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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1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표 파는 여자

  • 글: 정정심

표 파는 여자

2/10
아침 9시. 교대를 마치고 매표실 의자에 앉는다. 매표실의 투명한 유리를 통해 할머니 한 분의 모습이 보인다. 치맛자락을 치켜올려 검은 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숱도 얼마 없는 흰머리를 단정히 틀어올렸다. 머리에 인 커다란 보따리는 할머니의 작은 키를 더욱 짓누르는 듯하다. 할머니가 대합실 의자에 보따리를 내려놓고 창구 앞으로 다가선다. 치마를 허리춤까지 걷어올려 속바지 깊은 곳에서 꼬깃꼬깃한 만원권 한 장을 내미는 할머니.

“서울 완행 반표 하나 주소.”

할머니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자면 ‘청량리행 특정 통일호 경로표 한 장’이다. 지금은 열차의 등급을 통일호, 무궁화호, 새마을호로 분류하지만 할머니에겐 완행이라는 예전의 표현이 더 익숙하신 게다. 청량리행 특정 통일호는 우리 역에서 오후 1시22분에 출발하여 오후 6시50분에 청량리에 도착하는 옛날의 비둘기호 열차다. 작은 역에도 모두 정거하는 탓에 무전여행객들이나 노인 분이 주로 이용한다.

할머니는 4시간 후에 출발하는 열차를 타기 위해 아침부터 서두르셨나보다.

“할머니, 기차시간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왜 벌써 나오셨어요?”



수작업으로 발매하는 2500원짜리 통일호 승차권에 도장을 쾅 찍으며 할머니께 여쭙는다.

“집이 촌이라 나오는 버스가 없니더.”

할머니는 거스름돈을 주섬주섬 챙기며 의자 한 쪽에 자리를 잡더니 보따리를 풀어헤쳐 사탕 한움큼을 나에게 건네주셨다. 빨간색 흰 설탕이 묻어 있는,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맛보던 사탕이다. 보따리를 넌지시 곁눈질해 보니 반찬통이랑 인삼, 참기름, 고춧가루 봉지가 보였다. 아마도 서울에 있는 자식 집에 다니러 가시는 듯하다.

시간이 흘러 10시49분 청량리행 새마을호 열차가 떠나고, 11시23분 부전행 통일호도 떠났다. 할머니는 의자에서 보낸 시간이 지루했는지 내게로 다가와 동전을 내밀었다.

“할머니, 왜 그러시는데요?”

“새댁이요, 내가 커피 한잔 빼먹고 잡은데 우야면 되니껴?”

할 수 없이 매표실을 나와 할머니와 함께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할머니, 여기에 동전을 넣으시고요, 이게 밀크 커피니까 이 버튼을 누르시면 돼요.”

할머니께 커피를 건네자 무안할 정도로 연신 머리를 숙이신다.

“고맙니더, 참말로 고맙니더. 늙으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니더.”

종이컵을 두 손에 꼭 쥐신 채 호호 불어대는 할머니의 모습이 주름살과 어우러져 묘한 연민을 자아낸다.

12시10분이 되어 안동행 새마을호마저 전호기의 흔들림 속으로 사라졌다. 대합실의 할머니를 찾아보니 보따리를 끼고 좁은 의자에 몸을 의지해 잠이 드셨다. 그간의 시간이 지루하셨나보다. 젊은 사람 같으면 많은 돈을 주고서라도 새마을호를 탔을 텐데 할머니는 돈을 아끼는 대신 그런 식으로 시간을 죽이고 계셨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간의 풍요로움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만 문화와 문명의 혜택을 등지고 살아감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을 한 날이다.

노인들과의 실랑이

내가 근무하는 곳은 작은 읍에 위치해 있다. 농촌이라는 특성상 할아버지, 할머니를 많이 접한다.

오늘도 나는 어김없이 검붉은 얼굴에 깊이 팬 주름살, 굽은 허리를 지탱해주는 가느다란 지팡이, 혼자서 열차를 타기엔 힘겨워 보이는 할아버지 한 분을 손님으로 맞는다.

“휴…. 쪼매 있어 보소, 아이고 디다, 휴….”

역까지 걸어오느라 힘드셨는지 할아버지의 이마엔 군데군데 땀방울이 맺혔다.

“서울 좌석 있니껴?”

“예, 할아버지.”

너무도 힘들어하셔서 더욱 공손히 대답한다.

“한 장 드릴까요?”

“좌석으로 하나 주소, 얼마니껴?”

“6300원인데요.”

6300원이라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할아버지는 들고 온 누런 봉투에 손을 넣는다. 꺼낸 건 남색의 체크무늬 손수건. 손수건을 느릿느릿 펼치니 그 속에서 천 원짜리 지폐가 얼굴을 내민다. 엄지손가락에 침을 ‘퉤퉤’ 하고 뱉으시더니 돈을 세기 시작한다. 돈이 넘어감과 동시에 나 역시 마음속으로 그 돈을 세고 있다.

‘하나, 둘, 셋….’

넷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할아버지는 돈을 세다 말고 말을 건넨다.

“얼마라 그랬니껴?”

“6300원이요.”

셋까지 세던 돈을 다시 움켜잡아 처음부터 다시 세는 할아버지. 그사이 세 명의 손님이 할아버지 뒤에 줄을 선다. 할아버지는 천원짜리 여섯 장을 내미신다.

“할아버지, 300원 더 주셔야지요.”

“기다리보소.”

이번엔 바짓주머니에서 거무죽죽한 동전지갑을 꺼내신다. 지갑을 열어 창구 앞 빈 공간에 쏟아붓는다. 십원짜리와 오십원짜리가 땡그랑 소리를 내며 널브러진다. 다시 세기 시작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기다리는 손님들의 수를 센다. 길어지는 줄과 비례해 내 마음의 조급함이 상승곡선을 탄다. 동전을 다 세고 승차권을 받으셨건만 할아버지는 자리를 계속 지킨다.

“이거 몇 호차 몇 번이껴?”

“2호차 35번이요.”

“몇 시에 도착하니껴?”

“12시41분이요.”

몇 걸음 옆으로 물러서던 할아버지가 다시 창구 앞으로 다가온다.

“이게 2호차라 그렇지요?”

“예, 할아버지, 2호차 35번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다.

“수다스러서 미안하니대이. 늙으면 깜빡깜빡 하니더.”

할아버지가 창구 앞에서 멀어진다. 긴 한숨과 더불어 나는 다시 다음 손님을 맞는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건 기본이고, 듣지 못하는 분도 많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야 할 경우도 빈번하다. 서비스 정신이 모자라서일까, 굳게 마음을 먹었다가도 노인 분을 대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에서 밀려오는 짜증에 나 자신을 추스르지 못할 경우가 많다.

“음력 스무 여드렛날, 서울 하나 주소”

손님으로 붐비는 주말 오후, 승차권을 구입하려 일렬로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제치고 창구 앞으로 다가오는 육십 전후의 여자 손님 한 분이 있다.

“서울, 몇 시 몇 시 차 있니껴?”

순서를 기다리던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한다.

“손님, 질서를 지켜주십시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이는 여자 손님.

“이봐요, 나이 든 사람 먼저 해주면 안 되니껴?”

하는 수 없이 먼저 온 아저씨를 바라다본다.

“먼저 해주세요.”

회색 양복 차림의 말끔한 아저씨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건만, 정작 여자 손님은 미안한 기색은커녕 당연하다는 말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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