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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나라당 김덕룡 의원

“이회창 대세론에 적신호 켜졌다”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이회창 대세론에 적신호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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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총재 경선에서 21%의 지지를 받은 한나라당의 ‘2인자’ 김덕룡(金德龍) 의원. 그는 현재 아무런 보직도 없는 평당원이다. 대권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여야 가상대결에서는 아예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고 있다. 그런 김의원이 대학 강단을 통해서 이따금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하고 있다. 정가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정·부통령제 개헌론’이 대표적인 예다. 이른바 ‘이회창(李會昌) 대세론’이 한나라당 내에 널리 퍼지고 있는 시점에 ‘비주류의 수장’ 격으로 볼 수 있는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3월 11일 오전 9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청계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시가 서초구 내곡동 그린벨트 지역에 화장장과 납골당을 조성할 계획이라는 기사가 신문에 실렸기 때문이다. 9시10분쯤 등산복 차림으로 도착한 김의원은 서초구청 관계자들과 악수를 나눈 뒤 서명에 동참했다. 김의원의 지역구인 이곳에선 최근 이 문제말고도 상문고 사태, 삼풍아파트 재건축 등 복잡한 민원이 잇따라 발생했다.

“우리 지역이라서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입지조건으로 봐도 서초구는 적합하지 않아요. 안기부(현 국정원)가 들어오고 군부대가 이전하는 것까지는 참았습니다. 장애인 학교가 들어오려고 했을 때도 주민들이 반대했는데 나는 열심히 설득했어요. 하지만 화장장은 경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김의원의 산행은 속보가 특징이다. 웬만한 체력이 아니면 따라붙기 힘들 정도다. 수행비서에 따르면 산악인 허영호씨도 김의원과 함께 산을 타다가 ‘천천히 좀 가죠’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빠른 걸음이지만, 곁에 서도 거친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수건을 꺼내 땀을 닦을 뿐이다.

―‘민주산악회’ 시절부터 산에 다니셨죠.

“그렇죠. 그 전엔 ‘어차피 내려올 산에 뭐 하러 올라가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민주산악회 만들고 전두환 정권과 싸우면서 산과 친해졌습니다. 1년에 한번씩 지리산 종주하고, 1월1일에 태백산을 오릅니다. 산에 가보면 음지와 양지가 있잖아요. 보시다시피 산 밑에는 눈이 다 녹았지만, 여기는 아직도 빙판이잖아요.”

―정치적으로 보면 김의원은 음지에서 양지가 됐다가 다시 음지가 된 셈이겠네요.

“살다보면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되는 거잖아요. 그게 자연의 순리라고 봐요. 그런데 한번도 음지를 겪지 않고 양지에서만 살려고 처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뭔가 ‘뼈’가 있는 말 같아서 다시 질문을 던지려 했지만, 그는 벌써 저만큼 앞에서 등산객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함께 산을 오르던 일행 중엔 벌써 지친 사람도 보인다. 이들은 김의원이 살아오면서 터울없이 만난 친구들이다. 멀게는 고향친구에서부터 가깝게는 6·3사태와 상도동 비서를 거치면서 정치적으로 맺어진 인연까지 있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이들은 휴일마다 청계산에 오른다. 그들은 김의원을 ‘대장’이라 부른다.

김의원은 지난 1월31일 미국 포틀랜드대학에서 뜻깊은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포틀랜드대학은 ‘공공활동에 참여하고 진실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해왔는데, 김의원이 여섯 번째였다. 지금껏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콜린 파월 미 국무부 장관 등이, 한국에서는 지난 96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 학위를 받았다. 평소 김의원의 해외일정을 수행하고 있는 양창영(楊昶榮) 호서대 교수는 “현지 신문에는 크게 보도됐는데,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산을 내려가면서 김의원의 오랜 친구들에게 김의원의 향후 행보에 대한 질문을 두서없이 던졌다. 그들의 대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김의원이 아직까지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것이고, 둘째 선택의 시점이 임박했다는 점이다. 한때 ‘DR계보’로 15대 총선에 출마한 적이 있는 박종철(朴鍾哲) 경희대 교수는 “주변에서는 다양한 의견을 내고 있지만, 김의원은 자기 스타일을 쉽게 바꾸지 않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DJ정부는 55점

3월13일 오전 10시. 김의원의 여의도 사무실을 찾았다. 97년 10월까지 이 사무실은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있었다. 당시 김의원은 신한국당 대통령후보를 뽑는 전당대회에 출마했다. 내심 2위까지 바라보던 김의원은 4위에 머물렀고 선거캠프로 쓰던 사무실은 여의도로 옮겨왔다. 그 사이 두 차례의 총재 경선이 있었지만, 김의원은 이회창 총재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채 ‘비주류’의 길을 걸어왔다.

―국민의 정부가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에서 두 차례 정무장관을 지내신 분으로서 김대중 정부의 실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주신다면?

“경제를 잘 하겠다고 얘기했는데 100만 실업자가 생겼고 경제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잖습니까. 한마디로 낙제점이에요. 4대 개혁은 사실상 말로만 끝났고, 공적자금을 100조 원 이상 투입하고도 경제가 엉망이 돼버렸어요. 정치 개혁은 아예 손도 못댔고…. 한 가지 평가해주고 싶은 것은 그래도 남북관계를 진척시켰다는 점이겠죠. 너무 점수를 인색하게 주면 안되겠고 한 55점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일부 언론에 김대중 정부가 김영삼 정부를 닮아가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런 평가에 동의하십니까.

“아마 잘못된 점을 닮아간다는 지적이겠죠. 개혁의 혼선이라든가, 도덕성의 상실, 인사의 난맥상 등이 비슷하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두 대통령이 지도자로서 성격이 다르고 입지가 다른 데도 결과적으로 닮아가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역사가 흐르고 나면 평가도 달라질 겁니다.”

김의원은 지난해 11월 군산대 초청 특강에서 김대중 정부의 ‘수(數)의 정치’를 비판했다. 그는 당시 “공동정권이라는 이름 아래 덜미를 잡고 있는 자민련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역사와 국민을 상대로 개혁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金鍾必) 자민련 명예총재는 ‘DJP공조’를 선언했고, 최근 민국당까지 끌어들여 원내 과반수를 확보했다.

―김의원의 희망과는 반대로 ‘DJP공조’가 복원됐습니다. 현 시점의 ‘DJP공조’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연대를 하려면 서로 정책이나 색깔이 비슷해야 되는데 민주당과 자민련은 전혀 다르잖아요. 이건 두 정파의 권력 나눠먹기고 야합입니다. 정치를 순리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숫자놀음을 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야당과 자꾸 충돌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한나라당에서는 일부 의원의 탈당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 지도부는 정계개편 음모 규탄대회를 열었고, ‘탈당리스트’에 오른 의원은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낮다고 봅니다. 이건 정계개편을 위한 음모가 아니고 야합이에요. 지금 한나라당은 그 실체를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있어요. 당 대변인이 나서서 ‘경기도에 두 사람, 강원도에 한 사람이 의심스럽다. 15명이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소속의원들에 대한 모독이고 명예훼손입니다. 내가 판단하기로 혹시 내부 단결을 위한 당내용 발언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어요.”

―과거에 보면 탈당하는 의원들은 하루 전까지도 부정하다가 다음날 기자회견을 갖곤 했잖아요. 한나라당 지도부도 “공개할 수 없지만, 여권에서 집요하게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발언을 흘리고 있습니다.

“여당에서야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탈당할 것으로 거론되고 있는 어느 의원의 경우 내가 알기로 전혀 사실이 아니에요. 그분은 누구보다도 야당성이 강하고 지역 사정을 봐도 탈당할 수 없는 의원인데 당에서 자꾸 의심하고 있어요. 그건 누워서 침뱉기고 동지간에 신뢰를 깨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가 남이 다 파먹고 난 김칫독에 빠지겠다고….”

―현재의 여당을 남이 다 파먹고 난 김칫독이라고 보시는 겁니까.

“국민들이 무조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 하면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죠. 김대중 정부 하에서 반사이익을 취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하면, ‘적군’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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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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