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호

“영어 배우러요? 교육환경이 싫어서 떠납니다”

  • 최영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입력2006-08-02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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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익히려는 게 아니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환경이 싫다. 이렇게 선언하며 한국을 떠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외국에서 선진문물을 배워 조국에 이바지한다면 걱정할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남아 있는 한국의 공교육은 어쩔 것인가. 정부도 뾰족한 수가 없다. 그 실태와 대책을 취재했다.
    서 울 목동 아파트에 살고 있던 중산층 주부 안아무개씨(35)는 지난 8월18일 아들 세 명을 데리고 호주로 이주했다. 가장 큰 이유는 세 아들의 교육 때문이었다. 큰아들은 중학교 1학년, 둘째 아들은 초등학교 4학년, 막내아들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유난히 교육열이 높은 안씨는 3∼4년 전부터 막연하나마 아들 삼형제를 외국에서 공부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영어 회화 공부를 조금씩 시켰다. 조기 유학 계획은 큰아들 김민영군(가명·13)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구체화되었다. 김군은 성적이 뛰어난 편이었으나, 그다지 소질이 없는 과목에도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또 막상 중학교에 들어가니, 중간고사다, 기말고사다 해서 어린 아들이 파김치가 되는 것이었다. 이곳 저곳 과외 학원을 다니다 보면 김군은 밤 12시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잠들 수 있었다. 안씨는 중학교 때부터 하루 4~5시간씩 잠을 자야 일류대학을 갈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아이가 보기 안쓰러웠다. 그 시간이면 훨씬 창조적인 일에 매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안씨는 소아과병원 원장인 남편과 상의해서 결단을 내렸다. 하지만 아이들을 혼자 외국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인 안씨가 유학비자를 내고 아이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남편은 한국에 남아서 의사일을 계속하며 가족 뒷바라지를 하는 식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남편 김씨는 어떻게 이런 어려운 결정을 내렸느냐는 질문에 분명한 이유를 댔다. 첫째는 한국 교육이 너무 획일화되어,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워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학급수도 너무 많고, 학생 수에 견주어 교사 수도 적고, 질도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초등학교에 보내면서 촌지를 바라는 교사와 어머니의 학교 기여도에 따라 학생 등급이 가려지는 현실에 너무 실망했다고 한다. 공립 초등학교와 사립 초등학교를 번갈아서 보내 보았지만 이런 상황은 똑같더라는 것이다.

    김씨는 학교 주변환경도 지적했다. “학교 주변에 온갖 술집과 러브호텔이 꽉 차 있지 않은가. 이런 교육환경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떻게 나쁜 데 물들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한국 정치가와 공무원은 나쁜 환경에서 학생들을 지키려는 마음 자세가 없다.”

    그는 이어서 호주와 한국의 교육환경을 비교했다. “호주 시드니에도 유흥시설이 많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와 주택가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런 시설이 없다. 호주는 아예 어린 아이들이 이런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차단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공부를 시킨다고 말했다. 어릴 때에는 이런 교육보다도 사회 규범 교육, 도덕 교육이 중요한데, 성적 위주, 1등 위주의 교육으로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런 교육 환경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기 자식들이 이를 되풀이하는 것이 싫었다는 것이다.

    어머니 안씨는 교과서와 수업 내용 차이까지 거론했다. “한국의 산수 교과서는 한마디로 수학 경시대회용이다. 세계 평균 수준보다 너무 어렵고 시험 위주로 만들다 보니 아이들이 흥미를 잃기 십상이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 보니 수학 교과서가 너무 재미있고 쉽게 짜여 있다. 내용도 실생활과 연관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식이니 관심이 없는 학생들까지도 차츰 흥미를 느끼게 된다.”

    이 부부의 큰아들은 한국에서는 중학교 1학년이었으나 학기가 맞지 않아 시드니의 공립 초등학교 5학년에 편입했다. 김군이 속한 학급에는 학생이 30명이라고 한다. 시드니에 온 지 두 달쯤 된 김군은 “영어가 서툰 아시아 아이라고 해서 따돌리고 욕하는 아이는 전혀 없다. 잘 도와주고 같이 놀아준다. 호주는 좋은 점이 많다. 일단 한국처럼 서로 경쟁하듯 공부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김군은 본인이 원해 호주로 유학한 경우다.

    최근 들어 조기유학의 바람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유학 연령층도 갈수록 낮아져 이제는 초등학생으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실제로 98년 이후부터는 해외연수를 다녀온 초등학생이 크게 늘었으며, 이민이나 유학을 위해 자퇴하는 초등학생도 점점 불어나고 있다. 국회 교육위 소속 이재정 의원(민주당)은 최근 서울 강남구 등 6개구를 상대로 초등학생 해외 유학·연수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지난 겨울방학 중 해외연수를 다녀온 학생은 218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올 여름방학에는 1023명으로 늘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조기유학 서울강남에 집중

    이 자료에 따르면 해외연수를 위해 방학을 전후로 장기 결석을 한 학생도 98년 79명에서 99년에는 130명으로 늘었고, 올해는 9월 말 현재 198명이나 된다. 또 해외 연수 및 국제학교로 전학하기 위해 자퇴한 학생도 98년 179명, 99년 215명, 올 9월 말 현재 162명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물론 조기유학 열풍이 전국적인 현상은 아니다. 서울만 해도 강남지역의 학교들에서 이런 현상이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서울지역에서 올 여름방학중 해외연수를 한 초등학생 1023명 가운데 강남구(303명), 서초구(231명), 송파구(299명) 등 3개구에 사는 학생은 833명인 데 비해 구로구(69명), 금천구(55명), 도봉구(66명) 등 3개구에 사는 학생은 19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학생들의 해외연수 지역은 북미·호주 등 대부분 영어권이었다. 이는 대부분의 어학연수가 조기 영어교육을 위한 것이며, 조기 유학이나 국제학교로 편입하기 위한 준비단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부 외국어고교의 경우에는 고교 졸업과 동시에 외국대학으로 곧장 진학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이 학교들이 편성한 ‘유학반’이 바로 그것이다. 이 학급에서는 일반 학생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친다. 이는 대상 학생이 우수 학생이란 점에서 국내 명문대 합격을 최고로 여기는 학부모와 고교의 고정관념을 단숨에 깨뜨리는 것이다. 서울의 한 외국어고등학교의 ‘해외유학반’에서는 일주일에 4일 동안 방과 후 3시간씩 토플과 ‘SAT’를 가르친다.

    이 학급은 인성과 품성, 일정 정도 이상의 어학 능력과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뽑아 미국 하버드, 프린스턴 같은 아이비리그와 명문 주립대학 입학을 목표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 학교의 유학반이 인기를 끌자 서울의 또 다른 외국어고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학부모로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미국이 가장 인기

    현재 조기유학 대상국은 미국·캐나다·영국·호주 등 주로 영어권 국가들이다. 지원하는 나라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순이다. 미국은 한국의 조기 유학생이 가장 많이 몰리지만, 비용이 가장 많이 드는 나라다.

    미국의 학교는 크게 공립학교와 사립학교로 나뉜다. 공립학교는 국가나 주에서 지역주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학교이며 대부분 미국 학생들이 다닌다. 수업료는 없으며 학교 근처에 사는 가정의 자녀들이 통학하므로 기숙사 시설은 없다. 일부 극소수 학교를 빼고는 공립학교는 외국인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따라서 학생비자를 받기 위해 입학허가서(I-20)를 발행하지 않으므로 한국 유학생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또 현재 미국 이민법이 강화되면서 공립학교로 전학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영주권이 없는 한 사립학교를 보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유명 사립학교는 수업료가 지나치게 많은데도 미국 전 지역 또는 외국으로부터 학생을 모으고 있다. 사립학교는 외국학생에게 입학허가서를 발행하므로 한국학생들이 정식 학생 비자를 받고 유학할 수 있는 학교다. 기숙사를 갖춘 사립학교들은 ‘버딩스쿨(Boarding School)’이라고 하며, 대부분 대도시에서 떨어진 조용한 소도시에 자리잡고 있다. 이런 전원적인 분위기의 넓은 캠퍼스에서 풍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교사 대 학생 비율은 대개 1:6에서 1:12 정도로 매우 낮아 소규모 수업이 가능하다. 교사와 학생 관계가 밀접하므로 학생 개인에 맞는 교육을 할 수 있고 규율은 비교적 엄격한 편이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학비가 만만치 않다. 기숙사비를 포함한 경우 1년에 적게는 미화 2만 달러에서 2만5000달러 정도 든다. 또 미국에는 불법 체류자가 워낙 많기 때문에 공부가 끝나면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조건을 감당하지 못하면 미국에서 공부하지 못한다. 또 비자를 얻는 과정에 미국은 이런 조건을 면밀히 심사해서 자격 요건이 모자랄 경우 비자를 내주지 않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 외국인들은 원칙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사립학교만 갈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가 학생비자 신분으로 유학을 가거나, 영주권을 얻으면 자녀들에겐 학비가 무료인 공립학교에 갈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그래서 이를 편법으로 이용하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일선 유학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집에서 살림하던 어머니들이 자녀 조기유학을 위해 갑자기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미국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비자 거절률이 낮고, 학비도 미국보다 싸다. 또한 미국과는 달리 모든 학교는 아니지만 일부 공립학교에 입학하는 것도 가능하다. 캐나다에는 외국인을 유치하기 위해 공립학교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교육 프로그램인 ESL을 둔 곳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외국 유학생을 유치하려는 정책을 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조건이 미국보다는 유리하다.

    영국은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비자를 신청할 필요가 없다. 공항에서 입국 심사할 때 입학허가서, 여권, 체류지 주소, 학비 송금 영수증, 잔고 증명서 등을 영문으로 내면 즉석에서 학생비자를 발급해준다. 하지만 영국은 비용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미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 그래서 유학정보업체인 ‘지오넷’의 노유정 과장은 “조기유학 상담 대상국은 대부분 미국이며, 비용상 문제가 있거나 비자에 문제가 생기면 캐나다로 돌린다”고 말했다. 한편 호주와 뉴질랜드는 캐나다보다도 비용이 싸고, 그중 뉴질랜드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기유학 추세는 해가 갈수록 연령층이 낮아지는 추세다. 노과장에 따르면 IMF 이전에는 주로 고등학생이었고, 중학생이 가끔 있는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초등학생 중심으로 문의가 들어오고 심지어 유치원생까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97년 이전에는 아무래도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의사나 임대업자 같은 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 주로 조기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일반 봉급생활자 같은 서민층에까지 그 대상이 넓어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조기유학의 성공 요령에 대해 잘라 말한다. 한국에서 공부 잘하던 학생들은 외국에 나가서도 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적이 시원찮던 학생이 외국에 나간다고 해도 성공할 확률은 낮다. 외국 학교들도 나름대로 입학 심사기준을 갖고 있고, 공부 못하는 학생을 받는 학교는 역시 문제가 있는 학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변수가 있는데, 그건 바로 본인의 의사다. 영어에 흥미가 있고, 책임감이 강하며, 본인 희망이 강할 때는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조기유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 방침은 어떤가? 현행법상 자비유학 자격(국외유학에 관한 규정, 대통령령)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자, 예·체능계 중학교 졸업자로 학교장 추천을 받아 교육감 또는 교육장의 유학 인정을 받은 자’로 되어 있다. 그런 셈이니 초·중·고생 유학자는 대부분 불법이다. 하지만 앞에서 사례를 살펴본 바와 같이 이 규정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사문화된 규제 조치를 현실에 맞게끔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이는 조기유학을 규제하던 물리적인 장치인 병무청의 ‘국외유학 인정서’ 발급 조항이 지난해 8월 행정소송에서 패소하면서 더욱 거세졌다. 그래서 지난해 8월 규제개혁위원회는 자비유학 규제를 중졸 이상으로 완화하겠다며 이를 규제완화 권고대상에 올렸다. 이때부터 전면 완화할 것인지, 부분 완화할 것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정부는 이와 관련해서 전문가와 학부모, 시민단체를 모아놓고 공청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먼저 반대 의견을 보자.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김명신 사무국장은 제한을 없애자는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교육이 무너지는 마당에 이런 조치가 바람직하느냐는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그는 형평성 문제도 내세웠다. IMF 체제하에서 교육 재정이 점점 줄어 학교마다 겨울철 난방을 걱정하는데, 일부 계층이 막대한 비용을 쓰면서까지 유학을 보내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것이다. 그는 또 교육정책 실패로 우리 교육의 경쟁력이 극도로 떨어진 마당에 모든 것을 학부모 개별 몫으로 떠넘기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문제도 내세웠다.

    학부모들이 이런 견해를 갖는 데는 현재의 공교육과 교육정책에 대한 극심한 불신과 비판이 깔려 있다. 이들은 국내 교육 여건이 날이 갈수록 악화되는 것에 대해 교육부의 대책을 동시에 묻고 있다.

    ·Nbsp; 반면 찬성하는 측에서는 자식을 유학 보내든 안 보내든, 이는 학부모의 교육관과 판단에 따른 것이니만큼 이번 기회에 관련 조항을 현실에 맞게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자비 유학을 제한하던 방법인 병역 및 송금 제재가 정부가 원하는 만큼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가 편법으로 조기유학을 가는 마당에 더 이상 방치하기보다는 이번 기회에 양성화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사실 당국이 파악하고 있는 조기 유학생 수는 이미 1만 명을 넘어섰다. 그중에 10% 이상이 편법유학생이다. 하지만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편법유형도 다양하다. 일단 예·체능 공부 같은 방법으로 적법하게 유학을 떠난 뒤 분야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 외교관 혹은 상사 주재원 자녀로 나갔다가 부모가 귀국한 뒤에도 친지의 도움 등으로 눌러앉는 방법, 여행 목적으로 갔다가 눌러앉는 방식 등이 있다. 이런 방법 말고도 아예 자녀교육 때문에 부모가 이민을 가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오락가락하는 교육부

    이런 논쟁 끝에 정부는 99년 11월 유학관련 규제조치를 풀기로 하고 올 1월에서 2월 사이에 전면 완화 방침을 입법 예고했다. 하지만 지난 3월 무렵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 반대여론이 동아 61%, 중앙 56%로 훨씬 높게 나왔다. 이때부터 단계적 자율화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자율화 대원칙에는 찬성하나 중졸 이하로 내려가는 것은 대상자가 너무 어려서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런 학생들이 현지에서 탈법, 비행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과 함께 정부가 공교육을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비난까지 나왔다. 그래서 3월과 4월 사이에 유학정책 간담회가 열렸고, 또 국제화교육전문가협의회와 13개 시민단체 간담회도 열렸다. 그 결과 ‘규제 완화는 원칙적으로 찬성하되, 그 전에 공교육을 튼튼하게 만드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교육부는 ‘부분 완화’로 방침을 바꾸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고졸’ 이상을 ‘중졸’ 이상으로 낮춘 것이다. 이런 방침을 입법예고한 것이 지난 8월. 교육부는 이를 다시 규제개혁위원회에 올렸고, 현재는 법제처에서 심의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따라서 올 연말 정도에 ‘중졸’ 이상이면 자비유학을 허용한다는 법안을 공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오락가락하는 교육부 방침은 현실적으로 별 의미가 없어보인다. 규제 때문에 조기유학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드문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조기유학 열풍이 부는 원인은 무엇일까? 교육 전문가들과 일선 교사들은 모든 문제의 중심에 한국의 대학입시 제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학입시 때문에 중등교육이 파행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문제를 지적했는데 서울 중앙중학교 최용석 교사는 고교 교육이 파행으로 흐르는 것은 대학입시 문제를 내는 주체가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대학 교수라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런 실정이라 학생들은 학교 공부만 가지고는 대학 시험을 볼 수 없고, 과외나 학원 같은 사교육 기관을 찾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사교육비 증가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 아무개씨는 올해 초 가족들을 데리고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로 이민을 갔다. 중학교 3학년과 1학년인 자녀의 교육 문제 때문이었다. 자녀 둘을 학원에 보내고 나니 월급의 반이 나가더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는 적어도 사교육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한국을 떠나갔다.

    대학입시 제도가 원흉

    조기유학은 교육열이 높은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더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학생들의 의식이 과거와는 전혀 다른 탓이다. 서울 백운중학교 정윤혜 교사는 “요즘 아이들한테는 민족주의가 먹히지 않는다. 미국이나 호주로 아예 이민을 떠나더라도 내가 나라를 버리고 간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최용석 교사는 “서구식 합리주의가 이미 아이들 사이에 퍼져 있다. 과거 같은 집단주의식 교육은 맞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가 권위적으로 대하면 학생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재 조기유학을 떠나는 부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아예 한국 교육에 염증을 느끼고 초·중·고·대학까지 모두 선진국에서 공부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이민까지 염두에 두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한국보다 교육 시스템이 나은 곳에서 공부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외국어 습득뿐만 아니라 훨씬 경쟁력 있는 교육을 받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어릴 때 영어를 습득하기 위해 1∼2년 외국유학을 하겠다는 경우다.

    조기유학 바람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치다. 정부는 유명무실한 규제부터 풀어야겠지만, 하루빨리 조기유학에 대한 각종 정보를 제공하고 지도·조언할 수 있는 공공기구부터 설치해야 한다. 또 외국 현지 공관에 유학생 상담기구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이다. 조기유학은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이지만, 정부는 이것도 재외국민교육이라는 교육사업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또 조기유학 바람은 공교육의 부실로 인해 나타난 현상이므로 공교육을 바로 세워 학생과 학부모가 경제적 출혈을 감수하면서 조기유학을 가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또 조기유학을 영재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미래사회에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되려면 영재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물론 국내에서도 노력해야겠지만 여기서 제공할 수 없는 영재교육 프로그램은 외국에 가서라도 배울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 한국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었다. 조기유학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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