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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논단|가까워진 북한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이질성의 포용’이 북한 변화 이끈다

  • 황태연

‘이질성의 포용’이 북한 변화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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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북한은 공식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다. 그러나 그것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사회정의와 함께 신봉하는 서유럽의 사회주의도 아니고 카를 마르크스나 레닌이 말년에 그린 사회주의도 아니다.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근간은 스탈린주의다.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형제국들이 스탈린주의로부터 이탈하자 이들에 대해 차별성을 보이며 전통적인 스탈린주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교리인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배급제 사회주의, 폭력혁명론, 노농독재론, 평화공존 반대, 혁명무력 중시, 혁명적 군사주의 요소(항일유격대, 천리마운동 등 군사동원형의 동원체제, 선군정치), 유일당체제, 국명(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선명히 반영된 인민(또는 통일)전선론 및 민족혁명우선론, 개인숭배, 자유주의에 대한 적대 등은 그대로 과거 스탈린주의와 일치한다.

그러나 오늘날 배급제는 경제난으로 붕괴되거나 재난구제 기능으로 변형되었고 폭력혁명론, 노농독재, 평화공존 반대론도 세계의 혁명적 진운의 퇴조, 남한·미국·일본과의 화해과정 등으로 정치무대에서 급격히 퇴장하고 있다. 다만 혁명적 군사주의 요소는 1990년대 체제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내세운 김정일위원장의 선군정치론(先軍政治論)으로 변형, 계승되는 한편, 유일당·유일사상·개인숭배, 반(反)자유주의 등은 그대로 견지되고 있다.

그러나 김일성주의는 스탈린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이것과 근본적으로 다른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일찍이 북한은 정통사회주의론 및 스탈린주의의 몇몇 명제를 부정하고 독자적인 입장을 내세워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첫째 노농독재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농민을 이끌 인텔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농민·인텔리의 삼위일체론을 내세워왔다. 이것은 낫과 망치를 양옆으로 하고 가운데 펜대를 위치시킨 북한의 국장(國章)에 잘 표현되어 있다. 이 덕택에 스탈린주의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창궐한 반(反)지식인주의가 북한에서는 전쟁 이후 소멸하였다. 이 인텔리 중시 계급정책은 전통적인 자식교육열과 접맥, 북한주민의 교육수준을 높이 끌어올리는 한편, 이를 통해 이념교육에 철저를 기하여 체제안정을 다질 수 있었다.

둘째로 중요한 김일성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차이는 유물론의 한계를 비판하는 주체사상이다. 사회주의 국가 중에 북한은 물질에 대해 사상성과 의식성의 우위를 주장하는 주체사상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는 점에서도 독특하다.



주체사상은 주체개념을 위계화하여 김일성체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했고 또 오늘날은 김정일체제를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인민, 민족, 계급 등 집단적 주체는 개인주체보다 더 중요하고 다시 노동자·농민의 정치조직인 노동당은 정치적 사상과 행동에서 민족, 인민, 계급보다 더 중요하고 이 당을 대표하고 지도하는 수령은 가장 중요하다.

김일성주의와 스탈린주의의 세 번째 차이는 개인숭배를 뛰어넘는 수령론이다. 수령론은 주체사상의 필연적인 귀착점이다. 스탈린의 개인숭배가 하나의 정치풍조에 불과했던 반면, 수령론은 주체사상에 따라 수령이 북한주민과 조선민족 전체를 이끄는 최고뇌수라는 논리로 정당화되는 권력체제론이다. 이 수령론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도 떼어놓을 수 있는 북한의 독자적인 논리다. 따라서 북한은 수령론을 정치의 중심에 놓는 순간 이론상으로 민족의 ‘최고뇌수이신’ 수령이 원하면 순수 스탈린체제로도 복귀할 수 있고 중국식 체제로도, 아니 서구 사회주의로도 나아갈 수 있고 자본주의로도 나아갈 수 있다. 북한이 사상적 혼란이나 동요 없이 ‘제국주의 원쑤’인 미국과 갑자기 관계정상화를 추진하는 것도 다 이 수령론의 ‘위력’이다. 새로운 수령인 김정일위원장이 결심하면 되는 것이다.



‘수령론’의 위력

북한은 오늘날 사회주의체제 요소보다 수령론이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북한의 변화 가능성 논쟁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다. 더구나 수령론은 이론적 차원에서 대중적 차원으로 넘어오면 신정체제로 철갑화된다. 대중은 마치 김일성 주석을 ‘하나님’으로, 김정일 위원장은 ‘예수님’으로 받아들인다. “김일성 주석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결사옹위” 구호는 이를 잘 나타내 준다. 백두산 항일유격대 시절 신출귀몰했던 이야기, 김정일 위원장의 백두산 밀영(密營) 탄생신화와 우뚝 솟은 정일봉, 장군님에 대한 김정숙 동지의 순수한 사랑과 애국심 이야기, 항일전적지 순례 및 김정숙 동지와 유격대원들이 적어놓았다는 구호목(口號木) 순례 등은 수령론을 대중적 차원에서 관철시키는 신화 기제(機制)들이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 인민 개개인의 인생관과 인생목적은 기독교 신도들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과의 합일인 것과 유사하게 수령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과 효도로 정의된다.

항일 혁명신화와 결부된 수령론의 대중적 관철은 예기치 않은 사회제도도 낳았다. 신격화된 수령과 신비화된 혁명영웅들은 인민대중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고 물질적 생활을 확보해 주는 은인들이자 대중이 ‘탈(脫)주술화된’ 근대사회에서 허무주의에 빠져드는 것을 막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보장해주는 신성한 존재들이다. 늘 공개무대에 등장하여 말로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서구와 한국의 정치지도자들과는 정반대로 수령은 공개무대에 서지 않고 말을 아끼며 사생활을 철저히 가린 채 현지지도를 통해 전격적으로 현신(現身)하여 대중의 외경과 감탄을 자아낸다. 수령은 단 한 번의 악수로도, 아니 단 한 번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도 대중에게 삶의 의미를 충만케 하여 은총을 베푸는 초(超)현세적 ‘카리스마’다. 이 맥락에서 ‘김일성민족’ ‘김정일민족’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혁명적 영웅들도 수령보다는 서열이 낮지만 한없는 충성을 통해 수령의 권위를 일부분 향유하며 대중에 대한 지도력을 행사한다. 북한사회의 서열은 수령, 혁명영웅, 당지식인, 일반지식인, 노동자, 농민 순으로 짜여 있다. 이런 이유에서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이 신분적 서열은 강력히 잔존한다. 교수 및 외교관 출신은 노동자·농민 출신 귀순자들과 동석시키는 것을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한편, 후자는 여전히 전자에게 깍듯하기만 하다.

현대사회에서, 실존하는 신적인 수령 및 신화적 혁명영웅이라는 특수신분과 대중신분으로 양분된 사회는 사실상 새로운 형태로 재건된 신분제 사회다. 이것은 북한당국이 예상하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나 수령론을 경로로 하여 의도치 않게 이룩된 현실적 사회제도다.

이런 신분제 국가에서 가부장제의 강력한 잔존은 자연스런 것이다. 신분의 세습은 남성의 혈통을 따르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는 남한보다 낮고 거기서 남자나 남편이라는 것은 마치 일종의 ‘벼슬’과 같은 것이다. ‘이혼’이라는 말은 북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혈통신화에 대한 믿음은 북한이데올로기의 또 다른 기둥인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한 북한의 열정을 설명해 준다. 계급혁명에 대한 반제 민족혁명 우선주의에서 유래한 민족주의는 신분제국가 요소와 접맥하면서, 한편으로 북의 전통적인 반외세 자주 노선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단군릉 발굴 등을 통한 혈통신화의 부활을 가져왔다. 남한 및 미국과의 화해 과정에 모순에 처한 ‘반외세 자주’의 이 배타적 민족주의가 수정될지 아니면 위기요소로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은 무한한 관광자원을 가진 훌륭한 자연관광지인 동시에, 이와 같이 다양한 정치이념적 요소들이 복합된, 21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정치관광지’인 셈이다.



한국·미국의 태도 변화가 북한 변화 이끈다

북한의 스탈린식 사회주의는 무력화되고 있고 또 20세기 말의 역사적 진운(進運)을 되돌아볼 때 그 미래는 없다. 따라서 북한은 이 사회주의 체제요소, 특히 경제적 측면의 사회주의 요소를 약화시키고 새 기제를 창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사회주의를 버리고도 국가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수령체제는 이론적으로 사회주의체제와 별개의 것이다. 수령체제가 북한 정치이데올로기에 가장 중요한 지위를 차지할 뿐 아니라 정치이데올로기의 핵심을 차지하면 수령체제와 사회주의체제는 동요 없이 현실적으로도 분리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김정일 위원장의 권력체제만 안전하다면 북한의 스탈린 사회주의는 어렵지 않게 퇴장할 수 있다. 다음 김정일체제의 운명은 역사의 문제다.

바꿔 말하면 원칙적으로 북한은 일정한 조건하에서 임의적인 방향으로 변화, 발전할 수 있다. 그 조건은 우리도 변하고 미국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대외적 환경인 우리와 미국이 포용과 화해의 방향으로 먼저 변하지 않아 북한의 체제안보가 불안하면 북한은 어떤 변화도 시도할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이 보여주는 최근의 변화는 남한과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중기적으로 이 변화도 차별화되어야 한다. 사회주의체제의 변화와 김정일체제의 변화는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김정일체제가 조금이라도 동요하거나 훼손되는 차원에서는 당분간 미동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 유도는 남한 사람들이 그 동안 가장 두렵게 생각해온 스탈린주의 체제의 퇴출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김정일을 ‘독재자’로, 김정일 체제를 ‘독재체제’로 공격하는 일부 남한 인사들은 북한의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지금 북한은 전술적 변화냐 전략적 변화냐 하는 물음과 관계없이 변하고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개혁해야 하고 정보화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이것에 실패하면 북한은 머지 않아 자체 붕괴되고 말 것이다. (이럴 경우 그 정치적·사회적·경제적 부담은 몽땅 한국이 떠맡아야 할 것이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고 따라서 커다란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냉전세력이 북한의 현재 변화가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다고 규정할수록 북한의 변화 입지는 좁아지고 반대로 전략적 변화의 환경을 조성하려는 포용정책이 힘을 얻을수록 북한의 변화시도에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다.

요약하면 지금 시점에서 변화의 가능성과 폭은 북한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여론 흐름과 정치적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진보와 수구세력 간의 논쟁이 북한의 제도와 의도분석에만 치우쳐서는 얼마간 부질없는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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