르겠다. 현재 상황이 이렇다.

    한편, 하렉스인포텍의 간편결제 서비스인 유비페이는 사용자 중심 공유 플랫폼을 표방하면서 은행별로 공유 플랫폼 계좌를 활용한 자행이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즉 송금자와 수신자의 은행이 달라도 계좌 이체 수수료가 발생하지 않는 방식을 이미 구축해놨다는 얘기다. 여타 지자체나 전통시장, 우정사업본부가 추진하는 포스트페이 등에 이미 쓰이고 있다. 그런데 제로페이 담당자들은 이 방식 역시 거부하고 있다. 자신들이 급조한 금융결제원 시스템 구조에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상황인 것이다.

    자, 이제 정치인들과 공무원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위에서 설명한 세 가지 방식 중 어떤 하나를 잘 골라낼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하렉스인포텍의 유비페이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한 진정한 제로페이 구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만약 어떤 것이 최고인지 결정할 자신이 없으면 다른 방법이 있다. 카카오페이와 토스, 유비페이 등 세 방식에 대해 모두 제로페이를 개방하면 된다. 앞으로 또 나타날 제4, 제5 방식에도 똑같이 문을 열어야 한다.

    어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나올지 모르니 정부와 지자체는 판만 깔아주고 개방하라는 얘기다. 상점의 수신 계좌 정보만 표준화하고, 이 코드(QR코드, NFC 태그 등)를 모든 사업자에게 개방하라. 그렇게 하면 상점은 하나의 QR코드만 가지면 된다. 그리고 소비자는 자신의 앱을 사용해 결제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않고 현재의 방식을 고수하면 어떻게 될까? 상점마다 제로페이 QR코드, 카카오페이 QR코드, 유비페이 QR코드 등이 혼재해 상점도 소비자도 골탕을 먹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박원순 시장, 홍종학 장관 모두 곤란에 빠질 수 있다.

    통신산업, 전력산업 모두 초기에 정부가 개입했다. 인프라 설치가 필수적인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집약도가 낮은 시절, 거대 인프라를 민간 기업이 다 책임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공기업을 만들어 통신산업과 전력산업에 개입했다. 정당성이 있었다.


    “결제 서비스는 통신·전력과 달라”

    하지만 이번 스마트폰 중심의 결제 사업은 다르다. 새로운 인프라를 깔 필요가 없는 사업이다. 이미 민간 기업들이 다 구축해놓은 사업이다. 정부가 들어와야 할 여지가 크지 않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 방향만 결정하고 노는 직접 젓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표준만 정하고 떠나기 바란다. 그 표준을 모든 사업자에게 개방해 결제 사업자들이 소비자 편익과 상점 편익을 위해 경쟁하게 하라. 그렇게 되면 제로페이는 저절로 순항하고, 그만큼 지속가능성이 커진다.

    정부는 새로운 결제 방식이 새로운 거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거리의 주차장에 만연한 불법주차를 새로운 결제 방식을 도입해 합리화한다든지, 개인의 서비스 거래에서 결제 수단이 부족한 상황을 개선한다든지, 각종 기부와 모금에서 자발성을 고양하기 위한 결제 수단으로 새로운 결제 방식이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결제 방식을 사회에 정착시키고, 새로운 산업을 발전시키며, 동시에 소비자와 사업자의 편익을 증진시킬 수 있다.


    이경전
    ● 1969년 출생
    ● KAIST 경영과학과 (학·석·박사), 서울대 행정대학원(석·박사 수료)
    ● 미국 카네기멜론대, MIT, UC버클리 초빙과학자 및 초빙교수
    ● 現 경희대 경영대학 교수, 비즈니스 모델 연구소 및 빅데이터연구센터 소장
    ● 수상 : 미국인공지능학회 혁신적 인공지능 응용상 2회 수상(1995, 1997), 전자정부 대통령 표창(2018)
    ● 저서 : ‘버튼 터치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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