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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경의 讀書, 督書, 毒書

도련님 前 上書

  • 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도련님 前 上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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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前 上書
우리는 그동안 만화의 가치를 너무 간과해왔다. 어쩌면 이 글 역시 ‘독서(毒書)’라는 제목을 방어막으로 그러한 편견에 맞서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번에 말하려는 것은 고전적인 만화에 대해서다. 수작업으로 그려져 종이책에 인쇄되는 아날로그적 만화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 100여 년 전의 근대를 다룬, 조금은 거칠고 불친절한 만화 ‘도련님의 시대’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독자의 정신을 고양한다.

세키카와 나쓰오가 쓴 스토리에 다니구치 지로가 그림을 더한 ‘도련님의 시대’ 5부작은 1980년대 중반부터 12년간에 걸쳐 제작됐다. 기본적으로 이 만화는 일본의 근대를 대표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소설 ‘도련님’을 근간으로 삼았다. 만화에서 소세키는 시대의 최전선에 선 실존 인물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바탕으로, 두 번째 장편소설 ‘도련님’을 완성한다.

그러면서 이 만화는 소세키가 구현하는 도련님의 정신을, 이른바 일본의 근대기인 메이지 시대에 불어닥친 서양의 거대한 물결 앞에 맨몸으로 고군분투하던 자들을 공통적으로 일컫는 호칭으로 확대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도련님의 시대’이며, 만화의 시작과 끝은 소세키지만 그를 포함한 다양한 도련님의 이야기를 다룬다. 메이지 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들과 실제 사건을 허구 안에서 적절하게 배치하고 재구성한 것이다.



도련님이라 불린 사람들

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도련님으로 불렸는가. 만화가 근간을 둔 소세키의 ‘도련님’에서 ‘도련님(坊っちゃん)’이라는 호명에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맥락이 있다. 우선, 당대 세간에서 시쳇말로 쓰이던 ‘도련님’에는 조롱과 냉소가 담겼다.



간혹 정직하고 순수한 사람을 보면, 도련님이라는 둥 애송이라는 둥 트집을 잡아 경멸한다. -‘도련님’, 76쪽



그렇다. 메이지 시대의 도련님이란 남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숙맥 같은 사람의 유형이었다. 왜 이들은 세속에 쉽게 올라타지 못했을까. 그것은 이들이 전근대에 태어나 근대를 경험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구시대의 도덕과 교양을 익혔지만 광포한 속도와 기세로 들어온 서구 문명 앞에 과거의 상식은 무용지물이었다. 서양 문명을 어설피 흉내 내는 자들이 천박하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그들 앞에서 도련님의 방식은 무력하다. 그래서 도쿄에 살다 아주 작은 섬마을에 교사로 부임한 주인공 도련님은 시골 사람에게도 늘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한편, 전통적인 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도련님들은 여전히 존경의 대상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을 응원하는 하녀 기요(清)는 자신의 원칙을 무리하게 지키다가 위기에 빠지고 손해도 보는 도련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해준다.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 -‘도련님’, 19쪽



도련님들은 너무 진지해서 세상과 어울리거나 타협하지 못하며, 오히려 그 때문에 과장되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도련님은 학생들의 어려운 질문에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다가 무시를 당하며, 그것을 알 정도면 월 40엔에 이런 촌구석에 올 리가 없다고 혼자 소심하게 생각한다. 동료 교사들의 부정을 밝혀내고자 일주일이나 여관에 잠입해 증거를 확보했으면서도, 정의의 이름으로 계란을 던지는 것이 고작이며 오히려 자신이 사표를 내고 섬마을을 떠난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근대를 대표하는 시대적 정신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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