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과수 법의학과 부검팀이 변사자의 시신을 부검하고 있다.
냉장보관실에 있던 사체가 카트에 실려 싸늘한 부검실로 들어왔다. 하얀 방수천을 벗겨내니 밀랍같은 사망자의 시신이 드러난다. 따라들어온 경찰관이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가족들이 그러는데 죽은 사람이 에이즈 환자였던 모양입니다.”
순간 부검 당직 이한영 법의학과장(45)의 표정이 굳는다. 한 명의 의사와 세 명의 연구사로 구성된 부검팀도 술렁인다. 사망자의 피가 묻은 메스에 찔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에이즈 감염을 각오해야 할 판이다. 몇몇 사람이 부검실 구석에 있는 서랍장에서 목장갑을 꺼내 의료용 장갑 위에 덧낀다. 사체 옆에 놓인 서류를 들여다보던 이과장에게 옆 해부대에서 부검을 진행하고 있던 양경무 법의관(35)이 말을 건넨다.
“과장님도 마스크를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미리 알았으니 꺼림칙한 거지, 에이즈 환자인 줄 모르고 부검한 게 한두 번이야? HIV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 노출되면 몇 초 안에 죽는다고. 자, 시작들 합시다.”
“피라도 튀면…”
이과장이 듣는 둥 마는 둥 해부대 옆으로 다가선다. 냄새 또한 중요한 정보이기 때문에 마스크는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자의 발이 저절로 뒤로 한 발짝 움직였다.
“목장갑이 전붑니까? 다른 살균시설 같은 것은 없습니까?”
어쭙잖은 질문이었을까, 이과장의 씁쓸한 웃음이 대답을 대신한다.
서울 양천구 신월7동 135번지 N연립주택은 동네의 다른 집에 비해 집값이 싸다. 건물이 낡아서도, 부실공사 때문이어서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부검실이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법의학 별관이 손에 잡힐 듯 가깝기 때문이다. 입구에서 만난 아이 업은 아주머니는 “아무래도 꺼림칙하지만 저 건물이 먼저 생겼다니 할말 없지 뭐” 하고 말꼬리를 흐린다. 공기정화시설이 시신 냄새나 병균을 완전히 제거한다고 하지만 왠지 께름칙하다는 것이다.
국과수 법의학부 법의학과. 매년 7000여 명에 달하는 변사자의 시신이 이곳을 거친다. 그 중 서울 본소에서 처리한 건수가 지난해 3000건을 넘어섰다. 휴일을 제외하면 평균 하루 10건. 수도권 전지역의 경찰서와 군 수사기관, 교정시설 등이 서울 본소 관할이다.
국과수가 서울의 서쪽 끝인 양천구 신월동 외진 동네에 자리잡은 것은 1986년. 시민들의 반발이 적은 곳을 고르고 골라 산림청 소유인 국유지에 터를 닦았지만, 서울이 비대해지면서 인근에 어김없이 주택가가 들어섰다. 부서마다 공간 부족을 호소해도 주민들 항의에 증축은 생각도 못하고 있다. 야산과 고속도로 사이에 건물을 짓다 보니 북향을 택할 수밖에 없어, 안 그래도 을씨년스러운 연구소에는 한낮에도 찬바람이 쌩쌩 분다.
흔히 생각하듯 국과수에서 부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국과수는 크게 두 부서로 나뉜다. 화학 분석이나 화재 감정, 교통사고 분석 등을 담당하는 법과학부가 그 하나이고, 부검과 유전자 분석, 범죄심리학을 포함한 법의학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법의학부가 다른 하나다.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서가 없지만 아직까지 ‘국과수’라는 말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차가운 부검실의 이미지다.
국과수 법의관의 정원은 남부(부산), 서부(광주), 중부(대전) 분소를 포함해 총 25명이지만, 빈자리가 많아 실제로는 20명이 본소와 분소를 오가며 근무하고 있다. 서울 본소에서 일하는 법의관은 열두 명. 그 중 치흔과 조직검사 담당 법의관을 제외하면 부검을 하는 사람은 열 명이다. 이외에 세 명의 공중보건의가 배치되어 일손을 돕고 있다.
이들 법의관은 모두 의사다. 해부병리학 전공으로 전문의 자격을 획득해야 법의관이 될 수 있다. 국과수에서 법의학 관련 트레이닝을 받고 선배들의 부검에 1년 이상 참여한 뒤에 비로소 자기 이름으로 감정서를 쓸 수 있다.
자격 조건이 까다롭다 보니 연령대가 높다. 가장 최근에 들어온 김성호 법의관이 34세. 서울 본소에서 일하고 있는 12명 가운데 7명이 박사학위 소지자다. 이들을 도와 부검을 진행하는 연구사들 또한 임상병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전문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