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개체의 시대’를 사는 법|문화

經藝不二, 기업·시장·문화의 상생 방정식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經藝不二, 기업·시장·문화의 상생 방정식

4/5
그러나 기업문화는 바깥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속성이 있으므로 일반인들은 기업에 대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정보, 예를 들면 기업주의 신상이나 평판, 생산하는 제품과 시장에서의 평가, 언론보도나 광고 등을 통해 갖게 된 이미지로 기업을 대한다. 가령 우리가 삼성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현대에 대해 느끼는 이미지와 다르며, LG나 SK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지는 매우 주관적인 것이라 실체와는 거리가 있지만 소비자들은 그것을 통해 기업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미지는 대단한 위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기업은 이미지를 좋게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1990년대 초에 거세게 불었던 CI(기업이미지 통합작업) 붐은 그런 맥락에서 비롯됐다. 그렇지만 그것도 소리만 요란했지 알맹이는 없었다. 그저 남 하는 대로 따라하다 보니 그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얼마 전 시카고 모터쇼에서 현대자동차가 신차를 선보였다. 그때 현장에 있던 현대자동차의 한 임원은 신차를 덮고 있던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 옆에 있던 한국 기자에게 “저 베일이 벗겨지면 차 가치의 20%가 공중으로 날아간다”고 했다. 아직 현대차의 브랜드 파워가 약해 제값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성능은 동급의 미국차나 일본차에 뒤떨어지지 않는데 값은 80%에도 미치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미국의 소비자가 현대차에는 감동을 주는 요소가 없다고 판단하기때문일까. 아니면 현대자동차란 회사가 그저 그런 회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 이유가 어디에 있건 분명한 사실은, 소비자들은 기업이 일하는 스타일, 즉 기업의 문화가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 속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만약 ‘예술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만드는 제품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든 제품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면, 시장이야말로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



일본의 종합상사 도멘(東棉) 서울지사장으로 있는 모모세 다다시는 한때 베스트셀러가 됐던 자신의 저서 ‘한국이 죽어도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는 18가지 이유’에서 기업 이미지와 관련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도멘은 일본의 9대 종합상사 가운데 7위를 달리는 회사다. 9대 종합상사라고는 하지만,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이토추(伊藤忠), 마루베니(丸紅) 등 상위권 상사와 도멘과 같은 하위 그룹 사이에는 회사의 규모나 매출액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미쓰비시나 미쓰이는 역사와 전통이라는 이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를테면 ‘조직의 미쓰비시’나 ‘인화의 미쓰이’ 같은 것이다. 그런데 도멘은 섬유 부문에서 출발한 종합상사라는 이미지 외에 별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지 못한데다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다.

그렇다 보니 미쓰비시나 미쓰이의 직원은 거래처에 갈 때 자기 회사의 이미지를 등에 업고 가서 회사의 대표로 행세하지만, 도멘은 도멘 직원의 이미지가 도멘의 이미지가 되기 때문에 도멘 직원 노릇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문화적 부가가치

기업이나 상품의 이미지는, 측정할 길이 없다 보니 전통적인 경제학이나 경영학에선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 소르망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에 있는 나라는 모두 강력한 문화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문화적 이미지는 계량할 수도 없지만 단순한 용어로 쉽게 묘사할 수도 있다. 즉 독일은 고품질과 기술, 프랑스는 패션과 삶의 질, 일본은 정밀성과 섬세한 아름다움, 미국은 탁월한 품질과 서비스, 이탈리아는 우아한 세련미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형화된 이미지가 반드시 실체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위장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확실히 존재하며, 경제의 순환과정과 소비자의 여망에,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결정 과정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예를 들면 한국의 소비자는 프랑스 제품이라는 이유 때문에 더 비싼 값을 지불하고서도 프랑스제 향수를 사려 하고, 프랑스 소비자는 더 비싼 값을 지불해서라도 독일제 승용차를 사려 한다. 프랑스 소비자는 독일차가 프랑스차나 영국차보다 더 견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기엔 문화적 부가가치가 묵시적으로 부과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한국 상품은 현대자동차의 예에서 보듯이 세계의 소비자들로부터 문화적 부가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지 ‘프랑스 소비자’의 한 사람이기도 한 기 소르망의 진단을 계속해서 들어보자.

“한국은 견고한 문화적 이미지와 문화적 시각에서 본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것일까? 본인의 대답은 유감스럽게도 부정적이다. 한국이 세계 시장에 상품을 수출할 수 없다는 게 아니다. 수출은 할 수 있지만 기본 경제가격으로 수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프랑스 소비자가 한국 상품을 사는 것은 값이 싸기 때문이지 한국 제품이어서는 아니다. 만약 한국이 석유 수출국이거나 기타 기초 원자재 생산국이라면 이런 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제조업 국가이기에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문화라는 것이 빵 위에 바르는 잼이 아니라 빵 그 자체라는 트위디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처방은 경제적인 것보다는 문화적인 것이 돼야 할 것 같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문화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겐 자기 나름의 삶의 방식이 있는데 그것을 ‘스타일’이라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그 나름의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족이나 국가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우리는 나름대로 독특한 문화를 가졌고, 그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문화는 개성을 가진 것이고 그 나름의 역사와 풍토에서 자란 것이어서 우열을 논하기 힘들다. 보는 각도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문화에 경쟁력이 있다는 사실조차 부정할 수는 없다. 단기간의 고찰로는 그것을 분간해내기가 쉽지 않으나 역사 속에서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했던 몽골족이나 만주족은 지금 어떻게 됐으며, 고대 이집트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일군 이들의 후예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후예는 또 어떠한가.

4/5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목록 닫기

經藝不二, 기업·시장·문화의 상생 방정식

댓글 창 닫기

2019/09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