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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器의 세계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하고 과르니에리는 강간하라

  • 남효정 < 월간 '스트라드' 편집장 > hcnam@eumyoun.com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하고 과르니에리는 강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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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는 외형과 음색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연주자들은 두 악기를 모두 연주하고 싶어한다. 그만큼 개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태인 연주자들의 대부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아이작 스턴은 그 차이를 이렇듯 극명하게 비유했다.

“스트라디바리는 사랑해야 하지만 과르니에리는 강간해야 한다.”

일반인이 두 악기를 구별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뒤판을 보면 스트라디바리는 한 조각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과르니에리의 경우 두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또한 악기의 내부를 보면 스트라디바리는 섬세하게 조각되고 다듬어진 반면 과르니에리는 거칠게 손질돼 끌 자국이나 미처 다 다듬지 않은 듯한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외형은 음색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명연주자들은 초기에는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하다 말년에 가서는 과르니에리를 더 좋아하게 된다고 한다.

두 악기의 차이를 한마디로 줄이면 ‘스트라디바리는 여성적, 과르니에리는 남성적’이라는 것. 얼마전까지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니에리를 함께 사용하다 최근에는 과르니에리만 고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나 얼마나 소중하고 탐나는 악기인가. 그 정도의 악기라면 소리를 끌어내는 것은 연주자의 몫이다. 그러나 스트라디바리는 아무리 슬퍼도 너무 고고해서 차마 눈물을 보이지 못하는 귀족이라면, 과르니에리는 울고 싶을 때 땅바닥에 탁 퍼져 앉아서 통곡할 수 있는 솔직하고 겸손한 농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은 과르니에리로 자주 연주한다. 인생의 맛이 묻어 있다고나 할까….”



동아 국제콩쿠르 우승,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 3위, 쿠세비츠키 콩쿠르 2위, 파가니니 콩쿠르 3위 등 화려한 입상경력을 갖고 있고 최근에 열린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롱-티보 콩쿠르에서 결선에 진출한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도 비슷한 얘기를 들려줬다.

“스트라디바리는 악기가 이미 갖고 있는 완벽한 음색에 나를 맞춰가야 하지만, 과르니에리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 있다. 과르니에리는 성장(盛裝)했으되 편안하게 느껴지는 옷과도 같다.”

올해 탄생 100주기를 맞는 20세기의 대표적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도 처음으로 사용한 명기는 1734년작 스트라디바리였으나 최후까지 사용한 바이올린은 ‘과르니에리 델 제수 다비트’였다(이 바이올린의 첫 소유주는 브람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드 다비트다). 이 악기는 1922년에 3만달러를 주고 산 것인데, 그의 사후 유언에 따라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드 영 박물관에 기증됐다. 그의 유언장에는 “이 바이올린은 특별한 경우에 그만한 가치를 지닌 연주자가 연주해야 된다”고 쓰여 있다.

‘악마의 혼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가 죽는 날까지 사용했던 ‘과르니에리 델 제수 캐논’은 “영구히 제노바시(市)에 바친다”는 그의 유언에 따라 현재 제노바의 박물관에 보존돼 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연주자에게 부상으로 이 악기를 연주할 기회가 주어진다. 또한 최고의 스트라디바리로 치는 1716년작 ‘스트라디바리 메시아’는 영국의 애시몰리안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모든 연주자들이 과르니에리를 선호한 것은 아니다. 과르니에리는 워낙 유명한 술꾼이었기 때문에 그가 만든 악기의 질도 천차만별이라는 게 많은 연주자와 제작자, 악기 딜러들의 얘기다. 20세기의 거장들 중 과르니에리를 좋아한 연주자로는 아르튀르 그리뮈오, 야샤 하이페츠, 레오니트 코간, 루지에로 리치, 아이작 스턴, 핑커스 주커만 등이 있으며, 스트라디바리를 선호한 연주자로는 살바토레 아카르도, 예후디 메뉴인, 나탄 밀스타인, 초량 린, 이츠하크 펄먼, 기돈 크레메르 등이 있다.

한편 첼리스트들은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니에리보다 먼저 제작된 베니스학파 악기들을 선호한다. 마테오 고프릴러나 그의 제자인 도메니코 몬타냐나의 악기가 그것인데, 악기가 커서 연주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만큼 깊이 있고 중량감 있는 음색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택시에 두고 내린 52억짜리 첼로

영국의 유명한 악기 딜러 찰스 비어에 따르면 헨릭 셰링이나 루지에로 리치가 활동하던 때만 해도 많은 연주자들이 서너 대씩의 악기를 갖고 있었을 만큼 악기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투기꾼 성향의 악기 경매상들이 가격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서 악기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그간 연주자의 급여가 30배 정도 오른 데 비해 악기 가격은 100∼150배나 뛰었다고 한다.

러시아 출신의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의 악기는 1700년경에 제작된 ‘몬타냐나’인데, 그가 1995년 내한 공연 당시 밝힌 악기 가격은 24억원이었다. 지난 5월 영국의 첼리스트 린 하렐이 택시 트렁크에 두고 내린 1673년작 스트라디바리는 10년 전에 집을 팔아 구입한 400만달러(약 52억원)짜리 악기다.

그렇다면 국내 연주자들은 어떤 악기를 갖고 있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를 사용하다 현재는 1734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로데’로 연주하며, 그의 언니인 첼리스트 정명화는 20년 전 스승의 소개로 우여곡절 끝에 구입한 1731년작 ‘스트라디바리 브라가’로 연주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과르니에리를 사용하다 현재는 1716년작 ‘스트라디바리 세솔’을 연주하며, 첼리스트 조영창은 1669년작 ‘안드레아 과르니에리’를 갖고 있다. 핀란드 국립음대에 재직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이미경은 1785년작 ‘스토리오니’를 사용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은 1669년작 ‘루지에리’를 연주하는데, 그녀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미국의 할머니 독지가가 선물한 것이다.

재불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 사용하는 악기는 한때 파가니니가 사용했다는 1727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이 악기는 과르니에리가 직접 바른 도료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 악기는 1988년 그가 카를 플레슈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다음 해 2월에 가질 영국 데뷔 무대를 앞두고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구입한 것.

양성식의 동생이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첼리스트 양성원은 6년 전 프랑스 파리의 한 악기점에서 구입한 1697년작 ‘지오반니 그란치노’를 사용한다. 미국의 4대 교향악단 중 하나인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하는 데이비드 김은 1700년작 ‘조셉 필리우스 안드레아 과르니에리’를 사용하고 있다.

해외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는 한국 연주자들로부터 가끔 볼멘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조국이 내게 해준 것이 무엇인가?”라는 유의 투정이다. 일본 미국 영국 등의 경우처럼 재능이 뛰어난 자국 연주자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나라의 사정을 들어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가령 일본의 도쿄 현악4중주단은 일본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스트라디바리 콰르텟(2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모두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악기로 한때 파가니니가 모두 소유했다고 한다)을 빌려 쓰고 있으며, 소니 레이블에 소속된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시 가지모토도 1722년작 ‘스트라디바리 주피터’를 빌려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대형 악기상인 바인 앤 푸시사(社)는 ‘스트라디바리협회’라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협회는 1985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세계의 명기를 수집가인 소유주들로부터 빌려 연주자들과 연결시켜주고 있다. 장영주, 김지연, 이유라, 김수빈, 제니퍼 고, 권윤경 등을 비롯해 미도리, 막심 벤겔로프, 길 샤함, 바딤 레핀 같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이 혜택을 받았거나 현재 받고 있다. 이 연주자들은 악기를 빌려쓰는 대신 1년에 두 차례 후원자들을 위한 연주에 출연해야 하며, 악기의 보험금은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매년 날짜를 정해 악기 검사를 받아야 한다.

진품 무색케 하는 복제품

우리나라에서도 삼성문화재단과 금호문화재단이 이런 활동을 벌이고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1997년 바인 앤 푸시 사에서 명기를 구입한 후 악기은행을 설립해 한 사람당 1년씩 사용하는 조건으로 촉망받는 젊은 연주자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삼성 악기은행이 보유한 바이올린은 1725년작 ‘과르니에리 델 제수 엑스 모럴’과 1708년작 ‘스트라디바리 엑스 도리스 슈트라우스’, 비올라는 1590년경에 제작된 ‘가스파로 다 살로’, 첼로는 1725년경에 만들어진 ‘고프릴러’, 콘트라베이스는 ‘루이지 만토바니’이다. 연주회가 있을 때 단기 대여를 하기도 하는데, 1999년 8월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이 내한해 순회 연주회를 할 때 과르니에리를, 바이올리니스트 트리샤 박이 스트라디바리를 빌려 연주하기도 했다.

금호문화재단은 좀더 자유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연주자가 원하면 연주 활동을 지속하는 한 사실상 영구 임대해 주는데, 연주자의 활동과 기량에 따라 더 좋은 악기로 바꿔주기도 한다. 1993년부터 악기은행을 운영해온 금호문화재단은 모두 14대의 악기를 보유하고 있다. 주로 금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영재콘서트를 통해 수혜자를 발굴하는데, 첼리스트 이유홍·이정란·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권혁주·레이첼 리·줄리엣 강·리비아 손·조가현 등 젊은 연주자 10여 명이 혜택을 받고 있다. 현재 1774년작 ‘과다니니’가 리비아 손에게, 1600년작 ‘마기니’ 첼로가 이유홍에게 대여중이다.

19세기 프랑스에 뷔욤이라는 악기 제작자가 있었다. 그는 스트라디바리, 과르니에리 등 수많은 명기들을 복제한 카피스트였다. 파가니니가 수리를 위해 맡긴 명기를 하루 만에 복제해낼 만큼 기술이 뛰어났는데, 그의 카피 악기는 진품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우수해 지금도 상당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복제 악기에 관련해서는 여러가지 일화가 전해진다. 지금은 대만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과르니에리 델 제수가 잠시 미국에 있을 때 일본계 미국인 제작자인 테츠오 마츠다가 장난 삼아 이 악기를 카피해 주인에게 보여줬더니 주인은 대수롭지도 않게 “악기에 왜 이렇게 광을 냈어?” 하고 물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살바토레 아카르도가 미국 연주 여행중 리허설을 할 때는 누군가가 장난으로 그의 델 제수를 카피한 악기와 슬쩍 바꿔놨다고 한다. 그러나 연주회를 끝낸 아카르도는 자신의 바이올린을 연신 쓰다듬으면서 “역시 델 제수가 최고야”라며 찬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요즘 제작되는 악기는 대부분 이렇듯 예전의 명기를 복제한 것이다. 이는 잘 보존된 명기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악기는 어느 한 사람의 소유겠지만,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음색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것이다. 명기는 이제 한 개인의 재산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93세까지 장수한 스트라디바리의 일생이 우리에겐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그토록 장수하지 않았다면 명기의 숫자는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기는 명연주자를 만나야 제 빛을 발할 수 있다. 비록 수억원을 호가하는 명기가 아니어도 연주실력이 출중하다면 명기의 음색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명품은 명인들에 의해 이어진다.

신동아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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