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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18

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월터스

‘인터뷰 달인’의 성공 키워드는 ‘불안감’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월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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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도 TV쇼를 통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는 美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 1970년대부터 콧대 높은 배우들은 물론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 등 도저히 미국 방송 카메라 앞에 설 것 같지 않은 이들과도 장시간 인터뷰할 정도로 ‘저돌적인’ 그녀는 실상 평생 불안에 떨었다고 고백한다. 언제라도 모두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오늘도 그녀를 달리게 만든다.
80세 현역 방송 진행자 바바라월터스


선진 각국에서 능력 있는 고령세대가 활약하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웹진 ‘슬레이트’에서는 매년 ‘가장 힘 있는 80세 이상’ 80명을 선정해 공개하는데, 10월20일 올해 명단이 나왔다. 이 중 방송인 바버라 월터스(Barbara Walters)가 올해 80세 막내(?)로 이름을 올렸다. 방송작가로 시작해 1970년대 저녁 뉴스쇼 첫 여성 앵커로 발탁된 이래 지금까지 방송·출판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그녀는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3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녀가 자서전 ‘내 인생의 오디션’(이기동 번역)을 펴냈다. ‘인터뷰와 말하기의 달인’으로 불리며 전·현직 세계 지도자와 영화배우, 희대의 살인마 등을 만나온 그녀도 인터뷰이(interviewee·인터뷰 대상)들 앞에서는 매번 수험생처럼 긴장했다고 털어놓는다. 자신을 이끈 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말이다.

책에는 심한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언니로 인해 받은 성장기의 심적 부담과, 결혼 후 아이를 갖지 못해 입양한 딸이 마약, 외박 등을 일삼아 노심초사한 것 등 그동안 말 못했던 개인사가 솔직하게 담겨있다. 평생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줄타기해왔다고 고백한 이 여성의 삶으로 들어가보자.

부침(浮沈) 많은 가족사

뉴욕 맨해튼에는 ‘루 월터스 웨이’라는 길이 있다. 바로 바버라 월터스의 아버지 이름을 딴 길이다. 루 월터스는 미국에서 브로드웨이 쇼를 초창기에 정립시킨 제법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렇지만 쇼 비즈니스라는 게 겉보기엔 화려해도 부침이 많은 업종 아닌가. 루 월터스 역시 때로 큰 성공을 거둬 가정부와 요리사까지 두고 큰 저택에서 살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진 적도 많았다. 바버라는 “거지에서 부자, 부자에서 거지로 왔다갔다하는 생활이었다”고 회고한다. 부자로 살 때보다 가난하게 살 때가 그녀를 단련시켰다면서 말이다.

‘내가 낙타 오줌보를 갖게 된 것(소변을 잘 참는다는 뜻)은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 살았던 일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카메라 앞에서 몇 시간씩 생방송을 할 때 그게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 뜨거운 여름날 냉방이 잘 되지 않는 곳에서 살았던 것도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스튜디오 조명이 아무리 뜨거워도 사우디 사막 같은 곳에서 몇 시간씩 방송을 해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오디션’ 중)

아버지 루 월터스는 카드놀이를 즐기는 도박사에다 몽상가였고, 어머니는 걱정이 많은 전업주부였다. 바버라는 언젠가 쇼걸과 바람이 난 아버지를 앞에 두고 어두컴컴한 나이트클럽 안에서 “제발 우리를 버리지 말라”고 울부짖던 엄마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바버라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바버라는 훗날 “인터뷰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들에게 “인터뷰 상대에게 주눅 들지 않는 것”이라고 답했다. 이러한 대답은 아마도 유명인의 삶에 신비감이나 호기심을 갖지 않은 바버라의 독특한 성장과정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쇼 비즈니스를 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부터 극장과 무대에 익숙한 생활을 해온 그녀는 ‘쇼’라는 판타지에 가려진 사람들의 모습이란 게 겉은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각종 세금영수증과 부양가족에 시달리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일찌감치 터득했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 외에 그녀 삶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친언니 재키다. 재키는 심각한 정신지체 장애자였다. 바버라는 철이 들 무렵 남과 다른 언니에 대한 연민, 그리고 여동생인 자신이 언니에 비해 가진 게 너무 많다는 죄책감으로 힘든 적이 많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 장애를 가진 언니는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창피한 존재였지만, 훗날 ‘말 잘하는 법은 바로 잘 듣는 것’임을 터득하도록 이끈 스승이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이 같은 가족사는 회고록을 통해 처음 털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평범한 여고 시절을 보낸 바버라는 역시 평범한 여자대학인 세라 로렌스에 입학한다. 본래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나온 명문 웰슬리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그만한 성적이 안 돼 떨어졌다. 그녀가 대학 4년 내내 몰두한 것은 ‘연극’이었다. 자라면서 줄곧 쇼 비즈니스 세계만 보아왔기 때문에 배우는 물론 무대 뒤쪽에 있는 스태프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업을 갖는다면 자신이 있을 곳은 극장이나 무대와 관련한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시절 단구(單球)세포증가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아 결석을 자주 하면서 학교에 애착이 줄자 자퇴와 재입학을 반복했다.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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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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