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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천문과 풍수 녹아든 녹색의 장원

전남 해남의 고산 윤선도 古宅

  • 조용헌 원광대 사회교육원 교수 cyh062@wonkwang.ac.kr

천문과 풍수 녹아든 녹색의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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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 고택의 특징은 청룡 백호 주작 현무라는 사신사가 이상적으로 구비되었다는 점에 있고, 이를 달리 표현한다면 ‘유교적 만다라’라 할 수 있다.

만다라는 티베트불교에서 우주의 총체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을 말한다. 기하학적인 도형과 무늬를 사용하여 우주의 삼라만상을 표현하고 있는 게 만다라다. 만다라를 한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내가 우주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주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주의 중심에 있다는 느낌은 완벽한 안정감을 준다. 완벽한 안정감이야말로 니르바나(열반)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만다라는 우주 중심에 있는 나를 불교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인도나 티베트가 아닌 한자문화권의 세계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 윤선도 고택을 조망하면서 유교적인 방식은 과연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유교적인 만다라가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아닐까 싶다.

이 사령(四靈)은 우주의 동서남북을 가리킨다. 우주의 동쪽 끝에는 청룡이 있고, 서쪽 끝에는 백호가 있고,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있다고 여긴다. 따라서 사령(사신사)이 둘러싼 한가운데에 집터를 잡는다는 것은 우주의 중심에 자리를 잡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아마도 유교적 만다라는 바로 풍수적 만다라이고, 풍수적 만다라는 자기를 둘러싼 동서남북의 산들, 즉 사신사가 완벽하게 집터를 둘러싼 형국이 해당된다. 이 안에 들어가 있으면 우주의 자궁 속에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이만한 터 같으면 경주의 불국사가 들어와 있어도 될 만한 자리다. 그런데 개인 집터가 자리잡고 있다. 불교가 성하던 고려시대 같았다면 절이 들어섰을 자리지만, 유교의 조선조가 들어서면서 유가 선비의 집이 된 것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불교에서 유교로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사찰이 들어설 터에 집이 들어섰고, 출세간적인 가치지향에서 입세간적인 가치지향으로 전환된 것이다.

불교는 집을 떠나서 사찰에 들어가 무아를 깨닫고자 하는 시스템이지만, 유교는 집을 떠나지 않고 집안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불교의 중심이 사찰에 있다면, 유교의 중심은 집(家)이다. 삶과 문화의 단위가 집을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유교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집이라는 곳은 밥 먹고 잠이나 자는 거주공간만이 아니라 거경궁리(居敬窮理)라는 유교적 수양을 실천하는 성스러운 공간인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데나 집터를 잡을 수 없다. 성스러운 장소에 잡아야 한다.

유교적 성스러움을 확보하기 위한 조건 중의 하나는 사신사라는 풍수적 장치가 조화를 이룬 곳이다. 불교를 극복하고 유교로 넘어온 조선시대 선비들은 양택(陽宅)을 이런 각도에서 생각하였고, 녹우당은 그러한 유교적 성스러움을 전형적으로 갖춘 집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늘에 기원 둔 풍수론

한편으로 풍수에서 말하는 사령(청룡 백호 주작 현무)은 그 근원이 땅에 있는 게 아니라 하늘에 있다. 유교적 만다라의 근원도 하늘에 있다. 사령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늘을 연구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래서 ‘도의 근원은 하늘에서 나온다(道之大原 出於天)’라는 말이 하늘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절절하게 다가온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천(天)의 개념은 인격적인 상제나 하느님이 아니다. 천의 개념은 다름 아닌 천문(天文)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동양고전에 해박한 오초(吾超) 황안웅(黃安雄) 선생의 견해다. 그러므로 천문을 연구하지 않고는 지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고들 말한다.

동양의 고천문학(古天文學)에서 특별하게 생각하는 별자리는 황도대에 걸쳐 있는 이십팔수(二十八宿)와 북두칠성(北斗七星)이다. 하늘의 둥그런 원이 이십팔수이고, 이 이십팔수를 북두칠성이 마치 시계바늘처럼 돌아가며 가리킨다. 이십팔수가 손목시계의 둥그런 원이라면, 칠성은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바늘 역할을 한다. 손목시계는 12개(12시)의 눈금이 있지만 하늘의 시계에서는 28개(28시)의 눈금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 시간이 몇시인가를 알려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아야 하지만, 지금 우주시(宇宙時)는 몇시인가를 알려면 이십팔수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하늘의 가장자리 둘레인 이십팔수는 크게 동서남북 4개의 구획으로 나뉜다. 하늘의 동쪽에 28수 중 7개의 별이 배당되고, 나머지 서쪽·남쪽·북쪽에도 각기 7개가 배당된다.

먼저 동쪽에 있는 7개의 별 이름은 각(角) 항(亢) 저() 방(房) 심(心) 미(尾) 기(箕)이며, 별자리 전체 모습을 용의 모습에 비유해 청룡이라 한다. 이를 테면 각은 용의 뿔에 해당하고, 항은 용의 목, 저는 가슴, 방은 배, 심은 엉덩이, 미는 꼬리끝이라고 본다.

그런데 1세기경에 성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전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용에 대해 ‘춘분날 하늘로 올라가 추분이 되면 연못에 잠긴다(春分而登天 秋分而潛淵)’고 하고 있다. 정말 용이 존재해서 춘분날 하늘로 올라가는가? 이는 실제 용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별을 가리키는 말이다. 정확하게는 동방의 7별(각·항·저·방·심·미·기)인 청룡이 춘분날 하늘에 올라가서 추분날 내려오는 것이다.

“춘분날부터 매일 저녁 6시부터 1도씩 높이 솟아오르던 용은 약 3개월 만에 자신의 전모를 완전히 드러내게 된다. 하짓날 저녁 6시, 아직 여름 해가 서산마루로 떨어지지 않았을 뿐 점차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에 각항저방심미기의 용의 자태가 그 머리는 드높은 남쪽하늘 위에 두고 꼬리는 동쪽의 산등성이까지 서서히 그 장대한 모습을 번쩍이는 비늘과 함께 드러낸다. 그후 다시 3개월후 추분날 저녁 6시. 지는 해를 따라 서산 마루에는 용의 대가리가 마치 떨어지는 해를 잡아먹을 듯 부지런히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음양오행으로 가는 길’)

마찬가지로 서쪽의 별자리 이름은 규(奎) 루(蔞) 위(胃) 묘(昴) 필(畢) 자() 삼(參)인데, 그 모습을 호랑이에 비유해 백호라고 여긴다. 남쪽은 정(井) 귀(鬼) 유(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으로 공작의 모습에 비유해 주작이라고 한다. 북쪽은 두(斗) 우(牛) 여(女) 허(虛) 위(危) 실(室) 벽(壁)으로 거북의 모습에 비유해 현무라고 여긴다.

이 동서남북 가운데에는 하늘의 중심인 자미원(紫微垣)이 자리잡고 있다. 옛날 선비들은 28수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각항저방심미기 두우여허위실벽 규루위묘…” 이렇게 외우면 복이 온다고 여길 만큼 많이 암송했다.

이처럼 풍수에서 중시하는 사신사는 하늘의 천문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하늘의 별자리에 있는 4마리의 동물이 땅에 내려온 것이 사신사인 것이다. 따라서 사신사의 풍수적 의미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땅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고, 천문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이다.

천문을 관측한 윤선도

녹우당의 주인이었던 윤선도나 윤두서가 천문에 대해 전문가적 식견을 지니고 있었다는 징후는 여러 곳에서 포착된다. 먼저 윤선도를 보자. 그는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귀향하면서 ‘남귀행기(南歸記行)’라는 시를 남긴 바 있다. 그 첫 단락이 이렇다.

‘만력 39년에/ 북두칠성의 두병(斗柄, 손잡이)이 자방(子方)을 가리키는 7일이라/ 거문고를 수선하고 약을 구입했으니 내 일은 마쳤구나/ 멀리 부모 계신 곳 그리며 해남으로 향하네(萬歷紀年三十九 斗柄揷子日有七 修琴賣藥吾事畢 遙念庭 向南國)’.

여기서 ‘두병삽자일유칠(斗柄揷子日有七)’이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고산이 밤 하늘의 북두칠성 움직임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두병(斗柄)이란 북두칠성의 손잡이 부분을 가리키는데, 정확하게는 북두칠성의 7개 별 중 제6번째 별(武曲星)과 제7번째 별(破軍星)로 이어지는 부분을 말한다. 이 부분을 시침(時針)이라고 한다. 시계바늘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를 들면 입춘날 저녁 술시(戌時, 저녁 7~9시)에 북두칠성의 두병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면 정확히 패철상의 인방(寅方)을 가리킨다. 인방은 음력 1월이다. 북두칠성이 가리키기 때문에 정월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산이 밤하늘을 쳐다보는 바로 그 날에는 북두칠성의 시침(두병)이 자방(子方, 정북쪽)에 꽂혀 있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산이 서울을 출발하던 그 날 시침이 정북쪽을 가리키는 날이었던 것이다. 이 표현은 고산이 서울을 떠나 해남으로 출발하는 날짜를 표시하기 위한 용도였다. 시(詩)에다 적어놓을 정도로 보아서 고산이 평소에도 천문의 흐름을 유심히 관찰하는 습관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우주시가 몇시인가를 알아야 인간세계에서 돌아가는 역사시(歷史時)를 알 수 있다는 관점이 동양 고천문학자(古天文學者)들의 세계관이다. 우주시와 역사시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는 사고, 즉 천문현상과 인간의 삶이 서로 연관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는 천인상관적(天人相關的) 사상이 고천문학인 것이다.

윤선도뿐만 아니라 윤두서도 천문에 깊은 조예가 있었던 듯싶다. 윤선도 고택에는 유물전시관이 별도로 마련돼 있는데, 고산과 공재가 보았던 많은 장서들이 눈을 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나의 관심을 끄는 책은 34번으로 분류되어 있는 ‘관규집요(管窺集要)’ 25권이다. 유물 전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한 순간 나는 약간의 현기증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반가움이 겹쳤다.

나는 몇년 전부터 고천문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분야에 조예가 깊다는 여러 선생님들을 찾아 이 골짜기, 저 골짜기 자문을 구하고 다녔다. 한국에서 천문에 관한 계보는 서경덕(徐敬德)-이토정(李土亭)-이서구(李書九)-이운규(李雲奎)-김일부(金一夫)로 이어져 내려왔는데, 근래에 오면서 그 맥이 희미해졌다. 제도권 대학에서는 고천문학이 거의 실전(失傳)되다시피하는 바람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재야에는 간혹 사람이 있었다. 그 분들에게 과연 어떤 책을 보아야만 고천문학을 이해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을 때 바로 ‘관규집요’라는 책을 보라고 했다.

이 책은 총 73권 분량으로 청나라 때 저술된 책이다. 28수와 북두칠성 그리고 오성(五星)의 운행에 관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데, 동양 고천문학 서적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면서도 깊이가 있는 책이라고 한다. 사실 이 책 제목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재야에 계신 극소수의 천문 전문가만 아는 책인데, 바로 이 책이 윤선도 고택에 비치되어 있었다니 놀라울 뿐이다.

‘관규집요’는 윤두서가 보던 책인데, 그가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책을 구입할 수 있었을까도 궁금하다.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비싼 책이었을 뿐만 아니라 구입하는 경로도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정도 수준의 천문서를 독파했던 윤두서의 학문 경계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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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원광대 사회교육원 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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