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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따귀…“너는 달라야 한다”

  • 안병태 < 전 해군 참모총장·한국해양전략문제연구소 상임고문(현) > ptan@untel.co.kr

아버지의 따귀…“너는 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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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 사회에서 아버지는 왜소한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 있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정신적인 영향을 준 존재로서의 아버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바른 아버지가 바른 자식을 낳는다. 아버지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아버지 像을 바로 세우기 위해 각계 인사가 쓴 ‘나의 삶 나의 아버지’를 연재한다.<편집자>
충청도 당진의 시골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교육면에서 대단한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엄격하면서도 자유스럽게 대해주셨던 아버지, 송악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3년간 전인교육을 시켜주셨던 이종석 선생님, 남아의 자존심을 불어넣어 주셨던 예산중학교 3학년 때의 담임 구본하 선생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셨던 인천고등학교 3학년 때의 담임 김열함 선생님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역사의식을 갖고 걸어갈 길을 밝혀주셨던 함석헌 선생님을 차례로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의 성장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분은 나의 아버지다. 내 일생 일대의 행운은 내가 그 분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나의 아버지(安重植)는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한글은 어릴 때 스스로 깨쳤고 한문(漢文)은 통감(通鑑)까지 배우다 그만두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작은아버지(安德植)를 학교에 보내려고 하였다. 그런데 작은아버지께서는 학교에 갈 뜻은 세우지 않고 나무하러 갈 생각만 하셨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나무하러 나서는 작은아버지의 지게를 빼앗아 망치로 자근자근 부수었다. 이를 보신 할아버지께서는 “네 동생을 위해서 그런 줄 알고 용서하노라”라고 하셨다 한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 앞에서 담배는 피우지도 못하고 술도 돌아앉아 마시곤 했다. 작은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입학시험에 합격하자 집에서 먹이던 송아지를 끌고 와서 “쟤 중학교 입학금 허세유” 하고 가셨다고 한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당시의 일을 떠올리시며 “형제간에도 참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언변 뛰어나고 결단력 있던 아버지



당신께서는 아들 여덟에 딸 둘 도합 10남매를 두셨는데, 내 밑의 아들 둘은 일찍 잃으셨다. 한번은 아버지께 한문을 배우다가 왜 그만두셨냐고 여쭤보았다. 아버지께서는 “글자 몇 자를 가르쳐주고 5분이면 충분한 것을 하루 종일 외우라고만 하니 도무지 재미가 있어야지”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언변(言辯)이 뛰어나고, 결단력이 있으셨다. 그리고 자기 의사를 딱 부러지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셨다. 아버지는 모자라고 의사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을 ‘사진’이라고 불렀다. 사진같이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가만히 있다는 뜻으로 아버지만의 독특한 표현법이다.

아버지는 누이동생 계화가 언행이 분명하고 ‘아기뚱’하며(아버지가 잘 쓰시던 용어로 욕심이 많고 담이 크며 주제 넘은 태도가 있다는 뜻) 누가 뭐라 해도 제가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했다고 하여 좋아하셨다. 동생 병구가 어릴 때 동네 큰 아이한테 얻어맞고 돌아왔다. 힘이 부친 것을 안 병구는 큰 몽둥이를 들고 그 아이 집으로 달려가 대문을 치며 당장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다. 아버지는 멀리서 보고 계시다가 성이 좀 풀린 동생을 불러 빵을 사주시고는 흡족해 하셨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있어 왕골로 방석을 만드셨는데, 나는 손으로 만든 방석 치고 그보다 더 잘 만든 것을 본 일이 없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께서 짜신 왕골 방석을 잘 보관하고 있다.

어머니를 위해서 탕약 짜는 기계를 손잡이의 기울기까지 계산해가며 직접 만드셨다. 지금 보아도 참 잘 만든 기계인데 이것은 동생 병도가 보관하고 있다. 왕골 방석이나 탕약 짜는 기계 모두 우리집의 가보다. 형제들이 만날 때면 꺼내 보며 아버지 이야기를 한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아산에 있는 할아버지 산소의 잔디가 죽었다고 속상해 하셨다. 동생 병도가 출근하면서 베갯맡에 돈을 놓고 갔더니 아버지는 그날 당장 사초(莎草)를 하고 오셔서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었다. 동생 병덕이도 해군에 복무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병덕이의 성격이 너무 무르다며 좀 강해지도록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를 시키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병덕이는 지금 삼성전자에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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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태 < 전 해군 참모총장·한국해양전략문제연구소 상임고문(현) > ptan@un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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