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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데이트

영원한 18번 황선홍 VS 축구광 최영미 시인

  • 정리·정호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demian@donga.com 진행·육성철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sixman@donga.com

영원한 18번 황선홍 VS 축구광 최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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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은 집에서 가져온 축구교본까지 펼쳐가며 오프사이드 규칙에 대해 물었다. 그 책에는 밑줄과 메모도 보였다. 과연 축구광이다. 월드컵 기간에는 글쓰는 일도 잠시 중단하고, 축구에 몰두했다는 그다. 축구 기사를 보기 위해 한동안 끊었던 신문을 다시 구독하고 TV까지 큰 걸로 바꾸기 위해 할인매장을 뒤졌던 그다.

최영미 : “우선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작가입니다. 축구를 좋아하지요. 저의 아버님은 운동선수였어요. 해방 후 전국체전에 나가서 투해머 고등부 일등을 하셨죠. 그 영향인지 저도 초등학교 때 핸드볼을 했습니다. 계속 운동을 했더라면 제 인생이 더 행복했을 텐데…. 이번 월드컵 때는 포르투갈전을 보러 직접 인천에 갔습니다. 황선수는 우선 굉장히 멋쟁이에요. 경기를 보면서 패션감각이 뛰어나다고 느꼈어요.”

황선홍 : “선수들 유니폼은 다 똑같은데요.”

최영미 : “폴란드전에서 목걸이 하고 나왔잖아요. 폴란드전 이후 황선수의 목걸이가 여성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어요. 누가 선물한 거죠?”

황선홍 : “아내가 선물한 건데 우여곡절이 많은 목걸이입니다. 2번이나 운동장에서 잃어버렸거든요. 1998년 월드컵을 못 뛰고 일본에 갔을 때 아내가 다치지 말라는 의미로 사주었어요. 그래서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세레소 오사카에서 득점왕할 때도, 가시와 레이솔에서 뛸 때도 찼습니다. 목걸이 잃어버렸을 때는 일본 선수들에게 한국요리 사줄테니 찾아달라 부탁하고 총동원해서 운동장을 뒤졌어요. 이번 월드컵에서는 폴란드전 전반전에만 찰 수 있었습니다. FIFA가 목걸이 착용을 금지하고 있거든요.



최영미 : “가죽 목걸이도 안되나요?”

황선홍 : “안돼요. 이번 월드컵에서 터키전 때 또 한번 분실했는데, 장비책임자의 파카 호주머니에서 겨우 찾았어요. 목걸이는 저에게 부적 같은 물건이에요. 첫 경기 때 목걸이 차고 나가서 득점했잖아요. 그런데 전반전 끝나고 심판이 벗으라고 했어요.”

육성철 : “그러니까 목걸이를 찼던 경기에서만 골을 넣은 셈이군요.”

황선홍 : “하하하. 얘기를 만들자면 그렇게 되는 거죠.”

최영미 : “머리 염색하셨어요? 염색은 어디서 하세요. 미용실인가요 집인가요?”

황선홍 : “저는 스타일이 잘 안나와서 아무데나 막 가는 편입니다. 제 스타일을 고집하는 편이 아니라서 때로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습니다. 검은 머리는 머리가 길면 지저분하다고 아내가 살짝 염색하라고 해서 했는데, 점점 색깔이 들어가네요.”

최영미 : “우리나라 선수들의 머리가 갈수록 노래져요. 박지성 설기현 선수가 검은 머리로 오래 버텼는데 결국 염색해서 좀 아쉬웠습니다. 저는 일본 대 벨기에전 때 유럽선수보다 일본선수들의 머리가 더 노란 걸 보고, 아예 처음부터 기싸움에서 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만 신은 축구화

황선수는 아내를 끔찍하게 아낀다. 인터뷰 때마다 아내 얘기를 빠뜨리는 적이 별로 없다. 이건 그의 축구인생에 굴곡이 많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부상과 수술로 선수생활이 끝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그는 아내 정지원(32)씨에게 의지하는 일이 많았다. 최영미 시인이 목걸이와 머리 염색에 관해 묻는 동안 정씨와 정씨의 어머니는 부엌 쪽에서 거실을 내다보고 있었다. 황선수가 멋쩍은 듯이 한마디 던졌다. “걱정하지 마시고 들어가서 주무세요.”

최영미 : “축구화 처음 신었을 때 기억나세요?”

황선홍 : “초등학교 3학년 때입니다. 징이 박힌 축구화는 중학교 올라가서 신었고…. 처음에는 1000m 달리기를 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 그냥 뛰기만 하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축구는 육상과 다르더군요. 뛰면서 골도 넣을 수 있고 변화가 많았어요. 하루는 아버님이 추리닝과 축구화를 사오셨어요. 저는 너무 아까워서 사흘에 한 번씩만 신으면서 신발을 아꼈습니다. 그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아버님이 운동을 좋아했고 그 덕인지 나는 축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축구가 흥미로웠고 재미있었습니다.”

최영미 : “언제부터 축구선수가 될 것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나요?”

황선홍 : “고등학교 2학년 때 축구선수로서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대학에 가고 나면 다른 길로 갈 수가 없으니까 결정을 해야 했거든요. 그때는 정말 축구가 좋았을 때였습니다. 선배들이 몽둥이 들고 기합을 주는 때였지만, 운동장에서 공을 찰 수만 있으면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어요. 축구하기 위해 대학에 갔고, 아버님도 계속 제가 축구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제가 얻어맞고 와서 얘기해도 ‘그 정도는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다음부터는 맞더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최영미 : “축구 시작할 때 어떤 포지션이었나요?”

황선홍 : “저는 처음부터 스트라이커였어요. 초등학교 때는 포지션에 대한 개념보다도 앞에서 골 넣는 게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이후 한번도 스트라이커를 양보한 적이 없습니다. 전술상황에 따라 미드필드에 서기도 했지만 주로 공격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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