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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내 남자를 내시로 만들어서야

  • 난임전문의 조정현

내 남자를 내시로 만들어서야

내 남자를 내시로 만들어서야
‘Y염색체’를 가진 남성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이토록 황당한 이야기가 ABC방송에서 소개된 적이 있다. 다름 아닌 남성을 만드는 ‘Y염색체’가 앞으로 수천 년 뒤에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연구 결과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진은 Y염색체의 유전자가 점점 줄어들어 결국 염색체가 사라져버릴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Y염색체는 남녀 성을 결정짓는 인간의 23개 염색체 중 마지막 염색체 1쌍이다. 여성은 ‘XX’, 남성은 ‘XY’ 염색체로 구성돼 있다. 아시다시피 염색체 23쌍 안에는 10만여 가지의 (발현되는) 유전자가 담겨 있다. 성염색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불행하게도 X염색체에 담겨 있는 유전자가 1100개인 반면, Y염색체에 담겨 있는 유전자는 80여 개에 불과하다. 열성유전자도 상당수다. 이러한 ‘Y염색체’가 꾸준히 퇴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테스토스테론에 대한 오해

필자는 산부인과 의사로 30년간 난임 시술을 해왔다. 비록 진료실에서지만 세상과 세태의 변화를 피부로 고스란히 절감하며 산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부쩍 남성성의 쇠퇴를 느낀다. 여성의 약진(躍進)과 대조적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을 Y염색체 퇴화와 연관 지을 순 없다.

젊은이들은 나의 분석을 꼰대의 항변으로 치부할는지 모르겠지만 작금의 출산 기피 풍조의 근본 원인을 좀 다르게 분석한다. 다름 아닌 남자다움의 퇴보가 한몫을 하고 있다고.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현대사회에선 테스토스테론을 마치 ‘사이코패스’와 ‘폭력남’을 만드는 호르몬으로 치부하고 있다. 특히 미투(metoo) 사건 이후 남자들은 더욱 주눅이 들고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인류를 오늘까지 이끌어온 주역이며 찬란한 힘을 상징하는 호르몬인데, 오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테스토스테론은 고환에서 분비되는, 남성다움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남성을 더 남자답게 만들기 위해 근육량을 증가시키고 골격을 발달시킨다. 하지만 성기능의 전 과정에 관여하는 정력의 아이콘이어서 그런지 이러저러한 오해(?)를 낳곤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창 연애를 위해 청춘사업을 해야 할 피 끓는 젊은이들이 테스토스테론을 ‘위험한 호르몬’ 혹은 ‘무용(無用)’한 것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남자에게 의욕을 북돋우고 자신감을 되찾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테스토스테론이다.



사실 남성성의 쇠퇴는 정자(精子)의 부진으로 이어진다. 2018년 여름 히브리대학 의학 연구팀은 미국 유럽 등지에서 40년간 정자의 수가 무려 50%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더 큰 문제는 정자 수의 부진으로 남성이 여성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되진 않는다. 배곯던 보릿고개의 또래 남성에 비해 정자의 수가 절반 정도 감소했다고 보면 된다. 1973년 정자 수는 1㎖당 9900만 마리에서 2011년 4700만 마리로 감소했다.

물론 정자 수 감소가 반드시 난임을 야기하진 않는다. 검사상 정액 1㎖당 1500만 마리 정자가 있고 이 중에 40%가 살아서 움직이고, 14%만 정상 정자라면 임신하는 데 지장이 없는 정상으로 본다. 무엇보다 정상 정자 수가 적더라도 체외수정(시험관아기 시술)이라는 보조 생식술이 있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요즘 정상 범위에 들지 못하는 남성이(젊은데도) 부쩍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자의 숫자는 자연 임신을 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수정(受精)을 위한 전략과 전술은 인해전술(人海戰術)이다. 우수한 화기보다 다수의 병력을 투입해 적을 압도하는 전술인 인해전술이 바로 난자를 만나는 데 요긴하다. 간단한 예로 정자 3억~4억 마리가 사정이 되어도 난자가 기다리는 나팔관까지 도착할 수 있는 정자는 고작 해봐야 100여 마리 남짓이다. 군사가 많아야 난자 근처로 갈 수 있는 특전사도 많지 않겠는가. 운동성도 직진성도 좋아야 하며, 난자 옆에 가서는 스스로 옷을 벗고 수정할 능력까지 갖춰야 생식력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973년부터 2011년까지 발표된 논문을 분석한 결과 서구 남성의 정자 농도는 52%, 전체 정자 수는 59%가 줄어들었다. 뉴욕타임스는 남성의 불임 위기가 다가왔다는 사설을 여러 차례 싣기도 했다. 생활습관과 식습관의 변화와 신(新)모계사회로 인한 결과일지 모른다.


신사임당과 남편 이원수

내 남자를 내시로 만들어서야
아니나 다를까 난임병원 진료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10년 전, 20년 전만 해도 난임병원을 방문하는 부부에게 갑(甲)은 남편인 듯 보였다. 지금은 아내가 갑인 부부가 많다. 고분고분하고 기죽은 듯한 남편이 대다수다. 10년 20년 전에 난임 여성들은 “당신 가문을 빛낼 자손을 낳고 싶어요”라는 식이었다면, 요즘은 “내 자식을 낳아야 하는데, 정자 좀 제공해줬으면” 하는 분위기다. 예전에는 마님과 대감마님이 행차했다면, 요즘은 중전이 가는 곳에 내시(테스토스테론의 부재)가 따라온 듯하다. 젊고 예쁜 아내와 멀쩡한 남편이 정상적 부부관계가 힘들어서 시험관시술을 하겠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요즘 젊은 부부를 보고 있으면 신사임당과 남편 이원수가 떠오른다. 그토록 당차고 똑똑한 사임당의 남편은 의지가 박약하고 우유부단해서 과거를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일쑤였다. 어쩌면 이원수의 잘난 척은 사임당이 아니라 주막의 주모가 받아줬을지 모른다.

필자는 알파걸들의 대약진에 손뼉을 친다. 하지만 당부컨대, 남자를 말 잘 듣고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남성다움을 잃게 해선 안 된다. 배란일이라며 선전포고하듯이 소리치면 제아무리 변강쇠라도 기죽기 마련이고 정자까지 비실거릴 수 있다. 남녀평등을 외치더라도 남녀의 미묘한 생화학적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테스토스테론에 지배받아 의기양양한 남편을 아내가 안 봐주면 누가 봐주겠는가.


내 남자를 내시로 만들어서야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신동아 201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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