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추적자는 무관심, ‘도망자’는 여유만만

‘최규선게이트’ 최성규 前 총경, 어디 있나

  • 글: 김진수 jockey@donga.com

    입력2002-12-31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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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규선게이트’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인 최성규 전 총경. 2002년 4월 미국으로 전격 도피한 그는 어디로 잠적한 것일까. 인터폴까지 나섰지만, 8개월이 지나도록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유령’이 돼버린 ‘도망자’의 흔적을 더듬었다.
    추적자는 무관심, ‘도망자’는 여유만만

    2002년 4월18일, 해외 도피한 최성규 전 총경의 행방 추적을 위해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앞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최성규(52). 세간에서 잊혀져가는 ‘도망자’의 이름이다. ‘최규선게이트’ 발생 직후인 2002년 4월14일 당시 최성규 총경(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은 이른바 ‘대책회의’ 이후 최규선씨에게 청와대의 밀항 권유 의사를 전달한 ‘메신저’란 의혹만 남긴 채 도피, 홍콩·자카르타·도쿄 등을 경유해 4월19일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5월1일 최 전 총경이 LA에서 김홍걸씨와 골프를 쳤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지만 ‘미확인 오보’란 생소한 용어로 마무리됐고, 여지껏 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청와대측이 해외 도피를 권유했다. 밀항시키기 위해 부산에 (배를) 준비해놨다고 들었다.”

    4월19일 서울지법의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나온 최규선씨의 진술이다. 이 진술의 진위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증인은 바로 최 전 총경이기 때문이다. 이와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최 전 총경의 정확한 도피 동기 또한 파악되지 않았다.

    한동안 그의 잠적을 두고 도피방조 의혹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했지만, 이후 월드컵, 대통령선거 등 굵직한 이슈들로 인해 최 전 총경을 향한 언론의 촉각 역시 무뎌진 느낌이다.

    현재 최 전 총경은 인터폴(국제경찰)에 의해 ‘적색수배(Red Notice)’ 대상으로 분류돼 인적사항과 범죄혐의가 인터폴 홈페이지(www.interpol.int)에 공개중이다. ‘적색수배’는 중대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해외로 도피해 소재 파악 및 동향감시가 필요한 경우 인터폴 회원국에 그의 체포 및 송환을 목적으로 내리는 수배조치. 인터폴이 발동하는 5단계 수배유형 중 가장 강력한 것이다. 최 전 총경의 범죄 혐의는 ‘사기(Fraud).’



    그의 뇌물수수 혐의는 확인된 바 있다. 검찰은 2002년 7월 최규선씨가 모 병원에 대한 경찰 내사 무마 명목으로 최 전 총경에게 1억2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을 확인했다. 잠적 이후 파면된 그는 음지(陰地)에서 자신의 이름이 하루 빨리 잊혀지길 고대하고 있는 걸까.

    추적 포기한 정치권

    당초 최 전 총경의 도피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곳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최 전 총경 도피 직후 엄호성, 이주영, 김용균 의원을 주축으로 ‘최성규 총경 해외도피 현지조사 및 송환추진단’을 꾸려 4월18일부터 사흘간 해당 의원 3명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싱가포르로 급파해 현지 조사활동을 벌였다. 또 4월22∼26일 뉴욕에서 최 전 총경의 미국 입국 경위 등도 조사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얻지 못했다. 이후 사실상 추적 활동을 포기한 상태다.

    이주영 의원실 관계자는 “현지조사에서 별 소득이 없었고 제보도 들어오지 않는 데다 대선 준비로 사실상 최 전 총경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쓸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인터폴, 미 연방수사국(FBI), 미 이민귀화국(INS) 등과 국제 공조 수사(소재 확인 및 강제추방)를 펴고 있다. 인터폴 적색수배자는 국제 해·공항 입·출국시 즉각 파악돼 해당국에 통보조치되므로 제3국으로의 도피는 차단된다. 때문에 미국에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캐나다로의 도피 가능성도 희박한 편이다. 그러나 경찰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면키는 어렵다.

    경찰은 이주영 의원이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의 2002년 경찰청 국정감사(10월1일)에서 한 질의에 대해, 최 전 총경의 미국 방문비자(B-2) 유효기간이 10월 20일로 만료되므로 유효기간 만료시 체류기간 연장을 불허하도록 미 관계당국과 협의토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의원이 국감 이후인 11월 경찰청에 보낸 최 전 총경 관련 질의에 대한 경찰의 답변 자료엔 10월9일에야 미국 내 전 주재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돼 있다. 공식적인 두 답변 자료에 나타난 ‘조치’와 ‘지시’의 날짜마저 다르다는 점에서 실제 ‘조치’가 과연 언제 이뤄졌는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온적이고 책임을 면하려는 형식적 수준의 조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아무튼 6개월의 체류기간이 끝나 최 전 총경은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국제공조 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청 외사3과 관계자는 “아직 최 전 총경에 관한 단 한 건의 제보도 없으며 그의 소재가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며 “미국에 경찰주재관이 3명뿐이어서 사실상 미국 관계기관과 서류를 통한 절차상 협조에 그칠 뿐, 한국 경찰의 독자적인 소재 추적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추적자는 무관심, ‘도망자’는 여유만만

    인터폴 홈페이지에 공개된 최성규 전 총경의 인적사항과 범죄혐의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H아파트 101동 ○○○호. 최 전 총경의 집이다. 이곳엔 현재 그의 부인 정모씨(50)가 거주하고 있다. 2001년 6월 최 전 총경은 서울 동작구 상도3동 자택에서 덕소리로 이사했다.

    지난 11월26일과 28일 H아파트를 방문했지만, 부인 정씨는 집에 없었다. 간간이 모습을 보일 뿐 거의 집을 비우다시피하고 있다는 게 관리사무소측의 귀띔. 그러나 도시가스 검침이 최근월까지 완료된 것으로 미뤄 이사하지 않고 그대로 거주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한 아파트 경비원은 “최 전 총경 도피 직후 검찰이 가택수색을 나왔다가 허탕치고 돌아갔다”며 “그 뒤 검찰에서 찾아온 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최 전 총경 가족은 입주시 입주자 카드도 작성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현재 최 전 총경의 집엔 세콤 보안장치가 돼 있다.

    최 전 총경의 집은 일정 정도 언론에 노출돼 있다. 때문에 가족의 정확한 소재를 알기 위해선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취재과정에서 최 전 총경의 둘째딸(28)이 지난 10월 결혼한 뒤 남양주시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수소문 끝에 알아낼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둘째딸의 집 역시 덕소리의 또 다른 아파트인 J아파트 103동 △△△호. 최 전 총경의 집과는 걸어서 불과 5분 거리다.

    최 전 총경의 가족은 6명. 부인 정씨와 2남 2녀다. 이 중 장녀(30)는 출가해 2000년 3월 호주로 이민했고, 장남(27)과 차남(25)은 둘 다 육군 중위로 복무중이다. 따라서 접촉 가능한 가족이라곤 부인 정씨와 둘째딸뿐이다.

    11월28일 오후 8시. 둘째딸의 귀가를 확인한 다음 인터폰을 수차례 눌렀다. 그러나 돌아온 건 “드릴 말씀이 없다”는 간단명료한 대답뿐. 1시간 뒤 ‘아버지의 소재를 알면 이메일 인터뷰라도 주선해 달라’는 메모를 남겼지만, 역시 며칠이 지나도록 답이 없었다.

    현재 최 전 총경의 상도동 집은 11가구가 각기 7000만원씩에 전세 든 건평 200평짜리(지상 3층 지하 1층) 다세대주택. 소유자는 부인 정씨다. 이 집의 전세계약에 간여한 공인중개사 K씨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정씨의 연락처를 모른다”는 퉁명스런 대답만 돌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번호를 알아낸 최 전 총경의 둘째사위 P씨(31)의 휴대전화로도 연락을 취했지만, “장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더 이상 괴롭히지 말라”는 답변뿐이었다.

    문제는 이처럼 최 전 총경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동안 수사 주체인 검찰의 행보마저 지지부진하다는 점이다. 검찰은 2002년 4월24일 처음으로 경찰에 공조수사 요청을 했다.

    최 전 총경 관련 수사의 주체는 서울지검 특수2부. 검찰은 ‘최규선게이트’ 초기, 최 전 총경의 잠적과 관련해 최규선씨를 조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규선씨의 변호인인 강호성 변호사는 “검찰이 최규선씨를 소환해 최 전 총경 관련 부분을 조사했었다. 소송 기록엔 포함시키지 않았으나 관련 자료는 보관중일 것”이라며 “변호인으로서 검찰의 수사상황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검찰은 과연 어느 선까지 수사중인 것일까. ‘최규선게이트’ 수사 주임검사였던 임상길 부부장 검사는 12월4일 찾아간 기자에게 “수사중인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며 입을 굳게 닫았다. 그는 피의자 사망사건 여파에 따른 조직개편으로 서울지검 특수부가 대폭 축소되면서 특수2부에서 형사7부로 자리를 옮겼지만, 최 전 총경 관련 수사는 여전히 특수2부가 담당하고 있다.

    서울지검 특수2부 차동민 부장검사는 12월5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일단 최 전 총경의 소재가 파악되고 그가 귀국해야 그동안 의혹으로 불거졌던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수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현재로서는 인터폴과의 사법 공조에 기대를 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유창종 서울지검장 역시 12월4일 기자에게 “11월 18일 서울지검장으로 취임한 후 최성규 전 총경 관련 수사 보고를 받은 일이 없다”며 “아마 수사 부서도 최 전 총경의 소재를 모를 것”이라 잘라 말했다.

    서울지검은 2002년 7월21일 각종 게이트 등 주요 사건에 연루된 해외도피사범 176명을 집중관리대상으로 선정, 지속적인 소재 파악과 범죄인 인도 청구를 통해 이들의 조기송환을 추진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물론 여기엔 최 전 총경도 포함됐다.

    범죄인 송환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소재 파악.’ 이는 검찰의 의지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여지껏 그의 도피 후 행적에 관한 단서 하나 찾지 못했다면, 검찰의 검거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공소조건이 구비되고 범죄의 객관적 혐의가 인정될 경우라도 피의자 소재가 판명되지 않으면 검찰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질 수는 있다. 그러나 검찰이 최 전 총경 검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징후는 있다.

    한 가지 눈여겨볼 것은 최 전 총경이 부인 정씨에게 덕소리 집을 증여했다는 사실이다. 등기부를 열람해 본 결과, 원래는 최 전 총경과 정씨가 덕소리 집의 지분을 2분의 1씩 공유하고 있었지만, 4월23일 최 전 총경이 자신의 지분을 정씨에게 증여한 것. 증여를 한 나름의 까닭이야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시점이다. 4월23일은 최 전 총경이 잠적한 4월19일과 불과 나흘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이 사이 증여의 의사표시를 했다는 것은 어떤 경로로든 두 사람 사이에 연락이 취해졌다는 방증이다.

    비단 이때만이 아니더라도 최 전 총경과 가족들이 수시로 연락을 했을 가능성은 다분하다. 따라서 최 전 총경과 가족 간, 그리고 경찰 내 지인들 간 전화통화기록에 대한 발신자 추적이나 감청 등 가능한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한다면 최 전 총경의 소재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이같은 적극적인 수사가 이뤄졌다는 정황은 없다.

    더욱이 덕소리의 아파트는 70평형으로 1998년 분양 당시 가격이 3억7400만원이다. 인근 공인중개사에 따르면 집값이 뛴 지금 시세는 5억5000만∼6억원에 이른다. 상도동 집의 시가는 5억원을 넘는다. 육군3사관학교에서 소위로 임관한 군 출신(소령)으로 1983년 경감으로 특채된 최 전 총경의 경찰관 생활이 만 20년이 채 안 되는데도 이만한 재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문이다. 만일 재산형성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도피의 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란 추론도 가능하다.

    대선 직후 귀국?

    최 전 총경의 행방을 속시원히 말하는 이는 없다. 그는 대체 어디 있는 걸까. 누구의 도움으로 어떻게 생활할까.

    이와 관련, 한 일간지는 2002년 11월20일 최 전 총경의 근황을 담은 짧은 기사를 실었다. 요지는 그가 현재 미국 LA 근교에서 사업하는 한 측근의 도움을 받으며 머물고 있고, 이번 대선을 전후해 귀국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것.

    담당기자는 “최 전 총경의 연락처가 없어 그와 직접 통화하진 못했지만, 몇 단계 건너 접촉한 그의 지인(知人)을 통해 나온 얘기”라며 “최 전 총경의 귀국 시기를 거론한 첫 기사인데도 검찰이 문의 한 번 하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기사 내용대로라면 최 전 총경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그의 소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 검·경찰의 수사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소재 파악에 소극적인 이유가 대선에 그 어떤 파장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각에선 최 전 총경의 도피 당시 자카르타에서 합류해 그와 동행했던 맏사위 정해권씨(31·1991년 호주 이민)가 지난 추석을 전후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문마저 흘러나온다. 그러나 진위 확인은 여전히 힘든 상태다.

    경찰청 특수수사과 관계자는 “경찰은 검찰의 요청이 있을 때만 공조한다”며 “검찰이 수사를 전담하므로 경찰에선 구체적인 수사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선 직후 귀국한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낮아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일 최 전 총경이 검거된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지난 6월3일 법무부는 미국 당국에 그에 대한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해놓은 상태다. 때문에 1997년 국세청을 통해 대선자금을 불법모금한 혐의를 받고 미국 도피 3년 만에 현지에서 체포돼 범죄인 인도 재판을 받고 있는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의 경우에서 보듯, 최 전 총경도 전철을 밟을 경우 귀국까지는 1∼2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결국 그의 송환은 그 자신의 귀국 의사에 달려 있는 셈이다.

    어쨌든 ‘무관심’의 와중에서 ‘도망자’는 지극히 여유로워 보인다. 검찰 역시 최 전 총경 못잖게 여유만만해 보인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소나기는 우선 피하라!’ 최 전 총경은, 여론이 진정될 때까지 잠행하다 대형 사회 이슈나 사건에 전국민적 관심이 쏠린 틈을 이용,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 뒤 검찰에 출두하는 수순을 밟아온 ‘선배’ 해외도피 사범들의 ‘교본’을 매우 차분히 읽어내려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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