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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⑫|삽당령에서 진고개까지

“산은 벗고 걸어야 제 맛, 한번 훌훌 벗고 걸어보시게”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산은 벗고 걸어야 제 맛, 한번 훌훌 벗고 걸어보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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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끼손가락만한 불덩어리가 바다 위로 고개를 내미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검은 구름을 태워버린다.
  • 안개 걷힌 광활한 대관령 초원에선 젖소들이 풀을 뜯고, 대간 마루금에 버티고 선 고목이 가을바람을 온몸으로 반긴다. 각박한 도시생활에 찌들어 텅 비어버린 가슴과 머릿속이 어느 순간 가득 차고, ‘길 떠나기를 잘했다’는 포만감에 스르르 전율이 인다.
“산은 벗고 걸어야 제 맛, 한번 훌훌 벗고 걸어보시게”

능경봉 정상에서 바라 본 구름바다.

강원도(江原道)의 어원은 강릉(江陵)과 원주(原州)에서 나왔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도 단위 행정구역 명칭에 쓰인 고을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물산이 풍부하거나 교통이 발달해서 먹고살기에 걱정 없는 땅, 둘째 대대로 인재가 많이 태어나 벼슬에 오른 사람이 많은 곳, 셋째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고유한 멋을 가진 장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변란시 숨어 지내기에 적당한 터다.

그렇다면 강릉과 원주는 어떤 경우일까. 이중환의 ‘택리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먼저 강릉지방이다. ‘이름난 호수와 기이한 바위가 많아 높은 데 오르면 푸른 바다가 넓고 멀리 아득하게 보이며 골짜기에 들어가면 물과 돌이 아늑하여 경치가 나라 안에서 참으로 제일이다. 사람들은 노는 것을 좋아하여 노인들은 기악과 술, 고기를 싣고 호수와 산 사이에서 흥겹게 놀며, 이를 큰 일로 여긴다.’

다음은 원주다. ‘경기도와 영남 사이에 끼여서 동해로 수운(輸運)하는 생선, 소금, 인삼과 궁전에 소요되는 재목들이 모여 하나의 도회가 되었다. 두메와 가까워 난리가 나면 숨어 피하기가 쉽고 서울과 가까워 세상이 평안하면 벼슬길에 나갈 수 있는 까닭에 한양 사대부들이 이곳에서 살기를 좋아한다.’

같은 강원도라지만 강릉과 원주는 오래 전부터 이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다. 어찌나 차이가 나던지 세상 사람들은 대관령을 중심으로 동쪽의 강릉지방을 영동, 서쪽의 원주지방을 영서라 구분했다. 영동과 영서의 살림살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역시 백두대간이다. 차가운 북서계절풍을 맨 몸으로 맞아야 했던 영서지역 사람들이 한가위를 지내기 무섭게 겨울을 준비해야 했던 것과 달리 영동지역 사람들은 백두대간이 바람을 막아주는 데다 난류의 도움까지 받아 한겨울에도 추위를 걱정하지 않았다(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강릉의 1월 연평균 기온은 영상 0.3도, 원주는 영하 4.8도다).

두 지역의 희비는 농사철에도 엇갈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높새바람. 이것은 동해바다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가는 북동풍으로 농사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영동지방이야 알맞게 부는 바람이 나쁠 게 없지만, 영서지방은 다르다. 바람이 백두대간을 타고 넘어가면서 일으키는 푄(Fohn, 바람이 높은 산을 통과할 때 기온이 상승하는 현상) 현상 때문에 영서지방의 농작물이 말라죽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도로교통 시대가 열리면서 영동지방이 영서지방을 넘어 수도권과 긴밀하게 연결됐다지만, 백두대간에서 바라본 두 지역의 풍경은 여러 모로 다르게 느껴진다.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산은 벗고 걸어야 제 맛, 한번 훌훌 벗고 걸어보시게”
9월11일 밤. 청량리역에서 강릉행 열차를 탔다. 비가 내릴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정동진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기차가 정동진역에 멈춰 서자 예상대로 승객 대부분이 내렸다. 객차 안에 남은 사람은 배낭을 짊어진 중년의 아저씨와 필자 둘뿐이었다.

열차는 정동진역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가랑비에 젖어가는 차창 밖으로 파도가 거세게 밀려온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1시간 남짓 남았다. 비까지 내리는 걸 보면 일출은 이미 물 건너갔음에도 사람들은 백사장을 거닐거나 플랫폼을 서성거리며 그 무엇인가를 찾으려 한다. 기차가 출발한다. 밤바다를 뚫고 밀려오는 파도는 열차의 발목까지 차오를 것 같다.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가는 길을 제대로 맛보려면 철로보다도 7번 국도를 타야 한다. 이 길을 달리다 보면 파도가 도로까지 넘나들면서 바다와 육지가 한데 뒤섞이는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강릉이다. 이중환의 ‘택리지’는 영동지방에 큰 인물이 나지 않는 이유로 수려한 경치와 척박한 토양을 거론한 뒤, “오로지 강릉만이 예외”라고 평한 바 있다. 강릉사람의 교육열은 예로부터 유명했는데, 특히 율곡 이이를 길러낸 신사임당의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두 사람 이외에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조선사회의 혁명을 꿈꾸었던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다. 후세 사가들은 그를 국가가 배척한 불교를 믿고 기행을 일삼다 수차례 탄핵과 유배를 당했다고 기록했지만 조선민중의 처지에서 보자면 그는 신분제도의 구조적 모순을 정확하게 꿰뚫어본 탁월한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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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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