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직격 인터뷰

태극전사 15인이 말하는 ‘6월의 붉은 전설’

“우리는 축구가 아니라 전쟁을 치렀다”

  • 김한석 < 스포츠서울 축구부 기자 > hans@sportsseoul.co.kr

태극전사 15인이 말하는 ‘6월의 붉은 전설’

2/7
8강전까지 5경기에서 2점만 내준 철벽 방어로 최고 수문장에게 주어지는 ‘야신상’ 후보에 올랐던 이운재(29·수원삼성).

그에게 가장 숨가쁜 순간은 스페인전 승부차기. 네번째 키커는 이날 경기에서 120분 동안 한국 왼쪽 공간을 열심히 파고들던 눈엣가시 호아킨이었다. 세 번 모두 다른 방향으로 떴던 터라 장갑에서 땀이 배어날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연장전까지 모두 끝나고 나니 코칭스태프에서 뛰는 방향을 정해주겠다고 했다. 골문으로 갈 때 히딩크 감독이 내 어깨를 두드려주며 웃으면서 뭐라고 얘기하는 게 TV에 비쳤을 것이다. 방향을 알려주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는 과감히 ‘마이웨이’를 외쳤다. “내 판단으로 선택해 방향을 잡고 뛰어보겠다고 말했다.”

호아킨이 스타트를 끊었다. 이운재는 오른쪽으로 움찔했지만 움직이진 않았다. 그 순간 달려오던 호아킨이 멈칫했다. “그때 호아킨의 눈과 마주쳤다. 템포를 빼앗았다. 왼쪽으로 한 발짝 나오면서 뛰었고, 볼이 내 손에 걸려들었다. 이걸로 끝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명보형이 마지막 다섯번째 킥만 넣으면 되니까.”



이운재는 한번도 동료들의 킥을 보지 않았다. 번번이 왼쪽 코너플래그 쪽으로 걸어가면서 등을 돌렸다. “어렸을 때부터 승부차기 때는 우리편 킥은 보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긴장되기 때문이다.”

이운재도 4강신화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마지막 순간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홍명보가 킥하는 찰나, 고개가 휙 돌아갔고 이내 네트가 출렁거리자 두 손을 잡고 치켜올렸다.

그러나 정작 이운재는 골뒤풀이 퍼레이드를 따라가지 못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었다. 낮 경기였고 정신적으로도 가장 힘든 경기여서 나까지 명보형을 쫓아가면서 기쁨을 나눌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6월14일은 이운재가 평생 잊지 못할 날이다.

98프랑스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김병지에게 밀려 탈락했던 이운재. 그는 98프랑스월드컵 첫 경기인 멕시코전이 열리던 6월13일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도 못 가고 밤 늦은 피로연에서 1대3으로 역전패하는 멕시코전을 시청했다. “TV로 보는데 정말 만감이 교차했다. 아내에게 ‘4년 뒤엔 꼭 월드컵 골문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 꼭 4년이 지난 6월14일 포르투갈과 16강을 결정짓는 마지막 결전을 치렀다. 이번 대회에선 김병지를 제치고 주전 장갑을 낀 이운재. 무실점 방어로 비원의 16강 진출의 꿈을 이루었으니 꼭 4년 만에 한을 푼 것이다. 포르투갈전이 끝나고 아내(김현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마워.” 4년 전 아내와 했던 눈물의 약속을 지켜낸 남편 이운재로선 평생 잊지 못할 날이었다.

아찔했던 순간도 두 번이나 있었다. 이탈리아전 연장 전반, 수비에 가담했던 설기현의 백패스 실수로 가투소에게 볼을 뺏겨 1대1 위기를 맞았다. 동물적인 반사신경으로 슛을 가까스로 골대 위로 펀칭해내고 나서 수비수들에게 고함쳤다. “정신차려.” 스페인전에서 모리엔테스의 슛이 골문 구석으로 날아가다 왼쪽 골대를 맞고 나왔던 연장 후반에도 ‘설마, 설마…’ 하며 마음이 콩알만해졌던 이운재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아쉬웠던 때는 독일과의 준결승전. 후반 30분 발라크의 왼발슛을 막았다. 그러나 바로 발맞고 튀어나간 볼을 오른발로 다시 갖다대는 데 속수무책이었다. 넘어지자마자 다시 일어섰지만 맞받아 때린 발라크의 2차 슈팅이 워낙 빨랐다. “허망했다. 화가 난다고 할까, 안타깝다고 할까.” 결승 문턱에서 이 실점 하나로 ‘요코하마까지 가자’는 맹세가 무너졌으니….

울면서 뛴 안정환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딛고 오뚝이처럼 일어선 안정환, 이을용, 설기현.

지옥과 천당을 오간 태극전사 중에서 가장 극적으로 명예를 회복한 선수는 아무래도 안정환(26·이탈리아 페루자)이 아닐까.

이탈리아와의 16강전. 얼마 만에 선발출격이었던가. 이번 월드컵에서 스타팅 라인업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들자 자못 흥분한 안정환. 그러나 경기시작 4분 만에 찬스이자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설기현이 넘어지면서 얻어낸 귀중한 페널티킥. 이탈리아 선수들이 세리에A에서 같이 뛰었던 자신을 가장 경계했다는 얘기도 들었던 터라 꼭 성공시켜야 했다. 페루자에서 2년간 거의 벤치신세를 면치 못했던 한도 풀어야 했다.

볼을 11m 지점에 갖다놓고 머리를 매만졌다. 후~후~, 심호흡도 했다. 아내에게 행운을 빌어달라며 세 번이나 반지에 입을 맞춘 뒤 달려들었다. 오른발 슛. 그러나 이탈리아 최고 GK라는 부폰의 다이빙에 킥이 걸려들었다. 허탈했다. 뒤돌아 머리를 쓸어올리며 말을 잊었다. 당혹감에 휩싸였다. 가장 쓰라린 악몽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다시 찾아들었다. 연장 후반 12분. 3분 뒤면 피말리는 승부차기가 기다리고 있다. 기회는 소리없이 찾아왔다. 왼쪽에서 이천수가 백패스로 내준 볼을 이영표가 페널티지역 왼쪽 모서리 바깥에서 반대편으로 감아올렸다. 안정환은 솟구쳤다. 앞에선 이탈리아 최고의 수비수 말디니가 뛰어올랐다. 그러나 타이밍이 안정환에게 딱 걸렸다. 미국전에 이어 다시 헤딩골이었다. 오른쪽 골문으로 굴러가는 골든골을 확인한 뒤 코너플래그로 달려갔다. 가장 가슴 벅찬 환희의 순간이었다.

“골 넣은 뒤에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멍한 상태였다. 정신을 잃은 것만 같았다. 쓰러져 뒤엉키고 기쁨을 나눈 뒤 벤치 쪽으로 가는데 박항서 코치와 얼굴을 맞대고 포옹하면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제서 눈물이 흘렀다.”

사실 그는 울면서 113분을 뛰었다. “페널티킥을 실축한 뒤 속으로 울면서 뛰었다. 눈물만 안 났을 뿐이지. 감독님이 끝까지 안 빼고 믿어주었던 것에 깊이 감사한다. 아마도 중간에 교체됐더라면 평생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살 뻔했다.”

미국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감정이었다.

“미국전에서도 골 넣고서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면 포기해야 할 상황이었다. 볼이 이마에 와서 맞아 골이 들어간지 몰랐을 거라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볼이 들어가는 것을 분명히 봤다. 단지 볼이 GK한테 가리는 바람에 굴러들어간 걸 확인하고자 두리번거렸을 뿐이다.”

미국전 헤딩골 때는 얼떨떨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전 헤딩골에는 정신을 잃었으면서도 자신의 실책을 만회한 데 대한 기쁨으로 눈물이 흘렀던 것이다. 그 어느 소설가가 각본 없는 희비의 순간을 그토록 절묘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2/7
김한석 < 스포츠서울 축구부 기자 > hans@sportsseoul.co.kr
목록 닫기

태극전사 15인이 말하는 ‘6월의 붉은 전설’

댓글 창 닫기

2021/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