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호

“재벌 도움으로 성공한 연예인은 시한폭탄 안고 사는 것”

‘당당히 벗은 여자’ 성현아 5시간 독점 인터뷰

  • 글: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2-12-31 12: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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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벌 도움으로 성공한 연예인은 시한폭탄 안고 사는 것”
    “얼굴이 많이 수척해 보이네요.”

    “그래 보여요? 생각보다 잠도 잘 자고 먹는 것도 잘 먹는데….”

    그가 하얀 이를 드러낸 채 까르르 웃는다.

    인터넷에 올 누드사진이 공개된 이후 외부와 접촉을 끊고 두문불출하던 탤런트 성현아를 2002년 12월12일 늦은 밤 그의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여성지 스포츠신문 등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을 받았지만 다 거절한 그였다. 그가 손수 타온 커피를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난 양촌리 커피를 좋아해요.”



    “양촌리 커피요?”

    “드라마 ‘전원일기’의 배경이 된 ‘양촌리’ 알아요? 커피, 프림, 설탕이 듬뿍 들어간 일명 다방 커피를 ‘양촌리 커피’라 불러요.”

    그가 또 다시 까르르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에 쓸쓸함이 묻어 났다.

    “사실은 마음이 많이 아프고 힘들어요. 그래도 이렇게 웃고 있으면 좀 나아요. 집에서 혼자 있을 땐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거든요. 누드 모델로 나선 거,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지난 일을 잊고 새 출발을 하려는 계기로 삼기 위한 것도 아니에요. 싸구려 포르노 배우가 돼 옷을 벗은 것도 아니에요. 아름다운 작품을 위해 당당하게 벗었을 뿐이에요.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적잖이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코 후회하지는 않아요.”

    그는 ‘돈을 위해 옷을 벗은 게 아니냐’는 일부 시각이 부담스러운 듯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얼마 전 10억원의 개런티를 제시하며 누드집 출간을 제안한 업체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처음에 그 제의를 받고 무척 황당했어요. 솔직히 적잖은 돈을 제시하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고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거절했어요. 나도 한국사람이라 보통의 한국사람이 그렇듯 누드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누드를 작품으로 보려는 시각보다는 누드 하면 먼저 선정적인 장면을 떠올리는 게 우리네 현실이잖아요. 외국에서 작품으로 인정받은 누드사진도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실정이고요. 사실 10억원이면 큰돈이죠. 잘 나가는 톱스타가 CF를 찍어도 그 정도는 못 받는데…. 하지만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다른 걸림돌이 있었다는 건가요.

    “그 일(엑스터시 복용 구속 사건)을 겪은 이후, 그 일을 겪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삶의 목표였어요. 시집도 가야 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도 하고 싶은데 내 자신이 당당하지 못하면 사랑도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 이건(누드모델) 하면 안되겠다’ 싶었죠. 간신히 이전의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누드집 때문에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돈 때문에 옷 벗는다는 소리는 더더욱 듣기 싫었고요.”

    -거액의 제의를 거절하고 소속사인 EMG네트워크㈜의 누드집 제작에 동의한 이유는요?

    커피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잔을 들었던 그가 남아 있는 몇 방울의 커피로 입술을 적신 후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내가 만약 10억원 주겠다는 제의를 받아들여 (누드사진을) 찍었다면 아마 상상을 초월하는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을 거예요. 10억원을 주겠다는 회사는 돈을 들인 만큼 본전을 뽑기 위해 작품성에 치중하기보다는 ‘얼마나 더 벗기느냐, 얼마나 더 야하게 찍느냐’에 초점을 맞출 게 뻔하잖아요. 소속사가 지난 9월 말경 누드사진을 찍자는 제의를 했을 때도 처음에는 거절했죠. 그러다 외국의 유명한 배우나 톱 모델을 찍은 누드 작품을 보면서 생각이 차츰 바뀌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모습이 담긴 그들의 누드집을 보고 ‘나도 저렇게 아름다운 누드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소속사가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그런 작업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작업에 응했어요.”

    -계약 조건은?

    “소속사로부터 계약금 10억원과 러닝개런티를 받기로 했다고 알려졌지만 그렇지 않아요. 많진 않지만 계약금을 받았고 일을 다 마친 후에 보너스 형식으로 받기로 했어요. 난 돈에 별 관심이 없는데 사람들은 ‘얼마를 받고 벗었느냐’면서 색안경을 쓰고 보네요. 그게 좀 씁쓸해요.”

    성현아는 사진작가 조선희씨와 함께 베트남과 태국 등에서 극비리에 찍은 누드사진을 2002년 12월9일 자정부터 인터넷 사이트 ‘오조숍’(www.ozzo shop.com)을 통해 유료로 공개했다. 누드집의 주제는 ‘아름다운 쾌락주의’. 바다 숲 사막 샤워장 침실 등을 배경으로 성현아는 다양한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사진은 총 200장. 실정법을 감안해 음모 노출만 피했을 뿐 올 누드가 포함된 상당한 수위의 사진들이다.

    -여자인 조선희 사진작가와 함께 작업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조선희씨는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진작가예요. 기회가 된다면 누드사진이 아니라도 어떤 식으로든 함께 작업해 보고 싶었어요. 또 여자 마음은 여자가 잘 알아줄 것 같기도 했고요.”

    -같은 여자라 벗는 작업이 쉬울 것 같았다는 건가요.

    “그 점도 무시할 수 없었죠. 일단 옷을 벗고 사진을 찍기에 쉬울 것 같았어요. 제 요구조건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젊으니까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업할 수 있겠다 싶었죠.”

    -첫 사진을 찍을 때의 느낌은?

    “첫 사진은 옷을 입은 상태에서 찍었어요. 무지 더운 사막이었는데 한겨울 추위에 떨고 서 있는 아이처럼 온 몸이 얼어붙어 난감했죠. 첫날은 상반신 위주의 사진을 찍었어요. 함께 간 스태프 중에 남자들도 있었는데 처음엔 그들에게 ‘나를 쳐다보지 말라’고 얼마나 소리쳤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들 뒤돌아 서서 있었어요(웃음). 사진으로 보는 것은 괜찮은데 벗은 몸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옷을 전부 벗고 찍을 때의 느낌은 달랐을 것 같은데요.

    “상반신을 드러낸 이후부터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벗다가 이튿날 새벽 다 벗었어요. 사진작가가 처음부터 확 벗으라고 하진 않았어요. 여자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서인지 충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다음에 다 벗게 만들었죠. 작품에 빠져 들다보니 벗었다는 느낌은 사라지고 오직 좋은 작품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 벗은 채로 사막을 막 뛰어다니며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죠.”

    -평소에 몸매에 자신이 있었나요.

    “어휴, 썩 자신은 없었어요. 글래머도 아니고, 볼륨감이 뛰어난 몸매도 아니라는 사실은 나 자신이 잘 알아요. 누드사진을 찍기로 결정하고 나서 두 달 동안 열심히 운동했어요. 좀더 나은 몸매를 만들려고 복근 운동을 많이 했죠. 스트레칭도 열심히 했어요. 몸매 관리를 한답시고 밥도 거의 안 먹다시피 했어요. 볼륨감은 없지만, 또래의 여자들에 비해서 날씬하다는 자신감은 있어요. 팔뚝 살도 안 늘어졌고 배에 근육도 있고요. 야하게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이 몸매로 누드 모델로 나설 수 있었어요. 단지 내 몸이 예술 작품으로 세상에 선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작업에 임했지요.”

    -1994년 미스코리아 미 출신인데 현재 신체 사이즈는요?

    “키 170cm, 몸무게 50kg이에요.”

    -미스코리아 당선 때와 비교해 변화가 없나요?

    “무슨 말씀을요. 그땐 어려서 살이 많이 쪘을 때죠. 미스코리아에 당선했을 때 몸무게는 56kg이었는데…. 그땐 몸무게를 살짝 줄여서 공식적으론 52kg으로 알려지긴 했어요.(웃음)”

    “누드사진 보고 흥분해선 곤란”

    -네티즌들 사이에서 가슴 성형수술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놀랐어요. 가슴 성형수술이라뇨…. 보면 알지 않을까요? 전 예쁜 가슴이 아니에요.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약간 처졌거든요. 글쎄, 가슴 성형수술을 했냐는 논란이 일 정도로 제 가슴이 커 보였나요? 아님, 예뻐 보였어요? 그 얘길 듣고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요. 가슴 성형수술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일 정도면 그만큼 가슴이 풍만하고 예쁘다는 것 아닌가요. 난 내 가슴이 절벽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성형수술한 가슴 아니냐고 하니까, 나야 뭐 그렇게 봐주니 고마울 뿐이죠. 아니, 솔직히 기분이 좋아요. 하하하.”

    박장대소를 하던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졌다. 누드사진을 성적인 쾌락의 도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부터였다. 특히 그런 시각으로 누드사진을 감상하려는 남성들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사람들은 누드모델 하면 죄다 쭉쭉빵빵한 몸매를 기대하고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몸매를 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봐요. 누드를 섹스와 연결하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고요. 전 제 사진을 본 남자들이 흥분하기를 바라지도 않았고 그런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남자들 중엔 누드사진을 그냥 ‘여자의 벗은 몸’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누드사진을 감상할 때는 사진의 구도와 배경·모델 등 작품 전체를 보아야 하는데 그저 여자의 몸만 쳐다보면서 자극되기만을 바란다면…. 글쎄요. 그게 얼마나 덜 떨어진 사고방식인지 당사자들은 알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재벌 도움으로 성공한 연예인은 시한폭탄 안고 사는 것”

    성현아는 “힘겹게 작업한 누드사진이 다른 의도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고 말했다.

    어떤 남자는 인터넷 게시판에 ‘이렇게 성적으로 흥분이 안 되는 누드사진은 처음 봤다’는 글을 올렸더라고요. 다들 제 사진이 파격적이라는 소문을 듣고 치모가 나오는지 여부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치모가 드러난 사진을 수없이 찍었어요. 아직 다 공개되진 않았지만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성적인 흥분을 위해 누드사진을 찍지는 않았다고요. 작품 그대로 봐 줬으면 좋겠어요. 한 여자가 생각 없이 가슴이나 치모를 드러내 놓고 ‘나 잡아먹으십쇼’, 이러면서 찍은 작품이 아니란 말이에요.”

    “죽을 힘을 다해 누드사진을 찍었다”는 성현아. “힘겹게 작업한 누드사진이 다른 의도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는 그는 누드 모델로 나서기까지 적잖이 자신과 싸웠다고 한다. 엑스터시 파문 이후 친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조차 멀리할 정도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에 시달리던 성현아. 그는 도발적인 누드집을 선보이며 또다른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가서는 과정에 예기치 않은 암초에 부딪쳤고 이에 분노했다.

    사진을 공개하려던 사이트가 오픈 예정 시각(2002년 12월9일 자정) 전에 접속 폭주와 해킹으로 인해 다운되는 사고가 발생했던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현아의 누드사진 전체가 한 포르노 사이트에 해킹돼 엉뚱한 곳에서 유료 서비스되고 있었다.

    -누드사진이 제대로 평가를 받기도 전에 ‘해킹 테러’를 당했는데….

    “한마디로 참담하죠. 포르노 사이트에서 내 사진이 떠돈다고 생각하니 잠이 다 안 오더라고요. 회사 쪽에서 보안을 2중 3중으로 했다기에 해킹을 당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죠. 회사 쪽이 해킹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며 해킹한 사람에게 100만원을 지급하겠다고까지 약속했는데 보안망이 뚫리고 말았대요. 100만명이 동시에 접속해도 끄덕 없는 서버를 갖췄다는데 사이트가 오픈하기도 전에 400만명이 동시에 접속을 시도해 서버의 주요기능이 마비돼버렸다는 거예요. 서버가 다운돼서 제때 서비스를 실시하진 못했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는 사실에 나 스스로도 놀랐어요. 대부분 단순한 호기심으로 사이트를 찾았겠지만요.”

    1994년 미스코리아 미에 당선된 이후 드라마 ‘사랑의 인사’ ‘보고 또 보고’ ‘당신 때문에’ ‘허준’ 등의 작품에서 연기자의 모습으로 대중들과 친숙해진 성현아는 남다른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친엄마의 죽음과 여동생의 죽음, 그리고 첫째 새엄마의 구박에 이어 2001년 초 친엄마 못지않게 사랑을 베풀었던 둘째 새엄마까지 세상을 떠나자 참기 힘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는 성현아. 이야기의 초점이 가족사로 옮겨가자 금세 눈자위가 젖어들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새어머니의 죽음 등으로 참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어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잠깐의 실수를 저질렀어요. 세상에는 저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많은데….”

    램프의 요정 ‘지니’의 주인이 된다면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신 엄마를 되살려 달라’고 하고 싶다는 그에게 다시 떠올리기 싫겠지만 “엑스터시 파문(2002년 3월7일 구속됐다 같은 달 25일 보석으로 풀려남) 이후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이 정말 죽고만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어요. 세상의 반을 살아버린 것처럼 힘든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이 나약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시간들을 너무나 후회하지만…. 한때의 잘못으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깊이 반성했어요. 이제는 나약하게 살고 싶지 않아요. 한번의 실수가 인생을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어요.”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무거운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그의 머리가 묵직한 듯했다. 말문을 돌렸다.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하고 싶냐”고.

    “그냥 평범한 사람요. 무엇보다도 나를 사랑해 주는 남자여야죠. 여자 연예인들 중엔 ‘돈 많은 재벌을 만나볼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재벌이나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하려고 맘먹은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재벌과 결혼해 행복하기보다는 외롭게 살아가는 여자가 더 많잖아요. 그런데도 여자 연예인들은 재벌2세나 준 재벌쯤 되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그들과 결혼을 꿈꾸기도 해요.”

    -연예인과 재벌은 어떻게 만나게 되지요?

    “처음에는 연예인들이 상대 남자가 재벌인지 모르고 만난다고 해요. 자기 입으로 나는 ‘누구네 집 아들입네’ 하고 떠벌리는 사람은 없다고 해요. 가장 흔한 형태는 재벌 또는 재벌2세와 친한 연예인이 친구 모임에 그 남자를 불러 동석하게 함으로써 서로들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는 경우예요.”

    -연예인과 재벌 2세들이 무리를 지어 만난다는 건가요.

    “연예인과 만나는 자리에 재벌 또는 재벌 2세가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나오다 보면 무리를 지어 어울리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연예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결같이 ‘재벌을 남편으로 둔 여자는 참으로 불쌍한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연예인과 어울리는 재벌 중에는 총각도 있지만 대부분 유부남이라고 해요. 여자 입장에서 보면 재벌의 아내는 진짜 불쌍한 존재 같아요. 돈이 많다는 것을 빼곤 남편에게 따뜻한 사랑을 받기를 하나, 남편이 집에 일찍 들어오기를 하나…. 아무튼 전 재벌과 결혼한 여자는 하나도 안 부러워요.”

    -연예인과 재벌이 어울리는 게 연예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얘기네요.

    “그건 사람들이 다 짐작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만 그것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본다거나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물론 좋지 않은 일도 더러 생기죠. 그러나 여자 연예인들은 연예인과 재벌의 만남을 외국처럼 하나의 문화코드로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어요.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좋지 않은 스캔들의 근원지로 보지 말라는 거죠.”

    -연예인들은 얼굴이 알려져 불편할 텐데 주로 어디에서 만나나요?

    “가장 선호하는 곳이 호텔 식당이라고 해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호텔 내 식당에서도 조용한 룸을 선호하고요. 아니면 청담동과 압구정동 등 강남권을 벗어나지 않죠. 그 자리에 참석하는 연예인은 물론이고 상대 남자들은 주변의 시선을 그리 신경 쓰지 않아요. 연예인이야 얼굴이 알려졌지만 재벌 2세들 얼굴이야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대기업체 회장이나 오너들과는 달리 자유롭게 돌아다닌다고 해요.”

    -만나면 특별한 음식을 먹나요?

    “아니, 재벌이라고 연예인이라고 먹는 게 특별한가요? 그냥 남들이 먹는 대로 먹고, 가끔 길을 걷다가 포장마차에서 소주도 마시고 떡볶이도 먹고, 어묵 국물을 홀짝홀짝 들이켜기도 하고…. 보통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보면 돼요.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인 것 같아요. 가끔은 카드를 많이 써서 부모한테 혼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그룹 순위에 따라 끼리끼리

    -만나면 주로 어떤 대화를 나누나요?

    “다를 게 있겠어요? 다들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나누는데, 사업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사업 얘기를 좋아해요. 그게 가장 큰 자랑거리이자 얘깃거리가 많기도 하잖아요. 사업 얘기와 더불어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에 대해 털어놓기도 하고…. 돈이 많다는 점 빼고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보면 틀림없어요.”

    -재벌들도 그룹 순위에 따라 어울리나요?

    “연예계도 톱스타와 중간급 스타가 확연히 나눠지는 것처럼 재벌가 사람들도 그룹 순위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뉘어 끼리끼리 만나요.”

    -재벌들은 연예인에 대해 특별한 환상을 갖고 있나요?

    “그 사람들은 워낙 자주 연예인을 만나기 때문에 연예인에 대한 환상 따위는 없다고 보면 돼요. 그들 주변에는 연예인이 끊이지 않거든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다고 보면 돼요.”

    모 대그룹 회장의 막내아들 A씨는 연예계에서는 알아주는 바람둥이로 통한다. 연예인과 만나 조용히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수준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연예인은 콕 찍어 ‘갈 때까지 가야’ 직성이 풀린다. 그를 거쳐간 여자 연예인만도 열 손가락을 넘는다는 게 연예계 정설이다.

    A씨는 연예계 마당발로 통한다. 그와 자주 어울리는 사업가 B씨는 그에게 톱스타 C양을 소개시켜 달라고 졸랐다. C양은 A씨로부터 B씨를 소개받은 후 결혼을 전제로 사귀었지만 얼마 못 가 헤어졌다. B씨가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노는 상대’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C양은 B씨와의 만남을 없던 일로 하고 뒤돌아 섰다.

    -A씨에 대한 소문은 알고 있나요?

    “그럼요. 왜 몰라요. 그런데 그 사람도 알고 보면 착한 면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B씨는 C양과 사귀면서 또다른 톱스타와도 만났어요. 양다리를 걸친 거죠. 연예계에 몸담고 있다보면 이처럼 몰라도 좋을 이야기까지 어쩔 수 없이 듣는 경우가 많아요. 누구는 연기도 지지리 못하면서 낙하산 타고 내려와 주연 자리를 꿰찼다는 둥, 누구는 누가 뒤를 봐줘서 성공했다는 둥 소문이 난무한데, 대체로 사실이에요.”

    연예인과 재벌의 조용하고 분위기 있는 만남은 때로 질펀한 술자리로 이어진다. 술 주정이 심하기로는 모 그룹 재벌 2세(30대)의 행태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상대 여자가 누가 됐든 간에 몸에 손을 대며 집적거리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일삼는 그의 술 주정을 겪은 연예인은 다시는 그와 만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가 CF업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벌이라 그의 술 주정이 싫으면서도 그가 부르면 즉각 달려가는 연예인이 적지 않다.

    한 기업의 CF모델은 하루아침에 D양에서 E양으로 바뀌었다. D양과 CF를 찍기로 계약이 돼 있었는데, 광고주인 기업의 대표가 D양 대신 E양을 추천했던 것. 기업주가 E양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직후 모델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D양이 동료 연예인에게 하소연하면서 알려졌다.

    이처럼 암암리에 연예인과 재벌은 먹이사슬처럼 연결돼 있다. 모 대형 연예기획사 대표 K씨는 한때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재벌 오너’의 측근으로부터 자신이 데리고 있는 톱 탤런트 L양과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서였다. 그 저녁식사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빤히 눈치채고 있는 L양은 완강하게 거절했다. K씨는 필자와의 만남에서 “그 과정에 발생한 불협화음을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털어놓으며 “이 바닥에서 가장 힘든 일이 바로 돈과 권력으로부터 연예인을 보호하는 일”이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현재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탤런트 F양은 CF모델로 연예계에 발을 내디뎠다. 워낙 스타가 되기 위해 ‘튀는’ 행동을 마다하지 않던 그는 무명시절 재벌과 가까운 친구를 통해 ‘알아서’ 자신을 ‘헌납’하면서 스타로 성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여자 연예인의 뒤를 봐주는 세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거죠?

    “그럼요. 한눈에 보면 알아요. 연기력도 없는 신인이 주인공으로 팍팍 뽑히는 일이 종종 있어요. 그건 십중팔구 누군가 뒤를 봐주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어요. 낙하산을 타서 급성장한 아이들은 늘 도움을 받은 세력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죠. 전 사다리나 낙하산을 타고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어요. 그래서 여태까지 ‘확’ 뜨지 못했는지 모르겠지만요(웃음). 지금도 그런 어둠의 힘을 빌려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런 제의를 받아 본 적이 있었나요.

    “소속사를 통해 나를 만나자는 제의가 있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죠. 권력층이든 돈이 있는 사람이든, 만나자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어요. 연기자란 자기 힘으로 연기력과 명성을 쌓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질이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어요. 물론 기량을 쌓아서 오래 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연기자라는 직업이 어쨌든 혼자서 하는 작업이잖아요.”

    나는 “곁눈질 하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톱스타 E양은 ‘누군가’ 뒤를 봐줘서 성공한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누군가’ 광고주를 설득해 E양을 모델로 기용하게 만들었고, 또다른 광고주를 설득해 광고 모델로서 명성을 쌓게 했다. 그후 E양을 영화와 브라운관을 오가는 몸 값 높은 톱스타의 대열로 끌어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모 여자 탤런트는 자신의 출연료 수입으로는 호화판 생활이 불가능한데도 강남에 40평대 아파트를 마련하고 부모의 아파트까지 마련해 줬다. ‘버는 돈’과 ‘씀씀이’가 다를 경우 분명히 뒤에서 도움을 주는 손길이 있다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유부녀인 한 탤런트는 강남의 고급 술집에서 모 재벌과 진한 애정행각을 벌이다 동료 연예인의 눈에 띄어 한때 구설에 올랐다.

    “낙하산을 타고 성공하려는 것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을 왜 붙잡고 사는지 모르겠어요.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는 연예인의 경우 함께 일하는 감독이나 주변 사람들은 다 눈치를 채게 마련이거든요. 그러면 그들이 연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겠어요. 전 톱스타는 아니지만 꾸준히 일하는 몇 안 되는 미스코리아 출신의 연기자 중 한 명이에요.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노력해서 채우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 곁눈질은 하지 않았거든요.”

    그와 만난 시각은 저녁 9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넘어섰다. 다섯 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는 지루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았다는 성현아는 “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주어진 일에 열심히 임하겠노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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