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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과 권력

  • 조성식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주먹과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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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교도소에서 마음을 잡아 출소 후 주먹계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두 아들을 모두 서울대에 진학시켰으며, 현재 일본에 거주한다.

이육O씨가 구속되기 전 청와대에는 이씨가 호남 출신 검사들과 유착됐다는 진정서가 접수됐다. 청와대는 이를 검찰로 넘겼다.

그런데 이 진정서에는 이씨와 친분이 있다는 호남 출신 검사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검찰 고위직을 지낸 K변호사, 정치권에 몸담은 P씨, 그리고 현직 검찰 고위간부 P씨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씨와 검사들의 친분을 ‘일상적인’ 수준으로 보고 ‘없던 일’로 처리했다.

이중 한 명은 ‘이용호 게이트’에서도 이름이 등장했다. 현재 주먹계에는 검사장급 K씨, S씨가 주먹들과 친분이 깊다고 소문나 있다.

호남주먹의 또다른 축인 전북 주먹의 대표주자는 전주 출신 이승O씨다. 중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전주고 재학 시절 전국대회를 휩쓸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이씨는 일찍이 사업가로 나서 1970년대 중반 서울 동대문에서 주류도매상을 경영해 큰돈을 벌었다. 호남주먹들의 후견인으로서 1970년대 후반 ‘전쟁’을 벌이는 조양은씨와 김태촌씨의 화해를 중재하기도 했다.



이씨는 5공 정치폭력의 상징인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폭력사건(1987년 4월)에 깊숙이 개입했다. 신민당 이택돈 의원과 이택희 의원과 연계해 폭력배 50여 명을 동원해 6곳의 지구당 창당을 방해한 혐의다. 1990년 3월 검거돼 폭행 등의 혐의로 징역 1년6월형이 선고됐다. 1987년 7월엔 우익청년연합단체 호청련을 결성했다.

이 단체는 안기부에서 자금을 지원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재단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돼 집행유예를 받은 이씨는 현재 모 스포츠협회 고위직을 맡고 있다.

주먹사회에도 상류층이 있다. 이들은 조직을 이끌거나 부하를 거느리지 않는다. 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람을 동원할 수 있다. 조직의 두목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은 오랜 세월 주먹계에서 쌓아온 명성과 권력과의 친분, 그리고 돈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이름은 전국 어디서나 통한다. 수십억원대의 재산을 갖고 있으며 전화 한통으로 권력층을 움직일 수 있다.

앞서 소개한 호남주먹계 대부들 중에도 상류층 주먹이라 할 만한 사람이 몇 명 있다. 비호남 주먹 중에는 김아무개씨가 꼽힌다. 김씨는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주먹계를 대표한 신상사파의 실세로 통했다. 박정희 대통령 조카뻘에 해당하는 한아무개씨와 의형제 사이.

뿌리 깊은 상류층 주먹

1975년 1월 호남주먹의 ‘기린아’ 조양은씨로부터 사보이호텔에서 기습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주먹계 표면에서는 사라졌지만 막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권력기관과의 친분이 힘의 원천이다. 목포 주먹계 거물인 강아무개씨와 친하다.

1993년 슬롯머신사건 당시 ‘한국판 마피아’라는 별명으로 신문지면을 장식했던 정덕진씨도 이 부류에 낀다. 주먹계 주변에서 정씨만큼 돈이 많은 사람도 없다. 일찍이 파친코업계에 진출해 ‘돈을 쓸어 담은’ 그는 1000억원대 재산가다. 동생 덕일씨의 재산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다.

이북 출신인 정씨는 평소 권력층에 줄을 대 놓았는데, 슬롯머신사건 당시 안기부 기조실장을 지낸 엄삼탁씨, 이건개 대전고검장, 박철언 의원 등이 그와의 관계가 문제가 돼 사법처리됐다.

도박광인 정씨는 1998년 외환관리법위반과 상습도박 혐의로 재구속됐다. 37억 여원을 해외로 빼돌려 카지노 도박자금으로 쓴 혐의였다. 지난해 출소했는데, 얼마 전 “한국이 싫다”며 미국 이민길에 올랐다.

영등포 일대가 기반인 이아무개씨도 상류층 주먹으로 볼 만하다. 재산은 조금 못 미치지만 주먹계에서는 실세로 통한다. 역시 권력기관과의 친분에서 비롯된 힘이다. 고 조아무개 의원과 아주 가까웠다. 정덕진씨에게 미국 투자이민이 허가되도록 힘을 썼으며 수감중인 주먹계 거물 K씨의 편의도 봐주고 있다.

지방에 있는 호남주먹은 서울로 진출한 주먹보다 한 수 아래로 치는 경향이 있다. ‘이용호 게이트’가 ‘여운환 게이트’로 옮겨가자 일부 언론은 여운환씨를 호남주먹계의 대부로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과장된 표현이다.

1992년 홍준표 검사(현 한나라당 동대문을 지구당위원장)가 광주지검에서 여씨를 구속할 때 너무 요란스러웠던 탓에 여씨가 마치 주먹계 거물인 것처럼 일반에 인식됐지만 실은 ‘광주에서 힘이 센 정도’다.

여씨와 친분이 있는 유력인사들도 그를 ‘거물 주먹’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구속 당시 조아무개 의원을 비롯한 이 지역 출신 야당의원 3∼4명이 정구영 검찰총장을 방문해 여씨 구속에 항의했다. 검찰 내에서도 여씨를 옹호하는 사람이 몇 있었다. 이와 관련, 홍씨는 “당시 검찰 고위관계자인 S씨도 여씨를 수사하는 데 애를 먹였다”고 말했다.

홍씨는 또 “거물급 로비스트인 O씨의 구명로비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O씨는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마당발’로 통한다. 타고난 사업수완과 친화력으로 역대 정권 실력자들과 교분을 쌓아 왔다. 전직 검찰총장 J씨, K씨 등과 절친하다.

광주 주먹이 부각된 것은 주먹계에 3대 패밀리 시대가 열린 후다. 공교롭게도 3대 패밀리의 두목이 모두 광주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3대 패밀리가 와해되고 ‘잘 나가는’ 주먹들이 교도소에 들어간 후 광주 주먹계는 특별한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그 와중에 성장한 조직이 바로 여운환씨가 관련된 국제PJ파다.

주먹계에서 여운환은 싸움꾼이라기보다 ‘머리 좋은 주먹’으로 인식돼 있다.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당대 주먹’으로 날렸던 O씨는 “내가 활동할 때만 해도 여운환이라는 이름은 쳐주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여씨는 운이 좋은 사람”이라며 “야문 주먹들이 다 (감옥에) 들어가고 난 후 갑자기 거물이 됐다”고 말했다.

주먹 출신 사업가 B씨는 “여운환이라는 이름이 주먹계에 알려진 것은 이강O을 따라 일본에 갔다온 이후”라고 말했다(여씨는 1988년 부산 칠성파 두목 이강O씨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야쿠자 조직과 의형제 결연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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