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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쪽방, 출구 없는 삶의 종착역

0.7평, 숙박료 6000원의 안식처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종로 쪽방, 출구 없는 삶의 종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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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 종로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사람에게도 낯설기 그지없는 공간이다. 한 평도 안 되는 수백 개의 ‘쪽방’들이 뜨내기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남아 있는 박제된 근대화의 유물, 그곳에 우리가 보듬어야 할 이웃들이 살고 있다.
일흔을 바라보는 박노인을 만난 곳은 서울 종로 쪽방상담소 ‘사랑의 쉼터’였다. 자존심이 강한 노인이었다. 개인사를 좀체 털어놓으려 하지 않았다. 소주가 몇 잔 들어가고서야 속내를 털어놨다.

외환위기 여파로 연희동 집을 나와 지하도에서 노숙을 시작한 게 몇 해 전이다. 2001년 초 탑골공원에 들렀다가 근처에 싸구려 쪽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종로구 돈의동 103번지, 이른바 ‘종로 쪽방촌’에 들어왔다. 칠십 나이에 노숙을 전전한 터라 몸이 많이 상한 데다, 당뇨와 류머티스까지 있어 걸음을 떼기도 힘겹다. 그래도 말쑥한 정장 차림이었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사람을 찾아가 만나야 하고, 그러려면 허술한 행색을 보여선 안 된다는 것.

“우리 세대는 말이요, 앞만 보고 달려왔어. 우리 동네에서 내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왔소갔소’였어. 만날 회사와 집만 왔다갔다 했거든.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결혼식에도 일 때문에 제 시간에 못 갔지….”

그를 부축해 낙원상가 골목의 돼지족발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족발집 아줌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만날 혼자시더니, 오늘은 손님을 다 데리고 오셨네.”



“젊은 사람 갈 데가 못돼요”

종로 거리를 웬만큼 누벼본 사람도 쪽방촌은커녕 돈의동이란 동네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종로구에는 80여 개의 동(洞)이 있는 데다, 대개는 소규모 상가로 들어차 있다. 말로만 듣던 쪽방촌이 탑골공원에서 종로3가 방향인 ‘노인벨트’에 있을 거라고는 짐작했다. 종로라면 서울 한복판이고, 그리 넓은 지역도 아니기에 어렵지 않게 찾아내리라 생각했다.

탑골공원은 노인세상이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거대한 노인정이다. 그 곳말고는 온통 젊은이들의 공간이니 길 하나만 건너면 무려 5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셈이다. 여기에서 종로3가 쪽으로 5분 남짓 걸어가면 종묘공원(봉익동)이 나온다. 이곳은 두 번째 노인정이다. 종로 쪽방촌은 아마도 이 두 노인정 사이 어딘가에 있을 터.

탑골공원 돌담길을 따라 낙원상가 쪽으로 걷다보면 약간 퍼진 밥에서 나는 듯한 ‘노인 냄새’가 느껴진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이곳은 ‘노인들의 거리’라기보다는 ‘할아버지들의 거리’라고 하는 게 맞다. 할머니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곳곳에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술판이 벌어져 있다. 막걸리와 1000원짜리 안주가 있고, 장기판과 좌판에서 종종 승강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다시 종로3가를 향해 걸었다. 골목 사이사이로 모텔이 눈에 들어온다. 좀더 걸으니 개축 공사가 한창인 피카디리극장과 단성사가 나타난다. 여기에서 조금 더가면 종묘공원이다. 그런데 쪽방촌이 눈에 띄지 않는다. 분명 노인벨트를 지나쳐 왔으니 쪽방촌도 지나왔을 텐데. 무려 1000여 명이 살고 있다는 쪽방촌은 어디에 꼭꼭 숨었을까. 돈의동 103번지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첫날 밤은 그렇게 허탕을 치고 다음날 다시 종로거리를 헤맸다. 그러고도 쪽방촌을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독자 수색’을 포기하고 낙원상가 근처 포장마차 주인에게 길을 물었다.

“이 근처에 종로 쪽방이 있다는데, 어딘지 아세요?”

포장마차 주인은 뜨악한 시선으로 아래 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왜, 댁이 거기서 자게?”

그는 종로2가와 3가 사이의 모텔촌을 가로질러 들어가 ‘동광시장길’을 찾으라고 일러줬다. 피카디리극장 옆 초동교회 뒤편에 3층으로 불법 개조한 건물은 모두 쪽방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한마디 거들었다.

“거기는 젊은 사람 갈 데가 아닌데….”

큰길가엔 번듯한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골목초입엔 모텔촌이 제법 크게 형성돼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들어가면 영화 속 슬럼가처럼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곧 ‘동광시장길’이라는 푯말을 찾아냈다. 종로 쪽방촌 입구다. 골목 안으로 들어가자 허름한 건물 앞에 몸이 불편한 노인 몇이 의자를 놓고 앉아 있다. 어두컴컴한 골목에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 있는 광경이 흡사 사창가 같다.

금시라도 무너질 듯한 건물 외벽엔 나무 사다리들이 엉켜 있다. 작은 건물 곳곳에 어거지로 문을 냈다. 그만큼 방이 많다는 얘기다. 지은 지 50년은 돼 보이는 우중충한 목조 건물 옆으로 비교적 최근에 지은 다가구 쪽방 건물도 눈에 들어온다. “서울 한복판에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구나” 하고 혀를 내두르며 걷다보니 어느새 쪽방거리는 사라지고 종로 상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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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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