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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특집│노무현 시대

“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역대 대통령직인수위원들의 긴급 제언

  • 글: 이형삼 hans@donga.com

“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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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대통령이 선출됐다. 그의 첫 과제는 취임까지 두 달 남짓한 기간을 알차게 활용해 ‘준비된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하는 것. 이 기간을 승리의 희열에 젖어 허비한다면 국정 공백을 피할 수 없고, 정권의 매끄러운 인수·인계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금쪽 같은 두 달을 요리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제15대 대통령직인수위 첫회의(1997.12.26)

“성공적인 대통령 후보라면 자신이 당선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자마자 누가 정권인수 작업을 이끌 것인지, 누가 정권인수팀의 대변인을 맡을 것인지, 취임 이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어디서 보낼 것인지에 대해 발표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자문역으로 정권인수팀에 참여한 시어도어 소렌슨의 말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 첫날부터 내각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주요 정책을 공백 없이 결정·집행하려면 당선 확정에서 취임까지의 두 달 남짓한 ‘학습기간’을 완벽하게 활용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유력한 후보로 나선 순간부터 정권 인수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 당선자가 짧은 정권 인수 기간에 떠맡아야 할 임무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이래 43대 대통령 부시에 이르기까지 211년 동안 정권이 42차례나 바뀌었다. 평균 5년에 한 번 꼴로 정권이 바뀌다 보니 국정운영과 정책이행의 연속성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이에 따라 의회는 1963년 ‘대통령직 인수·인계법(Presidential Transition Act)’을 제정했다. 이 법은 1988년 ‘대통령직 인수·인계 효율화법(Presidential Transition Effectiveness Act)’으로 수정·보완되면서 정·부통령 당선자에 대한 사무실·비품·항공기 등의 제공, 사무요원 급여 지급, 전문요원 채용, 공무원 파견 등 국가의 지원내용이 명시됐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는 당선되기 훨씬 전부터 전담팀을 구성해 대통령직 인수 프로그램을 마련한 이가 적지 않다. 39대 카터 대통령과 40대 레이건 대통령이 그 대표적인 경우. 카터는 선거 6개월 전인 1976년 5월부터 집권대비 계획을 세웠고, 6월10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마자 이 계획을 실행에 옮겨 선거운동과 집권준비 활동을 분리 가동했다.

레이건은 선거를 7개월 앞둔 1980년 4월 집권준비기획단에 ‘레이건 행정부 최초 100일 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500명으로 출범한 집권준비기획단은 곧 1000명 규모로 확대되어 정책, 예산, 정부조직 등 국정운영 전반을 검토했다. 레이건도 선거운동본부와 정권인수팀을 각기 다른 도시에 둘 만큼 철저하게 분리 운영했다.



그 결과 레이건은 새 정부 요직 인선, 정책 시행 우선순위 등 집권 초기 구상을 사실상 끝낸 상태에서 백악관에 입성, 정권을 가장 순조롭게 인수한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노태우 ‘취임준비위’가 시초

“섀도 캐비닛 들여앉혀 인수위를 ‘초대 내각’으로”

제14대 대통령직인수위 현판식(1993.1.4)

2002년 12월20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선출됨에 따라 곧 구성될 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떤 인사들이 인수위에 참여할지, 이들이 두 달 동안의 갑론을박 끝에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공과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릴지, 또한 그것을 전범(典範)으로, 혹은 반면교사로 삼아 어떤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여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가늠하게 할지 궁금하다.

민주 선거를 통한 정상적 정권교체 역사가 겨우 15년 남짓하다 보니 우리나라의 인수위 역사 또한 일천하다. 하물며 선거시즌에 돌입하면 오로지 선거운동에 총력을 쏟아붓는 우리 정당들의 생리상 대통령후보 때부터 정권 인수 준비팀을 운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나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시초는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당선자가 구성한 제13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위원장·이춘구)로 볼 수 있다. 12대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1988년 1월18일 대통령령으로 효력기간 6개월의 대통령취임준비위 설치령을 공포, 대통령직 인수·인계를 위한 근거를 마련했다. 이날 출범한 취임준비위는 이춘구(위원장), 최병렬(정치·공보), 현홍주(안보·대외), 이진(행정일반), 김종인(경제), 김중위(교육·문화), 강용식(총무·의전) 등 위원 7명, 위원급 2명, 전문위원 12명, 행정요원 33명 등 모두 54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취임준비위는 이름 그대로 국정 파악과 인수보다는 차기 대통령의 취임 준비에만 주력했기에 본격적인 정권 인수조직으로 보기 어렵다. 선거가 한 달이나 지난 뒤에 구성됐기 때문에 활동기간도 짧았다.

더구나 위원장 추천, 위원 임명 등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 일일이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등 대통령 당선자보다 현직 대통령이 주도하는 분위기였다. 전대통령은 노당선자가 추천한 위원 7명 중 이춘구 위원장 1명에게만 임명장을 줘 갈등을 빚기도 했다. 당선자가 비록 국민의 직접선거로 뽑히긴 했지만,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후계자 지명을 받은 탓에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

1993년 1월4일 출범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당선자의 제14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위원장·정원식)는 성격이 많이 달랐다. 우선 명칭부터가 최초의 ‘대통령직인수위’였다. 김당선자는 처음엔 노대통령 정부에 ‘정권인수위원회’라는 명칭을 요구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측은 “정권 인수는 혁명적인 상황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반대했고, 결국 절충 끝에 대통령직인수위가 되었다.

김당선자는 인수위 활동이 당선자 중심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인수위원 임명권도 당선자가 갖게끔 청와대와 합의했다. 이에 따라 위원 15명, 전문위원 30명 등 총 91명의 멤버로 인수위를 구성했고, 통일·외교·안보, 정무, 경제, 사회·문화 등으로 전문화한 분과 활동을 통해 정부 각 부처의 주요 시책과 현안을 파악, 차기 대통령을 보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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