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동씨요? 무슨 일을 저지를 인물이 아닙니다. 그를 둘러싼 소문은 말 그대로 소문입니다. 이권에 개입할 성품도 아니고 그런 정도의 거물도 아닙니다.”
이수동 전 아태재단 상임이사의 비리의혹 사건이 터지기 6개월 전인 지난해 가을, 동교동계 한 중진의원은 “이수동씨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돌고 있다”는 세간의 의혹을 이렇게 일축했다. 다른 동교동계 중진이라면 몰라도 이씨는 그럴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런 일에 관여할 사람도 아니라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었다.
이수동씨와 동교동의 내부사정을 아는 다른 사람들도 대체로 이 의원의 의견에 동의한다.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사람” “주제 넘게 나섰으면 벌써 알려졌을 인물”이라는 평가도 따라다닌다.
동교동의 집사
전직 정치부 기자로 동교동에 출입했던 원로 언론인은 “정치부 기자들에게는 예나 지금이나 동교동 가신(家臣) 하면 권노갑, 한화갑, 김옥두다. 이번 일이 터졌으니까 ‘아, 그 사람’하고 새삼 알게 됐지, 40년 전부터 동교동을 출입했지만 동교동 가신 중에 이수동이라는 사람이 있는 줄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 원로 언론인은 “동교동 DJ의 사저에 찾아가면, 손님이 드나드는 것에 관심 기울이지 않고 언제나 한편에서 조용히 자기 일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수동씨였다”고 말했다.
한 원로 정치인은 이수동씨에 대해 “동교동에 날아오는 각종 공과금 고지서를 챙긴다든지 집안 어디에 문제가 생기면 수선을 한다든지 하는, 말 그대로 동교동의 집사(執事)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이수동씨가 아태재단 행정실장이던 1994년, 창립 당시 아태재단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이수동씨에 대해 “언제나 조용한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재단 창립 무렵, 영국에서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일선에 나서기 전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아태재단이 사실상 DJ를 따르는 정치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이수동 실장은 사무실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고 접대하는 일로 하루 일과를 보냈는데 늘 웃는 얼굴로 손님을 맞이하고 배웅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전직 국회의원 P씨는 “이수동씨는 그리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동교동의 일을 돕다보니 동교동 주변에서 그를 욕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P씨는 “야당시절 김대통령의 동교동 자택을 방문하면 보통 김옥두 의원이 손님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나도 무수히 동교동에 드나들었지만 이수동씨와는 한마디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정치적인 얘기는 권노갑씨와 나눴다. 이씨가 권씨와 같은 ‘동교동 1세대 가신’이라고 하지만 이씨의 역할은 말 그대로 ‘집사’였다”고 회고했다.
김대통령의 집사였던 이수동씨가 비리혐의의 주인공이 되면서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설마설마하던 일이 터졌다”는 반응들이다. 이씨와 아태재단의 비리의혹이 김대통령의 두 아들로 번지고 있다. 당장 김홍업 아태재단 부이사장에게 비난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수동씨는 오래 전부터 ‘DJ의 정치자금’ 관련 뉴스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인물이다.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신한국당(현 한나라당)은 세 차례에 걸쳐 ‘DJ 비자금 의혹’을 폭로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김대통령이 기업체 등으로부터 거액을 받았으며 이를 처조카인 이형택씨가 관리해왔다고 주장했다. 신한국당은 또 DJ는 정치자금 성격의 돈을 시중은행과 투신사, 증권사 등 수십 개의 금융기관에 아들들을 비롯한 친인척 40명의 이름으로 분산 예치해놓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점은 신한국당이 폭로한 계좌의 주인 가운데 김대통령의 친인척이 아닌 사람으로는 이수동씨가 유일하다는 사실이다.
신한국당의 고발로 검찰은 김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을 조사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검찰은 처조카 이형택씨가 관리한 349개 계좌 중 87개 계좌 47억6900만원과, 이수동씨 계좌에 들어있던 8억1000만원만 DJ와 관련이 있을 뿐 나머지는 친·인척의 개인용 계좌라고 사건 결과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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