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이 그로테스크하죠?”
부검실이 자리잡고 있는 법의학 별관 지하로 내려가는 길에서 이한영 과장이 기자를 돌아보며 웃음을 짓는다. 서늘한 12월의 아침, 좁고 어두운 철제 나선형 계단이 몸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지하 복도에 들어서자 인체 장기를 병에 담아 보관해 둔 표본이 눈에 들어온다. 일제시대 때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사이비 종교 교주와 뭇 남자를 홀렸다는 전설적인 기생의 성기도 보관하고 있지만, 이상한 시선이 많아 전시대에서 치웠다는 게 이상용 법의관(36)의 설명이다.
아직 작업이 시작되지 않은 부검실에 들어서자 찬 공기가 훅 끼친다. 텅빈 방에는 알 듯 말 듯 반갑지 않은 냄새가 남아 있었다. ‘시신과 유가족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팔짱을 끼는 일은 삼가 달라’는 안내문이 눈에 띈다.
부검실은 크게 네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날 부검할 시신을 맞이해 보관하는 냉장실과 X-ray 촬영 등이 이루어지는 검사실, 부패가 심한 사체를 부검하는 밀폐실, 그리고 일반 부검실이다. 밀폐실이 있다고는 해도 여름에 부패가 심한 사체가 들어오면 건물 전체에 냄새가 퍼지기는 마찬가지다.
“춥지요? 혼령이 많아서 그래요. 여기저기 떠다니는 것 안 보이세요?”
부검실의 냉기는 냉장실 문이 열려 있기 때문이었다. 농담인 줄 뻔히 알면서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국과수 법의학과의 하루는 아침 8시30분에 시작한다. 아침회의는 그날 부검해야 하는 사체를 검토하고 당직 부검의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날은 열 건이 들어와 있다. 만만치 않은 날이다.
의뢰 건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하루 2~3개조가 부검을 맡는다. 일이 몰릴 때는 6개조까지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 한 부검조는 법의관 한 명과 연구사 두 명, 사진촬영 담당 등 네 명으로 이루어지지만, 빠른 진행을 위해 공중보건의가 참여하기도 한다. 법의학부 부장과 과장도 당직에는 예외가 없다.
부검을 시작하는 시간은 대략 9시 10분경. 부검실 밖에는 시간에 맞춰 도착한 앰뷸런스와 경찰관, 유족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날 부검은 물에 빠진 자동차에서 발견된 중년 여인의 사체로 시작해 병원에서 숨진 장애아의 시신을 살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어느새 오후 1시.
가운과 장갑을 벗은 부검팀이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기자도 마지못해 수저를 들었지만 밥은 목에 걸린 듯 잘 넘어가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역한 냄새가 나는 사체를 만지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식사를 하는 부검팀이 딴 세상 사람처럼 보인다.
“더럽거나 꺼림칙하다고 생각한다면 의사가 아니죠. 부검 사이에 먹는 샌드위치는 더 맛있는 걸요. 위험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있어요. 결핵이나 간염에 걸린 사망자라면 세균이 공기 중에 떠다닐 수 있으니까요. 부검실에는 소독시설은커녕 샤워실도 없거든요.
그래도 집에 가면 거리낌없이 아이 안아줘요. 따지고 보면 종합병원과 다를 것도 없어요. 외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뿐이죠.”
유일한 여성 법의관 박혜진씨(34)의 말이다. 같은 사무실을 쓰고 있는 양경무 법의관이 한마디 거든다.
“씨랜드 화재사고 때였을 거예요. 일곱 살 먹은 딸아이가 ‘아빠는 의사같지 않은 의사’라고 놀리길래 사무실에 데리고 온 적이 있었어요. 부검실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사무실에 있는 사진도 모두 치웠는데 아이가 무섭다고 하더라고요. 익숙해진 우리는 못 느끼지만 건물 전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나 싶더군요.”
영화와 현실 사이의 거리
부검의 첫 번째 작업은 사체의 눈꺼풀을 확인하는 일. 질식사의 경우 눈꺼풀에 있는 모세혈관이 터진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부검팀이 샤워기로 사체의 구석구석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현장 감식반이 확인한 스물일곱 군데의 상처 이외에 왼쪽 어깨 위로 화상 모양 비슷한 긁힌 상처가 발견됐다. 쇠로 된 자를 상처에 넣어 찔린 깊이와 크기를 확인하는 작업을 마친 부검팀이 사망자의 굽은 손을 폈다. 손가락 군데군데에 베인 상처가 눈에 들어온다. 방향이나 각도로 봐서 칼을 막다 생긴 방어흔임에 분명하다.
“묶여 있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과장이 담당 경찰관에게 묻는다.
“네. 감식반 말로는 청테이프로 묶여 있었습니다. 팔다리에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요.”
경찰관의 말에 이과장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럼 뭐야, 찌르고 나서 묶었다는 얘기야?”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 칼이 이 각도로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찌르고 묶고 다시 찔렀다? 말이 안 되잖아. 현장 상황 좀 설명해 주시겠어요?”
담당 경찰관이 당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그게…, 저도 감식반이 작업을 끝내고 현장을 본 거라서….”
형사의 말에 이과장이 한숨을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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