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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갑 교수가 말하는 ‘현대중국의 제국몽’

“중국은 ‘제국성 국민국가’… 자비로운 제국은 없다”

  • | 이문기 미래전략연구원 원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전인갑 교수가 말하는 ‘현대중국의 제국몽’

  • ● 中의 방식으로 ‘세계 질서 재구성하겠다’ 선언
    ● ‘제국으로서의 복원력’ 지닌 중화제국
    ● 전통적 ‘천하 질서’는 중화가 정점인 위계적 국제 질서
    ● “중국적 가치의 자장(磁場) 속으로 들어오라”
    ● 세력 전이 이뤄지면 문명의 표준·상식 바뀐다.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중국 역사는 중화제국 흥망사다. 중국은 오랫동안 제국이었다. 중국에 존재한 제국을 통칭해 중화제국이라고 일컬어왔다. 청(淸)이 몰락하면서 해체된 중화제국이 중국몽(中國夢)과 함께 되돌아온다. 지역 질서의 주도자를 넘어 세계 질서의 ‘변경자’가 되고자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의 꿈은 반드시 중국의 길(中國道路)을 걸으며, 중국의 정신(中國精神)을 선양하고, 중국의 힘(中國力量)을 결집해 실현한다”고 밝힌다. 서구가 창안한 글로벌 표준(Global Standard)이 아닌 중국적 표준(Chinese Standard)으로 중국몽을 이룬다는 것이다.


부활하는 중화제국

중국이 ‘부강의 부상’ 즉 ‘강한 중국’을 넘어 ‘문명의 부상’을 선언했다. 세계 질서를 주재하겠다는 ‘제국몽’이 꿈틀거린다. 

중화제국의 부활은 한국에 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로 내몰리면 어떤 길을 걸어야 하나. 안보를 지켜줬으며 경제성장의 뒷배 노릇을 한 미국과의 가치 동맹을 견고하게 지속할 것인가,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면서 기존 관계를 조정할 것인가. 

전인갑(55)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현대중국의 제국몽’ 서문에 이렇게 썼다. 

“자비로운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비로운 제국이라는 표현은 어찌 보면 형용모순이다. 어떤 국가가 자비롭다면 원천적으로 제국으로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자비’로운 제국은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폭압성과 함께 제국의 본질적 속성인 관용성이 ‘자비’로 분식(粉飾)되기 때문이다. 제국은 질서의 창안자이고 주재자다. 압도적 물리력과 더불어 이념과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힘을 바탕으로 게임의 법칙을 바꿀 수 있는 질서의 변경자이기도 하다. 제국 주위의 국가들은 제국이 창안하고 주재하는 질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중립적이기도 매우 어렵다.” 

전 교수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중국 현대사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중국의 장기 안정성과 격동성을 유기적으로 파악해 근·현대 중국 사회를 역사적 연속성 속에서 심층적으로 이해하려는 연구에 천착했다. 1월 30일 서강대(서울 마포구)에서 ‘현대중국의 제국몽’을 주제로 그와 대화했다.


‘영원한 제국’ 꿈꿔온 중국인

‘중화의 재보편화 100년의 실험’이란 부제가 붙은 ‘현대중국의 제국몽’은 역사학계뿐 아니라 사회과학자들도 주목한 역작입니다. 중국의 제국화, 즉 중국의 ‘제국 만들기’가 본격화했다는 가설을 이 책을 통해 제기했습니다. 

“중화제국은 독특한 역사적 경험을 지녔습니다. 하나의 제국이 붕괴하면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합니다. 제국으로서의 복원력을 지닌 것이죠. 중국의 전통과 근대를 연장선상에서 파악하는 연구에 집중하면서 문명의 장기 지속성이 중국사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했습니다. 중국인이 가진 인식 중 고대부터 최근까지 변하지 않은 게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영원한 제국을 꿈꿔왔다고 할까요. 특히 지식·권력 엘리트 사이에서 ‘강한 중국’ ‘영원한 제국’을 만들어내려는 지향이 강합니다.” 

그는 ‘현대중국의 제국몽’에서 21세기 중국이 중화제국의 유산을 계승한 새로운 제국으로 전환 중이라는 가설을 기초로 제국의 유산이 근대적 변용과 재구성을 거쳐 제국화의 자산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가 강조하는 ‘중화의 재보편화’는 중국이 자국의 문화 가치와 개념으로 세계를 사유해 현재와 미래의 담론 패권을 확립한 후 궁극적으로는 인류가 공유하는 새로운 보편 가치와 질서를 만든다는 뜻이다. 

중화제국의 ‘복원력’은 중국만의 특징이라고 봐야 할까요. 서양 제국의 흥망사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중국이 가진 복원력 덕분에 통일 제국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고 봅니다. 세계사적으로는 통일왕조가 망하면 해체돼 여러 나라로 쪼개지는 게 일반적이에요. 중국 역사는 분열로 가는 방식이 아니라 통일로 회귀하는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복원력이 중국 문화와 정치체제의 특징이 아닌가 싶어요.” 

중화제국이 복원력을 지니지 못했다면 중국도 유럽처럼 30개 가까운 나라로 분열했겠습니다. 

“춘추전국시대(BC 770~221) 제자백가의 위대한 발견 중 하나가 통일론입니다. 천하는 하나의 보편 가치 속에서 통합돼야 한다는 게 춘추전국시대 이래 중국인의 인식입니다. 통일론의 골자는 천하가 하나가 돼야 안정된다는 겁니다. 중국인의 사유에서 국가는 구성원에게 문화적 동질성을 확보해줘야 합니다. 문화를 통해 구성원을 통합하는 게 국가의 본질이고요. 또한 국가의 역할은 도덕공동체와 문화공동체를 만들어내는 겁니다. 서구의 국가론과는 결이 완전히 다릅니다. 

근대 이후에도 중화제국의 복원력이 작동합니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라는 새로운 보편 질서를 맞이하면서 서구의 개념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계속됐으나 저변에서는 중국의 문화를 재구성하려는 흐름이 굉장히 강하게 지속됐습니다. 현대중국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근·현대사와 전통 시대를 나누지 않고 연장선상에서 들여다봐야 합니다.”


제국, 해체에서 복원으로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5년 2월 21일 중국 웨이하이(威海) 앞바다에서 침몰한 청나라 군함. 청은 1912년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청일전쟁이 한창이던 1895년 2월 21일 중국 웨이하이(威海) 앞바다에서 침몰한 청나라 군함. 청은 1912년 공식적으로 멸망했다.

동아시아에서 질서의 창안자이자 주재자였으며 변경자이던 중화제국은 20세기 벽두에 붕괴했다. 중화제국의 연속을 가능케 한 보편 가치와 보편 문화가 형해화(形骸化)하면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가 열렸다. 

중국은 아편전쟁(1차:1839~1842, 2차:1856~1860)을 거치면서 서양이라는 ‘충격’을 경험한 후 전통을 버리고 서구적 근대를 수용합니다. 서구의 근대를 수용하는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마오쩌둥(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설됐다는 인식이 학계에서 그간 지배적이었습니다. 전통과 어떻게 단절하고 근대를 수용했느냐가 최근 100년의 중국사를 들여다보는 틀이었고요. 

“질문에서 언급한 틀은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까지의 인식이었으나 이와 같은 서구 중심 근대화론의 관점에서 중국을 들여다보면 최근의 현상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근대유럽이 만들어낸 사유방식, 인식체계, 개념을 통해 세계와 중국의 미래, 중국인의 정체성을 사유하던 중국인들이 이제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개념과 사유방식, 인식체계를 통해 중국과 세계를 사유하고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의 방식으로 세계 질서를 재구성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89 ~1992년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역사는 종언했다”고 선언했다. 서구의 자유민주주의가 인류 사회의 궁극적 체제로서 정착하는 최후의 이데올로기라고 단정한 것이다. 경제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중국 또한 서구 모델로 수렴되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최근엔 중국이 정체(停滯)한 이유로 지목되던 전통적 중국 문명이 굴기의 동인으로도 거론됩니다. 중국이라는 사회가 가진 역사의 무게를 간과하고는 오늘날의 중국을 통합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요.”


역사는 종언하지 않았다

중국의 굴기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시작한 개혁·개방의 결과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개혁·개방은 서구식 시장경제 도입과 세계화 흐름에 적극적으로 올라탄 것입니다. 중국이 세계화 과정에 편입해 부상한 것과 중국 전통이 계승·복원되는 것은 충돌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주류경제학의 시각으로만 보면 중국의 모습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국가와 시장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를 두고 서구의 표준(normal)은 양자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중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시장과 국가가 왜 독립적이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춘추전국시대 이후 중국의 시장경제는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합니다. 시장의 존재를 매우 중시했으나 시장이 국가로부터 독립해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중국의 시장은 반드시 국가 통제 아래에 있었습니다. 시장에서 이문이 많이 나도록 관리했으나 국가권력에 의해 시장이 통제돼야 한다고 여긴 겁니다. 칼 폴라니는 유럽에서도 시장이 독립돼 있지 않았다고 논증합니다. 중국이 전형적으로 그랬어요.” 

칼 폴라니(1886~1964)는 ‘거대한 전환’(1944)에서 “자유방임 시장은 삶의 필요에 따라 자연스레 생겨난 게 아니라 국가와 자본이 결탁해 만든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밝히면서 공산주의 사회가 유토피아이듯 자기조정시장(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균형을 찾는 자유시장)도 유토피아일 뿐이라고 했다.


‘중국의 길’ 걸어온 中國

중국이 세계화 물결에 올라타 서구의 규범에 편입한 것 또한 경제·사회적 전통이 재구성되는 과정이라고 보는 건가요. 

“중국은 ‘중국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역사와 경험에서 나온 길과 서구의 길이 합류함으로써 중국에 새로운 경험이 됐고요. 서구의 길이 중국의 길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중화 문화의 ‘계승’이 아니라 ‘부정’이 강조된 것 아닙니까. 

“문화대혁명은 공산주의 이념이라는 가치를 통해 사회를 통합하려는 시도가 극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중국 전통의 문화주의적 정치문화의 관례에서 벗어난 게 아닙니다. 유교적 보편 가치를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이즘이라는 또 다른 보편 가치로 부정하려는 거대한 문화적 실험이었다고 봐야 해요. 마오쩌둥이 봉건적인 유산을 없애려고 했고, 유학을 대체하는 이념으로 마오이즘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제시했으나 의식의 기본 틀은 중국 전통의 문화주의적 접근 방식과 동일했어요.” 

쑨원(孫文)→마오쩌둥→덩샤오핑으로 이어지는 중국의 근대화는 보편 가치 아래로 사회를 통합해 제국을 복원·계승하는 과정이었다? 

“그게 전체 다는 아니지만 그 같은 측면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중국 역사에 단절성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단절성이 존재하나 문화주의적 국가론과 관련해 연속성이 상당합니다. 예컨대 쑨원은 삼민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사회를 통합해 문화공동체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삼민주의에는 유교 이념, 서구 이념이 뒤섞여 있고요. 쑨원의 삼민주의는 거칠게 말해 중국 전통과 서구 규범을 융합해 중국인을 이념적으로 지도하려던 시도였습니다. 장제스(蔣介石)는 국가를 그런 방식으로 실제 운영했고요. 삼민주의를 통해 이념적 통합에 나선 것이죠. 도덕공동체, 문화공동체를 만들려는 국가의 시도는 최근 100년간에도 중국에서 지속됐습니다. 삼민주의적 국가통합과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이즘의 인민통합은 메커니즘이 같습니다.”


유가 중심 中華의 자산화

현대중국이 중화제국을 성공적으로 계승했다고 봅니까. 

“그렇다고 봅니다. 우선 영토적 계승에 성공했습니다. 대청제국이 만들어놓은 제국의 판도를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어요. 960만㎢(한반도의 44배)의 영토는 당나라와 한나라 시대보다 훨씬 넓은 것입니다. 중국 역사상 한족 국가로서 가장 넓은 영역을 확보한 게 중화인민공화국이에요.” 

유럽에서 유래한 국민국가(Nation State) 개념이 보편적으로 쓰입니다. 중국도 국민국가라고 해야겠으나 성격은 ‘Nation State’의 본래 의미와는 달라 보입니다. 

“근대는 이른바 ‘열국(列國) 체제’입니다. 열국 체제의 기본 단위가 국민국가고요. 어떻게 보면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중국을 네덜란드나 벨기에 같은 나라와 똑같은 국민국가로 볼지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예요. 국민국가임에는 틀림없으나 제국의 요소를 겸비한 국민국가, 다시 말해 ‘제국성 국민국가’로 봐야 합니다.” 

제국의 조건은 뭡니까. 

“제국은 광활한 영토와 공간의 조직화 능력, 언어 및 종교의 다양성, 문명의 헤게모니 등과 같은 특징을 갖습니다. 중국은 광활한 영토를 가졌습니다. 지배 영역 내 다양성, 이질성이 존재하고요. 제국에는 다양성, 이질성을 하나의 정치 단위 혹은 문명 단위로 묶어줄 보편주의가 요구됩니다. 보편 가치가 있으며 지배 영역의 끄트머리까지 통제하고 관리할 메커니즘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청(淸)이 멸망한 후 지역 질서에 세력 전이(Power Shift)가 일어났다. 서구가 창안한 질서가 중국적 질서를 구축(驅逐)했다. 21세기 중국이 ‘상승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지역 질서에 구조변동이 일어난다. 20세기 벽두의 세력 전이 때 유교적 질서가 민주, 자유 등 서구가 창안한 가치로 변화했다면 ‘상승대국’ 중국은 유가 중심의 중화(中華)를 자산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중화제국의 소프트파워

마틴 자크는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에서 세계의 수도 격인 도시가 베이징이 될 뿐 아니라 국제시장에서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거래하는 세계의 미래를 묘사했습니다. 중국이 인류 보편의 문명적 가치와 이념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21세기 중국의 부상이 단순한 ‘강국의 부상’이 아니라 ‘문명의 부상’이라면,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의 강대국화가 중화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것이라면 중국이 인류 보편의 문명적 가치와 이념을 제시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중국인들이 단기간에 문명의 보편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중국의 지식인과 권력 엘리트가 그것을 준비하고 있으며 만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엘리트는 ‘부강의 부상’은 성취했다고 봅니다. ‘문명의 부상’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문명의 부상이 실현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봐요. 

중국 지식인들이 하는 얘기 중 하나가 현재의 중국은 새삼 르네상스를 맞이했다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 앞서 두 차례의 르네상스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등장입니다. 두 번째는 송대(宋代) 전후 성리학이 형성되는 시기고요. 제자백가가 만들어놓은 지적·학문적 토대가 성리학의 출현으로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이질적 사유체계와 종교, 학문이 르네상스를 일으킨 거죠. 불교가 중국에 들어온 이질적 사유체계 중 하나인데 400~500년에 걸친 불교 수용 과정에서 인도(India)적인 사유 체계가 중국화합니다. 중국의 기존 토대가 외래의 것과 융합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한 것이죠. 신유학(성리학)이 정립되는 과정도 이렇듯 보편 가치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현재를 르네상스 시기로 정의한다면 중국이 보편 가치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해볼 수 있지 앓을까요.” 

단기적으로는 어렵겠으나 우리가 사회화 과정에서 배운 문명의 표준과 상식이 바뀔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얘기입니다.” 

세력 전이는 문명의 표준이 바뀌는 문명사적 전환을 수반한다. 동아시아는 민주 인권 자유 평등 등 근대유럽이 창안한 가치를 ‘보편’으로서 수용했다. 중국이 문명의 부상을 이뤄낸다면 표준과 상식이 또 한 번 바뀔 수 있다. 중국의 권력 엘리트와 지식인은 중화제국의 유산을 어떻게 계승해 현재와 미래의 보편 이념을 제시할지 고민한다.


‘제국몽’에 직면한 한반도

전인갑 교수가 말하는 ‘현대중국의 제국몽’
그는 ‘현대중국의 제국몽’을 통해 ‘서구화’에서 ‘재중화’로 전환하는 거대한 문명사적 실험과 함께 중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복원되고 있다고 분석하면서 미국 주도 질서에서 살아온 한국인들이 거대한 역사적 전환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묻는다. 

중국에서 ‘신조공질서론’ ‘신천하질서론’ ‘천하체계론’ 등이 주류 담론 중 일부로 부상했다. 

“40~50대 중국학자 중심으로 ‘중국의 개념’으로 사고하자는 태도가 일반화하는 것 같습니다. 서구 질서의 대안이 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모호하거나 모색의 단계일 뿐입니다. 유가민주주의, 유가헌정주의 등 유학으로부터 새로운 국가 모델을 만들려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자유주의자들이 역설적으로 천하주의를 소환하기도 합니다. 천하주의가 21세기 새로운 세계 질서의 전범이라고 자유주의자가 말하는 것은 불가의(不可意)한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의 전통적 천하 질서는 중화(中華)를 정점으로 한 위계적 국제 질서다. 대국의 지배와 소국의 자발적 순종을 강요하는 패권의 논리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은 천하 질서가 관용의 질서라고 인식합니다. 신조공체제나 신조공질서론을 얘기하는 이들 또한 조공 질서를 관용과 융합의 질서로 봅니다. 위계성은 있으나 관용적이면서 안정을 제공한다는 것이죠. 중국의 논자들은 현재 문명 담론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문명 담론이 패권 담론과 연동될 때 현실화가 이뤄지는 것인데 패권 담론을 빼버리니 중국이 굉장히 자비롭고 관용적인 질서의 옹호자처럼 묘사됩니다. 문명 담론의 확산을 중국이 추구하는 패권 담론과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제국론’을 내놓고 얘기하면 중국 사람들이 싫어합니다.” 

‘미제국주의’라 할 때의 제국이 떠오르니까요. 

“제국이라는 말이 나오면 패권이 부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덮거나 숨기는 거군요. 

“그럴 개연성이 충분히 있죠.”


왕도와 패도

중국의 문화 전통은 왕도(王道)와 패도(覇道)를 구분한다. 왕도는 이웃을 강압하지 않으나 패도는 주변을 억압한다. 중국은 이웃을 강압하는 미국식 패도가 아닌 도덕과 인의의 왕도(王道)로 국제 질서를 구축하겠다고 천명한다. 

중국의 전통적 제국도 문명적·도덕적 우월성뿐 아니라 경제력·군사력을 통해 유지됐습니다. 21세기 국제정치에서 왕도와 패도를 구분하는 게 가능하기는 합니까. 

“굉장히 날카롭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왕도와 패도를 구분하는 것은 중국문명이 만들어낸 일종의 교의(敎義)입니다. 중국 문명에서 국가는 반드시 왕도를 지향해야 해요. 패도는 결코 안 돼요. 어떤 권력자도 부정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권력을 분식(粉飾)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왕도와 패도의 구분은 권력이 패권화하는 것을 막아주는 강력한 장치 기능을 했습니다. 패도·왕도론은 실제로 작동된 것으로 중국에서 굉장히 중요한 개념입니다.” 

‘제국’이라는 낱말과 ‘왕도’라는 단어가 모순되지 않습니까. 

“모순된 두 가지가 융합해 하나로 작동하는 겁니다. 둘을 분리해 이해하면 중국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어요.”

근대 이전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는 패권(억압)과 포용(관용)의 두 축으로 이뤄졌다. 상승대국 중국이 패권과 포용 중 어느 측면을 도드라지게 나타낼지는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서도 중요하다. 

‘패권의 중국’과 ‘문명의 중국’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억압의 중국’과 ‘관용의 중국’입니다. 두 개의 중국이 동시에 다가오는데 한국 사회는 중국에 대해 분열적 인식을 가졌습니다. 

“두 개의 대(對)중국 인식이 충돌합니다. 분열적 시각이 학계, 지식인 사회, 정치 세력, 민간을 불문하고 나타나요. 부정적 시각에서 중국은 경계의 대상입니다. 역사, 문화, 영토 갈등의 주범이면서 인류의 보편 가치를 무시하는 나라죠. 긍정적 시각은 한국의 미래에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미국만 고려하는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두 개의 인식이 격하게 충돌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 전략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봅니다. 세력 전이가 가져올 지각변동에 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분석과 전망이 필요해요.” 

중국에 대한 한국 사회의 분열된 인식은 한·중관계, 한미관계, 미·중관계, 남북관계와도 연동돼 충돌한다. ‘친중사대’ ‘친미사대’ 같은 격한 표현이 오간다.


‘패권의 중국’ ‘문명의 중국’이 온다

‘패권의 중국’이 아닌 ‘문명의 중국’도 한국에는 위협의 대상 아닐까요. 

“문명의 중국에 빨려 들어갈 것이다? 패권의 회복이 가져올 폭풍은 차치하더라도 문명의 부상이 가져오는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굉장히 민감하고 어려운 얘기입니다. 중국은 앞으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에 중국적 가치의 자장(磁場) 속으로 들어오라고 강조할 겁니다. 한국은 그 같은 요청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고요.” 

보편 가치가 바뀌는 과정에는 혼란이 수반됩니다. 

“기존의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교집합을 만들어나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서구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형태로 근대가 열리면서 동아시아의 상식이 재편됐습니다. 진통이 있었으나 결국엔 양자가 접목했습니다. 전통 가치와 서구 가치가 융합돼 새로운 방식이 만들어진 겁니다. 우리의 삶은 전통적인 것과 다르지만 미국, 유럽과도 다릅니다. ‘문명의 중국’이 현실이 된다면 혼란이 있겠으나 풀어나갈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한국 역사에서 중국을 이해하는 분열적 시각이 심하던 때로는 언제를 꼽을 수 있습니까. 

“문명중국과 패권중국의 이원적 인식은 조선 후기가 가장 강했다고 하겠습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실존하는 권력인 대청제국을 인정하지 않는 대신 실존하지 않는 ‘문명의 중국’을 동경합니다. 현실과 명분의 괴리가 일어난 것이지요. 주목할 부분은 중국과 관련한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이 21세기 한국 사회의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조선 후기 지식인 모두가 이상주의자거나 구름 위에서 산 사람들이 아닙니다. 조선의 미래와 관련해 그 나름의 전략적 사고를 한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매도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돼요.” 

‘마오쩌둥이 중국을 떨쳐 일어나게(站起來·잔치라이) 했고, 덩샤오핑이 부유하게(富起來·푸치라이) 이끌었고, 자신이 중국을 강하게(强起來·창치라이) 만들겠다’는 게 지난해 10월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한 발언의 요지입니다. 시진핑은 또한 중국몽의 실현과 신시대 진입을 선언했습니다. 중국몽 실현과 신시대 선언도 중화제국의 복원과 중화의 보편화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겠군요. 

“정치·군사·경제의 패권, 다시 말해 부강은 자신 있다는 겁니다. 부강의 부상을 넘어 문명의 부상을 추구하겠다는 게 중국몽의 요지입니다. 보편 문명과 패권 질서의 결합을 추구하는 게 신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정치학자들은 패권중국의 시각에서만 중국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으나 문명중국의 부상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신동아 2018년 3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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