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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부모 노릇

  • 글: 김명인

부모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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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노릇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저녁을 준비하느라 바쁜 제 엄마에게 종이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이번 주에 내방 청소한 값-2000원, 가게에 심부름 다녀온 값-1000원, 엄마가 시장 간 사이에 동생 봐준 값-3000원, 쓰레기 내다버린 값-1000원, 아빠 구두 4켤레 닦은 값-4000원, 방과 거실을 청소한 값-2000원, 전부 합쳐 1만3000원.”

그러자 그 아이의 엄마는 기대에 부푼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얼마 후 나와 아이에게 역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넣고 다닌 값-무료 / 네가 아플 때 밤을 새워가며 울면서 간호한 값-무료 / 너를 키우면서 마음 아팠던 값-무료 / 가난한 살림에 네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들을 사준 값-무료 / 너를 하늘만큼 사랑하고 아껴주는 값-무료.”

아이는 엄마의 글을 읽고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죄송해요, 그런데 엄마 이 모든 걸 어떻게 다 갚아요?” 엄마는 아이를 꼬옥 안아 주면서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고 한다. “다 지불되었음.”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다. 아이 어머니의 현명함이 돋보이는 이야기지만 내용인즉 어머니(부모)의 자식 사랑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라는 이야기일 게다. 부모의 자식 사랑이란 것은 일단 생물학적인 근원을 갖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떠나 신화처럼 절대화되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

모든 신화는 은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건국신화는 건국과정의 온갖 갈등과 배신과 살육과 패륜을 은폐하고 있으며 종교신화 역시 그 성립과정의 세속적이고 인간적인 기원을 은폐하고 있다. 이른바 모성의 신화, 여성성의 신화는 여성에 대한 수천년에 걸친 억압과 착취의 실상을 은폐하고 있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부모의 ‘내리사랑’이라는 신화도 그 신화화의 강도로 보아서는 뭔가 대단한 것을 은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근 ‘부모해방운동본부’라는 낯선 이름의 단체가 인터넷상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ojum0’이라는 역시 낯선 이름의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 보았다. 거기엔 이런 내용의 ‘부모해방선언서’가 게시돼 있었다.

“일찍이 동방예의지국 동방의 빛이었던 대한민국 코리아의 지어미 지아비가 21세기에 이르러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부모해방을 선언하노라. 자식을 미끼로 부모의 삶을 유린한 위정자에게 고하노니 그 동안 부모와 자식을 한데 가두어 온 가정을 해체시키고 자식을 국가에 입양시켜 양육하고 정부에 귀속시켜 교육하라. 부모는 만자식의 어버이가 될 것이며 자식은 만부모의 자녀가 될 것이로다. 우리는 모든 물질적 소유를 떠날 것이며 정신적 삶으로 영혼의 양심을 되찾을 것이다. 우리는 의무와 희생으로 짓밟힌 반생명체의 수동적 삶을 자율과 창의의 온전한 생명체의 능동적 삶으로 바꿀 것이다. 이제 세상의 끝에서 갈 길 잃은 인류가 부모해방을 통해 새 길을 찾을 때 이것이 바로 인류의 진화요 역사의 진보요 생명의 도약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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