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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악마’ 5년! 뺨맞고 욕먹으며 우뚝선 7만 대군

  • 전용준 < 스포츠투데이 기자 > toto@sportstoday.co.kr

‘붉은악마’ 5년! 뺨맞고 욕먹으며 우뚝선 7만 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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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과 1997년을 거치면서 점점 서포터스의 형태가 갖춰져 일정 정도의 세를 형성하게 됐다. 급기야 이들은 국민적인 관심이 가장 높은 국가대표급 단위에서도 조직적인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대표팀 경기에 처음으로 단체응원 성격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7년 6월 잠실에서 열린 코리아컵 유고전.

‘GREAT HANKOOK NATIONAL TEAM SUPPORTER’S CLUB(위대한 한국 대표팀 서포터스 클럽)’이란 어정쩡한 현수막을 내걸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했지만 이들에겐 조직화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조직적인 응원을 위해선 자신들을 하나로 묶을 구심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후 한달간 하이텔 통신상엔 국가대표팀 응원단의 공식 명칭을 짓기 위한 토론방이 만들어졌다. 당시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 ‘태극 워리어(WARRIOR)’ 등 기발한 이름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딱 꼬집어 이렇다할 이름을 찾지 못했다. 갈팡질팡하던 명칭 문제는 당시 수원 서포터스 회장이었던 이민제씨가 멕시코 4강의 업적을 기려 ‘붉은 악마(RED DEVIL)’로 하자는 제안을 끝으로 완전히 평정됐다.

1997년 8월10일 잠실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친선전부터 트레이드 마크인 붉은 유니폼을 입고 나오기 시작한 이들은 8월30일 한중전에서 ‘붉은악마’란 공식 명칭을 현수막에 당당하게 달고 나와 드디어 완전히 수면 위로 부상했다.

1대 회장은 붉은악마의 태동을 적극적으로 이끌었던 신인철씨가 맡게 됐다. 이들의 첫 원정응원은 1997년 9월28일 도쿄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예선 일본전. 이민성의 극적인 역전골로 2-1 역전승을 거둬 ‘도쿄 대첩’이라 명명된 이 대회에서 붉은악마의 응원은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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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준 < 스포츠투데이 기자 > toto@sport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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