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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酒黨千里 ⑧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늙고 시든 제주의 상징, ‘전통의 재해석’으로 부활하라!

  • 허시명 여행작가, 전통술 품평가 soolstory@empal.com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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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과 돌이 많은 제주에선 쌀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나마 재배가 가능한 곡식이 좁쌀이다. 그래서 제주의 술은 모두 좁쌀로 빚는다. 제주 사투리만큼이나 이름도 특이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찾아 떠났다.
제주도 명주 오메기술

오메기술을 가마솥에 넣고 고소리로 증류하면 고소리술이 된다. 오른쪽 가마솥 위에 올려진 것이 고소리다.

모처럼 주당들과 함께 제주 여행에 나섰다. 나의 임무는 술을 구하는 것이고, 동행한 주당들은 그 술을 비우면 되는 여행이다. 주당 중 한 명은 다금바리 안주에 홀려 있었다. 다금바리는 등에 갈색 줄무늬가 있는 은빛 물고기다. 회맛은 어떤지 모르지만, 잘 잡히지 않아서 귀한 생선이다.

장맛비가 내리는 서울을 떠나 제주공항에 내려서니 후텁지근한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치 에어컨 실외기 냉각팬 앞에 서 있는 듯했다. 공항을 나와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물항식당. 물항은 물항아리를 일컫는 제주말이다. 제주 말엔 축약어가 많다. 바람 많은 섬인지라, 말도 바람에 쉽게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짧고 강렬한 단어들로 의사 전달의 효율성을 높여왔다. 예컨대 ‘가십시오’는 ‘갑서’라 하고, ‘하십니까’는 ‘하우꽈’라 한다.

물항식당에서 자리물회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제주 소주의 맹주는 한라산(구 한일소주)의 22도 한라산과 21도 한라산 순한소주다. 우선 순한소주를 주문했다. 소주 특유의 쓴맛이 치받지만 뒷맛은 엷다. 물의 기운이 느껴졌다. 생수 ‘삼다수’로 소문난 제주 물의 명성 때문인지 물맛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시원하고 매콤한 자리물회와 소주 두어 잔이 알알하게 혀를 감전시켰다.

식당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술을 찾아 나섰다. 제주도 해안일주도로를 타고 서부 해안의 애월읍에 이르렀다. 애월읍에는 곽지해수욕장이 있다. 두 줄기의 검은 현무암이 거품을 일으키며 바다로 뻗어 있고, 그 사이로 흰 모래밭과 옥빛 바닷물이 담겨 있다. 이곳 명물은 노천 용천수 폭포다. 해수욕을 하고서 샤워할 수 있는 시설인데, 해수욕을 하지 않고 폭포 물줄기만 맞아도 기분이 좋다.

용천수가 나오는 돌담 옆에는 샘물을 기리는 돌비석이 하나 서 있다. 동네 사람들이 ‘과물’ 또는 ‘석경감수(石鏡甘水)’라 부르는 샘물이다. 제주는 구멍이 숭숭 뚫린 화산지형이라 중산간 지역은 물이 귀하고, 바닷물과 만나는 해안에선 용천수가 솟아난다. 섬 가장자리엔 비중이 높은 바닷물의 압력에 의해 거대한 자연 물탱크가 형성되는데, 그 물탱크의 한 자락이 용천수로 솟구치는 것이다. 그래서 제주 여자들은 물허벅을 지고 바닷가로 물을 길러 다녔다. 그 용천수 중에 수량이 풍부하고 차갑기로 소문난 게 바로 곽지해수욕장의 과물이다.

과물 인근 동네인 애월읍과 한림읍은 제주에서도 특히 물맛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한라산에서 흘러내린 하천이 여러 갈래고, 다른 지역보다 해수 침입이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의 양조장은 대부분 이 지역에 모여 있다. 애월읍 하귀리에 제주 막걸리 제조장들이 하나로 합쳐진 제주합동양조장이 있고, 애월읍 상가리에 ‘오름의샘’과 ‘고소리술’을 빚는 우리농산물영농법인, 애월읍 고성리에 녹용주를 빚는 제주사슴영농조합법인이 있다. 한림읍 금능리에는 감귤양조사가 있고, 한림읍 옹포리에는 제주 소주를 대표하는 (주)한라산이 있다. 복분자주를 빚는 한백당이 있는 곳은 한림읍 바로 옆 현경면이다.

서부 해안말고 술을 빚는 곳은 제주 동부의 성읍마을뿐이다. 성읍마을에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빚는 김을정씨 집과 좁쌀막걸리를 빚는 제주민속좁쌀주 제조장이 있다. 성읍마을은 물이 좋아서 술이 있는 게 아니라, 민속마을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다보니 술이 생겨난 동네다.

새로운 도전, 감귤탁주와 감귤와인

그런데 애월읍과 한림읍에 양조장이 모여 있는 것은 물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어 보였다. 제주는 예로부터 술이 센 동네로 알려져 있다. 제주소주는 개성소주, 안동소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다. 섬 지방이라 특유의 술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육지의 술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면 예사롭지 않은 수준이다. 그 밑바탕에 몽고의 영향이 있다. 개성소주와 안동소주의 명성이 높은 것은 고려시대에 몽고군이 그 지역에 많이 주둔했던 결과다. 제주도 마찬가지다. 애월읍 고성리에는 삼별초군의 대몽(對蒙)항쟁 최후 거점이던 항파두리성이 있다. 삼별초군이 진압된 뒤에 제주는 남송과 일본 공략의 전초기지가 됐고 몽고군의 목장이 되면서 100년 가까이 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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