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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다시 둘러본 권양숙 여사 고향마을

“공산당 얘긴 그만하고 청와대 사진이나 보며 놀다 가소”

  • 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3년 만에 다시 둘러본 권양숙 여사 고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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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 여사 부친 묘 앞에 설치된 컨테이너 초소
  • “남의 조상 묘 잘 지켜주더니 경찰청장 됐어”
  • “장인은 죽고 없는데 사위한테 사과 들은들 부질없고…”
  • “권오석한테 학살당하긴 했지만, 그걸 정치에 이용하는 건 싫다”
3년 만에 다시 둘러본 권양숙 여사 고향마을

경남 마산 고성터널 부근에 있는 권양숙 여사 부친 권오석씨의 묘.

경남 마산에서 통영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고성터널이 나온다. 이 터널 100m 앞 우측 언덕에 노무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勸五晳)씨의 묘가 있다. 그 아래에 6평 남짓해 보이는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그 안에 전화선, 책상, 의자 등이 정리돼 있는 것으로 봐서 누군가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알아보니, 이 컨테이너 박스는 인근 진동지구대에서 마산중부경찰서 경비교통과의 지휘를 받아 관리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그것이 권양숙 여사의 부친 묘소를 지키는 경비 초소라고 했다. 묘지 입구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허춘식씨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씩 1개 중대가 달려와서 지켜요. 그땐 저희 음식점을 사령부로 사용합니다. (음식점에서) 청와대로 바로 걸리는 전화선을 설치해놓았어요. (전화선을) 꽂아서 바로 썼어요. (의경들이) 한동안 출동했는데, 요즘은 안 오데요.”

‘비전향 좌익세력’으로 옥사

아무리 대통령 장인의 묘소라지만 경찰 중대병력이 출동해서 지킬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이 묘소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노 대통령이 당선 직후 권 여사와 함께 참배한 이후다. 2003년 1월25일의 일이다. 사위가 장인의 묘소를 찾는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왜 세상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을까.

그것은 권오석씨의 전력 때문이다. 그는 6·25전쟁 때 창원군 진전면에서 치안대가 민간인 9명을 학살한 사건과 관련해 종전 후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당시 치안대는 인민군 점령 후 토착 좌익세력이 결성한 조직으로, 공산군 점령지구 내 후방 보급대이자 반동분자 숙청대였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치안대 사건 연루자는 60여 명에 달한다. 진전면의 노인들은 권씨는 단순히 치안대 연루자가 아니라 핵심 간부 중 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권씨는 치안대 간부로 활동할 당시 29세였다. 대검찰청 공안부가 발간한 ‘좌익사건 실록’(1973)에는 권씨가 공산군 점령지구 내에서 반동분자로 지명된 자를 숙청하기 위해 만든 반동조사위원회 부위원장 겸 조사원으로 활약했다고 적혀 있다. 종전 후에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 제3조 제1항, 4조 5항, 국가보안법 제1조, 제3조 위반 및 살인죄, 살인예비죄 등으로 체포됐다.

그는 ‘비전향 좌익세력’으로 분류되어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권 여사가 열 살이 되던 1956년 폐결핵 등 질병으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5년 동안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1961년 3월에 재수감돼 1971년 마산교도소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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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영 신동아 객원기자 donga45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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