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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 탐구

김종필과 앙드레김, 유아독존의 로맨티스트

김종필과 앙드레김, 유아독존의 로맨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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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에 들어서서는 더 당황스럽고 민망한 발언들을 수도 없이 쏟아놓는다. 그 중 압권은 3당 합당 직후에 한 말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노태우 대통령이다. 그 다음은 김영삼 최고위원이다. 최고위원도 다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김영삼 최고위원과 나란히 걷지 않고 뒤따라간다. 민주화가 됐다지만 무릇 사회와 조직에는 아래위가 있어야 한다.”

YS가 정권을 잡은 후에는 그 유명한 ‘홍작과 연작’의 발언을 비롯,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명언’들을 줄줄이 쏟아낸다. 김대중정권 창출의 한 축이었으면서도 97년 12월의 국회연설은 그의 깍듯한 몸가짐을 잘 보여준다.

“김대중 당선자께서 정계에 봉사하시려는 참뜻을 보람있게 나눠 가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합시다.”

김종필은 기본적으로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에겐 대들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한 정치인의 지적이 헛말은 아닌 듯싶다.



김종필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그 특유의 ‘순리주의’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그는 스스로 순리주의자라고 자부하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걸핏하면 이 논리를 구사한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으며 물 흐르듯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한자숙어인 ‘상선여수(上善如水)’는 김종필의 좌우명이다. ‘순천자(順天者)는 생(生)이고 역천자(逆天者)는 사(死)다’는 게 그의 굳은 믿음이다. 오죽했으면 학교 이름을 지어달라는 지인의 부탁에 대학 이름을 ‘순천향대학’으로 지어주었겠는가.

문제는 그의 ‘순리’라는 개념에 자의적인 해석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다. 차라리 87년에 관훈클럽에서 언급한 ‘팔랑개비론’이 훨씬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김종필은 자신을 종이 팔랑개비에 비유한다. 팔랑개비는 바람이 세차게 불면 힘차게 돌고, 약하게 불면 천천히 돌며, 바람이 멎으면 함께 멎어버리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개인이란 한 나라의 바람이 세차게 불 때 그에 따라 돌아갈 수밖에 없는 팔랑개비 같은 존재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10월에는 10월의 논리가 있고 11월에는 11월의 논리가 있다.”

지난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후보와의 단일화 작업을 재촉하는 주위 사람들에게 했던 김종필의 말인데, 그의 상황론을 절묘하게 보여주는 인상적인 구절이다. 오죽했으면 ‘상황론자’라는 별호(別號)까지 얻었겠는가.

김종필은 누구보다 모호함을 생명선으로 하는 정치인이다. 딱 부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상황론자들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이다. 원래 말을 많이 하지도 않지만 설사 말을 해도 풍부한 어휘력과 은유를 사용, 듣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하는 것이 김종필의 특기다. 당 운영에 대해서도 간접화법이나 두루뭉실하게 알 듯 모를 듯한 태도를 취해 당 관계자들을 혼란스럽게 한다고 한다. 한 정치학자는 “지도자는 명쾌해야 하는데 김종필은 모호하다. 이것이 젊은층에서 인기가 없는 중요한 이유”라고 진단한다.

김종필의 정치는 어떤 면에선 ‘쇼당패 스타일’이다. 점잖지 못하게 고스톱 용어를 쓰게 돼서 좀 그렇긴 하지만 더 적절한 비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고스톱에서 쇼당이란 내가 1등을 할 수 없을 때 선택하는 차선의 전략이다. 쇼당패를 만들려면 판세를 읽는 절묘한 감각과 나머지 두 사람이 필요로 하는 패가 내 손에 있도록 고스톱판을 몰아가는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 김종필은 천부적인 재질이 있다. 나한테는 별 필요가 없지만 상대편 누구도 내가 가진 패 때문에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드는 게 김종필 정치 전략의 핵심이다. 그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1등을 하려면 자신의 도움이 절실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균형을 파괴할 수 있는 타이밍까지 맞춘다면 그의 파괴력은 10배 이상 증폭된다.

한계중량을 들어올린 채 다리를 부들거리면서 버티고 있는 역도선수는 새의 깃털 하나에도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만다. 이럴 때 새의 깃털은 코끼리가 덮쳐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김종필이 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몫을 누릴 수 있는 건 이런 메커니즘에 기인한다.

정치기술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거의 예술의 경지다. 말이 쉽지 단순히 현란한 정치 기술만으로 이런 경지에 오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의 성향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인간 김종필의 내면세계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르네상스적 교양으로 무장

김종필은 인간의 전체 근수를 달았을 때 3김씨 중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며, 정치인 가운데 르네상스적 교양으로 무장된 유일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수 패티김은 그녀가 새해 인사를 가는 유일한 정치인이 김종필이라고 하며, 대중예술에 대한 김종필의 깊은 애정과 전폭적인 후원에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소설가 홍성유는 JP라는 인물은 가까워질수록, 친분이 두터워질수록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고 말한다. 87년 당시 언론인 오효진은 몇 개월에 걸쳐 김종필을 밀착취재하는 과정에서 그가 이룩한 정치적인 성과보다는 인간적인 능력 면에서 경이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만돌린, 피아노, 전자 오르간, 아코디언 같은 악기를 수준급으로 연주한다. 예그린 악단도 만들어 후원해주었고, 서예와 그림에도 일가견을 가지고 있어 그의 작품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을 정도다. 한때는 일요 화가회를 이끌기도 했고, 지금도 시인묵객들과 넓은 교유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그는 비행기도 탱크도 배도 몰 수 있다. 그의 집엔 장서가 자그마치 2만 권이나 된다. 지금도 날마다 책을 읽고 있다. 그와 얘기를 하다보면 동서의 고사와 일화, 수많은 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온다.”

그밖에도 그의 예술적 감각이나 재능을 보여주는 일화는 수없이 많다. 68년 3선개헌 반대를 주도하다 모든 공직에서 사퇴한 뒤 한라산 기슭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담배를 문 채 그림을 그리는 김종필의 사진은 로맨티스트라는 이미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이었다.

김종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낭만적 정치인으로 불린다. 필자는 김종필을 생각할 때마다 고급요정에서 기생의 속치마에 글씨를 써주거나 난을 쳐주는 정치인의 이미지가 그려지곤 했는데, 실제로도 그에겐 그런 풍모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정치란 복잡한 산수 문제를 푸는 것처럼 하는 게 아니야. 이렇게 여인네 궁둥이 슬슬 만져가며 하는 거여.”

그가 언젠가 요정에서 한 말이란다. 낭만의 뿌리는 인간이다. 그는 늘 인간 중심의 사고를 강조한다. 이게 김종필 정치스타일의 최대 장점이자 치명적 약점이다. ‘인간중심의 사고’란 분명 누구도 함부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만큼 강력하고 근원적인 삶의 명제다. 문제는 이 잣대를 너무나 무차별하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87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종필은 박정희 전대통령의 궁정동 안가의 연회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국민들의 시각이 못내 답답했던 모양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것이라고 이해해주시면 될 걸로 봐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다면 공자님이나 부처님을 모시는 게 낫지요. 또 그래 가지고는 세상이 다스려지지 않아요. 나는 어떤 면에서는 완벽한 것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한 면에서 그 인간을 다시 볼 수도 있는 게 아니냐 싶어요.”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최소한 갖춰야 할 복장이나 규칙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정치인 김종필에겐 그런 의식이 전혀 없다. 인간 사이의 따뜻한 유대관계만 공고하면 만사가 오케이라고 한다. 그는 애초부터 인간 김종필과 정치인 김종필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 경계선이 전혀 없는 것이다.

총론만 있지, 각론이 없다

그럼에도 김종필은 늘 절대선(絶大善)이나 중립자의 시각을 선점(先占)하고 있어서 적극적인 비판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세상에는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는 일들이 많다’라거나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는 따위의 명제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건 농담을 하는 상대에게 정색을 하고 반론을 펼치는 것처럼 어색한 일이다.

김종필은 자신을 비판하려고 마음먹은 상대방에게 그런 허탈한 느낌을 안겨주는 사람이다. 그는 최고 권력자에게 꼭 필요한 것으로 시심(詩心)을 꼽으며 감성적 우월감을 과시하고는 한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평소 그렇게 중요하다고 믿어 왔던 인간의 감성이란 것에 대해서 강한 회의를 품게 된다.

그에게는 늘 총론만 있고 각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는 인간의 야수성에 대해 철학적 고민에 빠진 병사보다는 사격술이 능한 병사가 더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김종필은 평화시의 잣대로 전시의 상황까지를 재단하려 한다. 그런 잣대는 위기의 상황에선 효용성이 거의 없다. 그가 고비마다에서 쉽게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거기에 있다.

얼마 전 자민련을 원내교섭단체로 만들어주기 위한 날치기 법안 현장에서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몸싸움을 보며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이 한심해서가 아니었다. 평소의 사상이나 그 인품에 반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몇몇 의원이 육탄돌격을 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여당의 한 초선의원은 자민련의 교섭단체 요구에 대해 “시험에 떨어져 놓고 커트라인을 낮춰서 붙여달라고 요구하는 꼴”이라고 비난했다가 지도부의 압력을 받고 몸싸움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들의 내면에서 일렁이고 있을 자아분열적 괴로움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럴 때도 아마 김종필은 저 뒤에서 두 눈을 꾹 감은 채 입술을 내밀고 있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화선지 위에 ‘부대심청한(不對心淸閑: 사소한 일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면 마음이 맑고 여유롭다)’을 휘갈기면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좋아도 한세상이고 미워도 한세상인데 저렇게까지 거칠고 빡빡하게 할 필요가 무에 있을꼬. 요즘 애들의 세태에 끌끌 혀를 차는 낭만파 주먹의 큰형님, 그게 김종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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