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5월호

이선경의 讀書, 督書, 毒書

겉핥기로 읽거나 읽지 않는 독서법

  • 이선경|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입력2017-05-11 18: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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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이 칼럼을 통해 우리는 먹잇감을 사냥하듯 호기롭게 책 한 권을 골랐다. 그런데 지금부터 이 먹잇감의 살과 뼈를 바르고 하나하나 포를 뜨듯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면서 샅샅이 낱낱이 읽는 방법을 제시한다면 그 얼마나 진부하고 빤한 일이 될 것인가.

    우리에게는 ‘독서’에 대한 부담이 있다. 그것은 제대로 된 독서란, 책을 다 읽어야 하고 완전히 이해해야 한다는, 오랜 전통과 문화가 만들어낸 책 읽기에 대한 정직과 성실의 무게다. 물론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책에 대한 경외심이야말로 지식과 진리에 대한 진실성을 보장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경외심은 독서를 시작하기도 전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설령 큰마음을 먹고 책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온전히 이해해내지 못했을 경우 개운치 못한 마음을 갖게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독서에 대한 이 같은 부담감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저명한 작가나 지식인은 정독(精讀)이나 통독(通讀)을 하지 않는다. 전문적인 독서가들이야말로 겉핥기식 독서를 통해 그들의 직업적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너무 무리하지 말고, 책을 표지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방법, 책을 겉핥기하면서도 만족하는 방법을 궁리해보자.



    # 독서계의 킨제이 보고서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독서계의 킨제이 보고서다. ‘책을 읽다’라는 단순 솔직해 보이는 말 안에 담긴 의외의 복잡 미묘한 진실과 민낯을 공개한다. 필자가 ‘비(非)독서’라 하는 독서법은 대충 읽기의 다양한 방식이다.  



    독서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편견과 오해는 이것이 아닐까. 책을 ‘읽은 책’과 ‘안 읽은 책’으로 분류한다는 것. 그리고 정독과 통독이 그 책을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이라 믿는 것. 하지만 책과 인간이 맺는 관계는 그렇게 흑백으로 단순히 가를 문제가 아니다. 때로는 전체를 다 읽고 기억하는 경우보다 목차만 훑어보는 편이 책의 본질에 더 가까울 수 있으며, 본인이 직접 시간을 들여 읽은 책보다 귀동냥해 얻은 소문이 책에 대한 활용도를 더 높일 수 있다.

    바야르는 책을 이렇게 분류한다. 모르는 책(UB, Unknown Book), 훑어본 책(SB, Skimmed Book), 들은 책(HB, Heard Book), 잊은 책(FB, Forgotten Book). 그러면서 각각의 경우가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지성인의 독서법이거나 매우 생산적으로 상상력을 키우는 방법임을 제시한다.

    모르는 책(UB)과 훑어본 책(SB)이 훌륭한 독서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나무에 얽매이지 않고 숲을 보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책이 너무 많다. 사람 수보다도, 개인에게 평생 주어진 평균 독서 가능 시간보다도, 더 많은 책이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비슷한 유형과 종류의 책이 많아 제목과 저자와 내용이 뒤얽히기 십상이다. 이럴 때 책 한 권 한 권을 세세히 살피는 일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은 책의 제목만 혹은 목차만 읽거나 책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 숲의 생태계와 먹이사슬을 관찰해보는 것이다. 바야르는 이런 독서법을 통해 생기는 안목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총체적인 시각’ 즉 전체에 대한 안목이다. 어쩌면 책을 공평하게 사랑하는 독자일수록 어떤 책 한 권만을 편애하기보다는 모든 책을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불로장생해 읽는다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책의 숲 안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면 모르는 책(UB)과 훑어본 책(SB)을 당당히 독서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들은 책(HB)과 잊은 책(FB)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떤 책이 궁금해진다면 혹은 읽을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면, 사실 가장 먼저 선택하는 방법이란 그 책을 직접 찾아 읽기보다는 먼저 읽은 남이 그 책에 대해 한 말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책의 생산적인 유통은 이처럼 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독자의 욕망과 환상과 상상이 뒤얽혀 빚어낸 이야기의 장일 것이다. 인터넷과 SNS의 리뷰가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 타인의 추천이나 비(非)추천을 시작으로 피어오르는 책에 대한 이야기에 참여하는 것은, 읽고 나서 잊어버린 책들보다 독자에게 더욱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바야르는 읽고 나서 잊어버린 책(FB)들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상실과 망각으로 인한 독서의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 남들도 다 똑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독서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바야르는 우리가 독서에 대한 강박관념과 부담감을 버릴 몇몇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은 부끄러움을 내던지는 것이다. 교양인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현대인이라면 당연히 숙지해야 할 유행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들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교양 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자만이 자기만의 진실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제안은 비(非)독서라는 독서법의 획기적 전환에 비해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러면 이것은 어떠한가. 사실 남들도 다 똑같다는 것. 바야르는 타자가 책에 대해 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타자가 읽었으리라는 생각, 그가 당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이다. 어차피 하루가 24시간인 남들도 시간 빈곤과 망각 속에서 비(非)독서인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책에도 외모지상주의를

    책 겉핥기의 방법을 말하면서 이런 독서의 형태도 한번 생각해보자. 표지만으로 책을 판단하는, 외모지상주의로 책을 재단하는 방법 말이다. 우리는 단단하고 네모난 책의 물질성 그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 시리즈는 헌책방을 무대로 펼쳐지는 소설이다. 특이하게도 이 헌책방에서 일하는 주인공 고우라 다이스케는 책을 읽지 못한다. 글씨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책 공포증을 가진 사내다. 그러나 이 책 공포증이야말로 주인공이 책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사람의 손을 탄 물건으로서의 책 한 권을 즐기는 것이다.

    오래된 책에는 그 나름의 역사와 이야기가 존재하며, 그것이 책의 본래적 의미와 더불어 책을 더 책답게 만든다. 오래된 책들이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될 때, 모르는 책(UB)이거나 잊은 책(FB)이었던 것들이, 훑어본 책(SB)이나 들은 책(HB)이 된다. 그러면서 구겨지고 마모된 낱낱의 종이들, 너덜너덜해진 표지와 흐릿해진 제목들 하나하나가 모두 책의 가치 있는 얼굴을 만드는 요소가 된다. 그래서 이 시리즈 안에서 교도소의 관용 도서였던 쿠즈민의 ‘논리학 입문’은 범죄자 부부의 사랑을 확인하는 러브레터가 된다. 또한 선과 악의 상반되는 두 가지 버전의 결말을 가진 사회비판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의 번역본들은 소녀들의 복잡 미묘한 비밀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오로지 책의 낡은 얼굴만을 보고 숨은 이 모든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 그것은 주인공 고우라가 책을 그 표지만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다. 매달 한두 권의 책을 ‘독서’라는 제목으로 전달하는 필자의 글에서, 여러분은 어느 정도의 ‘비(非)독서’를 느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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