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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前 上書

  • 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도련님 前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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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돈키호테

소설 ‘도련님’에서 주인공이 지켜가던 정직과 성실과 의리의 원칙은 그의 과장되고 무모한 성향 때문에 해학과 골계 속에 농담처럼 보였다. 그러나 만화 ‘도련님의 시대’는 그것을 진지하고 정당한 원칙으로 재조명한다. 그래서 만화 속 도련님의 정신은 단 한 사람만이 가진 외골수의 자기방어가 아니라, 시대의 천박한 흐름에 맞서 싸우는 자들이 공유하는 정언명령이 된다. 그 정언명령을 각자가 실천할 때, 도련님의 정신은 천진난만한 소년이 돼 웃음을 주기도 하고, 유도로 무력을 연마하는 협객이 돼 위협을 가하기도 하며, 악을 선으로 끌어안는 군자(君子)의 모습으로 경건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만화 ‘도련님의 시대’는 이러한 각양각색의 도련님들에게 실체를 부여한다. 특히 제1부는 소세키가 메이지 시대를 주름잡던 실제 인물들에 소설적 형상을 부여해 소설 ‘도련님’의 인물들을 완성했다는 설정을 가졌다. 이러한 만화의 시선으로 소설 ‘도련님’을 다시 보면, 희화화한 인물들에게서 정의를 발견할 수 있고, 허세와 허풍에 가득 찬 인물들의 행위가 사실은 절망적인 시대의 조류와 맞닿아 있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작은 섬마을 학교에서 무모한 도련님들과 잡스러운 악인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던 상황이, 느닷없이 닥쳐온 서양 문명의 충격이 휩쓸던 격동의 동양적 근대였던 것이다.

‘도련님의 시대’는 당대 대부분의 사람들과 소세키마저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한 사람의 도련님을 더 등장시킨다. ‘팩션(faction)’인 이 만화는 많은 부분이 허용 범위 안의 팩트(fact)에 가깝지만, 이 예외적인 도련님의 등장에서는 스스로도 과도한 픽션(fiction)임을 인정한다. 상당히 극적인 연출력이 사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해야만 하는 또 한 사람의 도련님은 바로, 대한(大韓)의 안중근이다.

안중근의 등장과 역할에는 지나치게 많은 우연이 겹친다. 소세키가 우연히 기차역에서 안중근과 부딪쳐 책을 떨어뜨렸는데 그 책을 주워준 사람이 A급 전범 도조 히데키라거나, 원래 안중근의 암살 표적이던 야마가타 아리토모의 수하가 이토 히로부미로 저격의 대상을 바꾸도록 유도한다거나, 소세키의 집에 안중근이 기거할 뻔한 상황을 만들어 둘을 다시 조우시킨다거나. 이렇게 무리하게 안중근을 등장시키며 ‘도련님의 시대’가 보여주려 한 것은 무엇인가.





안중근도 역사의 흐름에 저항했다는 의미론 또 한 사람의 ‘도련님’이었던 셈이다. -‘도련님의 시대’, 177쪽





붓 따라 부르는 輓歌


그렇다. 동양이 무턱대고 받아들이기에는 서양 근대 문명은 천박하고 부적합하다. 그러나 결국 그것과 그 아류들이 지배하게 되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다. 소세키가 “무용(無用)한 사람은 무용(無用)의 길을 가야지”라는 자조 섞인 말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것도 역사의 흐름이 이미 기울었음을 확인하면서다. 그럼에도 그것에 진지하게 저항한 동양의 마지막 돈키호테들. 그들이 도련님들이다.

이러한 도련님의 이야기는 필히 붓으로 그려진 만화로 애도해야 한다.  ‘도련님의 시대’는 스크롤을 내리는 디지털적 속도감으로 읽히는 만화는 아니다. 그 자체의 리듬을 따라 천천히, 걸어 들어가야 하는 아날로그의 세계다.

목조 지붕이 늘어선 도쿄의 골목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소세키의 집 툇마루에서 한가롭게 노는 고양이와 도련님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사색적인 산책을 배경으로 바쁘게 달리는 인력거와 그보다 더 빠르게 달리는 전차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철의 속도에 적응한 사람들의 영악한 표정과, 여전히 두 다리로 걷는 사람들의 어리둥절한 표정을 가려내야 한다.

그렇게 붓의 리듬과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도련님들이 마주한 절망과 희망을 체험하게 된다. 그것은 결코 활자로 만들어진 소설 읽기에서 발휘되는 상상력에서나, 근대 이후의 속도에 맞춰진 영상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다. 오로지 붓의 필치를 따라가야만 열리는 격동의 세계다.

뒤늦게 우리에게 도착한 도련님들에 대한 만가(輓歌). 다시 열린 도련님들의 세계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서 눈 돌리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무력함을 견뎌내는 정신의 힘을 보여준다.





신동아 2016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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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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