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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문학, 세계의 반영

  • 글: 이윤기 소설가 / 번역가

“호메로스, 당신 살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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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다레 씨에게 물었다.

“나는 ‘H서류’에서 신화 시대의 영웅 벨레로폰을 읽었습니다. 두 고전학자는, 하늘을 나는 천마(天馬) 페가수스를 타고 괴물을 죽이는 벨레로폰입니다. 호메로스는 괴물 키마이라, 녹음기는 하늘을 나는 천마 페가수스입니다. 알바니아는 서사시의 발생지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카다레 씨와의 만남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작품을 세 권(그 중 ‘ H서류’는 교정쇄로)이나 읽고 나간 나는 그의 작품의, 호메로스 및 셰익스피어와의 연관성을 추궁했지만 그의 대답은 번번이 겉돌았다. 인터뷰가 끝난 직후에야 그는 나의 집요한 추궁이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뒷날 카다레 씨는 통역을 통해 신문사의 담당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미지의 나라 한국에서 그런 질문을 받으리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한 참이어서 대답이 부실했노라고 고백하더란다. 그는 ‘문학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이런 따위의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H서류’가 출간되었을 때 나는 신문에다 카다레를 찬양하는 서평을 썼다.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가 그때 서평의 제목이다. 나는 그 책에서 읽은 다음 몇 구절을 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또 어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노래의 한 구절이 사라져서 몇 년 동안 어둠 속에 묻혀 있다가 다시 세상에 나타나게 되는 것일까? 더구나 이런 현상은 한 음유시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마치 물이 지하로 흐르다 다시 솟아오르듯 다른 시인에 의해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다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다. 서사시의 조각들은 이미 몇 년 전 시체가 썩어버린 음유시인의 무덤으로부터 땅 표면의 단단한 껍질을 꿰뚫고…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H서류’ 中, 이스마엘 카다레/박철화 옮김/문학동네)



“검사님, ‘소설’ 쓰시는군요”

25년 전 흑백 TV 시절, ‘수사반장’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탤런트 최불암씨가 수사반장으로 나왔다. 수사반 형사들이 피의자를 심문하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피의자는 사실을 평면적으로 건조하게 진술하는 것이 아니라 ‘달빛이 유난히 밝아 별들이 성기어 보이던 밤’ 따위의 수사(修辭)를 써가면서 진술했다. 듣고 있던 형사 하나가 투박한 사투리로 이렇게 내뱉었다.

“이 자슥, ‘문학’ 하고 자빠졌네.”

이 경우 ‘문학’은 순수문학, 상업주의 문학, 할 때의 그 ‘문학’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부쩍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소설’이라는 말이다. 향정신성 약물 투여 혐의를 받고 구속된 한 여배우는, 정황 증거를 들어가면서 여죄를 추궁하는 검사에게 이런 말로 대들었다.

“검사님, ‘소설’ 쓰시는군요.”

대통령 아들을 끼고 권력의 핵심을 맴돌던 한 인사가 수뢰혐의로 구속되었다. 언론이 수뢰혐의 당사자의 신변을 추리해서 기사를 쓰자 그는 언론을 향해 똑같은 말을 했다.

“요즘의 언론은 나를 두고 ‘소설’을 쓰고 있다.”

이런 경우의 ‘소설’은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 할 때의 그 ‘소설’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본바닥 그리스에서 나는 영어로 쓰여진 관광 안내 책자를 읽다가 실소한 적이 있다. ‘신화(myth)’라는 단어의 용례(用例)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이 남들에게 친절하다는 소문은 거짓말이 아니다(Greeks’ reputation for hospitality is not a myth).’

이 용례에 따르면 ‘신화(myth)’는 ‘거짓말(myth)’과 동의어다. 위에 쓰인 ‘문학’ ‘소설’ 역시 ‘신화’ 혹은 ‘거짓말’과 똑같은 의미로 쓰였다. 문학, 소설, 신화, 거짓말… 문학은 신화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는 물건인가? 신화는 거짓말에 얼마나 가까이 닿아 있는 물건인가? 문학은 결국 거짓말인가?

황지우 시인이 놀랄만한 말 한마디를 툭 내뱉은 일이 있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문학이라는 것이 본디 기도나 발원문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그것이 익을 대로 익게 되면 그 열매가 다시 종교의 뒷마당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한영희 문인사진집 ‘작가’ 서문 ‘선골도풍(仙骨道風) 이콘’ 中)

신화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될만한 글을 책에 쓴 적도 있다. 다시 쓴다. 신화는 결정적인 ‘인간의 꿈과 진실’이다. 나는 신화 이야기를 할 때마다 특정 민족의 ‘꿈과 진실’이라는 말보다 ‘우리 인간의 보편적인 꿈과 진실’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민족에 관한 한 ‘우리’는 그리스인과 다르고 로마인들과도 당연히 다르다. 하지만 보편적인 인간으로서 ‘우리’라고 할 때의 ‘우리’는 몇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공유한다. 그 경험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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