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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숨은 인권운동가 ①

“美軍주둔 인정해도 범죄는 용서 못해”

‘미군기지 되찾기’에 나선 김용한씨

  • 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美軍주둔 인정해도 범죄는 용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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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군 공도면이다. 하지만 그는 평택을 ‘제2의 고향’이라고 부른다. 평택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이곳에서 13년째 미군기지 되찾기 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주사범대학 독일어교육과 75학번인 김씨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잠시 교직에 몸담았는데, 중학생들의 교련조회 참석을 종용하는 교장의 횡포에 맞서고 졸업앨범을 제작하는 사진관측과의 회식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은 일이 있다. 김씨는 이 무렵 아내 강순원(42)씨를 ‘동지’로 만났는데, 강씨는 뒷날 전교조에 적극 가담해 4년 6개월 동안 해직되기도 했다.

김씨는 1985년부터 대학에 출강했다. 정상적인 코스를 밟았다면 그는 1990년초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쯤 중년의 대학교수가 돼 있어야 한다. 하지만 김씨는 아주 우연한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1990년, 그러니까 김씨가 평택으로 이사와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고 있을 때, 정부가 용산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때문에 그의 박사학위 취득은 5년 뒤로 늦춰지게 된다.

“고등학교 때 미군기지 근처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밤거리의 풍경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핫팬티 차림에 앞가슴을 다 드러낸 여자들이 미군들과 떼를 지어 돌아다니더라고요. 어느날 아침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옮긴다는 기사를 보고 제일 먼저 그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냥 두면 우리 동네가 완전히 퇴폐의 바다가 되겠구나 하는 걱정이 앞선 거죠. 그래서 그건 막아야 한다고 시작한 게 오늘까지 온 거예요.”

누구나 그렇듯이 김씨의 초창기 운동도 매우 감상적이었다. 미군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도 없이 마구잡이로 유인물을 만들다보니 곳곳에 허점이 나타났다. 단순히 고향 땅에 미군기지가 추가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구호를 만들다보니 ‘님비즘(지역이기주의)’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한마디로 유령단체의 유인물이나 다름없었죠. 서점 아저씨, 가방가게 주인, 포장마차 하시는 분들이 모여서 ‘핵군단 물러가라’ ‘에이즈 오염 막아내자’고 외친 거예요. 언론사에서 자꾸 ‘누가 대표냐’고 묻는데, 다들 이름을 공개하기 어려워해서 저하고 포장마차 주인이 공동대표로 나섰어요.”



이렇게 해서 ‘용산 미군기지 평택이전을 결사반대하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이 창립됐다. 하지만 시민모임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다. 곳곳에서 걸려오는 정체불명의 협박전화도 문제였지만, 평택시민들의 싸늘한 반응이 더 큰 부담이었다. 이미 평택에는 두 개의 미군기지가 있었던 탓에, 그것을 근거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지역유지들은 도시의 발전을 위해 미군기지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운동단체들은 “미군 반대는 국가보안법에 걸릴 위험이 있다”며 동참을 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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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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