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폰’과 ‘색즉시공’의 연이은 흥행에 이어 ‘역전에 산다’를 막 마친 2003년 6월, 하지원은 이미 ‘다모’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역전에 산다’를 홍보하는 와중에도 그의 마음속엔 이미 ‘다모’가 들어서 있었다. “정말 좋은 작품이니 기대 많이 해달라”는 말을 홍보 인터뷰에서 몇 차례나 건넸을 만큼. 그때 벌써 액션스쿨을 다니며 ‘조선 여형사’로 변신을 꿈꾸고 있었다.
‘다모’의 채옥은 하지원을 위한 캐릭터였다. 배우가 일단 좋은 작품을 만났다면 그 다음은 본인의 노력이다. 하지원이 이서진과 김민준을 상대로 한 여주인공 자리를 제대로 채울 수 있을는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마치 영화를 방불케 한다’던 드라마의 장대한 스케일에 눌려 배우의 아우라가 제 공간을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기대만큼 우려가 컸고 그만큼 어깨도 무거웠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원은 모두가 탐내던 배역을 차지한 행운을,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소화하기 힘들었을 배역의 운명으로 바꿔놓았다. ‘다모’가 ‘폐인’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내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데는 누구보다 그의 공이 컸다. 하지원은 평소에도 슬픔에 젖은 표정으로 고개를 약간 갸웃한 채 다녔을 만큼 채옥에 푹 빠져 지냈다.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동시에 다른 남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어찌 보면 흔하디 흔한 비련의 여주인공이지만, 하지원의 연기력은 채옥이라는 캐릭터를 빛내주었다. 칼을 차고 무복으로 온몸을 동여매고 머리는 질끈 하나로 묶었어도 채옥의 가녀린 캐릭터는 내면 연기로 충분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 여자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남자는 “아프냐, 나도 아프다…”며 울부짖었다.
그러고 보면 하지원은 운이 참 좋은 배우다. 이번엔 ‘발리러버’였다. ‘다모폐인’을 결성하며 하지원에게 열광하던 이들은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의 여주인공 ‘수정’도 사랑했다. 뿐만 아니라 하지원은 여기에서도 조인성과 소지섭이라는 멋진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다.
극중 수정은 가난하지만 밝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가씨다. 재벌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가슴에 아픔을 지닌 조인성과 가난하지만 자존심 강한 소지섭은 하지원을 상대로 극한의 사랑을 나눈다. 드라마의 스토리 구도가 비슷하다는 식상함도 있지만, 하지원이 ‘한 남자’보다는 ‘두 남자’를 상대로 묘한 하모니를 이뤄내는 개성을 가졌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러나 이는 하지원의 존재감이 단독으로 섰을 때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약점으로 볼 수도 있다.
‘색즉시공’으로 흥행스타 발돋움
하지원은 여느 때보다 밝아보였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안 쑤신 곳이 없다”고 푸념하면서도 표정만은 생기가 넘쳤다. 다리에 뭉친 근육을 주무르느라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면서도 이쯤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조만간 배에 ‘왕(王)’자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하지원을 처음 마주한 것은 그가 한창 운동에 빠져 있을 때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몸 만들기’라 해야 맞을 것이다. 영화 ‘색즉시공’ 촬영을 앞둔 그는 스포츠 에어로빅 선수라는 극중 캐릭터에 맞게 온몸을 근육으로 무장해야 했다. 한눈에도 하지원의 몸매는 여느 여배우와는 확연히 달라보였다. “이미 60% 정도는 성공했다”는 말대로 하지원의 팔과 다리는 흔히 보아온 가녀린 여자 연예인의 그것과는 달랐다. 하늘하늘한 원피스 아래로 ‘단단한’ 근육이 붙은 팔다리가 활기 차게 오가고 있었다. 하지원의 첫 느낌은 그렇듯 강렬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하지원은 ‘색즉시공’을 통해 흥행배우로 올라선다. 과연 하지원의 몸은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가장 어필하는 요소였다. 가늘고 긴 생머리에 풋풋한 미소를 가진 퀸카 ‘은효’는 교내 뭇 남성을 설레게 하는 사회체육학 전공의 여대생. 은효를 연기하는 하지원의 매력은 스크린의 대형 화면을 통해서 오롯이 빛을 발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감춰둔 ‘훔쳐보기’에 대한 욕구를 은효는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학교식당에서 임창정이 그녀의 짧은 치마 속을 훔쳐보는 장면에서 하지원은 오히려 다리를 ‘쫙’ 벌려 보는 이를 움찔하게 만든다. 1980년대 여대생이라면 가서 따귀를 한 대 쳐주었을 법하지만 말이다. “엽기적인 그녀와 좀 비슷하지 않으냐”며 쾌활하게 웃는 그의 솔직발랄한 모습은 은효를 꼭 빼닮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색즉시공’은 하지원에겐 과감한 도전이었다. ‘섹시 코미디’라는 장르는 그간 날이 선 연기만을 해온 하지원에게 섹시함과 웃음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던져줬다. 그러나 ‘과연 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보다는 ‘꼭 하고 싶다’ ‘꼭 해내고야 만다’는 의지가 그를 지배했다.
연기에 대한 욕심도 하지원의 그런 성격에서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이다. ‘상대역이 임창정이라니, 한편 안심이 됐지만 내가 보여줄 것이 그에 못 미친다면 스스로 용납할 수 없으리라.’ 어쨌든 ‘색즉시공’의 성공은 하지원에게 도약의 발판이 됐다.
하지원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다. 그 방식이 당시로선 무척 색다른 것이었다. ‘왁스’라는 신인가수의 노래가 흐르는데, 하지원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더구나 익히 알던 하지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오빠∼ 날 좀 바라봐, 오빠∼ 이제 나를 가져봐!” 무대 위에서 ‘오빠’를 열렬히 외치던 하지원의 몸동작은 웬만한 댄스가수를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원은 자신이 갖고 있던 이미지의 한계를 왁스의 이름으로 단번에 무너뜨렸다. 왁스가 한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활동했기에 자연스레 하지원이 가수로 데뷔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보도들도 이어졌다. 어쨌거나 하지원이라는 배우를 알리는 데 이만큼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도 없었다. 하지원은 이때부터 배우로 평가받기도 전에 이미 스타로 성장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인간성 좋은 배우’
하지원의 스타성은 철저한 이미지 메이킹과 매니지먼트사의 조직적인 관리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원은 특히 팬들과 활발히 교류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데뷔 기념으로 팬들과 MT를 가거나 각종 자선 이벤트를 마련하고 팬들과 같이 뛰는 체육대회를 여는 식이다. 하지원 자신도 팬들과 직접 만나는 일을 즐긴다. 배우로서 쉽지 않는 일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배우들이 대중을 멀리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도, 팬들에게도,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도 성의있게 대하는 하지원을 보면 배우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인 ‘인간미’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는 연기에 대한 욕심도 남다르다. ‘다작배우’라고 불러도 될 만큼 경력에 비해 많은 작품을 해왔다. 1997년 KBS 드라마 ‘학교2’로 데뷔한 후 지난 9년간 출연한 영화만 10편이다. 그것도 모두 주연급이었다. 특히 지난해엔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과 영화 ‘내 사랑 싸가지’ ‘신부수업’을 찍었고, 올해 초엔 영화 ‘키다리 아저씨’가 개봉됐다. 지금은 이명세 감독의 새 영화 ‘형사: 더 듀얼리스트’를 한창 찍고 있다.
1997년 드라마 ‘학교2’로 데뷔한 하지원은 영화 ‘색즉시공’에서 섹시한 여대생 역을 맡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다모’와 ‘발리에서 생긴 일’ 등에서 멋진 두 남자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비련의 여인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하지원은 정통 멜로 연기에서는 조금 부족한 느낌을 준다. 물론 ‘다모’가 멜로와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었으나, ‘일 대 일’로 남성을 상대하는 멜로 영화에서 하지원은 기대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조연여배우 신이가 하지원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것도 이젠 식상하다. 하지원은 스스로도 “관객의 기대치에 못 미친 작품들이 있다”고 말했듯이 이 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하지원의 열정과 도전정신은 언젠가 또 다른 변신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 작품이 없었다면 지금의 하지원도 없었을 것”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그이기에 말이다. 두 번째 인터뷰 자리에서 “‘색즉시공’에서 진재영의 베드신보다 더 진한 베드신을 ‘뒤로’ 미뤄뒀다”고 털어놓은 하지원에게 기자는 계속 기대를 걸고 있다.
김하늘(27)을 떠올릴 때 코믹, 발랄 혹은 능청 같은 이미지는 없었다. 김하늘은 그 이름에서 오로지 청순하고 얌전하며 가련한 느낌을 줬을 뿐이다. 이렇듯 상징적이면서도 큰 변화가 없던 이미지를 깬 것은 그가 코믹 연기에 도전하면서다. “내 캐릭터가 한 가지 느낌이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김하늘은 정체되지 않는 연기자가 되기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한다. 그 작품이 바로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다.
김하늘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여느 배우라면 이미 한번은 해봤을 연기를 처음으로 했다. 술을 먹고 흥청거리는 모습, 김하늘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연기였다.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 그가 ‘고수’하고 ‘간직’해온 이미지는 술 한잔 마시지 못할 것 같은 청순함이었다. 술에 취해 벽을 부여잡고 주정을 해대는 김하늘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그 변신은 즐거웠다. 기분 좋았고 사랑스러웠다.
김하늘은 난생 처음 하게 될 ‘술주정 연기’를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처음으로 코믹 연기를 하면서 전과 다른 촬영장 분위기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내가 연기하는데 웃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내가 결정한 일이다, 해보자, 무안함을 무릅쓰고 한번 해보는 거야.’ 그때 김하늘의 심정이 딱 그랬다고 한다. 평소 술을 먹으면 눈을 깜빡이는 습관을 좀 더 과장해서 표현해봤다. 반응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동갑내기 과외하기’로 코믹 연기에 합격점을 받은 김하늘의 이후 프로필은 코미디 장르가 주를 이루게 된다. 늘 멜로의 여주인공으로 인식돼온 그로선 파격적인 행보였다. 드라마 ‘로망스’ 정도는 이미지 변신 축에도 들지 못했다. 김하늘은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배우로 한 단계 도약하는 디딤돌이 됐다”고 말한다.
‘김하늘표’ 코믹연기는 영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서 ‘영주’ 역을 통해 절정에 이른다. 사기죄로 감옥살이를 하다가 가석방된 영주는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기차를 탔다 우연히 동승한 시골 약사 희철(강동원 분)의 반지를 손에 넣게 된다. 가방을 잃어버린 영주는 희철이 자신의 가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희철의 고향마을로 가방을 찾으러 간다. 뜻밖에 희철의 가족들은 모두 영주를 희철의 약혼자로 오해하고,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영주는 어쩔 수 없이 약혼자 행세를 한다.
다소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으나, 김하늘은 천재적 사기꾼 영주 역을 군더더기 없이 소화해낸다. 김하늘은 영화를 찍는 내내 ‘액션은 좀 더 크게, 의상은 좀 더 촌스럽게’를 표방했다.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진짜 배우가 된 것이다. 데뷔 초 카메라 앞에서 좀 더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던 것은 이제 부끄러운 과거일 뿐이었다. 김하늘은 어느덧 카메라 앞에서 예쁘지 않은 모습도 자연스럽게 내보일 줄 아는 배우로 성장했다.
극중 영주의 캐릭터에 대해 그는 “사랑에 빠지지만 멜로의 주인공처럼 과장되지 않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여기에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수완 역이 다소 주눅 든 캐릭터였다면 영주는 윽박지르는 쪽이어서 연기하기에 편했다”고 덧붙인다. 어느덧 김하늘은 코믹한 캐릭터를 ‘즐기는’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연상의 여교사
그런데도 김하늘의 이미지는 투명하고 청순하다. 이는 남자들이 고교 시절 한번쯤 짝사랑했을 법한 여교사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러나 말없이 그저 신비감에 둘러싸인 선생님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다. 남학생들은 다소 어수룩하면서도 귀엽고 사랑스런 연상의 여교사에게 끌리게 마련이다. MBC 드라마 ‘로망스’에서 김하늘이 연기한 국어교사 ‘김채원’은 그런 선망의 대상으로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김하늘은 우연히 만나 호감을 느낀 고등학생 최관우(김재원 분)가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로 전학 온 뒤 제자와 사랑을 만들어가는 교사로 나온다. 언뜻 봐도 금기시된 소재를 다루고 있어 방영 전부터 교원단체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민감한 분위기에 대한 부담을 안고 시작된 드라마는 김하늘과 김재원의 풋풋한 이미지로 오히려 상승효과를 일궈냈다. ‘사제간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이냐’는 우려는 이들의 풋사과같이 상큼한 로맨스로 인해 논란을 잠재우며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두 사람이 금기의 영역을 넘나들며 나눈 사랑은 순수하기에 용서될 수 있는 것이었다. 김하늘이 뜨거운 라면을 무릎 위에 엎고서도 김재원의 키스를 물리칠 수 없었던 것도 그 순수한 끌림 때문이었다.
김재원도 이 드라마를 통해 스타급 연기자로 올라섰지만 김하늘에게도 의미가 남다른 작품이었다.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하늘은 그 전에는 연출자나 상대 배우를 보고 작품을 결정했지만 ‘로망스’를 선택하면서는 캐릭터를 가장 염두에 뒀다고 한다.
멜로 연기의 대명사 김하늘은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코믹 연기에 도전해 이미지 변신에 대성공했다. 이후 코믹 연기에서 더 두각을 나타냈을 정도다. 하지만 자신은 멜로 연기에 더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최근 멜로 복귀작 ‘유리화’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도전할 것이다. 도전이 있어야 성공도 있기에 .
스크린이 아닌 작은 브라운관에서조차 김하늘이 보여준 투명한 미소는 그를 어느 때보다 돋보이게 했다. 당시 김하늘은 ‘디지털 퍼머’라는 헤어스타일을 유행시켰다. 자연스럽게 웨이브를 준 머리는 긴 생머리보다 여성미를 더욱 강조했다. 다소 각진 턱도 애써 커버하지 않았고 아이라인으로 눈매를 강조하지도 않았지만 훨씬 여성적이었다.
김하늘은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차림과 화장법을 알고 있는 영리한 배우다. 마르고 볼륨 없는 몸매는 그의 콤플렉스지만, 이런 단점을 자신의 이미지로 승화시킬 줄 안다. 가슴이 깊게 파인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김하늘은 어느 자리에서도 옅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하늘이 가진 이미지는 고급스럽고 특별해 남들과 똑같은 잣대로 들이대지 말라고 요구하는 듯하다.
멜로로 돌아가는 험난한 길
얼마 전 종영된 SBS 드라마 ‘유리화’는 김하늘에게 연기의 전환점으로 기억될 작품이다. 어느 부분 하나 모자람은 없어 보였다. 상대 배우인 이동건과 김성수가 그랬고, 정통 멜로 연기에 강한 김하늘 역시 드라마를 부각시키기에 충분했다. 다소 비현실적인 스토리는 드라마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 있었다. 더구나 대본을 집필한 박혜경 작가와 연출을 맡은 이창순 PD 등 화려한 제작진도 화제를 몰고 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물론 드라마의 흥행만 가지고 작품성과 배우의 연기를 평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다. 그러나 김하늘의 멜로 복귀에 어딘가 아쉬움이 남긴 것은 분명했다. 왜, 무엇이 문제였을까.
김하늘의 연기 색깔은 코미디 장르에 너무 물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출연했던 작품 ‘빙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령’ ‘유리화’ 중 흥행에 성공한 것은 코미디물인 ‘그녀를 믿지 마세요’뿐이다. 김하늘은 ‘빙우’와 ‘유리화’로 다시 멜로 연기를 하고자 하는 욕구를 드러냈고, ‘령’을 통해 공포장르에도 도전해봤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김하늘의 스타성을 감안하면 오히려 실패에 가까웠다.
어딘가 이상했다. 애초 김하늘은 코미디보다는 멜로가 어울리는 배우 아니었던가. 1998년 데뷔작 ‘바이준’과 SBS 드라마 ‘해피투게더’, MBC 드라마 ‘비밀’을 거쳐 SBS 드라마 ‘피아노’에서 김하늘은 가슴 시린 눈물 연기로 사랑을 받았고, 이로 인해 스타로 자리잡았다. 특히 ‘피아노’에서 보여준 고수와의 연기 호흡은 최상으로 평가받을 정도였다.
배우의 ‘변신’이 때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코미디 장르에서 합격점을 받고 한 단계 발전한 배우가 이후 행보에서 잠시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다. 김하늘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코믹 연기의 즐거움을 맛보았지만, 코믹 연기가 멜로 연기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배웠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런데도 한동안 코믹 연기로 사랑을 받았고, 배우는 자세로 코믹 연기를 이어갔던 것이다.
‘도전이 있어야 성공도 있다’
그러나 가슴 한 구석엔 언제나 멜로 연기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본업은 코미디가 아니라 멜로”라고 밝힐 만큼 ‘유리화’를 선택한 데는 김하늘 자신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자신을 코미디보다는 멜로에 어울리는 배우라고 생각하기에 이번 작품에 임하는 각오도 남달랐다. “멜로 연기의 매력은 모든 감정을 끌어올려 고스란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인 설명에선 그의 각오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유리화’는 10% 미만의 낮은 시청률을 보이다 종영돼 ‘시청률 보증배우’라는 그의 닉네임을 무색케 했다. 하지만 김하늘은 영리한 배우다. 이 한 번의 쓰라림에 연연해하지 않을 만큼 의연하다. 그는 또다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할 것이다. 배우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은 스물일곱 살의 김하늘이 언젠가 했던 얘기가 바로 ‘도전이 있어야 성공도 있다’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