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 액수는 몰라도 돼?

LG그룹도 LG화학 등 8개 계열사가 나눠서 미르재단 48억 원, K스포츠재단 30억 원을 출연했다. LS그룹은 4억9000만 원을 6개사가 수천만 원씩 쪼개 K스포츠재단에 출연했다. LG그룹과 LS그룹은 “규모가 큰 기부금은 계열사별로 매출 규모와 경영 상태를 종합해 배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출연 절차가 불투명한 것처럼 회계 처리 역시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53개 기업 중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 있지 않은 LS니꼬동제련과 부영을 제외한 51개 기업의 출연 시점 사업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별도로 공시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부분 해당 보고서 재무제표 주석 한 귀퉁이에 있는 ‘기부금’ 항목 총액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포함돼 있다고 해명했다.
그나마 재무제표 주석에 기부금 항목조차 없는 기업도 한화(15억 원 출연), GS건설(7억8000만 원), CJ(5억 원) 등 9곳이나 됐다. LG그룹은 LG화학(48억9000만 원) 등 4개사나 됐다. 회계 처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에스원 등 일부 기업은 “분기 보고서나 반기 보고서에는 기타비용으로 잡았다가 사업 보고서에는 기부금으로 처리한다”고 해명하는가 하면, LS그룹처럼 “기부금 항목이 미미한 경우 기타항목으로 잡고, 지주사에서 기부금 항목으로 일괄처리한다”는 곳도 있었다. 한화와 LG그룹은 “상법에 기부금을 둬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회사 원칙에 따라 회계 처리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0억 이상 이사회 의결키로
경제개혁연대는 미르·K스포츠재단 사태와 관련해 “기업의 기부활동은 사회적 책임이라는 취지에 맞게 규모와 용도를 결정하고 집행해야 하며, 주주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해 적정성을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도 늦었지만 기부금 운영 투명성을 강화하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1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나 후원금, 출연금 등을 낼 때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또한 이사회에서 결정한 모든 후원금과 사회공헌기금에 대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공시한다는 방침이다. 다른 삼성 계열사들도 뒤따를 전망이다.
SK그룹도 10억 원이 넘는 후원금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집행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하기로 정관을 개정했다. LG그룹도 “기부금과 출연금 등에 대해 투명성과 합리성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며 “국내외 사례를 참고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부금 투명성과 관련해 강원랜드는 모범사례라 할 수 있다. 강원랜드는 자사 홈페이지 ‘경영공시’ 코너에 ‘연간 출연 및 증여’에 대한 연도별 상세 내용이 국민이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돼 있다. 몇 천만 원 이상 기부·출연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기업들이 자사 홈페이지에 이 정도 정보공개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영과 회계투명성은 한층 높아질 수 있다.
입력 2017-04-06 16:2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