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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화국의 저승사자였다”

탈북자 체포 전담했던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공작원 육필 수기

  • 글: 이춘길(가명)전 북한 함경북도 국가안전보위부 탈북자 납치 공작원

“나는 공화국의 저승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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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보위부 對 남한 국정원 간의 흥미진진한 공작전 내막
  • ●1995년부터 북한은 범죄인 공개총살할 때 15발씩 발사
  • ●사회안전원 옷 입고 평양에 가 국정원 협조자 된 박진만의 가족 빼내
  • ●탈북자로 위장해 중국 잠입, 국정원이 만든 민통련 조직에 접근
  • ●보천보기념탑 폭파 기도한 민통련
  • ●‘국정원 간부’ 한성원 잡기 위해 보위부와 보위사 치열한 경쟁
  • ●북한에 반북 삐라 뿌리는 비밀 결사체 ‘진달래’의 정체
  • ●보위부 아지트 덮쳤던 문화준이 3중 스파이가 된 사연
  • ●국정원이 주도한 敵地 물자 살포 공작
  • ●국정원 돈 앞에 맥 못추는 북한 공작원
  • ●옌지에서 일어난 김동식 목사 납치 사건의 전말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 대칭하는 북한의 기관은 국가안전보위부다. 국가정보원을 줄여서 ‘국정원’으로 부르듯, 북한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를 ‘보위부’로 통칭한다. 현재 국가안전보위부의 부장은 공석인데, 일설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겸하고 있다고 한다. 부장이 없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는 김창석 제1부부장이 부장 대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 중국 무대로 대북 공작

남북 대결사는 1972년과 1988년, 2000년을 고비로 크게 바뀌었다. 6·25전쟁이 끝난 후부터 7·4남북공동성명이 나온 1972년까지는 남과 북이 휴전선 너머로 특수부대를 보내 서로 상대 군부대를 공격하고 주요 시설을 파괴한 테러의 시기였다. 남쪽에서는 HID 혹은 북파공작대가 그 일을 했고, 북쪽에서는 124군부대나 정찰국이 그 일을 했다. 양쪽의 군대가 집결해 있는 휴전선에서 감행된 테러와 기습은 자칫 정전체제를 열전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과 북은 상당한 인적(人的)·물적(物的) 손실을 입었다.

7·4남북공동성명 제2항에는 ‘쌍방은 남북 사이의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무장도발을 하지 않으며 불의의 군사적 충돌사건을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 조항은 휴전선 부근에서의 테러 대결을 중지하자는 뜻이었다.

이후 남쪽은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경제를 일으키는 데 주력했다. 반면 북쪽은 남조선 혁명을 위한 지하당 건설에 노력했다. 북쪽은 ‘창’을 들고 공격하고, 남쪽은 ‘방패’를 들고 막는 형세가 만들어진 것이다. 외견상으로는 북쪽이 주도권을 잡은 것 같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남쪽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졌다. 남쪽은 경제가 살아나 방위산업을 키웠고 북쪽은 테러지원국가로 고립돼버리고만 것이다.



남쪽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마련된 북방외교를 통해 단숨에 남북관계를 역전시켰다. 과거 북쪽이 일본에 있는 조총련을 이용해 대남공작을 편 것처럼, 남쪽은 중국을 무대로 대담한 대북공작에 들어간 것이다. ‘방패’를 든 북쪽은 이전의 남쪽처럼 내실을 기하지 못했다.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각했기 때문에 내실을 기할래야 기할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대신 북쪽은 지독한 주민 단속정책으로 대항했다. 북한 주민의 일상 생활을 통제하고 탈북주민을 잡아들이는 공포정치를 구사한 것이다. 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원 이춘길(32·가명)씨의 수기는 이 시기 북쪽이 편 공포정치의 실상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다. 안으로는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막아야 하고, 밖으로는 남쪽의 공세에 부딪친 김정일 정권이 생존을 위해 북한 인민을 상대로 어떠한 일을 저질렀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남쪽이 절대적인 우세를 보인 가운데 진행돼 온, 3국을 무대로 한 공작전을 중지시킨 의미가 있다. 공작전을 중지시킨 것이 과연 남북통일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 할 문제다. 혹자는 남북 긴장이 완화됐으니 통일의 기회가 넓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제정치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통일이 저절로 되겠느냐”고 반문한다. 이들은 공작을 중지한 것은 김정일 정권을 연명시키고 북한 인민을 더욱 가혹한 조건에 놓아두는 비인도적인 조치라고 주장한다.

이춘길씨 수기는 어느 것이 남북통일에 보다 나은 방안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하나의 자료가 될 것이다. 이씨의 수기는 중국을 자주 출입하는 한 한국인의 도움으로 작성되었다. 이 한국인은 이씨를 만나 장기간 이야기를 듣고 수기를 작성해 주었다. 그는 이 수기를 이씨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와 사진, 그리고 이씨가 작성한 사과문 등을 들고 ‘신동아’를 찾아왔다.

1998년과 1999년 사이 남과 북의 공작기관이 벌인 숨가쁜 공작전과 북한 보위부의 지독한 탈북자 추적을 살펴보기로 한다. 수기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때와 장소, 이름은 감추지 않고 그대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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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춘길(가명)전 북한 함경북도 국가안전보위부 탈북자 납치 공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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