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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쌀의 운명

大豊에 멍들고, 쌀값에 울다

<농촌현장르포> 2001년 가을 農心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大豊에 멍들고, 쌀값에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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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곡창지대의 農心이 술렁이고 있다. 불패의 신화를 이어왔던 쌀값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11월 ‘무서운 경쟁자’ 중국의 WTO가입, 2005년 1월 쌀시장 완전개방 등. 농민 앞에는 끝없는 풍랑이 기다리고 있다. 바야흐로 ‘農者天下之大本’이 기로에 선 것이다.
2001년 대한민국 쌀농사는 그야말로 대풍이다. 전체 수확량은 정부 목표량을 무려 200만섬 이상 초과한 3800만섬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황금 들녘 어디에서도 좀처럼 풍년가를 들을 수가 없다. 쌀값이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는 데다가 2001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90kg 이하까지 떨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엔 사상 최초로 보리값이 쌀값을 앞지르는 ‘대이변’도 발생했다. 이젠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라 ‘보리만도 못한 쌀’ 신세가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쌀증산 정책을 포기하겠다는 농림부 발표는 농민들의 성난 가슴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쌀농사는 대한민국 농가소득의 51%를 차지하며, 쌀값의 변동은 농민들의 정서에 곧바로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쌀값 추락과 쌀정책의 전환이 동시에 진행된 것은 농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급기야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고, 볏가마에 불을 질렀다. 이 또한 건국 이래 최초의 사건이다. 쌀 한톨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온 농민들이 곡식까지 불태우는 비극을 연출한 것이다.

10월6일 오전 충청도 제1의 곡창지대인 당진을 찾았다.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단위 면적당 쌀 수확량이 가장 많은 곳이다. 농림부가 발간한 ‘2000년 작물통계’에는 당진의 10a(300평) 당 생산량이 583kg으로 나와 있다. 이런 결과는 당진 지역의 기후조건과 관련이 깊다. 당진은 평야지대인데다 일조량이 많고 해풍이 벼의 생육에 적당한 만큼만 불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당진농협 앞에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아침밥을 먹읍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것은 쌀 소비촉진을 위해 농협중앙회가 벌이고 있는 캠페인으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아침밥만 챙겨 먹어도 쌀 재고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진군청과 당진농협이 만든 팸플릿에는 ‘아침밥의 효과’가 자세히 나와 있는데, 여기에는 ‘아침을 먹는 학생은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숙제를 더 잘하고, 부모가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공부한다’는 ‘코미디’ 같은 분석까지 실려 있다.

농림부와 농협이 공동으로 제작한 포스터의 문구도 눈길을 끈다.

“우리 가족 건강의 마술사. 역시 밥입니다. 아침밥을 잘 먹으면 학습능력이 높아진다. 비만방지에 도움이 된다. 긍정적이고 명랑한 기분을 갖게 된다. 필수영양소의 균형적인 섭취가 가능하다.”

“밥이 좋아요. 이 아이의 밝은 웃음은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건강한 것은 밥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서른살이 넘은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20여 년 전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1970년대 말 쌀 소비량이 급증하던 시절이었다. 농촌에서는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권장하는 면사무소 직원들과 미질이 좋은 쌀을 재배하려는 농민들 사이에 적지 않은 신경전이 벌어지곤 했다. 당시 초등학교 교과서와 마을 어귀의 담벼락에는 어김없이 혼분식을 장려하는 포스터가 등장했다. 또한 쌀밥만 먹을 경우 각기병 등에 걸릴 수 있으니 건강에 좋은 보리밥을 먹으라는 얘기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다.

“아침밥을 먹읍시다”

그래서일까? 쌀밥의 우수성과 아침밥의 효과를 강조하는 포스터를 바라보는 농민의 시선은 시큰둥했다.

“언제는 혼분식이 좋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쌀밥이 좋다고 하면 어떻게 해유. 사람을 놀리는 것도 아니고. 텔레비전을 보슈. 밥 먹는 사람보다 빵과 유유를 먹거나 굶는 사람이 더 많아유. 그러니 쌀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유.”

당진농협 2층엔 2개의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당진 쌀 소비대책상황실’과 ‘쌀 자급대책 종합상황실’이 그것이다. 한쪽은 쌀을 많이 팔자는 것이고, 다른 쪽은 많이 생산하자는 것이므로 어찌 보면 배치되는 측면도 있다. 정부와 농민의 요구를 모두 반영해야 하는 농협의 고충을 엿볼 수 있다.

농협중앙회 당진군지부 이재근 차장은 “재고가 늘고 정부의 기능이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쌀값 하락은 시간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농협 RPC(Rice Processing Complexes, 미곡종합처리장)가 눈뜨고 적자를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농협은 손해보지 않으려 하고, 농민은 제값을 받으려고 하니까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차장의 말처럼 농협 RPC는 전국적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195개 농협 RPC 가운데 105개(53.8%)가 118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당진군도 8개 RPC에서 총 9억5200만원의 손해를 봤다. 이것은 쌀값의 ‘계절진폭’이 사라지면서 농협 RPC가 이윤을 남기지 못한 채 쌀을 출하한 탓이다. 농협 RPC로서는 빚을 얻어 쌀을 수매했기 때문에 시세차익 여부와 관계없이 이자를 물어야 했던 것이다.

이차장에 따르면 당진군 농협 RPC의 2001년 적자폭은 무려 22억7900만원에 달할 전망이다. 2000년의 경우 신용수익으로 RPC 적자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2001년에도 적자가 쌓이면 경영 자체가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런 까닭에 산물벼(조곡) 수매값을 낮추고, 나중에 가격이 오를 경우 추가로 보상하는 제도를 검토하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당진농민회는 9월20일 RPC조합장을 감금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현장을 촬영중인 당진경찰서 정보과 형사의 비디오 카메라를 부수기도 했다. 농민들은 40kg 산물벼의 생산원가를 5만2000원으로 보고, “농협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0월6일 오전 11시,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한농연) 당진군지국 사무실에 농민단체 간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현재 농촌에는 수십개의 농민단체가 있는데, 쌀문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체는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한농연이다. 한농연은 1987년 농민후계자를 중심으로 창립된 조직으로, 1990년 재야단체로 출범한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쌀문제에 대해서는 전농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1990년대 중반 농림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고 탄생한 ‘쌀전업농중앙회’가 있는데, 여기에 속한 농민들도 개인 성향에 따라 전농이나 한농연에 가입한 경우가 많다.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유”

이종현 당진군 농민회장, 김충완 당진군 한농연회장, 정상영 부회장, 차기청 경종분과위원장 등은 먼저 농협중앙회가 전국의 농협 RPC에 보낸 공문부터 비판했다. 10월 5일자로 전송된 문서에는 “산지가격이 형성되지 않았으므로 수매가격 결정을 연기하거나 ‘선금지급 사후차액 정산제’를 도입할 것. 시가가 아닌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결정하여 손실이 발생했을 경우 의결에 참여한 임원진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음. 비정상적 가격결정 조합에 대해서는 농협중앙회가 지원할 때 감안할 계획”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농민을 위한다는 농협이 어떻게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습니까. 농민이 죽으면 농협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유. 농민들 편을 들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쌀값을 떨어뜨리려고 아예 작정을 했잖아유. 생각 같아서는 농협중앙회에 불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유.”

농협에 대한 한바탕의 성토가 끝난 뒤 이종현 농민회장이 정부의 농업정책을 비판하고 나섰다.

“쌀이 무너지면 농촌 자체가 사라지는 거유. 쌀값이 떨어지니까 논값도 똥값이 되고 있슈. 결국 농민은 빚더미에 앉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유. 그렇게 개방과 자유화가 좋으면 논도 농업진흥지역(과거의 절대농지, 농지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한 제도)에서 풀어달라 이 말이유. 우리도 논바닥에 골프장 만들고 공장 지어서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어유.”

김충완 한농연 회장이 이회장의 말을 받았다.

“쌀값이 16만8000원 할 때도 자살하는 농민들이 나왔슈. 지금 15만2000원 얘기가 나오니까 다들 제 정신이 아니유.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죽는 거는 마찬가지잖아유. 이런 정부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들어유.”

농림부 집계로는 올해 쌀 수확량이 지난해에 비해 지역별로 3∼5% 증가한 것으로 돼 있다. 하지만 당진군은 곡창지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지난해보다 작황이 떨어졌다. 태풍도 없었고, 일조량도 많았는데 당진지역이 유독 수확량이 처지는 것은 벼의 생육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시점에 비가 내리지 않은 탓이다. 이런 까닭에 당진군 농민들의 위기의식은 다른 지역보다 심한 형편이다.

차기청 한농연 경종분과위원장은 “결국 정부가 잡아주지 않으면 농민들은 쓰러질 수밖에 없어유. 농민들은 빚으로 농사를 짓잖아유. 농토의 70%는 이미 담보로 넘어가 있어유. 연말까지 못 갚으면 신용불량자가 돼버리니까 빨리 팔아서 빚부터 갚아아 하는 거지유. 밑지는 줄 알면서 팔아치우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기막힌 일이에유”라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토론은 대안 쪽으로 넘어갔다. 2004년 WTO(세계무역기구) 재협상을 앞두고 쌀시장 추가개방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국내 쌀값이 국제시가보다 월등하게 비싼 상황에서 계속해서 추곡수매가를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한 정부는 WTO 협정에 따라 해마다 추곡수매가 보조금을 평균 750억원씩 줄여나가야 한다. 결국 수매량을 줄이든 수매가를 낮추든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종현 회장은 올해 정부가 처음으로 시행한 ‘논농업직불제’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논농업직불제’는 김성훈 농림부장관 시절 경제부처의 반대를 무릅쓰고 도입한 제도로 1ha(3000평) 이상 논농사를 짓는 농가에 한해 1ha당 25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정부는 ‘논농업직불제’가 쌀값을 2.5% 정도 보전해주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농민단체에서는 “금액을 대폭 올리지 않을 경우 유명무실하다”고 반박한다. 이회장 역시 논농업직불제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1ha당 50만원 이상은 돼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당진지역에서 미질이 가장 우수한 쌀은 합덕읍과 우강면에서 생산된다. 기자가 합덕RPC를 찾았을 때는 수매가 한창이었다. 예전 같으면 쌀 가마니를 쌓아놓고 막걸리잔을 주고받으며 돈을 세는 노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젠 입금과 출금이 모두 전산으로 이루어진다. 농민들은 전표를 받아들고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뽑고 있었다. 하루에 400t을 도정하는 합덕RPC에는 물량이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쌀값 폭락을 우려하는 농민들이 앞을 다투어 수매에 참여하고 있었다.

합덕 RPC 방선영 소장은 “소화하기 힘들 만큼의 물량이 쏟아지고 있다. 일단 5만2000원(조곡 40kg)에 수매를 시작했는데, 판로가 막혀 걱정이다. 오늘도 세 군데서 거래를 끊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팔려는 물량은 많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단순한 경제논리로 봐도 쌀값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실제로 10월6일 현재 당진 지역의 쌀값은 1년 전에 비해 1만2000∼1만5000원 낮은 시세에 거래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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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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