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12일, 정대표는 공식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지 2주일 만에 노후보와 손을 맞잡고 청중 앞에 나섰다. 단일화 승복 이후 주저하던 선거공조를 마침내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지루한 협상 끝에 이뤄진 선거공조는 오래가지 않았다. 투표일을 불과 1시간 앞둔 12월18일 밤 11시, 긴급뉴스로 타전된 정대표의 노후보 지지철회 선언은 선거판을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지지 철회는 정대표의 독단”
정대표의 노후보 지지철회를 두고 해석이 몇 가지로 엇갈린다. 정대표 측근들은 두 당의 합의에도 불구, 노후보가 정책공조의 틀을 깨는 발언을 끊임없이 해왔다고 주장했다. 노후보에 대한 신뢰상실이 지지철회의 결정적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통합21 내에서도 정대표의 결정을 ‘독단적 결정’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이철 전의원은 “노후보 지지철회는 통합21의 당무회의에서 추인받지 못한 정후보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전의원은 “따라서 정대표의 의견은 우리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개인의 의견을 당론인 것처럼 발표한 것은 잘못”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 하나. 정대표가 노후보 지지를 철회한 결정적 이유는 12월18일 저녁 종로 유세 때 노후보의 발언이다. 노후보가 정대표를 정동영(鄭東泳) 추미애(秋美愛) 의원 등 민주당의 차기주자들과 같은 경쟁자 그룹으로 분류하는 발언에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듣기 불쾌한 발언이라 해도 단일화 합의 자체를 백지화한 정대표의 극단적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 반응이다.
하지만 후보단일화 전 과정을 꼼꼼히 복기해보면 선거 전날 정대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대표는 단일화 논의가 결정된 이후 한순간도 자신의 패배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를 가까이에서 봤던 국민통합21 인사들 사이에는, 정대표는 단일후보가 정해진 뒤에도 기회만 있으면 결과를 뒤집으려 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시계바늘을 한달 전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다. 지난 11월17일, 민주당 이해찬, 통합21일 이철 협상대표가 1차 단일화 방안 합의서에 서명을 하고 사진 기자들 앞에서 환하게 미소짓는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제1부 : 36시간의 협상
11월16일 시작한 협상은 다음날 새벽 4시쯤 타결됐다. 양측 협상대표가 합의사항을 두 당의 후보에게 보고한 시간은 아침 6시 반쯤. 이철 전의원의 보고를 받은 정대표는 “잘했다.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 이해찬 의원도 노후보에게 보고를 했고 역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추인을 받았다.
협상대표들은 한숨도 못 잔 채 발표문을 준비했고 오전 11시 기자들에게 단일화 방식에 합의했다고 공개했다. 단일화를 위한 TV토론을 실시한 뒤, 4개 여론조사기관을 통해 국민여론을 물어 다수 조사에서 이긴 후보가 단일후보로 선출되는 방식이었다.
밤샘 협상에 지친 이철 전의원은 집으로 돌아왔고 이내 골아떨어졌다. 그런데 그날 밤, 김민석 전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큰일났다. 지금 집으로 가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밤 11시 반쯤 김 전의원과 김행 대변인이 이 전의원 집으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이날 종일 정대표의 전화호출에 시달린 뒤였다.
이철 전의원을 만난 두 사람은 정대표가 협상결과에 대해 크게 화를 내며 불만을 나타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김 전의원은 “내일 새벽에라도 정대표를 만나 이대로 가면 여론조사에서 이길 수 있다고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