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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서일기

과학서적에서 발견한 색다른 즐거움

  • 글: 전여옥 ‘인류사회’ 대표 yuok419@hanmail.net

과학서적에서 발견한 색다른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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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적에서 발견한 색다른 즐거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최대의 오락이자 쾌락이다. 물론 절반은 먹고 살기 위한 한 끼 끼니처럼 ‘쓴다’는 내 직업의 식사이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가장 짜릿하게 원하는 일이 있냐’고 묻는다면 읽는 데 꽤 집중력이 필요한 책 10권 정도를 꾸려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 대답할 것이다.

나는 책과 더불어 성장하고 책을 통해 인생의 답을 얻어왔다. 그 결과 매우 ‘충동적인 성격’인데도 ‘무사히(?)’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혹자는 “‘무사히’라니?”,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단연코 책 때문에!’ 이렇게 덜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다고 대답할 것이다. 만일 내가 읽은 그 무수한 소설과 시와 수많은 읽을 거리가 없었더라면 나는 세상의 모든 일을 경험하겠다고 덤벼들었을 것이다. ‘간접체험’이라는,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호기심 진정제’가 없었다면 내 인생은 ‘격랑 속의 쪽배’였을 것이다. 책 때문에 이나마 안정적이고 평화스럽게 살아왔다고 여긴다.

‘어쩔 수 없는’ 활자중독자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읽기를 무조건 좋아했다. 하다못해 그 옛날 시장 다녀온 엄마의 장바구니에 든 신문지 조각까지 읽어내려 갔다. 꼬마 책벌레는 어른이 되면서 활자중독자가 됐다. 기실 나는 여러 가지 중독증세를 지니고 있다. 아주 가벼운 정도의 알콜중독을 비롯해 커피중독 등등. 그 가운데 가장 심한 게 활자중독이다. 여전히 무엇인가를 읽지 않고 있으면 불안하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 속에서 허전하고 웬일인지 기운이 없을 때가 있다. 며칠 간의 일정을 곰곰 복기해보면 답은 대개 두 가지 이유로 집약된다.

우선 고기를 한 번도 먹지 않고 매우 부실한 식사만 했을 때다. 아무리 제리미 리프킨이 외쳐도 나는 철저한 육식동물인 듯 고기를 안 먹고 며칠 정신 없이 일하면 매우 힘이 든다. 그날은 당장 고깃간에 가서 좋은 안심을 사다 스테이크를 해먹거나, 그도 여의치 않으면 동네 패밀리 레스토랑에라도 간다.

그런 이유가 아니면 작심해 읽은 책이 없는 경우다. 대충 눈으로 훑어내려간 속독식 독서로 몇 권을 해치웠거나, 신문·잡지나 인터넷 훑기로 밤을 지샌 경우다. 마음에 드는, 명석한 저자가 그의 온갖 지식과 재능을 확신하며 ‘바로 이거라구, 제대로 생각해봐’하고 자신만만하게 밀고 들어오는 책의 유혹은 지금도 ‘한 번 경험해보면 어떨까’ 싶은 마약의 유혹처럼 강렬하다.

그래서 그런 날은 새벽 2∼3시까지 폭식하듯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때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한두 잔 곁들이면 그보다 더한 사치와 쾌락과 행복은 없는 듯하다.

언젠가 아이와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경주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모두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들인지라 ‘엔터테이닝’도 고달팠다. 온천과 맛난 음식, 산책이 이어졌는데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와 어머니와 함께였는데도 그리 행복한 줄 몰랐다. 그러나 마침내 오랜 시간 온천에 지친 어머니와 아이가 곯아떨어졌을 때 어두운 호텔방에서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었다.

세상은 잠들었고 나는 깨 있었다. 집중력이 생기자 생각을 많이 해가며 읽어야 하는 책을 두 권이나 읽고 포만감에 잠든 기억이 난다.

일본특파원 시절 일 주일 내내 팽팽 돌아가는 긴장감 속에, 또 매일 저녁을 술과 장미의 나날로 보낸 내게 주말은 ‘오아시스’였다. 모처럼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고 열 권쯤 되는 잡지를 소비하듯 읽어제쳤다(지금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락은 잡지를 읽는 일이다). 이틀 동안 어느 누구와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책만 읽었다. 지금 생각해도 흐뭇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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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여옥 ‘인류사회’ 대표 yuok4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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