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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2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벨금속공업 이희평 사장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딱, 딱, 따악… 세계시장 평정한 ‘손톱깎이의 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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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장은 그 이후 지금까지 3개의 특허권과 30여 개의 실용신안권, 그리고 100여 개의 의장권을 확보해놓고 있다. 손톱깎이 하나만 잘 만들어 팔아도 ‘세계 최고’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실증해 보인 것이다. 시력교정 수술인 라식 수술이 확산되면 안경점 주인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휴대전화가 대중화되면서 호출기는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고 한들 손톱을 안 깎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으랴.

하지만 아무리 세계 최고를 만드는 회사라고 해도, 한번 구입하면 잃어버리기 전에는 10년이고 20년이고 사용할 수 있는 손톱깎이 하나만 갖고 버티기는 어려울 듯하다. 그래서 이사장이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분야가 이·미용기구다. 벨금속은 세계 최고의 손톱깎이를 만들던 노하우를 살려 이번에는 같은 원리의 발톱깎이를 만들어냈다. ‘사이드 클리퍼(side clipper)’라고 불리는 발톱깎이는 날이 기역자로 꺾여 있어 앉은 자세로 발톱을 깎을 때 편리하다. 한국에서는 많이 쓰이지 않지만 서양인들은 발톱깎이를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여성들이 속눈썹을 올릴 때 쓰는 ‘아이래시 컬러(eyelash curler)’도 만들었고, 네일아트 시장을 겨냥해 다양한 손톱손질기구도 선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벨금속공업의 화두는 ‘손톱 아니면 발톱’이다.

한참 잘 나가던 시절, 이희평 사장이라고 해서 외도를 꿈꾸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한때는 골프채를 만들어보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포기했다. 시장조사를 해보니 도저히 수지가 맞지 않더라는 것. 이사장은 “그때 멋모르고 골프채에 손을 댔다면 크게 말아먹었을 것”이라며 껄껄 웃는다.



그가 ‘쑥스럽게’ 내놓은 장문의 이력서를 읽어보면 두 가지 대목이 눈에 띈다. 하나는 유독 대외활동 경력이 많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배움에 대한 욕심이 무척 크다는 것이다. 명예세무서장, 경찰서 보안지도위원장, 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 고교 총동창회장, 시(市) 개발위원, 전화국 고객 대표위원, 무역상사협의회장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이어지는 직함들은 모두 그가 맡았거나 현재 맡고 있는 것들.

천안 같은 지방 소도시에서 자수성가한 사람 한두 명이 나타나면 여기저기서 손벌리는 게 인지상정이겠지만, 이사장의 경우는 사정이 좀 달라 보였다. 그가 들으면 화를 낼지 모르겠으나, 기자의 눈에 비친 이사장은 여기저기 불려다니면서 돈 내놓는 것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고등학교 동창회장을 맡은 것은 그럴 수 있다 치자. 한 걸음 더 나아가 출신 중학교에 매년 10여 명씩 선발해달라고 해서 쌀가마니를 날라준다는 것을 보면 그의 수많은 대외활동이 그저 ‘자리’만 보고 하는 일은 아닌 것 같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쌀가마니를 날라다준다니 동화책에 나오는 의좋은 형제들 간의 우정도 아니고 원.

‘연장전 골든골’ 같은 쾌거

이사장은 고교 1학년 때 부친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후 지금도 기억하기조차 싫은 고생을 겪었다. 대학 진학은 물론, 가슴에 품은 모든 꿈을 접어야 했다. 만학(晩學)에 뜻을 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의 이력서에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수료’ ‘아주대 경영대학원 졸업’과 같은 경력들이 즐비하다. 뿐만 아니라 공장이 있는 충남 천안의 호서대에서는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사교클럽 성격의 특수대학원이 아니라 꼬박꼬박 수업을 들어야 하는 일반 대학원에서다.

“동생들도 다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아이들도 지금 박사과정에 다니면서 유학중이에요. 나중에 애들이 ‘왜 삼촌들은 다 박사인데 아버지만 박사가 아니냐’고 할까봐….”

세계시장을 누비는 우량기업의 CEO치고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소박한 대답이다. ‘환갑 전에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지금 틈나는 대로 막바지 논문 준비에 땀을 흘리고 있다.

월드컵 4강 신화 이후 ‘축구 4강’을 ‘경제 4강’으로 만들려면 평범한 100가지 제품보다 세계 최고로 기록될 만한 한 가지 제품을 만드는 것이 우리 경제의 생존전략이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의 반도체도 중요하고 오리온 초코파이도 없어서는 안될 제품이다.

그러나 중소기업, 그것도 IT나 벤처가 아닌 전통 제조업 분야에서 이희평 사장이 이뤄낸 ‘손톱깎이 세계 최고’의 신화는 점점 관심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중소기업의 현실에선 연장전 골든골 같은 쾌거임에 틀림없다.

손톱깎이 회사 사장님과 어깨를 걸고 “대~한민국!”을 한번 외쳐보고 싶지 않은가.

신동아 2002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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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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