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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쓰기와 일기 쓰기 가르쳐준 고매한 교육자

  • 글: 노신영 롯데 복지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

편지 쓰기와 일기 쓰기 가르쳐준 고매한 교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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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대단한 열의를 갖고 계셨다. 천자문은 국민학교 입학 전에 아버님으로부터 배웠고 3학년 때부터는 일기를 쓰게 되었다. 어떤 날은 별로 쓸 것이 없어 따분하였고, 어떤 날은 쓰기 싫어서 짜증이 났다. 그러나 한 주일에 한두 번씩 일기장을 점검하는 아버님이 무서워 매일 간결하면서도 정확하게 일기를 썼다.

아버님의 신년 선물에는 으레 새 일기장이 들어 있었다. 일본에서 주문한 일기장에는 제비와 비행기의 속도 등 여러가지 통계숫자가 적혀 있었고, 날짜마다 토막지식이 기재되어 있었다. 토막지식 중에는 ‘海よリも陸地の低ぃオランダの海岸’(바다보다도 육지가 낮은 네덜란드의 해안)이란 것도 있었다. 토막지식이 재미있어서 새 일기장을 받으면 며칠 사이에 365일 분을 전부 읽었다.

아버님은 일본 도쿄에 유학중인 누님에게 정기적으로 편지를 쓰게 하셨다. 엽서에도 적었지만 한번씩은 긴 봉투편지를 쓰게 했다. 편지를 쓰면 아버님께서 읽어보시고 문맥이 잘 이어지지 않는 곳을 고쳐주셨다. 언젠가는 봄에 부화한 병아리들이 잘 자라고 있어 여름방학 때 누님이 돌아오면 맛있는 닭 백숙을 해줄 수 있다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아버님은 편지를 받으면 누가 문을 두드린 것으로 생각하고 곧 답장을 쓰라고 하시며, 회답을 한 편지와 답장을 쓰지 못한 편지는 따로 보관하라고 일러주셨다. 이때의 가르침을 나는 70이 넘은 지금도 지키고 있다.

여름에는 가끔 뜰에 큰 멍석을 깔고 식구들과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그런 때 누가 우리집 앞을 지나가면 아버님은 그를 불러 자리에 앉히고 약주와 식사를 권하셨다.



아버님은 일본어로 된 ‘경성일보(京城日報)’를 구독했는데 중요 기사는 꼭 나에게 읽어주시고 전후의 뜻을 설명해 주셨다. 노자와 공자에 대한 설명도 국민학교 시절 아버님으로부터 처음 들었다. 한무제(漢武帝)의 노여움을 산 사마천(司馬遷)이 궁형(宮刑)을 받은 후 ‘사기(史記)’를 저술하였다는 사실도 아버님에게 배웠다.

나의 좌우명이 되어 지금도 서재에 걸려 있는 ‘人必自侮而後人侮之 家必自毁而後人毁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사람은 자기가 모욕당할 만한 일을 한 뒤에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고, 집안은 스스로 훼손당할 일을 한 뒤에 남으로부터 손괴를 당하며, 나라도 스스로 잘못을 저지른 후에 타국으로부터 침범을 당한다)라는 액자의 글귀는 국민학교 6학년 때 아버님이 적어주신 것이다.

토지개혁으로 모든 재산 상실

국민학교 졸업 때까지 6년 동안 나는 학교공부에 더하여, 한국과 중국·일본 등 동양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아버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1943년 전학년 우등으로 강서덕흥국민학교를 졸업하고 평양고보의 후신인 평양제2공립중학교(평2중)에 입학했다. 당시 평1중은 일본인, 평2중은 한국인, 평3중은 일본인과 한국인이 섞여 다니는 학교였다. 평양시내의 국민학교에서는 평2중에 10여 명씩 입학하기도 하였으나 지방인 강서군에서는 나 혼자만 합격했다. 강서덕흥국민학교를 졸업할 때는 시모이사카(下飯坂元) 평안남도 지사의 표창장을 받았다.

언제부터인가 아버님은 “신영아, 누이는 일본에 유학시켰지만 너는 독일로 유학 가라”고 말씀하여 일본의 고등학교 입학만을 생각하던 나를 당황하게 만드셨다. 일본 각지를 여행하고 돌아온 아버님은 일본이 독일보다 뒤떨어진 나라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3학년 때 해방이 되어 나는 일본도 독일도 가지 못하고, 월남 후 아버님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독일어를 제2 외국어로 선택하게 되었다.

남부럽지 않던 우리집은 8·15 광복과 더불어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소련군이 진주하고, 좌익계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우리집은 부르주아로 지목되었고, 1946년 토지개혁으로 모든 재산을 잃었다. 환갑이 넘은 아버님은 실의에 빠져 재기할 의욕을 잃어버렸고, 그때부터 어머님이 생계를 꾸려나갔다. 어머님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매우 진취적이고 활동적이었으며, 총명하셨다. 어머님은 난생 처음으로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시며 호구지책을 마련하셨다.

그러한 역경 속에서도 부모님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는 식지 않았다. 특히 장남인 나의 장래와 교육에 대하여는 언제나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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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신영 롯데 복지재단 이사장·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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