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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⑧

“이렇게 오래되고 느린 나라에 무얼 배우러 왔어요?”

프랑스 사회의 무능과 비효율을 보다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이렇게 오래되고 느린 나라에 무얼 배우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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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66 속 썩이는 인터넷 연결

파리에 도착해 프랑스 친구 주느비에브가 빌려준 단칸 아파트에 짐을 풀었다. 건물 안마당에 위치한 작은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스튜디오의 천장 높이는 서울의 아파트보다 훨씬 높다. 그래서 한구석을 2층 공간으로 만들어 거기에 ‘메자닌’이라고 부르는 침실을 만들어놓았다. 작은 공간에 화장실, 욕실, 주방, 책상, 벽장, 소파 등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100년이 넘은 건물이어서 출입구부터 운치가 있었다. 텔레비전, 전화,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서울에서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동네에 있는 오랑주(Orange) 통신회사 지점에 가서 문의했더니 해결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그대로 해보아도 연결되지 않았다. 이틀 후에 다시 통신사 지점에 갔다. 지난번에 있었던 점원은 어디로 가고 다른 점원이 와 있었다. 사정을 말하니까 지난번에 가르쳐준 대로 했으면 되어야 하는데 연결이 안 된다면 그건 컴퓨터의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서울의 컴퓨터 회사에 국제전화를 걸어 물어보니까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다시 통신사 직원에게 가니까 그러면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큰 지점으로 가보라고 한다. 거기에는 유능한 기술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곳으로 갔더니 그 기술자가 휴가여서 이틀 후에 돌아온다고 한다. 이틀 후에 다시 가니까 기술자가 있었다.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터넷을 연결하는 라이브 박스(Live Box)와 내 컴퓨터를 함께 가지고 오라고 했다. 다음 날 두 가지 장비를 다 가지고 갔더니 간단한 호환장치 조정으로 내 컴퓨터와 인터넷을 연결시켰다. 그러고 나서는 비용을 19유로나 내라고 한다. 거의 열흘 만에 인터넷을 연결해주고는 비용까지 받는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게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인데. 지난해 프랑스를 떠나 서울로 이사해서 지금 사는 아파트에 인터넷을 연결하기 위해 통신사에 전화를 했더니 당일로 와서 연결해놓고 간 일이 생각났다.

풍경 #67 버스에서의 도중하차



어느 날 오후 나시옹 광장 부근을 산책하다가 20구 구청 앞에서 69번 버스를 탔다. 그곳이 종점이어서 유리창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버스가 떠나길 기다렸다. 몇 분 후 버스가 출발했다. 유리창 밖으로는 파리의 시내 풍경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다시 와보는 파리를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했다. 버스는 마레 지역을 지나 센 강을 건넜다. 창밖으로 내다보는 센 강변에는 자유롭게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센 강 우안에서 좌안으로 넘어선 버스가 생제르맹데프레 대로로 들어섰다.

그런데 버스는 멈추어 서서 더는 가지 않는다. 운전사가 자기 자리에서 나와 모든 승객은 내려 다음 번 오는 버스를 이용하라고 말한다. 탈 때는 아무 말 없다가 도중에 충분한 설명도 없이 내려서 뒤차를 타라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이 버스는 더 이상 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분명한 이유를 대지 못하고 동어 반복을 한다. 파리의 지하철과 버스를 비롯한 공공운송수단은 RATP라고 하는 공공서비스 회사에서 운영한다. 서울에 비교하면 파리 지하철공사 직원들은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을 잡아내는 데는 열심인지 몰라도 보통 승객들을 대하는 태도는 무관심하고 불친절하다. 지하철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가르쳐주는 정보가 역마다 다른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직원들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풍경 #68 콩포라마 가구점에서

“이렇게 오래되고 느린 나라에 무얼 배우러 왔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 ‘다른나라에서’포스터가 파리 시내 가판대에 붙어있다.

스튜디오에 있는 의자 등받이가 불편해서 센 강변 퐁네프 다리 앞에 있는 콩포라마(Conforama)라는 가구전문점에 갔다. 저렴한 가격의 다양한 가구가 일층과 이층의 넓은 매장에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들어온 김에 소파, 침대, 장식장, 책상, 식탁, 의자 등 다양한 가구를 구경했다. 그러고 나서 전시장 한 쪽 구석에 있는 접이식 간이의자 두 개를 샀다. 좁은 스튜디오 공간에 큰 의자를 들여놓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의자 두 개를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손님이 많은데 여섯 개의 계산대 가운데 두 개만 열려 있었다. 직원의 얼굴은 피곤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계산대에 거의 도착했다. 내 앞 사람이 직원에게 뭐라고 항의했다. 진열대에서 가지고 온 물건에 붙여놓은 가격과 직원이 말하는 가격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직원이 자신의 실수라고 말했다. 자기가 하도 정신이 없어서 그만 잘못 처리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온 의자의 가격도 전시장의 가격과 계산대의 가격이 달랐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그대로 낼 수는 없었다. 계산대의 직원은 바코드를 통해 컴퓨터에 입력된 가격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나도 그대로 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계산대의 직원은 매장의 관리인을 불렀다. 관리인은 내가 산 의자가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가서 가격을 확인하고 돌아와서는 내 말이 맞다고 확인해주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2층 사무실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도 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컴퓨터에 입력된 가격을 내고 빨리 처리하고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메시지 같았다. 나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움직이는 업체의 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관리인에게 그러면 2층 사무실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까짓 1유로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하면서 자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준다. 그렇게까지 나오자 나는 어쩔 수 없이 사무실로 가지 않고 물건을 사서 나왔다.

나중에 프랑스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콩포라마 가구점이 어려운 상태여서 직원 수를 줄이는 과정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매장 관리인이 나를 데리고 중앙행정 사무실로 가면 실수가 드러나고 그것이 자신의 업무 충실도 평가에 반영될까 우려해 그냥 자기 주머니에서 1유로를 꺼내서 준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프랑스 사회의 무능과 비효율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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