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섬진강은 상류라서 그런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지나갈 수 있는 개울같았다. 봄이 되면 이 편안한 강물에 건너 산에 핀 산벚꽃과 산복숭아꽃이 어린다. 경치 중에서 최고가 직접 보는 것보다 물에 비친 그림자 경치라고 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면, 교교한 달빛에 산그림자가 내리고 강물이 더욱 빛난다. 달이 지고 새벽이 오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겨울날 이 강물은 경운기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꽁꽁 얼고, 그 위에 흰눈이 내린다니, 이 모든 광경을 고향집 마루에 앉아서 감상하는 김용택 시인은 얼마나 행복할까?
섬진강이 없었다면 그의 시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평생동안 이 강을 떠나지 않았다. 고향집에서 덕치초등학교까지 난 강길을 초등학교 6년 동안, 어른이 된 뒤에도 모교에서 교사 생활 26년을 하면서 걸어다녔다. 이 강길에서 자연을 배우고 생각을 키우고 생각을 버렸다.
섬진강 다슬기로 끓인 수제비탕을 그는 ‘이 세상에서 그와 가장 오래 살아 그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해 주는, 그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제일 신뢰하고 제일 사랑하는, 삶이 아름다운 그의 어머니’와 같이 만들었다. 그의 어머니 박덕선(74) 여사는 간장과 고추장으로 유명한 전북 순창 출신이다. 이 마을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순창이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에서는 박여사의 장맛과 된장맛이 최고라고 한다. 장맛과 된장맛이 좋으니 음식맛도 훌륭할 수밖에 없다. 시골 인심이 그렇지만 그의 집도 인심이 후하다. 식사 때 집 앞을 지나는 이웃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불러서 같이 먹는다. 박여사의 음식맛이 하도 좋아, 일부러 이 집 앞을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어머니 박덕선 여사의 조리법을 옮기면 이렇다. 다슬기를 섬진강에서 잡아 껍질에 붙은 물이끼를 깨끗이 손으로 씻어낸다. 그 뒤 반나절 정도 물에 담가놓으면 다슬기가 모래 같은 불순물을 모두 토해낸다. 해감시킨 다슬기를 펄펄 끓인 물에 살짝 데쳐낸다. 데친 다슬기는 오목하게 홈이 패인 돌확(돌절구로 생각하면 됨)에 붓고, 돌로 으깬다. 데친 다슬기는 살살 비비기만 해도 살이 껍질에서 나온다. 이렇게 부순 다슬기 껍질과 살에 물을 붓고 쌀 씻듯 조리로 살살 일면 껍질 부스러기와 살을 분리할 수 있다. 살만 분리해 물을 붓고 펄펄 끓이면, 뽀얀 녹색 국물이 우러나는 다슬기국이 된다.
술꾼들은 무럭무럭 김이 나는 이 녹색국물의 냄새만 맡아도, 숙취를 없애는 데 최고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국물이 나오면 밀가루 반죽을 하나씩 뜯어 넣어 푹 익히고 호박과 푸른고추, 붉은고추를 채썰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뒤, 수제비가 끓을 때 넣고 잠시 후 불을 끄면 된다. 이 다슬기수제비탕에 들어간 양념은 조선간장 단 한 가지뿐이다. 호박과 고추를 채썰어 놓고 여기에 간장을 슬슬 뿌려 간을 한 것이다. 가장 단순한 양념인데 그 맛이 어찌나 일품인지,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김용택 시인의 고향 사람들은 다슬기국을 초여름부터 시작하여 여름 내내 먹는다. 이 다슬기국만 있으면 아무런 반찬 없이 여름날 보리밥 몇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는 것이다. 여름내 다슬기국에 보리밥을 말아먹다가, 가을추수 뒤 햅쌀밥과 먹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고 한다. 더구나 가을다슬기는 겨울을 나려고 살이 통통하게 올라 맛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