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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다섯 마당, 잃어버린 일곱 마당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살아남은 다섯 마당, 잃어버린 일곱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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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다섯 마당, 잃어버린 일곱 마당

조선 헌·철종대의 명창 모흥갑이 평양 능라도에서 소리 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19세기에 활약한 명창들로는 권삼득, 송흥록, 염계달, 모흥갑, 고수관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박유전, 이날치, 김세종 등이 19세기 후반에 크게 이름을 떨쳤다. 20세기 전반기에 활약한 명창으로는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전도성, 김창룡, 유성준, 정정렬 등이 있으며, 이들 명창의 소리는 유성기 음반으로 남아 있어 그 소릿결을 지금도 확인해볼 수 있다.

명창은 소리마다 음색이 독특하고, 스타일도 다르다. 어떤 명창이 독창적인 대목을 창작해서 불렀는데, 그 대목이 인기를 누려 다른 명창들도 그대로 흉내내어 전승력을 가질 때 이 부분을 ‘더늠’이라 부른다. 더늠은 ‘더 넣는다, 더 늘어난다’는 의미로 뛰어난 창자(唱者)에 의해 새롭게 짜여져 늘어난 부분이다. 물론 작가이자 작곡가로서 창자의 창작을 인정해주며, 이후 그 대목을 부르는 창자들은 소리의 모두(冒頭)에 그 작품의 창자를 밝혀준다. 김창환의 ‘제비 노정기’라든가, CF로 더욱 유명해진 “제비 몰러 나간다”의 권삼득이 창안한 더늠 ‘제비가’가 대표적이다.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옥중에서 절망감에 빠진 춘향의 적막한 독백 때문에 일제 강점기 때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가 됐다.

판소리는 전승된 지역에 따라 가창 방식과 소리 놓는 법 등이 서로 다르다.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등 판소리가 전승되는 지역에 따라 소리 하는 방식이 각각 독특한 형태로 발달해왔으며, 그것이 하나의 법제로 굳어졌다. 이들 지역은 이름난 명창이 살던 지역이기도 하다. 전통사회에서는 명성과 교육 능력을 가진 명창의 집에 학생들이 함께 기식하면서 오랜 시간 학습했다. 같은 스승에게 배우다 보니 배우는 이들의 소리 스타일도 거의 같게 됐다. 씩씩하고 웅장한 맛이 나게 소리를 끌어가거나, 애원처절하며 기교 위주로 소리 하는 것은 소리를 독자적으로 수련해 이뤄낸 명창의 특별한 능력이지만, 이것이 일가를 이뤄 제자들에게 전수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동일한 지역에서 불리는 동일한 스타일의 판소리가 된다.

판소리의 곡조·장단, 그리고 고수

판소리는 문학적 내용의 시로 이뤄진 사설에 악곡과 장단을 배합해 짜맞춘 형식으로 돼 있다. 내용으로 보면 서사시나 연극적 성격이 강한 문학작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노래극이기도 하다. 판소리엔 각각 사설들이 있고, 이 사설의 의미에 부합하는 악곡과 장단을 짜넣어서 완성한 음악극의 형식이다.



판소리 사설은 일정한 장단과 악상에 따라 그 정서가 결정된다. 보통 슬픈 내용의 사설은 느린 장단에 슬픈 악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사설은 빠른 장단에 슬픈 악상으로 결합되어 있어서 그 슬픔의 정도를 강화하는 독특한 효과를 내기도 한다. 판소리 사설에 장단과 악상이 결합하는 양상은 아주 다채롭다. 서양음악에서는 장조가 기쁘고, 씩씩하고, 남성적인 악상을 주며, 단조는 슬프고, 어둡고, 여성적인 느낌을 준다. 판소리에도 이와 같은 악상이 있다. 악상에는 슬픈 선율과 즐거운 선율이 있고, 장단에는 느린 장단과 빠른 장단이 있어서, 이 둘의 결합방식에 따라 흥겨운 느낌이나 장중한 느낌, 슬픈 느낌 등 다른 방식으로 직조된다. 판소리의 각 대목은 소리의 미의식이나 지향에 따라 우조, 평조, 계면조 등의 정서로 구분된다.

우조(羽調)는 웅장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악곡으로 장엄한 장면, 남성다운 장면, 영웅적 인물의 호탕하고 씩씩한 기상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선택된다. ‘춘향가’ 중 ‘적성가’와 ‘심청가’ 중 ‘장승상 부인’ 대목을 우조로 노래한다. 평조(平調)는 편안하고 화평한 느낌을 주는 악곡이다. 기쁜 장면이나 흥겹고 화평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에 주로 쓰인다. ‘춘향가’의 ‘기산영수’ 대목이 평조로 불린다. 계면조(界面調)는 판소리의 기본이 되는 조로 슬프고, 애절히 탄식하는 장면, 슬픈 이별의 정서를 노래하는 장면에 흔히 사용된다. ‘춘향가’ 중 ‘이별가’나 ‘심청가’ 중 ‘추월만정’을 계면조로 노래한다.

소리는 합당한 장단이 있는데, 판소리 광대의 소리에 고수가 북으로 장단을 맞춰준다. 장단은 서양음악의 박자와 흡사한데, 소리의 빠르기를 북으로 조절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어떤 대목에선 북이 강하게 각을 쳐 소리의 진행을 강조하거나 소리의 미진함을 보완하며, 다른 부분에선 북소리를 거의 내지 않아 소리의 흐름을 터주면서 소리와 반주의 조화를 이뤄낸다. 이것들이 고수의 역할이다. 판소리에 사용되는 장단으로는 가장 느린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으로 빨라지며, 이밖에 엇모리, 엇중모리 등의 장단이 있어서 소리의 빠르기를 규정하고 호흡을 조절한다.

고수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정해진 리듬을 치는 것 외에 소리의 완급과 사설이 가진 정서까지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고수는 다양한 장단의 틀을 가지고 창자의 소리 운용 태도에 따라 기교를 달리해 북을 친다. 소리에 장단을 붙여가는 방식으로 ‘대마디 대장단’이나 ‘부침새’ 등이 있다.

소리의 맥을 제대로 살려주는 고수의 기능과 역할을 중요시하여 예전부터 ‘일고수 이명창’이란 말로 고수의 위치를 높여주기도 했다. 고수가 소리판의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고 창자를 북돋워주려고 ‘얼씨구’라든지 ‘좋다’ 등 일정한 조흥구를 노래 사이에 집어넣기도 하는데, 이를 추임새라 부른다. 특히 소리꾼의 컨디션이나 입장을 잘 헤아려 적절히 북 반주하는 것을 ‘보비위’한다고 말한다. 고수가 내는 추임새는 광대의 구연 의욕을 북돋우기 위한 적극적 탄성이지만, 관중도 감상하는 자리에서 추임새를 발할 수 있다. 관중의 추임새는 판소리를 들으면서 야기된 감흥을 자연스럽게 발산하는 감탄사이며, 생동적인 판으로 이끌어 나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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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영대 고려대 교수·국문학’ yyyy@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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